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63)
463화. 선택의 통로 Part2 (2)
파스스!
10분의 시간이 흘렀을 땐, 모든 게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결계가 박살나며 안에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어떻게….”
파리스가 말을 더듬었다.
모든 걸 파멸로 몰아넣는 황금사과의 시험이 끝났음에도 멀쩡하다니.
당연히 선택받지 못한 두 여신이 길길이 날뛰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망국의 아픔을 겪은 자신이 바로 그 증거 아니던가?
“그래서 말했잖아. 너랑은 다르다고.”
진혁이 전의를 상실한 파리스의 옆을 지나쳤다.
굳이 끝을 보지 않아도 저 녀석은 더 이상 방해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녀석은 아직 해줘야 할 역할이 남아 있었다.
“…….”
예상대로 파리스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활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멍하니 중얼거릴 뿐.
허나, 모두가 포기한 건 아니었다.
“아직 내 함정은 발동되고 있다!”
발냄새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시간이 지나며 배수로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의 연기가 완성된 것이다.
“아, 아까 말했던 그 연기?”
“그렇다. 온 몸을 산채로 구워주지!”
“……라고 하네요. 여신 님. 무서워서 오금이 다 저리는데, 어떡하죠?”
“참으로 귀찮구나.”
말이 끝난 그 순간.
슈욱!
통로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연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응? …엥?”
발냄새의 목소리가 세로로 쪼개졌다.
⁕ ⁕ ⁕
군타페르의 지하에 위치한 배수로는 그 규모만 해도 엄청나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통로는 이곳에 사는 마족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수많은 함정들과 그 모든 것을 총괄할 수 있는 권한까지.
그래.
발냄새가 이번 일을 받아들인 건 반드시 과거의 수모를 갚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
대체 뭘까, 이 상황은?
[25번째 함정이 돌파되었습니다.]화면 너머.
발냄새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준비한 회심의 작품들이 산산이 박살나는 걸 지켜만 봐야 했기 때문이다.
쿠콰쾅!
온갖 독과 화살들은 모조리 아테나에게 막혔다.
각종 마법과 정신계열 환각은 헤라로 인해 그 빛을 잃었다.
마수들이야 아프로디테 앞에서 한 마리 잘 길들여진 강아지로 변했으니, 사실상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흐음. 넌 여전히 창의성이라는 게 없구나. 이게 네가 이번에 만든 거야?”
진혁이 테이블 위에 놓인 처형 기구를 바라봤다.
입 안에 쇠를 넣고 타이머가 다 지나면 위아래로 벌어지는 종류의 기계장치였다.
“그, 그렇다. 시간 제한은 60초. 그게 지나면 잔혹한 죽음을 맞게 되지.”
“이야, 제법 공을 많이 들였네. 나름 정교해. 마력을 억제하는 보조 장치도 되어 있고.”
“푸하하! 처음으로 맞는 말을 하는군! 아직까지 이걸 머리에 착용하고 살아남은 놈이 없지. 자, 어서 도전해 보거라!”
“싫어.”
“응?”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걸 왜 내 머리에 채우냐? 그냥 가면 되지.”
이런 것 따위 일일이 어울려주지 않아도 된다.
“여기 문도 좀 뚫어주세요. 가는데 되게 거추장스럽네요.”
“하아… 그래.”
황금사과를 얻기 위해 환장한 최강의 신격들이 함께하고 있으니까.
콰아앙!
아테나가 황금빛 창을 던졌다.
[26번째 함정이 돌파되었습니다.]아테나의 창 한 방에 문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나름대로 공을 들였다곤 하지만, 올림포스의 신격을 상대할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 그래도 만든 사람의 성의를 봐서 좀 사용해 주면….”
“좀 괜찮은 거 나오면 생각해 볼게. 이번엔 특별한 자신작 같은 거 없어?”
“하하하, 무, 물론 있지. 자, 바로 이거다! 심지어 드래곤조차 잡을 수 있다고 알려진 게 바로 이 발냄새, 아니, 발세테르 님의 자신작이란 말이다!”
[27번째 함정이 돌파되었습니다!] [최단기간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연이어 점멸하는 상태창.
”…….”
“…….”
둘 사이에 묘한 공기가 맴돌았다.
마치, 정지 화면을 보는 것만 같다.
영원히 굳어버려 완전히 화석이 되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침묵이다.
“X발, 그러니까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
치직!
화면이 그대로 꺼졌다.
그걸로 지하 배수로에 있던 모든 함정들이 작동을 멈췄다.
천유성과 테레사가 한 마디씩 늘어놨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통과한 거냐? 저 녀석 복장 터지게 해서?”
“보니까, 중급 관리자에 준하는 위치인 것 같던데 그런 적을 상대로…. 역시 진혁 씨는 대단하네요. 근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그거야….
“재밌지 않나요? 자신만만해 하는 놈 놀리는 거? 모든 게 절망으로 얼룩지고 그걸 넘어 공허해 하는 그 표정. 크으. 그걸 보는 게 진짜 짜릿한 참맛이죠.”
‘군타페르 같은 놈.’
‘아니에요. 유성 씨. 군타페르가 더 착하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진혁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건만.
이건 어떻게 까면 깔수록 어이가 없는 일들이 계속 나온다.
그나마 같은 편이어서 망정이지.
적으로 만났다간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보다 강 공자, 정말 괜찮은 건가요?”
추혼사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올림포스의 세 여신을 바라봤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비록, 황금사과의 능력으로 인해 본신의 일부만 현현한 거였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종잡을 수 없는 변수였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진혁이 세 여신 앞으로 걸어갔다.
꽤나 골치 아픈 배수로를 무사히 빠져나가게 해줬으니, 약속대로 누구에게 사과를 줄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당연히 이 몸이겠지?’
‘함정들을 돌파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저입니다.’
‘흐응. 저 남자가 계속 날 쳐다보고 있었다는 건 모르나 봐.’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진혁이 황금사과를 꺼냈다.
호구 베리엘처럼 적당히 얼렁뚱땅 넘어가면 좋겠지만,
저 뱀 같은 여신들에게 그런 방법이 통할 리 없을 터.
그렇다면….
“제가 드릴 분은….”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신입니다.”
한 여신의 손에 황금사과가 쥐어졌다.
⁕ ⁕ ⁕
“후후후후! 아하하하!”
아프로디테가 뾰족한 교성을 토해냈다.
두 번째 황금사과마저 손에 넣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됐다. 됐다고! 역시나, 내가 모든 신화 중에 제일이라니까!”
“약속대로 원하는 대상 한 명에게 매혹을 걸어주는 것. 잊지 마세요.”
“걱정 마렴. 원하는 게 누군진 몰라도 큐피트에게 예쁜 화살을 쏘라고 해줄 테니.”
아프로디테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 걸렸다.
‘저 여신이 다른 건 몰라도 일처리 하나는 깔끔하긴 하지.’
이걸로 꽤나 쓸 만한 카드를 한 가지 손에 넣었다.
물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으아아악!”
“왜, 대체 왜!”
신화시대에 이어 시련의 탑에서도 빅엿을 먹게 된 두 여신의 분노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쿠쿠쿠쿠!
흔들리는 지축.
배수로 끝자락을 통해 몰래 밖으로 나왔는데,
자칫하다간 온 성채 마족들에게 광고를 하는 꼴이 될 거다.
“말해라. 어째서 우리를 선택하지 않은 거지?”
헤라가 어금니를 드러냈다.
지나가던 꼬마에게 판사복을 입혀놔도 저건 살인 직전이라 판결할 거다.
누구에게 사과를 줄지 정하는 것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중요하다.
“아… 그, 그게 말이죠.”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저는 다 마음에 들어서 고민이 됐는데, 아까 누가 무조건 아프로디테 님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말이냐!”
“그 왜, 금발에 곱상하게 생긴 녀석 있잖습니까? 활 잘 쏘던 놈이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비난의 화살을 파리스에게 돌리는 거다.
“그 친구가 다른 여신들보다 무조건 아프로디테 님을 뽑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뭐라고 해야 하나? 나머지는 사과를 받기엔 너무 천박하다고 했던가? 아무튼 다른 분은 선택해봤자 손해만 본다고 하던데요?”
“파리스… 그 빌어먹을 놈이 그딴 말을 지껄였단 말인가?”
“파리스? 아, 예예. 분명,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네요. 맞습니다. 그놈이 그랬어요.”
뒷일이야 어차피 내 알바 아니다.
파리스한테 개인적인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저를 선택하지 않은 게 용서되는 건 아니에요. 제 창으로 뚫어드린 관문이 몇 개인지 잊은 건 아니겠죠?”
아테나가 여전히 차가운 살기를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진혁의 행동에.
“음.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상황은 또 다시 반전되었다.
[고유 능력 ‘황금사과’가 발동됩니다!]툭.
또 다른 황금사과가 나타났다.
“제가 가진 사과는 한 개가 아닙니다.”
“어, 어떻게…?”
“우연히 사과를 한 개 더 얻었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도 무한히 사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걸 말할 필요는 없겠지.
딱 하나, 딱 하나만 더….
이게 진짜 무서운 거다.
상대의 잔고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 여신들은 또 다른 황금사과를 얻기 위해 독이 든 미끼를 물 수밖에 없다.
“하아. 이건… 완전히 당했구나. 완전히 당했어.”
“이래서 아버지가 당신과는 엮이지 말라 했던 거군요.”
“최소한 한 개 이상을 더 갖고 있으니, 조금 전 건 누구에게 줘도 상관 없었다…라는 뜻이겠네. 정말이지. 행복하던 기분이 싹 사라졌어.”
버릴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계속 끌려다닐 수도 없는 노릇.
계륵 같은 상황 속에 놓이고 나서야, 세 여신은 자신들이 늪에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멍청한 짓을 한 건 인정하지. 하지만, 너무 좋아하진 말거라.”
헤라의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그대가 나름대로 결계를 쳐서 조금 전 소란을 막았다고 생각하나 본데… 사냥개 몇이 피 냄새를 맡았더구나. 그것도 아주 지독한 놈이 말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흉흉한 마력이 전신을 찔러왔다.
“강진혁!”
“진혁 씨!”
천유성과 테레사가 각각 무기를 뽑았다.
건물 지붕, 골목,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대로까지.
어느새… 포위당했다.
“이야, 저 아래를 뚫고 여기까지 온 거야? 너희들도 진짜 대단하네.”
대검을 든 베헤모스가 키득였다.
그녀의 주위엔 고대 마계어가 새겨진 검은색 로브를 입은 마족들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마계 다른 곳에선 본 적 없는 놈들이다.
‘칼 드란트’라 불리는.
군타페르의 성채 내에서만 주둔하는, 놈의 개인 마법병대.
전원이 9서클로 이루어진 아크 리치들이다.
진혁이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젠장.
‘이 녀석들이 한꺼번에 다 모이는 걸 본 게 대체 언제였더라?’
하나하나 만으로도 중층부의 보스 자리를 꿰찰 수 있는 괴물들인데, 그게 무려 열다섯.
게다가 그런 놈들이 메인도 아니고 베헤모스를 서포팅하기 위해 모였다.
“우리야말로 그대의 행운을 빌지. 아,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 여신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애초에 그런 것까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강 공자, 여기서 싸우면, 그 마왕과 싸울 힘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렇죠.”
군타페르와의 전투를 위해선 최대한 체력과 마력을 보존해 둬야 한다.
하물며, 여기서 전력을 쏟아 부었다간 전투에선 이겨도 전쟁에선 지게 되겠지.
“후우,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여긴, 어떻게든 제가 버텨볼 테니 먼저 가세요.”
“혼자서 말입니까?”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게다가. 전 천 공자나 강 공자가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거든요.”
자기는 희생해도 괜찮다는 건가.
이런 걸 보면 무림에 소속된 거주자들이 진짜 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인연임에도.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여기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정도 시간을 끌었으면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콰아아앙!
성채 앞쪽에서 굉음이 일어났다.
“머리에 뿔만 달린 것들이 짐의 앞을 가로막다니, 일러도 1000년은 이르다!”
엘리스의 목소리다.
그리고.
“신의 이름을 더럽힌 마족들에게 심판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세요!”
쿠쿠쿠쿠쿠!
가브리엘을 비롯한 천사들이 동쪽 성벽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