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46)
446화. 마계의 역습 (2)
전신을 덮은 까만색 짧은 털.
이와 대조적인 샛노란 눈동자.
고양이의 모습을 한 중간 관리자인 ‘엘리’였다.
그녀는 이번 ‘프로듀스 천마 101’의 진행 파트를 맡은 담당자이기도 했다.
“냐아.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어떻게 알긴.
“너희 관리자들이 이번 테마에 크게 삽질을 했으니, 당연히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겠지.”
“사, 삽질이라니… 말씀이 심하십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부의 사소한 문제로….”
“사소한 문제가 프로듀스 천마 101에 마계를 개입시키는 건가? 이야, 대체 언제부터 층계 공략에 상위 세력이 이 정도로 깊게 간섭할 수 있게 된 거래?”
“냐, 냐아아…. 그, 그건….”
“됐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마. 그 입에서 나올 말이야 들으나마나 뻔하니까.”
진혁이 엘리의 말을 잘랐다.
“이번 30층은 수천 가지 테마가 존재하고 그만큼 관리하기가 힘들었다는 거잖아? 너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테니,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던 거고.”
“맞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엘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탄산 섞인 츄르라도 한 사발 마신 것처럼, 10년 묵은 답답함이 내려간 표정이 된 건 덤이었다.
진혁의 목소리 톤이 180도 바뀌었다.
비난에서 공감으로.
“그래, 다 알지. 나도 다 알아. 네가 중간에 껴서 고생하는 거. 권한은 쥐꼬리만 한데 책임은 더럽게 무겁고…. 일을 제대로 하면 본전인데 실수 하나 했다간 온갖 욕은 다 처먹잖아? 에휴. 그동안 고생 많았어.”
“끄윽…. 냐아아! 진짜로 힘들었습니다. 툭하면 관리직 박탈한다 협박이나 당했다고요! 저도 이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는데…!”
“그러니까. 더욱더 내부에 부패한 놈이 누군지 찾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관리자도 플레이어도 억울한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이번 일을 벌인 원흉이 관리국 내부에 있을 거다.
하스팅 외에도 그를 돕는 쓰레기 같은 버러지가 말이다.
“하, 하지만….”
“잘 생각해. 이런 대형 비리를 잡아낼 수 있다면, 승진 따위야 일도 아니야. 어쩌면, 이런 자잘한 테마가 아니라 메인 층계 하나를 통째로 담당하게 될 수 있을걸?”
중간 관리자들을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
상급 관리자의 바로 아래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건 구미가 당기지 않으면 거짓말이라.
“……!”
엘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대로 영원히 고통받는 중간 관리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판을 흔드는 존재가 될 것인가.
엘리에게 있어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냐아,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하나도 빠짐없이 잘 기억해 둬. 어떻게 할 거냐면….”
진혁이 천천히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파츠츠!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빛.
김동환의 공격이 천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앙!
천마가 ‘천마군림보’를 사용하여 그 공격을 가까스로 빗겨냈다.
1초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몸에 바람구멍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천마군림보’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콰앙!
김동환이 단숨에 천마의 뒤를 잡았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이 이어졌다.
게다가….
“커헉!”
“아악!”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우던 암황과 추혼사영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몸으로 사력을 다했지만….
나머지 천마들의 상대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두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는 시간을 벌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역시, 싸움은 프라이팬이랑 식칼로 해야 제맛이지.”
요리하는 천마 ‘천종원’이 주방 도구들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 옆에는 쇠로 만든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천마 ‘케인’과 백작가의 망나니에 빙의된 천마 ‘닐베르큰’도 있었다.
근간이 되는 ‘천마신공’을 대성한 상태였기에, 무기나 장비가 없더라도 육체 그 자체가 병기나 마찬가지였다.
“계속해봤자 너만 고통스러워져. 차라리 편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그럼, 일격에 끝내 줄 테니까.”
천마의 앞에 쭈그려 앉은 김동환이 이죽거렸다.
“본좌에게 인질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천마한테 인질을 운운하는 건 웃기는 일이긴 해. 나를 포함해 여기 있는 나머지에게 질문 해도 대답은 똑같겠지.”
하지만.
“너는 예외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아까부터 수하들을 지키려고 지나치게 큰 동작들을 보였거든.”
[김동환이 Lv28 ‘제왕의 검’을 발동합니다!]파츠츠!
만년필을 따라 푸른 강기가 솟구쳤다.
“네 목숨 하나로 끝내자. 나머지는 살려주마.”
이제 닭모가지 비트는 수고만 더한다면 싸움은 끝날 것이다.
그런데 김동환이 마무리를 지으려고 할 때였다.
“……음?”
갑자기 등 뒤에서 새로운 마력이 포착되었다.
이건 게이트가 나타날 때 느껴지는 특유의 반응.
설마?
“강진혁!”
이곳에 넘어올 만한 놈은 군타페르가 경고했던 그 플레이어밖에 없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건 진혁이 아니었다.
콰콰콰콰콰콰!
곧바로 게이트 안에서 강한 마력을 지닌 무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22번 창 ‘카시야스’.”
중갑기병들의 랜스를 연상케 하는 육중한 창.
도합 스물 두 자루의 창들이 김동환을 비롯한 천마들에게 폭사되었다.
콰쾅!
카아앙!
기습이긴 했지만, 천마들은 능숙하게 공격에 응수했다.
“비어마운트… 이게 무슨 짓이냐!”
“무슨 그리 배신당한 연인마냥 악을 써대? 우리가 그리 끈끈했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난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편을 바꿨을 뿐이다.”
“…라고 하네?”
비어마운트 옆에서 진혁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썩은 동아줄을 잡았구나. 고작 저런 멍청한 인간을 믿고 우리를 배신하다니.”
“거, 말이 좀 심하네. 썩은 동아줄이라니.”
우리 회사가 얼마나 유망한 줄 알면 당장에라도 입사하고 싶어질 거다.
“엘리스.”
“응.”
“생존자들을 수습해서 탈출시켜 줘.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곧장 내가 말했던 곳으로 가서 숨어 있으면 돼.”
“알겠어. 계약자는?”
“난 저 녀석들이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지.”
“감시라고? 네놈이 우리를?”
진혁의 말에, 김동환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분노가 솟구칠 수밖에 없다.
감히, 한 세계를 씹어먹던 자신들의 행동을 막기라도 하겠다는 말투였으니까.
“죽고 싶은 건가?”
“아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두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냐아! 다들 멈춰 주시죠.”
날카로운 고주파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중간 관리자 엘리였다.
“엘리…?”
“네가 어째서?”
“관리자는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하던 게 아니었나?”
천마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당황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마, 진혁이 엘리와 함께 왔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는 모두의 질문을 무시한 채 묵묵히 자신이 할 말을 늘어놨다.
“지금부터 중급 관리자의 권한으로 한 가지 조항을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테마 ‘프로듀스 천마 101’의 형평성을 위해 플레이어에게 한 가지 특권이 부여됩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은 30층 이상의 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상대방이 수락할 경우 제약 없는 층계 현현이 가능합니다.] [이 계약은 상급 관리자 ‘벤디비아’의 승인과 중급 관리자 ‘엘리’의 집행에 의해 이루어집니다.]마계와 올림포스를 견제하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
이것으로 반격의 시작이다.
“마계의 베리엘과 이집트의 신격들에게 도움을 구하겠다.”
진혁이 자신 있게 친분이 있는 신격들을 불렀다.
하지만,
[…….] […….]무슨 일인지 두 신격은 나타나지 않았다.
‘뭐야, 어째서….’
진혁이 재차 마력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역시, 네놈이라면 그런 식의 꼼수를 부릴 줄 알았다.”
차가운 목소리를 끝으로.
천마들 사이에 있던 상위 혈족. ‘아그록’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두둑!
우둑!
“크아아아!”
비명 소리와 함께 아그록이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휘유. 이건 손이 많이 가긴 하는군. 그래도 죽이기 전에 내 속을 이렇게나 썩인 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군타페르다.
정확히는 본신이 아닌 혈족의 몸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내가… 베리엘과 아누비스를 부를 것을 알고 있었나?”
“물론이다. 그 둘은 평소에 네놈과 친분이 두터운 신격들이니까. 당연히, 관리자를 통해 형평성을 주장하고 놈들을 현현시킬 수를 쓸 거라 예상했지.”
하지만 말이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 해도….
“그들이 너를 도울 여력이 없다면 소환에 불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군타페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동시에, 진혁과 엘리스가 나왔던 게이트 너머로 다른 층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베리엘과 이집트 신격들이 있는 층계였다.
-키이이….
-죽음…을!
현재 오아시스에는 올림포스의 대영웅들과 계시록의 네 기사가 현현해 있었다.
“이… 자식들이…!”
“이젠 아예 대놓고 쳐들어오는구나.”
아누비스와 호루스 등 이집트의 신격들은 이를 대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다른 곳에 신경 쓰는 건 불가능한 일이리라.
게다가 베리엘의 영지 역시 군타페르와 힘을 합친 마왕들이 집중적인 포화를 퍼붓는 중이었다.
콰콰콰쾅!
피와 재로 인해 모든 것이 검붉게 물들어갔다.
“물론, 베리엘 그 거머리 같은 놈이라면 자기 영지 일부를 내주고서라도 널 도우려 할 수도 있을 테지.”
그것에 대한 안배도 이미 끝내뒀다.
각 마왕들의 직계 혈족들로 구성된 추격대가 베리엘 하나만을 노리게 한 것이다.
계속해서 고삐를 죄고 있었기에, 만에 하나 베리엘이 마계를 벗어날 일 따윈 있을 수 없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나머지 멤버들도 각각 다른 테마를 공략하느라 단절되어 있는 상태.
그야말로 완벽하게 외길에 몰아넣은 것이다.
“적이 한 수를 내다보면 이 몸은 언제나 두 수, 아니, 열 수 앞을 내다본다. 그게, 백 년도 살지 못하는 네놈과 나의 차이니라.”
* * *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생각해라.
준비해뒀던 카드는 무용지물이 되었으니 이 상황을 타계할 차선책이 필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군타페르는 느긋하게 고민할 시간 따윈 주지 않았다.
“베헤모스. 저 녀석이 타겟이다.”
군타페르가 옆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인간 하나를 잡기 위해 이 정도로 공을 들인 게 아직도 어이가 없긴 하지만, 뭐, 일은 일이니까.”
저벅.
베헤모스가 진혁을 향해 걸어나왔다.
가녀린 체구의 단발머리 소녀.
머리에 난 한 쌍의 작은 뿔과 그와 대조적인 커다란 대검을 들고 있었다.
그 누가 이 모습을 보고 크라켄과 레비아탄과 동급인 신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 단순히 외형만으로 판단하는 건 미친 짓이다.
오싹.
등골을 따라 흐르는 한기.
‘터무니없는 마력을 작은 몸 안에 가둬놨네.’
갈수록 첩첩산중이라더니. 이래서야 천마와 스승님을 데리고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