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40)
440화. 30층으로. (1)
“이럴 수가…….”
케네스가 말을 더듬었다.
탑의 신격들이 아래 층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그 경계가 탑이 아닌 탑 외부라면…….
대체 얼마나 터무니없는 걸 지불했을지 상상도 가질 않았다.
‘정말로 대천사급에 해당하는 천사의 가호를 받은 건가.’
책이 뭔지는 몰랐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케네스를 보며…….
……진혁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아무리 천사들이 막가파이긴 해도, 자신을 섬기는 추종자들에게 에덴의 내부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았겠지.
대천사들의 반목을 실토한다면, 그건 스스로의 신성성을 훼손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에덴 내부가 쪼개졌다는 걸 아는 건 고위 천사들뿐.
외부에서 주로 활동하는 네피림은 이 말에 낚일 수밖에 없다.
[신격 ‘승리를 알리는 자’가 빨리 정보를 알려 달라 합니다.] [자기 말을 무시하지 말아 달라 외칩니다.] [……무시하지 말라고!]뭔가 상태창들이 폭주하듯 쏟아지긴 하지만, 진혁은 가브리엘의 간곡한 요청을 대충 흘려 넘겼다.
어차피 지금 당장 정보를 뭐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 맞다. 책. 으음. 그게…… 조금 전까진 그 책이 40층 어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이 발이 달렸나 그새 없어졌더라고요. 거참, 하여간 더럽게도 얻기 힘드네요. 그쵸?”
[신격 ‘승리를 알리는 자’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다그칩니다.]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이니만큼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요구합니다.]“저도, 알죠. 아는데……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진혁이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막말로.
간절하고 아쉬운 건 가브리엘 쪽이지 이쪽이 아니다.
라파엘과 우리엘을 포함한 급진 쪽 천사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욱더 말이지.
결국, 믿고 의지할 건 네크로노미콘 하나뿐.
이쪽이 시키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게 가련한 천사의 운명이었다.
물론, 채찍만 준다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금은 당근도 입에 물려 주도록 해 볼까?
“그렇게 닦달하지 않아도 유력한 단서 하나를 찾아뒀습니다. 그 벌레 소리,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호수’에서 서식하는 파리들이더라고요.”
[신격 ‘승리를 알리는 자’가 그 호수가 있는 위치를…….] [상태창이 강제로 종료됩니다.]대화는 이걸로 끝이다.
상태창을 닫은 진혁이 케네스를 바라봤다.
“어떻게, 이 정도면 충분히 증명이 된 것 같은데……?”
“네놈이 대천사의 사도라니. 아직도 믿긴 힘들지만, 정황상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군.”
케네스가 마지못해 검을 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테레사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명분이 없어졌다.
바티칸에서도 이번 임무의 실패에 대해선 이해해 줄 것이다.
“복귀한다.”
“하, 하지만!”
“사교도에게 굴복한 게 알려졌다간…….”
“내가 책임진다고 했을 텐데?”
케네스가 눈을 부라렸다.
서슬 퍼런 명령에 이단심문관들이 꼬리를 말았다.
“……알겠습니다.”
“철수하도록 하죠.”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보겠다.”
“간다고? 누구 마음대로?”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개방했다.
“뭐?”
“기껏 우리끼리 좋은 시간 보내고 있었는데, 실컷 방해를 해 놓고. 거기에 테레사 씨를 협박했으면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튄다고?”
그건 상도의가 아니지.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다른 건 몰라도 원한만큼은 기가 막히게 기억하거든.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나온 건 자작나무로 만든 나무 몽둥이었다.
이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
오랜만이다.
“그,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커억?”
빠악!
몽둥이가 허벅지를 강타했다.
엄청난 통증에, 케네스의 입에서 헛바람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우선, 대천사의 사도한테 하는 말버릇부터 좀 고칠까? 듣기 영 거북하네.”
“미안……하다. 내가 그만…… 끄아악!”
“말은 여전히 짧네. 그 주둥이가 문제려나?”
퍼억! 퍽! 퍼퍼퍼퍽!
몽둥이가 더욱 사정없이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계시를 받은 선지자를 몰라뵙고 함부로 덤볐습니다. 죄송합니다!”
“늦었어. 그냥 좀 더 맞자.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는 걸로 하고.”
등, 어깨, 팔.
둥둥 탁! 둥둥 탁!
묘하게 리듬감마저 느껴지는 구타는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혹독한 고문을 업으로 하는 나머지 이단심문관들도 공포를 느낄 만큼 말이다.
-역시, 저 악마 놈. 파라다이스 섬에서의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어.
-바티칸보다…… 진혁 씨가 더 나쁜 놈 같아요.
-흐음. 역시 계약자는 사람 패는 것도 멋있구나. 저 미소. 저 몸놀림. 진짜 왜 이렇게 잘난 거지 하아……. 미치겠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길고 긴 구타가 마침내 멈췄다.
“끄으으…….”
깔끔하던 검은색 정장이 먼지투성이로 변했고. 선글라스는 박살이 난 채 바닥에 뒹굴었다.
고고하고 긍지 높던 네피림이 중환자실의 환자로 변해 버렸다.
좋아.
이 정도면 적당히 주물러 줬다.
아무리 단단하던 놈이라도 정신과 육체 양쪽에 타격을 받은 이상, 평소의 냉정함을 유지할 순 없겠지.
“너희 둘은 꺼져. 3초 준다.”
진혁이 케네스를 제외한 나머지 둘에게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케네스가 복날 개처럼 처맞던 걸 본 둘이었기에, 토를 달거나 어설픈 충성심을 내세우는 일 따윈 없었다.
이걸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좀 할 건데, 내가 개인적으로 예스맨을 좋아하니까 대답 잘하길 바랄게. 에덴에서 새로운 네피림을 바티칸에 보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마……말씀하십쇼.”
“30층에서 바티칸은 어떤 테마를 선택할 거지?”
시련의 탑 30층.
이곳은 플레이어와 거주자가 하나의 팀을 이뤄 다양한 종류의 과업에 도전하게 된다.
대부분 신화나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 그걸 클리어하는 게 정석.
문제는 누군가 고른 테마는 다른 이들이 고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거주자와 어떤 테마를 고르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완전히 바뀌게 될 터.
‘정보를 선점하는 게 중요해. 각 테마마다 주는 보상이 다르니까.’
앞으로 탑을 오르는 데 있어 누가 어떤 아이템과 보상을 습득했는지 파악해두는 건, 고인물에게 있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기본이었다.
“그건…….”
“아, 말하기 조금 곤란한 거였어?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부웅!
진혁이 몽둥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내가 죄책감이 줄어들 수 있게 도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아, 아닙니다! [100년 전쟁]. 저희가 고를 테마는 바로 그것입니다.”
“……!”
테레사를 그렇게 부르던 게 책임을 추궁하려는 건 줄 알았더니.
30층 공략을 하기 위해서 소환한 거였나.
잔다르크의 역사를 재현하는 데 있어 성녀의 도움은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과제였다.
이걸 안 것만으로도 꽤나 큰 소득이다.
“선지자시여. 궁금한 게 해소되셨으면…… 이제 저는 가 봐도 되는 겁니까?”
“아니, 사실 부탁할 게 한 가지 더 있어.”
바티칸 내부에서 모든 걸 알려 줄 인물.
동시에 층계를 자유자재로 다니면서 에덴의 내부 정보를 알려 줄 조력자가 필요하다.
네피림이라면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전력상 도움이 되는 카드였으니까.
“혹시, 유망 기업의 인턴이 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진혁의 손끝에 불꽃이 일렁였다.
* * *
2주일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각 길드들은 30층 공략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진혁이 29층을 공략해 준 덕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30층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시련의 탑 1층, ‘대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네.”
“과연, 다들 어떤 선택을 하려나?”
“이제 조금 있으면 알 수 있겠지.”
기자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일전 29층에서의 일로 인해 대형 길드들은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다.
아포칼립스에 제대로 대항하지 않고 꽁무니를 뺐다는 사실에 실망감이 극에 달했던 탓이었다.
거기에 각 길드가 보유하고 있는 랭커들과 상위 플레이어들이 사망한 것 역시, 대형 길드의 위상을 깎아 먹는 데 한몫했다.
“간다라 길드는 끝장났어. 니라샤를 잃은 이후 완전히 망가졌던데?”
“천세의 신격들도 다른 사도를 찾아 나설 테니까.”
“그에 비해 적아 길드는 승승장구야. 고인물 코퍼레이션하고 협업한 게 크긴 컸어. 후발 주자인데도 저렇게 인지도를 높인 걸 보면.”
“마리아 플레이어님에 대한 평가도 수직 상승했더라고. 막판에 도운 일본 쪽도 마찬가지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한 층 커졌다.
희비가 엇갈린 상황 속.
우우웅!
여러 개의 공간이동 마법이 동시에 펼쳐졌다.
마침내 30층에 참가할 의사가 있는 길드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타이탄, 싸울아비, 사무라이.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촤촤촤촤촤!
카메라 셔터가 불을 뿜었다.
“거기, 확실하게 찍어!”
“각 길드 상위 티어부터 클로즈업하고. 그래. 당연히 마스터부터 찍어야지.”
기자들이 한 장면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뒤이어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큰 피해를 입게 되어 대형 길드에서 탈락한 이들의 뒤를 이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2인자들이다.
게다가 중형급 길드들도 30층 공략을 위해 대거 등장했다.
‘대부분은 쭉정이들인데……. 그래도 쓸 만해 보이는 놈도 몇몇은 있네.’
먼저 도착한 진혁이 주위를 훑었다.
대충 보더라도 수백 명이 넘었지만, 군계일학은 아무리 수가 많아도 티가 나는 법이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저 셋은 당장 최상위 랭커들이랑 비교해도 밀리지 않네.’
특히 바로 앞쪽에 있는 남자는 그중에서도 특출했다.
올백으로 넘긴 흑발에 훤칠한 키도 눈에 띄었으나, 그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특유의 마력이다.
‘흐음. 이것 봐라?’
진혁의 입가가 비틀렸다.
이건 꽤 흥미롭다.
지금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격들이 각자의 사도를 위해 개입했지만, ‘정령계’ 쪽과 관련된 플레이어는 처음이었다.
극히 폐쇄적인 놈들이 나섰으니 당연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그때였다.
저벅.
그 당사자가 곧장 이곳을 향해 다가왔다.
“오오오! 저것 봐.”
“루시우스잖아?”
“24층, 미발견 유적 2개를 공략한 랭커. 그것도 공대원 없이 혼자서만 성공했었어.”
“솔로 브레이커. 그래. 그때 붙은 이명이었지.”
“게다가 세상에나, 저기! 저쪽에 강진혁 플레이어도 있어!”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언제 오나 했는데, 이미 와 있던 거였어?”
“당장 카메라 돌려. 저쪽 찍으라고!”
그동안 탑을 오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기자들이 저러는 걸 보면 나름대로 유명한 인물인가 보다.
새로운 루키와 정상급 랭커의 만남.
모든 관심이 한쪽으로 쏠렸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고.
‘역시, 저 녀석도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건가.’
진혁이 가볍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하여간, 고인물은 이래저래 피곤하다.
저벅.
시우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루시우스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꿈을 이룬 것처럼. 얼굴과 표정에서 그 감정이 역력히 배어 나왔다.
“당신과 한자리에 있고 싶다는 소망 하나만으로 여태껏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툭.
심지어 한쪽 무릎을 꿇은 루시우스의 모습에, 과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뭘 그렇게까지…….”
진혁이 민망한 듯 말끝을 흐렸다.
정말, 인기인은 피곤하다 못해 골치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런데.
루시우스의 입에서 이어진 말은,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였다.
“레이디 엘리스. 부디, 그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광을 저에게 주시겠습니까?”
“으……으에에?”
옆에 있던 엘리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