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5)
45화 검성의 제안 (3)
“그래! 바라던 바다! 당연히 승부를 내야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건 정도현이었다.
협회 앞에서 있던 일로 인해 자신을 지목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멍청하긴. 네놈을 지목한 게 아니다.”
옆에 있던 홍덕표가 정도현의 손목을 잡고 끌어 앉혔다.
“예? 형님?”
정도현이 반문했지만, 홍덕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들뜬 얼굴로 천유성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래, 그 정도 실력을 갖고 있으면 강한 녀석과 싸워 보고 싶겠지.’
이해는 한다.
자신 역시 강자와의 전투는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었으니까.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처음에 천유성의 등급을 들었을 땐 갖고 싶은 장기말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정도현이 실패한 뒤 수련장에서 보여 준 무용을 봤을 땐 원하는 조건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생각했었고.
하지만.
지금 천유성이 보여 주는 행동을 보자 비로소 확신했다.
저 녀석을 얻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걸.
만약, 살아서 손에 넣지 못 한다면 죽여서라도 갖고 말겠다는 것 또한.
“간만에 몸 한번 제대로 풀겠어.”
홍덕표가 양복을 벗었다.
하얀 와이셔츠 사이로 단련된 근육이 드러났다.
그런데.
천유성은 여전히 검을 세운 채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홍덕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자세히 보니 검 끝이 향한 방향이 약간 달랐다.
정도현도 자신도 아닌, 조금 더 오른쪽.
그곳엔 귀찮다는 표정을 만면에 가득 띄운 남자가 앉아 있었다.
“후우.”
남자가 길게 한숨을 쉬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천유성이 검을 내렸다.
모두의 앞에서 인정한 것이다.
원하는 대전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뭐, 뭐야?”
“홍 대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지목했다고?”
“누구지?”
“모르는 얼굴인데…….”
“당장 데이터베이스 돌려 봐!”
거대한 동요가 일어났다.
길드 관계자들이 다급히 대상의 정보를 찾으려 했다.
적어도 협회 빌딩 안에 들어올 정도면, 최소한 각성 테스트는 봤다는 뜻이었으니까.
당연히 그에 대한 정보 또한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 강진혁, F랭크]잠시 뒤, 남자에 대한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F급?”
“서, 설마…… F급을 지명한다는 거야 지금?”
“그렇게 안 봤는데, 저 친구. 약한 사람 괴롭히는 취미라도 있던 거였나?”
소란이 더욱 커졌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났으니 그럴 수밖에.
바로 그때, 정도현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혀, 형님. 저놈입니다! 제 뒤통수 친 놈이 바로 저놈이라고요!”
“뭐?”
“아까 전에 천유성이랑 같이 있던 놈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응원한다고 찾아왔다던 그 자식이 틀림없습니다.”
“저 녀석이……?”
홍덕표가 진혁을 바라봤다.
진혁도 슬쩍 홍덕표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천유성이 무슨 이유로 널 지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제 파악을 한다면 거절해라. 네놈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한 마디.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홍덕표의 말에 동조했다.
“그래. 대련도 수준이 맞아야 하는 거지. 1초도 안 돼서 끝날 거라고.”
“무사히 끝나기만 하면 다행이게? 검에 힘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F급은 두 토막이 날걸?”
“하긴, 아무리 시합이라도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
운이 좋아도 큰 부상을 입을 테고.
조금만 재수가 없어도 반신불수가 되거나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여기 있는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진심 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시합장 아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후우.”
귀찮다는 표정을 잔뜩 지은 채.
***
경기장엔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진혁은 바닥에 놓여 있는 장검 한 자루를 집었다.
무게도 가볍고 균형도 나쁘지 않았다.
보급형치곤 말이다.
“제발 부탁인데, 이번에도 지면 그만 좀 덤벼라.”
아니, 진심으로.
슬슬 포기라는 걸 해 줬으면 정말 고맙겠는데.
“꼭 내가 진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방금 싸움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음. 확실히 실력이 늘긴 한 것 같네. 열심히 수련했나 봐?”
근육도 제법 탄탄하게 붙었다.
삼대는 몇 치는지. 보충제는 뭘 먹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설마, 스테로이드를 꽂은 건 아니겠지?
“감상은 그것뿐이냐?”
“아. 초대장 한 장 받는 게 이렇게나 귀찮은 거구나 하는 생각도 좀 들었어.”
“…….”
천유성의 얼굴이 구겨졌다.
동시에 검에 실린 마력의 농도가 변했다.
파츠츠츠!
[천유성이 Lv6 ‘추혼검기(追魂劍氣)’를 발동합니다!]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운무.
유형화된 기와 계속해서 억제해 온 살기가 하나로 합쳐졌다.
저릿! 저릿!
진혁의 피부에도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시합에서 보여 줬던 건 힘을 아꼈던 거였나.’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참아 왔던 걸 한 번에 분출하는 느낌이다.
“다 좋은데, 이거 친선 시합…… 맞지?”
분위기가 꼭 콜로세움에 온 것 같은데?
룰은 생사결로, 둘 중에 한 명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고.
“초대장을 얻고 싶으면, 제대로 싸워야 할 거다.”
천유성이 검을 앞으로 뻗은 채 자세를 잡았다.
오른발을 움직이며, 무게중심을 낮췄다.
단숨에 거리를 좁힐 생각이다.
쿠쿠쿠쿠!
마정석으로 만든 지면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세, 세상에나…….”
“진심으로 할 생각이야 저거!”
“젠장. 가드들 불러! 진짜로 죽이겠어!”
지켜보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설마 손속에 사정을 둘 줄 알았던 천유성이 무지막지한 살기를 뿜어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바로 그때.
우우우웅!
새로운 마력이 시합장 전체를 휘감았다.
천유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력.
불길하다 못해 흉흉하기까지 한 검은색 기운이 발현되었다.
[고유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콰콰콰콰콰!
장검을 완전히 뒤덮고도 모자라 1m 넘게 솟구친 검강에 대기가 흔들렸다.
“허억?”
“거, 검강이다!”
“미친. 무슨 F급짜리가 검강을 써?”
“그것도 억지로 끌어올린 게 아닌 완성된 수준이야. 전 세계에서도 이 정도 검강을 쓸 수 있는 플레이어는 한 손에 꼽는다고.”
경악에 가까운 반응이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홍덕표조차 두 눈을 부릅뜬 채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이건 대체…….”
말리려던 가드들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만.”
구경하던 길드의 관계자들도.
모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다.
어쩌면.
이 승부를 보게 된 것이 자신들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 진혁이 물었다.
“검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유적에서의 일을 잊진 않았을 텐데?”
능력의 상하관계를 극복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검에 관해서라면 더욱더.
“분명, 내 검기로는 네 검강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거라면 만들 수 있지.”
순간,
파츠츠츠……!
검기 위로 또 다른 검기가 덧씌워졌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일곱 번.
마치, 여러 겹의 갑옷을 입은 것처럼 겹겹이 쌓인 검기가 하나의 형을 갖췄다.
‘호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확실히, 저런 식으로 응용한다면 검강을 상대로라도 잠시는 버틸 순 있다.
마력과 체력 소모가 엄청나긴 하겠지만.
‘싸움을 질질 끌기 보다는 단기전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군.’
아마도 3분, 그 이상은 아무리 천유성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피하기만 하면서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진혁의 시선이 손에 쥔 장검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는 칼날이 보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경기장에 널려 있는 일반 검으로는 검강을 견딜 수 없다.
단검으로만 싸우면, 언노운이라는걸 알아보는 이가 있을 수 있기에 일부러 이걸 고르긴 했지만…….
덕분에 시간이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인 상황이 됐다.
“간다!”
먼저 움직인 건 천유성이었다.
콰앙!
지면을 박차고 최단 거리로 좁혀오는 신속.
발도 자세에서 폭사된 검이 진혁의 목을 노렸다.
진혁이 정면으로 검을 받아냈다.
콰아아앙!
그저 두 개의 흉기가 맞부딪쳤을 뿐.
하지만, 검압이 빚어낸 돌풍으로 인해 거센 바람이 일어났다.
빠르다.
그리고 매섭다.
쾅! 콰앙! 콰앙!
연이어 펼쳐지는 공방전.
천유성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초식을 펼쳤고.
진혁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을 모조리 받아쳤다.
섬광이 번쩍이며 허공에 수많은 불꽃이 흐드러졌다.
쿠쿠쿠쿠!
마력이 폭주한다.
마정석으로 만든 경기장이 버티지 못할 정도다.
“휘유. 거. 더럽게 매섭네. 하마터면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뻔 했어. 그럼, 이제 끝난 거냐?”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천유성의 검신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추혼검무(追魂劍舞)’.
겹겹이 쌓여 있던 검기가 각기 가른 방향으로 나눠졌고.
제2식(第二式)’.
타오르는 겁화는 이내 경기장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격하게 타올랐다.
추혼염제(追魂炎帝)!
이것이 바로 추혼검의 두 번째 검.
눈앞에 마주하는 적들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힘.
‘추혼염제’다.
화끈하고.
진혁의 안면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이 자식도 진짜 재능충은 재능충이네.’
벌써 추혼검의 제2식까지 구사할 수 있다니.
물론, 완벽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난해하기 짝이 없는 추혼검의 편린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재능이었다.
화르륵!
7개의 붉은 꽃잎이 개화했다.
이건 위험하다.
진혁은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이 공격을 절대 정면으로 받아선 안 된다고.
그렇다면…….
진혁이 ‘검의 무덤’을 해체했다.
그러면서 검강에 사용했던 마력을 새로운 스킬을 발동하는 데 쏟아 부었다.
[‘얼음 조형’이 발동됩니다!]무수히 많은 얼음 가루들이 직사각형 형태의 방패를 만들었다.
천유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빙계 스킬에 당황한 듯싶었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놀라지 않는다. 이번에는 절대로!’
평정심을 되찾은 천유성이 완전히 만개한 꽃잎을 크게 휘둘렀다.
퍼어어엉!
얼음과 불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완전한 상극.
그러나, 스킬의 완성도는 단연 천유성 쪽이 우위였다.
‘됐다!’
천유성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솟구친 터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순 없었지만…….
얼음 방패가 박살나는 묵직한 손맛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
승리를 확신한 순간.
[‘데이라이트’가 발동됩니다!]수증기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점멸했다.
빙계열 속성의 스킬이 아니다.
또 다른 속성의 스킬이 발동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커헉!”
천유성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절대로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어지는 광경에 천유성은 또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천유성이 Lv6 ‘검막(劍幕)’을 펼칩니다!]반사적으로 펼친 방어 스킬.
동시에.
콰콰콰콰콰콰!
직선으로 가로지른 빛이 마정석을 관통하고 경기장 외벽까지 꿰뚫어 버렸다.
***
치이이익!
“크……으윽.”
천유성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전신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위력을 조절했기에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으나.
아무리 검막을 펼치더라도 대군(對軍)스킬을 받아낸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넌…… 대체 스킬을 몇 개나 갖고 있는…… 거냐.”
가까스로 내뱉은 말.
그와 함께.
쿵!
천유성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