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54)
454화. 마계 전쟁 (4)
“모기, 모기!”
“미요오오!”
두 마리의 고대종들이 폴짝폴짝 뛰었다.
서로 자신을 칭찬해달라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그래그래.
진혁이 고구마와 후라이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둘 다 고생 많았어.”
이건 진심이다.
군타페르의 보물 창고 중 하나를 턴다는, 그 힘든 걸 해냈으니까.
“잠깐만……기다려 봐. 내가 여기 어디에 따로 보관해 뒀는데.”
후두둑.
제법 알이 굵은 마정석들이 쏟아졌다.
훌륭한 성과를 낸 이들에겐 그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법.
원수도 잊지 않지만, 은혜도 잊지 않는 것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모토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알았지?”
“모, 모기!”
고구마가 충성을 다하겠다는 듯 거수경례를 했다.
뒤이어 후라이드도 고구마를 흉내냈다.
“미요!”
한 쌍의 잘 세뇌된 노예…… 아니, 고대종들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도 피해가 제법 크긴 했다. 아무리 병력이 많이 줄었다곤 해도 지키는 놈들이 많더군.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절반 정도는 당분간 전투가 힘들 거다.”
옆에 있던 비어마운트가 입을 열었다.
먼지와 피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
블레인 성채로 군타페르의 주력이 모이도록 최대한 유도했건만, 그럼에도 전투는 꽤나 치열했던 모양이다.
“그렇겠지. 그래도 그만한 가치는 있었어.”
진혁이 고구마의 입에서 나온 각종 보물들 중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보석을 움켜쥐었다.
지난 3일간 이걸 얻기 위해서 꽤나 공을 들였는데…….
이걸로 전체 계획의 절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봐도 좋으리라.
“뭐…… 우리야 너에게 갚아야 하는 빚이 있으니 당분간은 어울려주지. 또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라. 나는 다른 이들이 운기조식하는 동안 호법을 서주고 오겠다.”
비어마운트가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천유성이 뱀눈을 떴다.
“네놈이 다른 사람을 미끼로 쓰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설마, 너 자신까지 미끼였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 블레인 성채 공략이 다 뻘짓이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지. 그래. 깜빡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어.”
분을 삭이고, 애써 감정을 절제하는 듯한 목소리.
이 녀석 지금 분명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아……미안,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했는데?”
“그 왜,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잖아? 난 옛 성현들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른 것뿐이야.”
“……그렇군.”
천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해해 주는 거야?”
“그럼 나도 미래의 적을 속이기 위해 아군부터 한 번 속여봐도 되겠지? 이건 찔려도 안 죽는 검이란 건데…… 일단 믿어 봐라. 두 번 믿으라곤 안 할 테니, 딱 한 번이면 된다.”
천유성이 홀로 성의 서쪽으로 가 고군분투하다 마지막까지 탈출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걸 추혼사영이 개입해 간신히 목숨만 건져낸 거였고.
꿀꺽.
목구멍을 따라 마른 침이 넘어갔다.
어째서일까?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하하…….”
진혁이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너와 나…… 오늘에야말로 끝장을 보겠다.”
“유…… 유성아?”
스릉!
녹색 빛을 머금은 검이 뽑혔다.
하지만, 천유성이 검을 휘두르려는 바로 그때.
예상치도 못한 상태창이 나타났다.
[30층이 공략되었습니다!]라는…… 황금색 문장이 적힌 상태창이.
⁕ ⁕ ⁕
[30층이 공략되었습니다!] [테마 ‘통곡의 절벽’을 최초로 등반한자는 ‘크래쉬’ 길드의 ‘스콧 애플릭’입니다.] [놀라운 업적은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오릅니다.] [보상이 정산됩니다.]연거푸 올라가는 상태 메시지.
“오오오!”
“뭐, 뭐야 이거?”
“우와와! 우, 우리가 해냈다. 해냈다고!”
크래쉬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온갖 고생을 하긴 했지만, 설마 자신들이 최초 공략자가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하…… 다들 고생했어. 진짜, 이 까마득한 곳을 어떻게 올라왔는지…….”
애플릭이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50km가 넘는 깎아지른 듯한 높이.
단순히 등반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괴조를 비롯한 각종 몬스터들까지 출몰하는 터라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니, 근데 진짜로…… 어떻게 우리가 여길 등반한 거지?’
중소형급에 해당하는 그냥 그런 길드.
필라델피아에서야 조금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 미국 전체를 놓고 봤을 땐 Top 100 안에도 들어가기 힘든 전력이었다.
실제로 30층을 공략하기는커녕, 경험을 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던 게 목표 아니었던가?
“후후. 고생 많으셨습니다. 노력한 덕분에 전원이 무사히 정상까지 왔군요.”
은발의 남자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루카스…… 씨.”
그래. 이 남자.
30층의 거주자라 밝힌 이 베일에 싸인 존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실력은 확실하지만,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존에 이 테마에 함께 참여했던 거주자가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은 것도 석연찮았고.
출신과 층계 그리고 타이밍까지.
모든 게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 따윈 없었다.
거주자가 한 명이라도 포함되어 있어야 그나마 이 지옥에서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봤을 때 도박은 성공했다.
대형 길드와 신생 유망 길드는 물론, 언제나 선두를 지키던 고인물 코퍼레이션마저 제쳐버렸으니까.
“어서 탑 밖으로 나갑시다. 지금쯤이면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을 텐데. 주인공이 늦으면 되겠어?”
“그래요. 메스컴에서 오지게 띄워줄 텐데, 우리도 한 번 즐겨봐야지.”
“이야, 이제 동네 마트만 가도 우리 다 알아보는 거 아니야?”
길드원들이 애플릭의 등을 토닥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았기에, 가장 먼저 탑 밖으로 나가는 영광을 주고 싶었다.
‘그래 모든 게 기우겠지.’
애플릭은 애써 스스로를 다잡았다.
앞으로는 장미빛 미래가 펼쳐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 ⁕ ⁕
프로듀스 천마 101으로 인해 소환된 천마들은 시스템의 계약에 의해 시련의 탑에 존속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테마가 공략됨에 따라 그들이 이 세계에 있을 명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파츠츠!
천마들의 몸에서 푸른 가루가 흩어졌다.
마력 공급이 중단됨에 따라 각자가 왔던 세계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
진혁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군타페르가 손을 썼다.
다른 테마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을 도와 강제적으로 층계를 공략하게끔 말이다.
‘분명 고구마를 통해 가져온 보석의 효능은 놈이 아직 모를 텐데…….’
게다가 그걸 방지하고자 다른 보물들도 잔뜩 훔쳐서 연막까지 펼쳤었다.
그런데, 그것까지 간파했다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이 타이밍에 천마들을 잃게 된다는 건 너무나 뼈아픈 손실이었다.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것 같아?”
“최대한 내공을 아낀다면 사흘…… 어쩌면 그보다 못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알겠어. 계획은 완전히 새로 짜야겠네.”
천마들을 이용해 상대의 거점을 흔드는 건 무리다.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딱 한 번 정도일 테니까.
당장 베헤모스 하나를 막으려고 해도 골치가 아픈데…….
잘그락.
진혁이 손에 든 보석을 다시 한 번 만지작거렸다.
시간과 자원이 한정된 상황.
군타페르를 흔들려고 준비한 계획들도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어떻게 할 셈이냐?”
“일단 탑 밖으로 나가서 바로 31층으로 가야 될 것 같아. 다른 플레이어들은 휴식을 취할 테니, 그 틈을 이용해 바바리안들을 만나야지.”
“우리가 빠졌다간 베리엘 측이 박살날 텐데?”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믿고 버티라고 할 수밖에 없어. 놈들이 바바리안들마저 포섭하게 된다면 마계뿐 아니라 31층 공략 자체가 불가능해질 테니까.”
“이쪽의 킹이 언제 잡힐지도 모르는데 자리는 비워야 한다는 뜻이군. 게다가 나이트라 할 수 있는 천마들은 전부 타임리미트가 걸려 있고. 게다가…… 듣자하니, 저번에 집사 양반이 빈털터리가 돼서 잔뜩 독이 올라있다고 하던데, 밤길이나 조심해라. 언제 칼에 찔려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 그러니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지. 베리엘이 지옥역 노숙자가 되기 전에.”
새삼 천유성의 입으로 상황을 들어보니 암울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첨언하자면,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군타페르를 쓰러뜨리는 덴 더 많은 행운이 따라줘야 할 것이다.
“우선, 나가자. 더 늦기 전에 크래쉬 길드 쪽에 붙은 놈도 확인해야 해.”
“그래. 알겠다.”
우우웅!
개방되는 게이트.
30층이 공략됨에 따라 모든 플레이어들이 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곧이어, 눈부신 빛과 함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촤촤촤촤촤!
가장 먼저 반긴 건 카메라 셔터 세례였다.
“저기, 저쪽!”
“나, 나왔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강진혁 마스터야!”
1층에 장사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최초 공략을 놓치셨는데, 어떤 게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테레사 씨나 유연화 이태민 씨가 합류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던가요?”
“굳이 어려운 테마를 고른 것에 대한 후회는 없으십니까?”
도발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하여간,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하이에나들답다.
대응할 가치가 없는 거야 두말하면 입이 아프겠지.
게다가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
진혁은 기자들의 마이크를 모두 무시한 채 한곳을 바라봤다.
“하하하!”
연신 웃음꽃 피우고 있는 크래쉬 길드의 마스터 애플릭.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존재를.
“……!”
진혁의 동공이 흔들렸다.
은발에, 희미하게 붉은 빛이 도는 눈동자.
저 남자…….
마족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뱀파이어.
그것도 순혈의 피가 흐르는 혈족이다.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몸에서 나오는 특유의 기운마저 숨길 순 없었다.
아니, 일부러 자신을 알아달라는 듯 정확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엑센시온…….”
남아 있는 가주 중 하나이며, 아타락시아의 가주 자리를 찬탈한 놈이 지금 저 자리에 있다.
움찔하고.
홍련을 잡은 손이 움직였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건 상대가 하는 도발이라는 걸.
여기서 말려들어 전투를 했다간, 30층을 공략한 영웅들에게 칼을 들이미는 꼴이 될 거다.
탑 밖에 나올 정도까지 투자를 많이 했다면 또 어떤 장난질을 해놨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엘리스가 없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네.‘
만약 브라함의 반지에 넣어놨다면, 즉시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을 테니까.
어찌됐든. 탑 밖으로 나온 소득은 있었다.
적어도 상대의 정체와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바로 그 순간.
“……저희는 바로 31층으로 갈 겁니다.”
엑센시온이 기자들 앞에서 폭탄 같은 선언을 했다.
“예?”
“아니, 90일이란 시간을 벌었는데도 바로 말인가요?”
“어째서 그렇게 무리하게 움직이려는 겁니까?”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에 가도 늦지 않을 터.
그런데도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엑센시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저희가 30층에서 얻은 보상에 따르면…… 31층에 지금까지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을 아이템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뫼비우스의 모래시계.’ 하루를 10배로 늘려주는 성유물이죠. 단, 이 이 모래시계는 층계가 개방된 후 정확히 72시간 동안만 존재합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시간’.
엑센시온이 거대한 미끼를 던졌다.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