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80)
480화. 바바리안들의 성인식 (3)
“그게…… 무슨 소리냐?”
라이챠의 얼굴색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아니, 그냥 혼잣말이었어. 세상에 워낙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조심하라는 충고 차원에서.”
사악한 미소다. 마치, 살아 있는 악마 새끼가 있다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그리고.
진혁의 눈웃음을 본 라이챠가 흠칫 몸을 떨었다.
“설마…….”
“에헤이. 지금 와서 누가 누굴 의심하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
알잖아.
중요한 건 바바리안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는 비극이 일어나는 걸 사전에 막는 거다.
턱.
진혁이 옆을 향해 눈치를 보냈다.
“쳇.”
천유성이 마지못해 품안에서 약병을 꺼냈다.
무려 동네 편의점에서 구매한 최상급 설사약과 코인 거래소에서 구매한 간이용 천막 화장실이었다.
“설사에 즉방인 약이랑 화장실이야. 어때. 필요해?”
“어서…… 그걸 달라…… 아니, 주세요. 제발.”
“오오오…….”
“부탁한다. 나도 부탁해.”
바바리안들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손을 뻗었다.
물론, 다른 손은 열심히 엉덩이를 붙잡고 있었다.
“주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그 전에 잠깐만. 대가라고 하긴 뭐하지만, 한 가지 받고 싶은 게 있거든.”
“빠…… 빨리 말해라. 우리에겐 시간이…… 시간이 없단 말이다!”
“너희 중에 나침반이 있는 사람 손들어봐.”
“나침……반?”
“그게 뭐냐?”
“먹는 건가?”
“새로운 무기?”
하여간, 이 멍청한 놈들은 죄다 먹는 거 아니면 무기밖에 모르냐.
“아마 빨간색 바늘 같은 게 붙어 있을 거야. 너희 수준 보면 솔방울이나 동물의 뼈로 만들었을 것 같은데…….”
“아, 있다. 나한테 있다.”
라이챠가 도끼 자루 끝에 매달려 있는 조개껍데기를 꺼냈다.
‘모래시계’의 대략적인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 단서.
……틀림없다.
“하, 하지만 이건 장로님이 아무한테도 주지 말라고 했던 거다.”
라이챠가 사력을 다해 입을 열었다.
물론, 의미 없는 저항이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진혁이 천유성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빌어먹을.”
천유성이 혀를 차며 제법 굵직한 나뭇가지를 주웠다.
“그, 그걸로 뭘 할 셈이냐?”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나도 시킨 대로 하는 것뿐이라.”
꾹!
나뭇가지가 라이챠의 아랫배에 파고들자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하모니가 울려 퍼졌다.
꾸르르륵! 우르릉!
“끄으……으오오오아!”
라이챠가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한다.
이대로 승천시켜버릴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주위의 미관이 매우 안 좋아질 염려가 있겠지.
그러니 적절하게 압을 조절해서 상대의 하복부를 두들겨 주도록 하자.
“유성아, 아직 멀었단다.”
“나도 알고 있다. 빌어먹을. 재촉이나 하지 마라. 가뜩이나 이런 더러운 일을 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천유성의 손이 한층 더 현란해졌다.
당연히, 라이챠의 얼굴색은 보라색이 되다 못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라이챠!”
“그만, 포기해라. 그대는 이미 충분히 긍지를 지켰다.”
“그만 다 같이 편해지자.”
지켜보던 전사들까지 이만하면 됐다며 라이챠를 만류했다.
그는 정말로 한계를 넘어서까지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그 무엇도 대자연의 숭고한 법칙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마안. 줄게. 준다고!”
라이챠가 백기를 드는 것으로 모든 바바리안들이 항복을 선언했다.
툭.
천유성의 손 위에 나침반이 놓였다.
“이제 제발…… 우리에게 존엄성을 지킬 기회를 달라.”
“아 그거……?”
진혁이 화면 너머에서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한데, 약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아무렴 편의점 약이 시련의 탑에서 먹힐 리가 있겠는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지사제가 아니라 소화제다.
게다가 만에 하나 진짜 약이 있다고 한들, 경쟁자들을 회복시킬 만큼 이쪽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주려면 차라리 더 강력한 설사약을 줬겠지.
“끄아아악!”
결국, 바바리안들이 엉금엉금 기며 각자의 살 길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최대한 안 보이는 바위틈을 찾는 게 한계일 테지만, 그마저도 이 거구의 남성들에겐 너무나도 절실한 상황이었다.
⁕ ⁕ ⁕
약 10여 분이 흐르고…….
모든 경쟁자가 사라졌다.
더 이상 가로막는 것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정상으로 가면 되는 건가?”
천유성이 게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는 바바리안들을 바라봤다.
안쓰럽다는 빛이 스쳤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아니, 가기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게 있어.”
“아! 모래시계…… 말씀하시는 거 맞죠?”
테레사가 손바닥을 마주쳤다.
이번 층계에선 단순히 층계를 공략하는 것 외에도 모든 인류의 불안감을 해소시킬 게 필요하다.
90일이란 시간을 연장시켜주는 모래시계가.
“여기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겁니다.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마력을 지닌 아이템은 발할라 산의 정상이 아니면 불가능하거든요.”
“여길 전부…… 다 뒤지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설마?”
“에헤이. 내가 그렇게 무식한 걸 시키겠어. 있어 봐. 이런 거에 특화된 친구가 있으니까.”
큼! 큼!
진혁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노움.”
이곳에 온 정령수들과 고대종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흙의 정령 노움이 온 몸을 조아렸다.
“부, 부르셨습니까. 자비롭고 위대한 주인이시여. 여기 미천한 종이 왔나이다. 헤헤헤.”
“그래그래. 밥은 잘 먹고 다니고?”
“언제나 신경 써 주시는 덕분에 편안히 살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진혁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시키실 일이라도…….”
“별건 아니고. 여기 싹 다 뒤집어서 모래시계 한 개만 찾아내면 돼. 시간 없으니까 1시간 이내로. 여기 바바리안한테 받은 나침반이 있으니 찾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할 거야.”
“응?…… 아니, 예?”
“뭘 놀라. 불가능해?”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노예가 일을 거부했다간…….
글쎄, 별로 좋지 않을 거다.
이미 한 줌의 꽃잎이 되어 사라진 수많은 정령들이 있었으니까.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헤헤헤. 제 몸이 흙이 될 때까지 구르겠습니다. 없으면 모래시계를 만들어내서라도요.”
노움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땅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시련의 탑 외부에선 진혁의 부탁을 받은 또 다른 일행들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야, 진짜 빡빡하긴 해졌네요. 탑이 생긴 뒤로 해외여행도 함부로 할 게 못 된다니까.”
이태민이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했다.
“아니, 여기가 특히 이상한 거야. 보통은 이렇게까지 까다롭진 않다고.”
유연화는 이해가 되질 않는 다는 듯 툴툴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탈리아는 그야 말로 외부인의 침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니까.
본래 수많은 관광객들이 넘쳐나던 로마와 그 밖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떠올린다면 믿기 힘든 일이었다.
뭔가 냄새가 난다.
시큼하고도 끈적끈적한 구린내가.
”껄껄껄. 그래도 외교부에 아는 친구들이 많아서 다행이구나. 어떻게든 입국 심사는 통과했으니.”
”다들 너무 좋아하지 마. 뭔가 수상하니까. 특히 난 걸리기라도 하면 최소 무기징역이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유천영과 마인 협회의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인 멜레나.
이렇게 네 명으로 구성된 파티가 로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보다, 연화야.”
”응, 할아버지.”
”여기까진 이 할애비가 어떻게 했다만, 바티칸에는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냐.”
이탈리아가 관광객들을 통제하는 이유도 사실 바티칸이 개입했기 때문.
이건 외교부를 통해서든 그 외에 빽을 이용하든 아예 뚫을 수가 없다.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자신들만의 성역을 구축해버린 것이다.
”내부에서 도와주기로 한 조력자가 있긴 한데…… 솔직히 말해 믿을 만한 놈은 아니야. 봐,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해놓고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유연화가 옷매무새를 확인하는 척 하며 주위를 훑었다.
이태민 역시 기감을 끌어올려 공항 전체를 스캔했다.
“……공항 경비들뿐이에요. 진혁이 형은 제 때 맞춰서 오기 힘들겠죠?”
“이 정도는 우리가 알아서 해야지. 오빠가 특별히 부탁한 건데 조금만 힘들다고 오빠 찾을 거야, 너?”
“아니, 난 그게 아니라……. 누, 누나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뜻이었어. 할아버지도 계시잖아. 이번엔.”
“흐음. 그래, 일단 어떤 상황인진 알겠다. 할 수 있는 데까진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보자꾸나.”
유천영이 무언가 결심한 듯 나머지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진혁이 의도하는 바가 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모두가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상황.
불청객을 꺼려하는 곳에서 단서를 찾으려면 역시나 방법은 하나뿐이다.
* * *
높은 담벼락과 지나치게 희미한 가로등.
인기척 역시 완전히 사라져 있다.
겉보기에는 유령 도시에 들어온 것과 다를 바 없는 외관이다.
하지만.
“역시, 생각대로야. 도시 전체에 결계가 쳐 있고 각종 알람 마법이 겹겹이 걸려 있어.”
“드론들을 띄워봤는데, 위에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부엉이를 패밀리어로 삼아 배치해둔 건 꽤 재밌네. 그래도 그나마 이쪽이 가장 뚫긴 쉬워 보이는데? 어떻게. 전부 처리할까?”
멜레나가 채찍을 매만졌다.
좌측 언덕을 따라 날아다니는 부엉이들만 처리한다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흐음. 그렇게 하자꾸나. 이 늙은이가 보기에도 다른 곳은 냄새가 너무 난다.”
“알겠어. 그럼, 바로 시작할게.”
“잠깐만, 그 전에…….”
유천영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할아버지?”
“이건…….”
“진심이야? 이걸 쓰라고?”
눈, 코, 입만 드러난 검은 복면.
전형적인 은행강도용이다.
천하의 유천영이.
한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재가 저런 걸 뒤집어쓰고 다른 나라의 영토에 들어가자고 할 줄이야.
다른 건 다 떠나서 너무 취향이 최악이었다.
예쁘고 멋있는 가면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허허, 이건 진혁이 그 친구가 꼭 쓰라고 당부를 하더구나. 정체를 들켜선 곤란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진혁이 시켰다는 말에 나오려던 불만이 한 번에 사라졌다.
촤촤촤촤!
멜레나의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
“…….”
채 느끼거나 반응할 새도 없이.
부엉이들의 목이 채찍에 휘감겼다.
소멸되면 주인에게 전해지는 패밀리어의 특성상 절대 죽여선 안 된다.
“제압했어.”
목을 졸라 기절시키는 것으로 충분.
다섯 마리의 부엉이들이 담벼락 아래로 떨어졌다.
툭.
탓!
곧바로 유천영을 비롯한 나머지 세 명이 담을 넘어갔다.
그런데.
담을 넘어 들어온 풍경은 뭔가 이상했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위화감.
결코 현실에서 느껴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뇌리를 짓눌렀다.
여긴…….
그들이 알고 있던 바티칸이 아니다.
“아무래도 정말로 뭔가 있긴 한 모양이구나. 다들 준비하거라. 손님이 온다.”
유천영이 골목을 바라봤다.
스산하게 깔린 안개 너머로.
쿵!
무언가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