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마왕 사냥 (2)
덜컹!
양복을 갖춰 입은 늙수그레한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램핀.
군타페르의 성채를 총괄하는 집사이자, 마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마족이었다.
“다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워낙 큰 일들이 연거푸 터지다 보니 결례를 저질렀군요.”
“되도 않는 변명 따윈 됐다. 그보다 그램핀, 우리를 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붙잡아둘 생각인 거냐?”
“강진혁은 물론 가브리엘이 능천사들을 이끌고 왔다고 하던데….”
“군타페르가 이리 하라고 시킨 건가? 공을 세울 기회 자체를 빼앗아버리려고?”
알현실 안에 있던 각 마왕군의 고위 대표단들이 불만이 가득한 말을 쏟아냈다.
“다들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이제 군타페르께서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군타페르는 현재 가장 치열한 격전지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이끄는 강진혁이라는 놈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다시 말해. 그쪽으로 간다면 가장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뜻.
“그게 정말인가?”
“아무렴, 각 마왕님들을 대표해 오신 분들을 속이겠습니까? 저를 따라 오시죠.”
마족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면에 비릿한 미소를 띄운 건 덤이었다.
‘드디어 우리 원정이 의미를 갖게 되는군.’
‘대체 이 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큭큭큭. 마계의 균형이 참 지겹도록 오래 이어지긴 했지.’
모두의 공통된 생각은 하나.
이 싸움이 끝난 이후에 나눠 가질 보상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보상의 범주엔 쥐꼬리만 한 베리엘의 영지와 보물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다 망해가는 마왕가의 잔존물 따윈 있으나마나한 셈이었으니까.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마왕’을 상징하는 장신구.
새로운 마왕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베리엘이 가지고 있는 반지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시각.
시련의 탑 밖에서도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는 중이었다.
[플레이어 ‘방송뉴비’님이 생방송을 켰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형 공격대가 기를 쓰고 달려드는 31층 공략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모래시계를 통해 인류 멸망을 늦출 수 있는 데다, 워낙 쟁쟁한 길드들과 랭커들이 총 동원된 상태였기에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누군가 방송을 켰다.
시련의 탑 40층대, ‘언노운(Unknown)과 함께’라는 제목을 달고.
평소라면 그런 시답잖은 어그로를 물 이유는 없었지만, 썸네일에 등장한 풍경은 지금까지 그 어떤 시청자들도 본 적 없는 장소였다.
마계.
재와 불로 가득한 마경 속에서 장검을 든 채 우뚝 서 있는 플레이어가 보인다.
그 앞에는 엄청난 분위기를 뿜어내는 뿔이 달린 마족이 서 있었다.
방송까지 켜진 이상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 마족은 최소한 마왕급에 해당하는 괴물이란 것을.
-짱구렁이: 진짜인가 본데? 찐이야 이거. 저기 봐. 엘리스랑 테레사도 있잖아? 왼쪽에는 좀 흐릿하긴 한데 마스터 강진혁도 있고.
-굴비: 다른 플레이어가 대신 켜준 건가. 와 미쳤네. 남들 다 30층대 있는데 고인물 코퍼레이션이랑 언노운만 40층대를 갔다고?
-Jane: ㄹㅇ 그들만의 전쟁인건가.
-jm1: 대체 무슨 싸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당신들은.
-kos: 또 상상을 초월하는 걸 하려고 하는 듯. 어나더 클래스다. 진짜 정상까지 가겠는데?
-mirra: 프레이는 미래의 아내.
입소문을 타고 시청자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커져갔다.
처음엔 수십 명이 있던 게 10분도 되지 않아 5000명이 넘었고 20분이 다 됐을 무렵엔 10만 명까지 늘어난 것이다.
편법을 썼든, 보통 사람은 알지 못하는 우회로를 발견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 신선하고 압도적인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모두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으니까.
⁕ ⁕ ⁕
‘이 정도면 대충 밑준비는 다 된 것 같네..’
진혁이 멀리 있는 홀로그램 분신을 바라봤다.
운디네와 정령수들을 통해 배치해둔 도플갱어.
코인거래소에서 구매했던 아이템들이 마침내 하나둘씩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또 뭔가 장난질을 하는가보구나. 마력의 파장을 보니… 다른 층계에 이 상황을 전하고 있는 것인가?”
누가 마왕 아니랄까 봐.
눈치 한 번 더럽게 빠르다.
거주자인 이상 방송시스템에 대해 알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상황까지 유추한 걸 보면 말이다.
진혁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역시, 그렇군. 하지만 천사든 천마든 바바리안들이든, 누가 오더라도 이 상황이 바뀌진 않을 거다.”
“호오. 자신감 한 번 넘치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거야 내가 준비한 게 훨씬 더 강력하니까.”
군타페르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저 멀리서 그램핀이 마족들을 데리고 오는 게 보였다.
“이제부터는 나뿐만 아니라 전 마왕들을 동시에 상대해야할 거다.”
“그게 무슨 뜻….”
“똑똑히 지켜봐라.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따악!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운 군타페르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봉인석이 해방됩니다!]콰콰콰콰콰콰!
천지를 쪼개는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쾅! 콰콰콰쾅!
단일 스킬로는 감히 이 정도로 화력이 나올 수 있을까 의심될 만큼. 구름을 가르는 불기둥이 솟구쳤다.
성채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단 한 번의 폭발에 이 거대한 성채의 1/3이 잿더미로 변했다.
아직까지 고막이 멍멍하다. 팔다리 역시 다른 사람의 것인 것 마냥 후들거렸다.
“쿨럭, 아니 진짜로 자폭이라도 할 생각이냐?”
진혁이 기침을 콜록였지만, 군타페르는 오히려 광소를 터뜨렸다.
“크크크… 크하하하! 됐다. 완벽해!”
숯덩이로 변한 시체들.
거기에 이 폭심지 속에서 생존한 이들은 전부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관련된 인물들이었다.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서걱….
군타페르가 일부러 자신의 몸에 상처를 냈다.
이 완벽한 연극에 풍미를 더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 날 잡기 위한 계획이었다? 동시에 마왕들도 견제하고?”
“그런 셈이지. 하지만, 눈치가 너무 느려 터졌군. 이제 곧 모든 마왕들이 널 사냥하기 위해 모일 거다. 어쩌면 그 엉덩이 무거운 마신 놈도 움직일지도 모르겠어. 그건 꽤나 기대되는구나.”
“…이 정도 피해면 그럴 수도 있겠네.”
한 마왕의 영지가 인간의 손에 의해 쑥대밭으로 변했는데. 나머지가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그래도 같이 한솥밥 먹던 애들을 다 죽인 건 너무한 거 아냐? 너희에게도 명예나 긍지라는 게 있을 텐데?”
“큭큭! 진심으로 마족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거냐? 동족이고 뭐고 나를 위해서라면 천사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게 우리의 본질이다.”
적과 아군 따윈 가리지 않겠다는 건가.
계획 자체는 확실히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계획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는 점이다.
“다 좋은데, 네가 꾸민 장난질의 전모를 내가 알고 있다는 건 까먹었나 봐?”
“네 말과… 이 몸의 말 중 누구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군타페르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나 진혁의 입가에선 여전히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상대를 짓뭉개버릴 때가 가장 짜릿한 법이다.
“아까 외부에 도움을 청했느냐고 했었지? 미안하지만, 그건 플레이어들이나 내 편에게 보내는 게 아니었어.”
코인거래소에서 구입한 것들과 ‘안트라드의 심장’은 단순히 홀로그램을 만들려는 게 주 목적이 아니다.
증폭과 송출효과.
지금까지 있던 장면들은 모두 마계 구석구석에 있는 마왕들에게 전해졌다.
“다른 놈도 아니고 너라면… 절대 혼자 독박을 쓰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거든.”
“뭐…라고? 마왕들에게?”
이걸로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다.
적이지만, 마족들의 명예와 생명을 신경 쓰는 인간과.
자신 외에는 모든 것을 짓밟으려한 마왕이 남았을 뿐.
“…마, 말도 안 돼. 마왕들의 전용 회로를 네가 알고 있을 리가 없다. 그것도 베리엘과의 전쟁 이후 새롭게 바꾼 걸 무슨 수로… 알고 있단 말이냐!”
“믿고 안 믿고는 자유지만, 아마 지금쯤 너한테 마왕들의 전음이 쏟아지고 있을 텐데?”
“……이럴 수가.”
정말로 마왕들이 득달같이 대화를 요청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아끼는 수족이 죽은 것과 그 이유를 추궁하기 위해서.
“이 개자식이… 네놈만큼은 반드시 찢어 죽여버리겠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협박도 좋고 욕도 좋은데, 지금 당장은 도망쳐야 하지 않겠어?”
“…….”
잠시 손가락이 움찔하긴 했지만, 군타페르는 이내 몸을 돌려 반대 방향을 향해 사라졌다.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은 그 뒤를 쫓지 않았다.
‘안트라드의 심장’으로 인해 표식이 남겨진 이상, 마계 어디로 도망가든 무한히 위치추적이 가능했기에.
그리고.
마계의 추격대에 쫓기고 쫓겨 완전히 지치고 탈진한 군타페르를 사냥하는 편이 훨씬 더 손쉬웠기에.
‘나는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어야지.’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서라도 저 거대한 경험치와 보상을 양보할 순 없으니까.
동시에.
[복사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유 능력 ‘굴종의 손아귀’를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마계의 신격들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마왕들이 당신을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들.
이 싸움의 승자는 이걸로 결정됐다.
⁕ ⁕ ⁕
흑수정으로 만든 바닥 위로 보랏빛을 머금은 종유석들이 가득 매달려있다.
몽환적이면서 이질적인 풍경.
이곳은 시련의 탑에서도 천외천에 해당하는 장소였다.
탑의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목이 바로 이 동굴이었으니까.
그리고 현재.
동굴의 안쪽에선 두 명의 그림자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덜덜덜….
하나뿐인 손이 파르르 떨린다.
하스팅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앞의 니알라토텝을 바라봤다.
“여긴….”
“너무 겁내지 마. 보면 안 되는 걸 봤으니 살아서 돌려보내진 않겠다… 이런 의도는 아니니까. 자, 어서 이쪽으로 와. 응?”
니알라토텝이 가벼운 걸음을 옮겼다.
“그보다, 군타페르가 완전히 무너졌던데 베리엘… 아니,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강진혁이었다며?”
“그 놈이 코인 거래소에서 이상한 아이템들을 조합해 마왕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처음 보는 방식이라 미처 대비할 수가….”
하스팅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
이미 팔을 하나 잃은 터라, 계속된 실패가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팔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값을 치르게 될 테니.
“괜찮아. 괜찮아. 책망하려는 거 아니니까. 우리도 저 녀석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느꼈거든. 내가 너를 부른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탑 밖에 있는 ‘바티칸’이라는 세력 때문에 부른 거야.”
“바, 바티칸이라면…?”
“인간들이 사는 세계에 있는 작은 자치령이지. 거기에 반드시 회수해야 할 책에 대한 단서가 있거든. 자, 여기 적혀 있는 거 전부 준비해놔. 하나도 빠지면 안 돼.”
니알라토텝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아,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그만 가 봐.”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하스팅이 허둥지둥 사라졌다.
그렇게 적막에 잠긴 동굴 내부.
“큼!큼!”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저 녀석, 별 달리 의심하진 않았지? 내가 기척을 숨기는 게 오랜만이라 좀 어설프긴 한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니알라토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 속의 목소리가 기분 좋게 키득였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하스팅은 아직 여러모로 쓸데가 많거든. 엑센시온도 마찬가지고.”
“위험한 장난이긴 했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아버지와 어머니 외엔 제 동족들조차도 모르니까요.”
“잔소리는 그쯤하고 꼭 알려줘야 되는 일이나 말해 봐. 누가 50층을 통과하려 했다고?”
바로 얼마 전, 49층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50층으로 가는 길목을 뚫으려 한 것이다.
신격들도 접근하려하지 않는 탑의 금지를 넘어온 것만으로도 어이가 없는데, 침입자들 하나하나가 주신들을 넘어서는 강자들만으로 구성돼 있었다.
“처음 보는 놈들인데 상당히 강하더군요. 몇 층에서 온 건지, 정체나 능력이 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니알라토텝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 이 시련의 탑에서 자신이 모르는 존재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수리부엉이…인가. 그놈도 진짜 애쓴다니까.”
그림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찼다.
“수리부엉이라면…? 설마, 놈들의 정체를 아시는 건가요?”
“아아, 넌 몰라도 돼. 그저 나와의 오랜 악연이야. 그래도 제약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텐데, 진짜 끈질기게도 파훼법을 찾는 걸 보면 놀랍네. 놀라워.”
“……아무래도 제가 개입할 영역이 아닌 것 같군요.”
“아니지.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
“허면, 제가 도와드려야 할 일은 없습니까?”
“하나 있긴 해.”
그림자의 목소리가 한 층 더 간드러졌다.
“엘리스.”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변수.
“다른 놈은 몰라도 그 진조는 반드시 죽어야 해.”
그게 이 만남이 이루어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