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82)
482화. 폭풍을 부르는 데이트 (2)
천유성에 이어 테레사까지.
행색을 보아하니 둘 다 이곳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충 어떻게 된 건지는 이해가 되긴 하는데….’
돈이야 둘째치고.
천유성에게 있어 각종 고양이를 맘껏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꽤나 만족스러운 조건이었으리라.
테레사야 한국 문화 체험이니 뭐니 하는 명목으로 온 것일 테고.
가게 입장에서도 이 완벽한 선남선녀를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가만히 있어도 손님을 끌어모으는 자석이었으니까.
“주…문. 하시…겠습니까? 손님? 그냥 처먹지 말고 나가시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천유성이 영업용과 본심을 반반씩 섞은 미소를 지었다.
무시무시한 살기를 띤 채.
“어허. 손님한테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여기 고양이들 오늘 하루 츄르를 싹 다 책임질 수도 있는데, 사장 나오라고 해. 사장!”
“저런, 사장님은 마침 자리에 안 계셔서 말이죠. 죄송합니다만, 불만이 있으시면 제 검에 말씀해주셔야 할 겁니다.
스릉!
천유성이 아공간에 넣어둔 검을 꺼내려했다.
하여간, 이 미친 놈은 고양이들 앞에서도 칼을 휘두를 기세다.
“됐고. 쇼콜라 케이크와 아인슈페너 2개나 줘. 이거 보이지? 손님한테 칼 들이밀면 싹 다 녹화해서 뷰튜브에 올려버릴 거야.”
“찍기 전에 죽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미 찍고 있는데?”
진혁이 소매에 넣어둔 핸드폰을 슬쩍 보였다.
저주받은 증거품을 보자 천유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손. 놈아. 많이 드시고 유병단수 하십시오.”
천유성이 사라지자 잠시 숨을 고를 여유가 생겼다.
이번엔 테레사가 진혁과 엘리스에게 관심을 보였다.
“두 분이선 데이트라도 하시나 봐요? 그렇게 잘 차려 입으시고.”
“그래, 데이트니라! 바보 성녀는 빼고 나랑 계약자 단 둘이 놀기로 했지.”
“어머… 그건 좀 부럽네요. 저도 한국에서의 일은 다 처리했고. 모처럼 휴일이라 좀 쉬고 싶었는데.”
테레사가 슬쩍 진혁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그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저도 같이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까요?”
“야! 바보 성녀!”
“죄송합니다. 테레사 씨 이건 먼저 선약이 되어 있던 거라….”
“마침, 유럽 쪽에서 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대형 길드들과의 계약도 전부 끊으며 쇄국 정책을 펼치는 중인데, 혹시… 바티칸에 대한 극비 정보. 궁금하진 않으세요?”
테레사의 입에서 이게 나올 줄이야.
그러고 보니 로젠베르크 가문 역시 바티칸과는 꽤 연이 깊은 걸로 알고 있다.
유럽 유명 가문들의 명예를 논하는데 있어 바티칸만큼 권위를 세워줄 수 있는 곳은 없었으니까.
“역시, 다 같이 노는 게 재밌죠. 둘이서만 노는 것보다.”
“이, 이… 바보 계약자가아아!”
엘리스가 뾰족한 비명을 내질렀다.
⁕ ⁕ ⁕
갑작스럽게 끼어든 테레사로 인해 상황이 살짝 변했다.
뭐랄까.
공기 중에 살기가 섞여 있다고 해야 하나.
숨을 쉬는 매 순간순간이 살얼음판 같다.
‘무슨 휴가가 아니라 보스 몬스터 레이드하러 온 기분이네.’
꿀꺽.
진혁의 목구멍을 타고 마른 침이 넘어갔다.
현재 있는 곳은 아이스링크장.
수많은 연인들과 가족들이 모여 한껏 겨울을 즐기고 있다.
“후후후. 어떠느냐. 이게 아타락시아 가문의 가주니라.”
엘리스가 우아하게 스케이트를 탔다.
처음 타본 것치곤 말도 안 되는 솜씨다.
자연스럽게 얼음을 가로지르는 실력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반면, 테레사는 스케이트가 어려운지 연신 엉덩방아를 찧었다.
“괜찮으세요?”
진혁이 다가와 손을 뻗었다.
“아야야… 어렵네요. 스케이트라는 거.”
“처음 타면 균형 잡는 게 살짝 까다롭긴 하죠. 그래도 몇 번 넘어지다 보면 금세 잘 타실 수 있을 거예요.”
“후후. 진혁 씨는 정말 친절하시네요. 고마워요.”
테레사가 생긋 웃으며 손을 잡고 일어났다.
“…….”
지켜보던 엘리스의 눈이 일자로 누웠다.
불만이 머리끝까지 쌓인 것처럼 볼도 잔뜩 부풀렸다.
콰당!
요란스러운 동작으로 넘어진 엘리스가 두 팔을 파닥였다.
“빨리 짐도 일으켜 세워주고 호하고 불어다오. 너무 아프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연극.
평소라면 오히려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겠지만….
“하여간 칠칠맞지 못하다니까.”
진혁은 혀를 차면서도 엘리스를 가볍게 일으켜 세워주었다.
머리카락에 묻은 얼음가루들을 털어내 준 건 덤이다.
“헤헤헤.”
뭐가 좋은지 엘리스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크하하하, 얼음 왕국이라니 아주 찰지는구나.”
“체통이라곤 요만큼도 없이 천박하네요.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이니 기본적인 예의라는 걸 좀 지키시죠.”
익숙한 목소리들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스승님?”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하지만, 저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그걸 나무라는 잔소리는 틀림없이 암황과 추혼사영의 것이었다.
진혁이 두 사람의 모습을 목격하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푸달락이 성인식을 통과한 기념으로 공물을 산더미처럼 줬다더니.
그걸 이용해 탑 밖에 나온 게 틀림없다.
‘그나저나 저 둘이 아이스링크장에 왔다는 건 어째 영 불안한데.’
엘리스와 테레사와는 다른 의미로 대재앙이 예고된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예요. 우아하게. 얼음을 부드럽게 타면서…. 좀 아시겠어요?”
추혼사영이 자연스러운 발놀림으로 스케이트를 탔다.
단 한 번 만에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는 건 물론, 고급 기술들을 연달아 이어나갔다.
이런 기교 있는 분야는 역시 추혼사영의 놀이터다.
하지만.
“뭔, 병 걸린 백조도 아니고 그리 흐물흐물 거려서야 흥이 나겠는가? 본교에서 겨울 놀이를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마.”
흑천마황공. ‘적풍(赤風)’.
콰콰콰콰콰콰!
엄청난 눈보라가 일어났다.
하나의 축으로 회전하는 붉은 팽이는 그야말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걸 증발시켰다.
“끄아아아!”
“이, 이게 뭐야?”
“도, 도망쳐!”
대한민국 한복판에 나타난 홍염 기둥.
이곳은 지옥이다. 적어도 그와 비슷하거나.
“잡아라!”
경비원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오는 게 보인다.
“일단 나가서 좀 쉬자. 할 이야기도 있고.”
“응. 알겠다!”
“좋, 좋아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동시에 대답했다.
괜히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간 같이 체포당할 거라는 게 불 보듯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옮긴 곳은 아이스링크 장 옆에 위치한 식당 칸.
뜨겁고 매콤한 국물에 쫄깃쫄깃한 면발이 들어간 라면과 참치김밥, 치즈가 왕창 들어간 로제떡볶이가 준비됐다.
추운데 잔뜩 움직인 터라, 엘리스와 테레사는 누구 할 것 없이 음식을 볼 안에 가득 넣었다.
마치, 흰색 햄스터 두 마리를 보는 것 같다.
오물거리며 겨울양식을 잔뜩 비축하는 중인.
“맛있어요?”
“응, 완전!”
“한국 음식은 진짜 먹어도 먹어도 계속 들어가네요. 특히 추울 때 먹으면 더 좋은 것 같아요.”
본 음식을 다 먹은 두 사람이 이번엔 눈꽃 빙수에 달라붙었다.
좋아. 이 정도면 적당히 배는 채운 것 같고….
“테레사 씨.”
진혁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예.”“바티칸 쪽은 무슨 일이죠?”
“그게… 저도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긴데요. 바티칸에 소속된 추기경들과 성기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이에요.”
“사라지고 있다고요?”
“트로치아 추기경, 레이트만 추기경, 알폰소 기사단장. 카산느 1급 프리스트. 등 적어도 공식 석상에선 완전히 자취를 감췄어요. 그 외에도 핵심 멤버들이 다수 보이질 않고요.”
네 명 모두 바티칸의 핵심 멤버.
그런 그들이 권력 다툼에서 밀려 사라졌을 리는 없다.
모종의 이유로 외부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게 맞겠지.
“그리고 이건 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긴 한데요. 제가 저번에 바티칸에 갈 일이 있었는데, 통로에 있는 조각상들 사이에서 벌레 기어가는 듯한 소리를 들었어요. 작은 날벌레 따위가 아닌 생전 처음 듣는 벌레 소리였는데…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셨지만, 분명 들었어요.”
벌레 소리라면…?
‘설마, 그 책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는 건가?’
그럴 리가.
고작 바티칸에서 그런 고급 정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확실한 건 일이 꽤나 재밌어진다는 점이다.
“일단, 오늘 밤에 다 같이 비행기를 타야겠네요. 테레사 씨, 외교관 전용기 이용 가능하시죠?”
갑작스러운 유럽행이 결정되었다.
⁕ ⁕ ⁕
바티칸에 도착한 건 약 12시간이 지난 후였다.
‘유럽 여행은 가고 싶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어째 저번의 아웃브레이크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관광하고는 완전히 동떨어진, 인류의 존망을 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만 방문하는 기분이다.
“계약자.”
엘리스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담벼락을 따라 흐르는 안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것이다.
“그래, 알고 있어. 결계야.”
“결계라면요…?”
테레사가 물었다.
“침식형 결계인데, 탑 밖의 지형을 서서히 삼켜 제3의 영역으로 바꾸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굉장히 보기 힘든 종류인데… 이건 좀 의외네요.”
정확히는 ‘지평선의 끝자리’.
무려, 12성급에 해당하는 결계다.
황도십이궁이 빛을 상징하는 별들의 대결계라면. 지평선의 끝자리는 태고를 상징하는 12개의 결계 중 하나인 셈.
네크로노미콘을 얻기 위해 50층도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바티칸을 이용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죠.”
“괜찮겠어요? 차라리 상황이 이 정도로 수상하면 다른 대형 길드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게….”
“바티칸에서 작정하고 일을 꾸미는 거라면 어차피 모든 의견을 묵살해 버릴 겁니다. 만에 하나 억지로 공격대를 조직한다고 한들, 어차피 이 안에선 아무런 소용 없을 테고요.”
진혁이 앞으로 나섰다.
얼핏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어보였지만, 그 이상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진혁이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면 그게 최선의 결과를 만든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진혁 씨라면 분명 생각해둔 게 있겠죠.”
“맞아. 계약자가 좀 사악하긴 해도 일처리엔 빈틈이 없거든.”
다들 좋게 생각해주니 고맙긴 한데, 이 앞은 솔직히 말해 운이 좀 따라줘야 한다.
툭.
진혁이 가장 먼저 담장을 넘었다.
쏴아아아….
곧바로, 기분 나쁘고 축축한 안개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탐식의 눈’이 안개를 스캔했다.
[지평선의 저주]내용: 태고의 결계로 인해 이 일대에 대한 침식이 진행 중입니다. 시련의 탑이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마력에 의해 주위의 지형과 지물은 물론, 다수의 성유물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특정 아이템들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개인 선택 성유물 0/1)
그래, 바티칸 전체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게 이곳에서 네크로노미콘에 대한 단서를 얻는 핵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