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73)
473화. 고유 성창 ‘백야(白夜)’ (1)
둘이서 무슨 귓속말을 나누고 있는지까진 몰랐지만, 테레사의 인격이 계속 바뀌는 걸 보면 고유성창이 실패한 게 틀림없다.
하긴,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테레사를 대체 무슨 수로 설득하겠는가?
그것도 성향이 180도 다른 성녀와 타락한 성녀를.
이걸로 군타페르가 테레사를 꼬드기는 건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천유성은 아니다.
천유성의 마음 속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깊은 갈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최강의 라이벌을 꺾고.
스스로의 손으로 그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소망이.
그리고 군타페르에겐.
대상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파악해 공략하는 힘이 존재했다.
우우웅!
[군타페르가 고유 성창 ‘깊은 욕망의 거래’를 발동합니다!]달콤한 목소리가 파고든다.
천유성의 귓가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맴돌았다.
-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재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대가 계속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묻는다.
가장 근본적이면서 민감한 질문을.
검을 잡은 천유성의 손이 살짝 느슨해졌다.
“무얼 말하고 싶은 거냐?”
-그대가 강진혁보다 부족한 건 ‘기연’ 하나뿐이다. 놈이야 온갖 신격들이 좋은 성유물을 퍼부어주니 강해진 것 아니겠나? 만약 그대에게도 같은 수준의 지원이 뒤따른다면 얼마든지 그자를 넘어설 수 있다.
넘어… 설 수 있다고…?
“…내가?”
천유성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세상을 구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것보다 더 큰 소망.
평생 동안 염원하던 단 하나의 소원을 꼽으라면 단연 진혁을 이기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있었다.
설령 그 대가가 마왕에게 영혼을 파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군타페르가 즉시 두 개의 성유물을 꺼냈다.
-‘카발라도의 검’과 ‘마왕의 반지’. 모두 상층부의 최상급 성유물이다. 결코 저 녀석이 보유하고 있는 잡동사니들에게 밀리지 않을 터. 만약 나와의 계약을 받아들인다면 이걸 빌려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건….”
-배신이라고? 아니, 그건 배신이 아니다. 강해지기 위한 열망을 어찌 배신이라 할 수 있겠나?
오히려 이건 그동안의 불평등한 형평성을 다시 맞추는 과정일 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
천유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눈앞에는 군타페르가 제안한 두 개의 성유물에 관한 상태창이 나타나 있었다.
마신의 성유물로 가진 자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주는 ‘카발라도의 검’.
마족이 아닌 종족에 대해 저항력을 3배로 올려주는 건 물론 Lv30 이상의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마왕의 반지’.
전부 SSS급에 해당하는 기연이었다.
‘이걸 받는다면 고유 성창의 조건 역시 달성할 수 있어.’
단순히 무장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 아닌, 최강의 성명절기라 할 수 있는 고유 성창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입술이 바짝 메말랐다.
심장은 미친 듯이 빠르게 고동쳤다.
배신을 하는 것과 소원을 이루는 것.
분명 예전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후자를 골랐을 테지만….
어째서일까?
“…….”
함께 동고동락해온 이들에게 등을 돌린다는 게 쉽지 않았다.
악연이라고 생각했던 이 지긋지긋한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싶었다.
‘나도 제정신이 아니군.’
고민을 하던 천유성이 이내 피식 웃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던 탓이다.
그만큼 여지껏 쌓아온 세월이 덧없진 않다는 뜻이겠지.
‘일단 대결에서 이기고 그 다음에 군타페르까지 벤다면….’
그렇다면 이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으리라.
“받아들이겠다.”
천천히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마침내 천유성이 결정을 내렸다.
-현명한 선택이다.
군타페르가 빙긋 웃었다.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고유 성창, ‘깊은 욕망의 거래’의 효력이 발동합니다!]“…….”
천유성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검은 기운.
어느새 손에는 류화와 카발라도의 검이 각기 쥐어져 있었다.
[‘카발라도의 검’과 ‘마왕의 반지’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였습니다.] [고유 성창의 조건을 달성했습니다.]“이게… 내 새로운 능력인가.”
차갑고도 날카로운 마력이다.
아직 본격적인 고유 성창을 발동하지 않았는데도, 갈무리된 검강은 지금까지와는 아예 격이 달랐다.
“유성… 씨?”
테레사가 말을 더듬거렸다.
신성력을 익힌 성기사로서 지금 저 기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질 깨달은 탓이었다.
마족화.
천사나 고대종 같은 상위 개체와 달리, 플레이어는 계약을 체결한 것만으로도 마기에 잠식되게 된다.
지금 당장이야 크게 티가 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격과 외형이 변하게 된다는 뜻.
“크크… 크하하하! 둘 다 포섭하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어떠냐? 소중한 동료가 배신한 걸 본 기분은?”
군타페르가 광소를 터뜨렸다.
그나마 팽팽했던 상황에서 주요 전력이 뒤통수를 날린 상황.
이 싸움은 더 이상 보나마나다.
⁕ ⁕ ⁕
군타페르가 킬킬대는 모습을 보던 진혁이 턱을 긁적였다.
‘……라면서 좋아하고 있는데 어떻게, 괴로워하는 반응이라도 좀 보여줘야 하려나?‘
뭐, 이해는 한다.
필승을 자랑하는 카드가 먹혔으니 당연히 자신감이 차오를 수밖에.
실제로 군타페르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빌드업들은 하나같이 매서웠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적보다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고.
‘그나저나 천유성이 고유 성창을 익혔다라….’
이렇게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한때는 스토커처럼 달라붙어서 죽어라고 물어뜯던 놈이, 벌써 시련의 탑 최강의 기술 중 하나를 손에 넣을 줄이야.
이 정도면 플레이어는 물론 거주자들 사이에서도 적수를 찾아보기 쉽지 않을 거다.
“유성아… 강해지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바로 쟤한테 붙으면 어떡하냐?”
딱 봐도 수상해 보이거나 너무 조건이 좋은 계약서에는 함부로 도장 찍지 말라는 것도 모르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위대한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변명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처럼.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듯 천유성이 선을 그었다.
슥….두 자루의 검이 교차하는 것으로 대화가 중단되었다.
무슨 말을 해도 저 외골수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으리라.
“진혁 씨… 이젠 어떻게….”
“괜찮아요. 저 녀석 정신머리는 제가 고쳐줄 겁니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부터 났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탑에서 본 적 없는.
검성의 고유 성창을 손에 얻을 기회를 제공해줬으니까.
“하지만, 진혁 씨가 유성 씨를 막는다면… 그동안 저 괴물을 어떡하죠?”
“그쪽도 걱정 마세요.”
진혁이 볼을 따라 흐르는 식은땀을 손으로 훔쳤다.
전투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의 과부화.
엘리스가 이 정도로 날뛰고 있다는 건….
틀림없이 그걸 상대하는 놈들이 감당하기 버겁다는 뜻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콰콰콰콰콰!
결계가 박살나며. 피로 만든 거대한 꼬챙이가 날아왔다.
“……헉!?”
여유만만하게 구경하던 군타페르가 급히 몸을 피했다.
콰아아앙!
방금 전까지 딛고 있던 땅이 끝이 보이지 않는 크레이터로 변해버렸다.
“감히 그 더러운 손으로 짐의 계약자에게 손을 대려고 하는 것이냐?”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아타락시아 가문을 이끌던 순혈의 진조가 현현했다.
“다 망해버린 가주가…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끼어들다니. 명줄을 재촉하는구나!”
“호오.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녀석이 마왕이 됐다고 아주 기가 살았구나. 어디, 예전 생각 한 번 나게 해줄까?”
고유 성창 ‘개벽의 계시록’을 상징하는 붉은 고리와 등 뒤로 빼곡히 떠 있는 붉은 작살들.
하나하나가 성유물에 필적하는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역시, 엘리스는 그 자체로 든든하다.
‘타락한 자들의 회랑’에서 데리고 나온 건 다시 생각해봐도 신의 한수였다.
“고마워. 엘리스. 덕분에 살았어. 너 아니었으면 진짜 어떻게 됐을지….”
”지, 진짜냐? 짐이 그렇게 큰 도움이 된 거였다고?”
”응. 진짜 최고의 파트너다운 솜씨였어.”
최고의 파트너란 말에 엘리스의 머릿속에 일련의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결국엔 나이가 들어가는 그런 장면들이.
”헤헤. 아니 크흠! 이제야 짐의 위대함을 좀 알겠나 보구나. 그래, 말만 하거라. 또 무엇이 필요한지.”
“아니 특별히 필요한 게 있다기보단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
싱긋 웃은 진혁이 슬쩍 옆을 바라봤다.
이 정도로 자극하면 분명 반응이 올 텐데.
”…….”
예상했던 대로 테레사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성기사도 나쁘진 않지만….
이 타이밍엔 역시나 시너지를 잘 낼 수 있는 인격이 필요할 터.
그리고 메인 인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이 방식이 가장 큰 효율을 발휘한다.
좋아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엘리스를 향해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흐응. 꼬맹이가 흰 우유라도 잔뜩 먹었나, 힘이 아주 펄펄 나나 보네. 조금만 칭찬해주니까 강아지마냥 꼬리나 흔들고 있고.”
“바, 바보 성녀…! 아니, 그보다 누구보고 꼬맹이라는 거야! 대체!”
둘 사이에 스파크가 일어났다.
사이는 안 좋지만, 실력 하나 만큼은 확실한 애들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할 일은 다 해줄 테니.
“하아… 됐고. 그럼, 더 강한 사람이 전부 다 차지하는 걸로 하는 건 어떠니 꼬맹이?”
“좋아. 내가 이길 게 뻔한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엘리스와 테레사가 동시에 군타페르를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발견한 얼굴로.
⁕ ⁕ ⁕
군타페르가 일시적으로 발이 묶이자, 전장엔 오롯이 두 사람만이 남았다.
[천유성이 ‘전장 선택’ Lv16을 발동합니다!]기존의 보이던 시야에.
새로운 풍경이 덧칠해진다.
여긴….
시련의 탑이 나타나고 처음 싸웠던 장소.
타락한 자들의 회랑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눈물’과 ‘검의 무덤’을 얻었던 바로 그곳이다.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려왔다.”
천유성이 진혁을 바라봤다.
처음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길….
스스로의 힘으로 이전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에 도달하길 바라왔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최강의 무기와 기연 그리고 고유 성창까지 모두 손에 넣었으니까.
“새삼스럽긴 한데, 진짜 너도 독종이긴 독종이다. 어떻게, 다른 놈도 아니고 군타페르한테 영혼을 걸고 계약을 할 생각을 하냐?”
“…그래. 항상 이기기만 해왔던 너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
패자가 삼켜야만 하는 아픔 따위를 알 리가 없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지는 오직 패자만이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니다. 오늘이야말로 너를 꺾고 정상에 올라설 테니.”
마력이 하나의 점으로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정제된 기가 유형화되면서 두 개의 검에 각기 다른 빛이 맺혔다.
검의 극의에 도달하며….
그 한계를 넘어선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
[천유성이 고유 성창을 사용했습니다!]달을 삼키는 검은 밤과.
해를 가리는 낮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진다.
모든 게 순백으로 물든 심상세계.
[고유 성창 ‘백야(白夜)’가 발동됩니다!]“이게 나의 고유 성창이다.”
순백의 빛이 쏟아지며, 천유성의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이 모두 희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