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41)
441화. 30층으로 (2)
루시우스 드 베라키스.
루시우스는 뼈대 있는 영국 귀족 가문의 후계자로 어려서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검술, 학문, 교양, 예법은 물론, 승마와 바이올린 같은 영역까지 배웠으며, 모르는 분야에서도 언제나 1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다.
권태롭기까지 한 천재의 삶.
그런 그에게 벼락같은 자극이 찾아왔으니….
바로 시련의 탑이 현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탑을 등반하는 플레이어!
어찌 도전의식이 불타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루시우스는 즉각 탑에 뛰어들었다.
수많은 몬스터와 거주자들을 만났고 생사를 넘어 강해지고 또 강해졌다.
그러나…. 초기의 자극은 간데없고. 어느새 무력감이 몰려왔다.
각종 길드들의 러브콜과. 심지어 탑 내부의 강력한 세력들과 신격들까지 탐내왔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칭찬과 기대. 그리고 당연한 듯 그 결과를 쟁취하는 삶.
무료함과 따분함은 언제나처럼 뇌리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두근!
언제나 가문의 긍지와 자신의 명예만을 위해 살아오던 그에게….
두근!
그것 외엔 그 어떤 것도 관심이 없던 그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한 순간이 찾아왔다.
영상 속에서 본 여신.
분명, 피와 먼지로 얼룩진 지옥과 같은 상황이건만….
그 한가운데서 고고하게 빛나는 엘리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레이디.”
루시우스가 엘리스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여인에게 관심을 준 적 없었지만, 이 여인에게라면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목숨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훗! 보았느냐. 계약자. 짐이 이 정도니라.”
엘리스가 진혁을 향해 ‘엣헴’하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깨를 잔뜩 편 채 파닥거리는 게, 날개만 있었으면 아주 하늘로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아….”
진혁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잡았다.
하여간, 세상에 미친놈들은 많고도 많다.
이런 천방지축 꼬마 박쥐를 좋아하는 걸 보면 말이다.
“거, 괜히 우리 멤버에게 치근덕대지 말고 갈 길 가세요. 이 친구 종신 계약 맺었으니까.”
“종신… 계약이라고?”
루시우스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스릉!
허리춤에 찬 검이 검광을 내뿜었다.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군.”
“소문? 무슨 소문?”
“선량한 사람들을 강제로 노예로 만들어 부려먹는다는 소문 말이다.”
“하아. 그런 헛소문을 믿는 거야? 내가 이미지 관리를 평소에 얼마나 잘 했는….”
“피해자들이 모인 카페다… 자, 봐라.”
루시우스가 품속에 있던 투명한 크리스탈을 꺼냈다.
악,당,모.
악마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모임이다.
그곳엔 모자이크 처리를 잔뜩 한 인터뷰 동영상이 남아 있었다.
“주인… 아니, 그 악마 놈만 아니었어도 정령계… 아니, 방구석에서 편하게 음료수나 마시면서 쉬고 있었을 거예요.”
“모오오기!”
“대장, 모기라고 하지 말랬잖아. 들킨다고.”
“모, 모기!”
“이거 모자이크 제대로 되는 거 맞지?”
“조용히들 해. 머리 아파.”
“달그락. 인터뷰 그만할 거다. 꺼라. 이거 다 지우지 않으면 언데드 군단이 네놈 집 앞에 찾아갈 거니 조심하도록.”
영상이 끝났다.
“보거라. 네놈의 행실이 어떤지. 낱낱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루시우스가 분노를 터뜨렸다.
“보나마나 레이디 역시, 어쩔 수 없이 네놈과 함께하는 것일 터. 지금이라도 제가 구해드리겠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십쇼.”
“어머나. 어떡해야 할까나.”
엘리스가 능글맞게 웃으며 온갖 연약한 척을 다 했다.
어째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유성아….”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라 도와주기 힘들군. 다른 쪽을 알아봐라.”
“테, 테레사 씨?”
“후훗. 난 경쟁자가 없어져서 오히려 좋은걸? 아니, 이건 다른 인격이 말한 거예요. 제가 한 게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지.
이 바보 녀석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테마 선택이고 뭐고 간에 다 물 건너가게 될 거다.
척!
진혁이 아공간에서 ‘홍련’을 꺼냈다.
예리한 단검이 반원을 그렸다.
“덤벼라. 기사도에 따라 불한당에게 세 수를 양보….”
“그렇게 하지 뭐.”
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콰앙!
휘청하고.
루시우스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무너졌다.
단검의 뒷부분으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순간, 그대로 의식이 날아가버린 것이다.
적어도 1시간은 기절해 있을 테니, 이걸로 귀찮은 일은 대충 마무리됐다.
“아쉽구나. 나름 귀여운 맛이 있던 인간이었는데….”
“왜? 너 좋다고 쫄랑거리는 애를 패니 기분이 좀 그래?”
“흐응. 계약자, 질투라도 하는 것이냐?”
“질투는 무슨….”
“헤헤. 하고 있는 거 맞구나. 그치? 응? 어디, 이 누님에게 대답해 보거라.”
엘리스가 진혁의 뒤에 바짝 붙어 걸으며 집요하게 삐약거렸다.
* * *
30층의 테마는 배팅식으로 결정된다.
가장 많은 액수를 배팅하는 플레이어나 혹은 세력에게 그 테마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최대 둘… 반면, 거주자 쪽은 숫자 제한이 없지.’
단지, 밸런스 상 거주자들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난이도가 올라간다.
그 외에도 여러 변수들이 존재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테마를 고르느냐는 것이었다.
[‘바티칸’에서 테마 ‘100년 전쟁’에 입찰했습니다.] [난이도: 4성급] [배팅 금액은 50만 코인입니다.]역시….
저 녀석들이 저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미 케네스를 통해 테마와 첫 배팅액 그리고 최대 배팅 가능 액수까지 전해들은 상황.
“테레사 씨.”
“예. 알고 있어요.”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100년 전쟁은 테레사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테마.
때문에 이번 입찰에 참여해야만 했다.
[‘테레사’가 100만 코인으로 올립니다.]입찰 전쟁이 시작되었다.
“쯧….”
바티칸 쪽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예상했다는 듯 즉각 코인을 되받아치기 시작했다.
‘자본력이야 꿇리지 않는다 이건가.’
진혁이 피식 웃었다.
처음부터 코인으로 이길 생각은 없었다.
노리는 건 경매에서의 승리가 아닌, 상대의 속을 긁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배팅액이 900만 코인까지 치솟자, 바티칸에서도 참지 못하고 반응을 보였다.
“다 보이는… 수작은 그만 부리고 원하는 걸 말하시죠.”
붉은빛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진혁과 테레사에게 다가왔다.
검은색 정장과 흰색 장갑엔 룬어와 십자가가 혼합된 특유의 표식이 보였다.
이 여자도 ‘에덴’의 간택을 받은 사도 중 하나다.
“수작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혁이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반짝였다.
“어차피 못 이길 걸 알면서 우리 쪽 자원을 낭비시키려고 이러는 거 아닌가요? 차라리, 원하는 액수를 말씀해주세요. 맘 편히 각자 갈 길 갈 수 있게.”
“어허. 진지하게 경매에 임하는 저희를 대체 뭘로 보고….”
“2000만 코인. 이거면 되겠습니까?”
“……라고 거절하기엔 너무 큰 코인이긴 하네요.”
원래 한 1000만 코인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데, 상대도 어지간히 짜증이 나긴 한 모양이다.
저 정도 코인을 들이붓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근데, 코인만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한 가지만 더 얹어 주시죠.”
“욕심이 과하시군요. 아니면, 저희를 그냥 아낌없이 주는 호구로 보는 건가요?”
“100년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생각하면, 코인만으론 너무 값싸죠. 게다가 이 제안엔 테레사 씨가 그쪽을 돕는다는 조건을 붙일 겁니다.”
“……!?”
여자의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100년 전쟁에서 성녀의 존재 여부는 그 어떠한 변수보다 중요한 사항.
때문에 테레사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반쯤 포기했던 걸 먼저 제안하겠다고?
“어떻게, 관심이 좀 생기십니까?”
“우선, 어떤 걸 원하는지부터 들어보도록 할게요.”
“큰 건 아니고… 바티칸 지하에 보관 중인 책들 중 하나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유럽에서도 시련의 탑이 나타남에 따라 성유물화된 레플리카들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 중세 시대부터 전해져 온 다양한 금서와 고서적들이 보관되어 있는 바티칸의 비밀 도서관은….
뭐랄까, 시련의 탑에 존재하는 책들과는 다른 종류의 매력이 있었다.
단순히 쓸 만한 정보가 적혀 있는 수준이 아니라.
탑의 가장 음침한 비밀 중 하나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있는 것이다.
‘네크로노미콘’.
본래라면 에덴에 직접 가서야 첫 번째 단서를 얻을 수 있지만. 바티칸에 존재하는 책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걸 모르고 있는 바티칸으로서는 이 거래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거다.
탑 밖에 있는 책 한 권과.
탑 안에 있는 성유물을 바꾸자는 것이었으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붉은 단발머리 여자가 손을 뻗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요. 아, 저는 소샤나라고 합니다.”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진 채.
“하하. 제가 또 공정 거래 위원회에서 상장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강진혁입니다.”
두 손이 하나로 겹쳐졌다.
* * *
이후의 일은 꽤나 순조롭게 흘러갔다.
테레사는 100년 전쟁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바티칸의 청문회로부터 일시적인 면제권을 받았다.
‘뭐, 잠시뿐일 테지. 마지막에 보상을 차지하는 건 테레사 쪽일 테니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보상은 바티칸이 먹는다?
그런 바보 같은 거래를 할 리가.
이미 어떤 식으로 빌드업을 쌓아갈지 전부 상의해놓았다.
문제는 놈들이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걸 깨닫기 전에 바티칸에서 책을 회수해야 한다는 건데….
그 부분은 다행히 유연화와 유천영 어르신이 직접 움직여주기로 했다.
케네스가 안내를 하고 책의 진위까지 확인해줄 테니, 장난질이 섞일 틈은 없을 것이다.
진혁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살수대첩]난이도: 3성급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의 저주]난이도: 2성급
[오크 마을 왕국으로 성장시키기]난이도: 5성급
여러 개의 테마들이 나왔고. 많은 길드들이 입찰을 통해 하나씩 자신들이 자신 있어 하는 테마들을 선택해나갔다.
얼핏 보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테마들도 모조리 팔렸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떤 거주자들과 연을 대고 있느냐에 따라 공략 난이도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띠링!
[19번째 테마가 준비되었습니다.]기다리던 차례가 왔다.
상태창이 빠르게 점멸했다.
[프로듀스 101. ‘진짜’ 천마를 골라라.] [난이도: 8성급]모든 테마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걸 꼽자면….
……가장 먼저 나오는 테마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일 거다.
외계 종족이 등장하는 ‘우주 전쟁’이나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을 재현하는 테마와 더불어 몇 안 되는 8성급 테마였으니까.
‘그나저나 프로듀스 101이라….’
원래 테마의 이름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계속 바뀐다지만, 설마 이런 이름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유아독존(唯我獨尊)’.
과거에 탑을 올랐을 땐 분명 이런 이름이었으니까.
‘뭐, 괴랄한 복사조건들이 난무하는데, 이런 이름이 나와도 이상하진 않지.’
시스템의 취향이 변태적인 건 이미 수없이 많이 경험해왔다.
“5만 코인.”
이건 최저 입찰금만 내도 아무도 덤비지 않을 거다.
그런데.
“100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