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45)
445화. 마계의 역습 (1)
화르륵!
불타버린 나무들과 걸레짝처럼 변한 땅.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즐비하게 널린 시체들로 미루어보아 끔찍한 학살이 있었을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휴유. 간만에 힘 한 번 제대로 뺐네. 이 정도로 피를 흘린 게 대체 언제였더라?”
“이 세계 천마는 뭔데 이렇게 센 거야? 넷이 붙어서야 간신히 승기를 잡다니. 이게 말이 돼?”
“마계에서 지원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 특히, 저 괴물……이 말이야.”
“카악 퉤! 젠장. 나 때는 우호법이란 놈이 뒤통수 칠 궁리만 하던 머저리였는데, 이 영감은 더럽게 질기군.”
피 웅덩이 속, 몇몇의 그림자들이 보였다.
무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이들이었다.
모여 있는 천마가 여섯.
각기 다른 지역에 천마들이 연합을 해버린 것이다.
거기에 군타페르가 깨운 고대종 ‘베헤모스’와 그를 따르는 신수들 역시 최악의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허허. 2회차까지 겪어서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거늘……. 아직도 올라가야 할 곳이 남아 있단 말인가.”
“그거야 너는 축구만 해서 퇴화한 거겠지. 명색이 천마란 놈이 발롱 타고 월드컵 우승한 게 평생 자랑이라니. 기가 막혀선.”
“갈! 그대는 육아나 하지 않았나? 딸내미 자랑만 하는 바보 녀석이 감히 본좌의 황금발을 보고 어쩌고 저째?”
“아서라. 우리 딸한테 귓방맹이 한 대 맞으면 다음날부턴 저승리그 강제 이적이야 넌.”
이미 하위 7개 분파는 전멸.
상위 분파들도 각 대를 이끄는 대주들과 부대주들 정도만 간신히 숨통이 붙어있었다.
“컥…… 쿨럭! 빌어먹을, 열흘만 젊었어도…….”
“하아…… 이건 좀 버겁긴 하네요.”
암황이나 추혼사영이 분전하고 있긴 했지만, 이미 전세가 기울어져 버렸다.
남은 건 끝까지 자존심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후일을 도모해야 할지…….
그것을 선택하는 것뿐.
“지존, 저희가 시간을 벌 테니, 어떻게든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
암황의 말에, 천마가 주먹을 쥐었다.
쇳물을 삼키는 것처럼, 뜨거운 분노가 터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암황의 말처럼 상황은 끝났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내공을 운용했다간 주화입마에 빠질 터.
거기에 이성을 잃은 공격에 당해줄 상대들이 아니었다.
……강하다.
하나하나가 무림 전체를 쓸어버릴 만큼.
게다가 단순히 무력뿐 아니라, 수많은 사선을 넘어오며 쌓아온 경험은 더욱더 까다로웠다.
차라리, 무지막지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던 슈브니구라스가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저벅.
검은 양복을 입은 재벌 3세 천마 ‘김동환’이 다가왔다.
“상대 쪽 기업을 박살 내는 방법은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건 담합이야. 매머드들이 힘을 합치면 한 놈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거든. 뭐, 내가 살았던 세계에선 그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더러운 놈들…… 명색이 절대자란 것들이 힘을 합친단 말이더냐?”
“너무 그렇게 쏘아붙이지 말라고. 우리도 나름대로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받았거든.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김동환의 손끝에 붉은 기운이 맺혔다.
* * *
파츠츠!
‘헤르메스의 거울’이 거기서 사라졌다.
“…….”
진혁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자존심 강하고 자기가 최강이라 자부하던 천마들.
그런 놈들이 손을 잡을 거란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건만…….
군타페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한 게 분명했다.
“자!”
파리스가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럼, 선택할 시간입니다. 저기 계신 천마님을 순순히 넘기고 동료들을 구하러 가겠습니까? 아니면, 천마 한 명의 목을 취하기 위해 저희와 싸우다가 나머지 모두를 버리시겠습니까?”
최악의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걸 골라도 치명상을 입어야만 하는.
“계약자…….”
“어떻게 할 생각이냐?”
엘리스와 천유성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답은 정해져 있다.
여기서 천마와 스승님을 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테마의 특성상 이쪽 세계의 천마가 아웃당하는 시점에서 층계 공략은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우웅!
그렇다 해서 저 능글맞은 그리스 놈을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도 없었다.
진혁의 손바닥에 하얀 빛이 맺혔다.
“다들, 나만 믿고 준비해.”
‘만다라’에…….
……‘바람의 영역’을 통해 가속시킨 화살이 번개처럼 날아갔다.
“싸운다라…… 이것 참 멍청한 선택을 했군요.”
파리스가 즉각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콰아앙!
한 점에서 교차하는 두 개의 빛.
그걸 기점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킥! 그래야 재밌지.”
“저 녀석의 목은 내 거다!”
“군타페르께 함부로 덤빈 죗값을 치르게 해주지.”
군타페르의 혈족들이 손톱에 날을 세웠다.
순식간에, 지독한 살기가 공간을 가득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만큼, 몇 배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다들, 파이팅이 넘치네. 그래.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보자고.”
진혁이 각종 마법을 연거푸 캐스팅 했다.
‘트리플 매직’의 효과로 인해 어지간한 고서클 마법 따윈 1초도 안 돼 발현시킬 수 있었다.
퍼퍼퍼펑!
불과 얼음이 폭발하자, 온도 차로 인해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솟구쳤다.
“가소롭구나!”
“고작 그런 걸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
공격 마법을 정면에서 받아낸 혈족들이 더욱 기세를 올렸다.
그런데.
“응?”
“뭐야?”
달려들던 혈족들이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시야가 돌아왔을 땐 진혁과 나머지 멤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연기처럼 사라진 자리.
대장장이 천마인 비어마운트 역시 납치당했다.
“도주라니.”
“그런 멍청한 짓을 했다고?”
목적지를 알고 있는 이상, 추격한다면 머지않아 꼬리를 잡을 터.
뻔히 결과가 보이는 악수를 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정확히는 모두가 도주한 게 아니다.
몇몇인가 낙오된 채 버림받은 이들이 있었다.
“빌……어먹을.”
천유성의 전신이 파르르 떨었다.
“주, 주인?”
“다들 어디로 간 거래?”
“분명, 자기만 믿으라고 했잖아?”
운디네를 비롯한 정령수들 역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의문은 곧 확신으로 변했으니까.
“우리를 시간 벌기용으로 쓰고 그 사이에 천마를 데리고 도망간 거다.”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둔 채 주력은 보존하는 전략.
이거라면, 비어마운트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건 물론. 천마를 구하러 갈 시간까지 확보하게 된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남겨진 사람들이 지옥이 된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죽여 버릴 거다. 그 망할 자식, 으아아아아! 이번에도 내 뒤통수를 친단 말이냐!”
천유성의 비명소리가 하울링을 자아냈다.
“심하군. 우리들도 동료를 버리진 않는데…….”
“인간들의 가장 큰 약점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인다는 것인데…… 놈에겐 그런 게 없다는 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적이라…… 쉽지 않겠어.”
혈족들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 * *
얼마나 달렸을까?
툭.
마침내 진혁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 정도면 충분히 거리를 벌렸기 때문이다.
말랑흑두루미의 기상개변을 통해 바람을 타게 해준 것도 쏠쏠히 도움이 됐다.
“고생했어. 역시, 사신수 중 하나 답네.”
“나야 뭐…… 뒤에 버려지지 않기 위해 도울 수밖에 없었다만, 정말 괜찮은 건가? 검성과 정령수들이 강한 건 알지만, 마족들을 상대하긴 버거울 텐데?”
음…….
확실히 쉽진 않을 거다.
2차 전직을 끝마친 천유성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래도 살아서 돌아오긴 할 거야.”
“어떻게 그런 걸 확신할 수 있는 거지?”
“그거야…… 나한테 복수하려면 일단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할 테니까.”
“아…….”
말랑흑두루미가 묘하게 납득해버렸다.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지옥에 가둬놔도 돌아올 남자지.”
“그래,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것보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어.”
진혁의 시선이 말랑흑두루미 등에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녹색 ‘비취’ 펜던트.]일정 이상 데미지를 줄 경우 천마들이 각각 소유하고 있는 장신구를 빼앗을 수 있는데.
이걸 이용한다면 천마들을 무력화하거나 제어할 수 있다.
다른 차원에 있는 천마들이 시련의 탑에 머물 수 있게 하는 대신 주어진, 일종의 페널티인 셈이다.
이미 오른팔을 빼앗았고. 거기에 이곳까지 오면서 빙하조형으로 기를 운용하는 걸 억제해둔 상태.
지금이라면 분명…….
“이봐…… 아니, 잠……깐!”
투둑!
진혁이 가차 없이 비어마운트의 목에 있는 펜던트를 뜯어냈다.
그러자 비어마운트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기운이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약해졌다.
“자, 이제 제대로 된 대화를 좀 해볼까?”
“쳇……. 진짜 어이가 없군. 천천히 회복할 타이밍을 보려고 했는데……. 네놈은 대체 정체가 뭐냐? 이건 또 어떻게 안 거고?”
“그냥, 천마랑 어울리지 않는 목걸이길래 혹시나 싶어서 그랬어.”
“되도 않는 변명은……. 됐다. 능구렁이 같은 놈에게 물어본 내가 멍청한 거지. 원하는 거나 말해라.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날 데리고 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이야, 대화가 잘 통해서 다행이네.”
진혁이 생긋 웃었다.
이래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놈이 좋다.
결과가 뻔히 보인다면 포기하는 것도 빨랐으니까.
“군타페르를 배신하고 이쪽에 붙어. 그럼, 목숨을 보장해줄게.”
“호오. 어째서 내가 군타페르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난 그 고양이 놈과 시스템이 정해준 계약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아니, 너희는 군타페르와 이중 계약을 맺었어. 정확히는 그 휘하에 있는 서큐버스의 함정에 빠진 거지만.”
레미아.
어째서 자존심 강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천마들이 하나로 힘을 모았는지 의문이었는데.
군타페르가 서큐버스인 레미아를 통해 금술을 가한 게 틀림없었다.
아마, 이 무림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게 해주겠다며 함정을 판 거겠지.
‘나에게 추가 연락이 없던 것도 군타페르한테 발각됐기 때문이겠군.’
확실히…….
여러 가지로 선수를 빼앗긴 게 많다.
생각보다 더 골치 아픈 장치들을 해둔 것도 맞고.
하지만, 이쪽이 진실을 알아차렸다는 건 모르고 있을 테니, 아직 반전을 꾀할 여지는 남아 있었다.
“크하하하! 과연, 재밌군. 그래…… 눈치채고 있었단 말이지. 흐음.”
비어마운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식어버린 흥미가 다시 살아났는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광기가 느껴졌다.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일게.”
“하지만, 고작 나 하나를 회유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셈이더냐? 중립이 있다 한들 힘을 모은 천마의 숫자는 스물다섯. 거기에 마족들과 그리스의 영웅까지 개입해 있다.”
맞는 말이다.
이제 와서 발버둥 쳐 봤자 십중팔구 대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건 밸런스가 무너져도 한참이나 무너진 게임이었으니까.
딱, 하나.
불합리하게 무너진 밸런스를 다시 맞춰줄 존재가 있지 않다면.
그렇다면. 지금 비어마운트가 하는 말은 전부 맞을 것이다.
“지켜보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당장 튀어나와.”
진혁이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자.
파츠츠!
눈부신 스파크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