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87)
487화. 유일한 희망 ‘네크노미콘’ (2)
또옥……. 또옥. 또옥.
물방울이 불규칙적으로 떨어졌다.
이곳은 탑의 50층.
그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 중 하나다.
니알라토텝이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을 따라 걸었다.
“쳇…….”
어깨에 남은 상처가 아직까지 욱신거렸다.
무리하게 탑 아래에 내려가느라 여러 제약을 받은 탓에, 회복이 느린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종유석이 끝나는 곳에 무지개 색으로 가득찬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한가운덴, 검은 그림자에 가려진 남자가 서 있었다.
“흐음? 이거 자주 보게 되네. 당분간은 서로 접촉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래도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선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쯧쯧. 꼴을 보니 영 좋진 않았나보네.”
남자가 키득거렸다.
“일부러 그런 겁니다. 놈이 자기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믿게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이번 일은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남자가 요구한 건 단 하나.
엘리스.
그녀의 목숨이었으니까.
“아타락시아를 이끌던 진조답게 강하긴 하더군요.”
고유 성창의 무결함도. 마력의 효율성과 공격성도 어디 하나 빼 놓을 게 없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엘리스뿐 아니라 고인물 코퍼레이션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니알라토텝이 어깨를 으쓱였다.
“호오. 그건 좀 흥미롭네. 어떤 건데?”
“질투.”
원죄라 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하고 근본적인 감정.
니알라토텝은 엘리스에게서 진혁에 대한 강한 소유욕과 그게 충족되지 않음에서 오는 결핍을 관찰했다.
“엘리스뿐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더군요. 제가 독자적인 루트로 조사해본 결과 틀림없습니다.”
천유성, 테레사. 유연화 이태민.
모두 진혁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또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게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되든, 혹은 너무 과한 방식으로 집중되든.
각자의 방식에서 강한 질투와 동경이 짙게 배어 있었다.
“흐음. 그 부분을 공략한다?”
‘때마침, 일곱 대죄를 관장하는 놈들이 있지 않습니까? 제 쪽에서 적절한 보상을 제시한다면 얼마든지 넘어올 겁니다. 게다가. 질투심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로젠베르크의 늙은이에게 거부하지 못할 미끼를 뿌려둘 예정이고요.”
“이야, 흥미진진하네. 미끼라면 어떤 건데?”
“그건 느긋하게 지켜보시죠. 모든 걸 미리 아는 것도 재미없으니까요. 그저, 내부에서 적을 파멸시킨다는 것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니알라토텝의 설명을 들은 남자가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내부에서 무너뜨린다라…….”
확실히…….
태고의 존재들이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 일을 처리하는 게 가장 수월하다.
가뜩이나 수리부엉이를 비롯한 운영자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무리하게 움직이다 시스템의 제약을 받는다면, 그거야말로 골치 아픈 상황이 연출되게 될 테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남자가 천천히 니알라토텝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머리 하나는 잘 굴린다니까. 하스팅 쪽도 본격적으로 움직이려 하던데. 강진혁이 땀깨나 빼게 생겼어.”
“그 멍청한 놈은 질리지도 않고 또 도전한답니까?”
“아니야. 이번엔 꽤 준비를 잘 했어. 기억하지? 그 용족인 타미아와 엑센시온이랑 해서 고대룡의 뼈를 찾은 거?”
“설마, 무기화하는 방법을 찾았다고요?”
“그런 모양이야.”
고대룡 중에서도 네임드에 해당하는 파괴룡.
그 힘이라면 대상이 누구든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자, 이번엔 어떻게 막을 거냐.’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제발, 날 즐겁게 해다오. 이 지루하고 따분한 삶에 자극을 달란 말이다.’
마치, 놀이동산에 가기 직전의 아이처럼.
두근! 두근! 두근!
흥분과 기대로 인해 오랫동안 뛰지 않던 심장까지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 ⁕ ⁕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창가에 스며들었다.
“으으음!”
진혁이 상쾌한 공기를 흠뻑 마시며 기지개를 켰다.
역시, 공기 좋은 유럽 교외에서 맞는 아침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굵직한 일들을 모두 처리한 뒤라면 더욱더.
바티칸에서의 일이 끝나고 약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은 이곳에서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피로가 싹 풀리네.”
진혁이 갓 내린 커피를 음미하며 대저택을 거닐었다.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정원.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호수까지.
새들이 날아다니고 사슴들이 뛰노는 장면은 과연 이곳이 로젠베르크 가문이 소유한 곳이라는 실감이 났다.
‘다른 애들은 아직 자고 있는 것 같고…….’
진혁이 커피를 한 모금 더 머금었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오딘에게 접근하는 방법이다.
나름대로 도와주긴 했지만, 결국 위그드라실을 지켜주는 데 실패한 상황.
오딘의 입장에선 이쪽에게 굳이 호의를 베풀 이유는 없었다.
‘평생의 기억을 저장해둔 걸 내놓으라고 하면 더욱더 거부감을 보이겠지.’
다시 말해 그 모든 걸 넘어설 만한 제안을 할 필요가 있었다.
몇몇 후보들이 떠오르긴 한데…….
그 중에서 단기간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없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벅.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오, 일찍 일어났군요. 하하. 피곤하실 것 같아서 정오까진 방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더스틴 드 로젠베르크.
로젠베르크 가문의 가주이자 테레사의 아버지였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쉬었습니다. 집이 진짜 좋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입니다. 뭐 하면 아주 여기서 평생을 사셔도 됩니다만, 신혼집으로 아주 좋거든요. 하하하.”
능구렁이 같이 들어오는 게 만만치 않다.
하지만, 진혁은 싱긋 웃는 것으로 완곡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흠흠. 하긴, 강진혁 플레이어님 정도 되면 이런 저택이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죠. 대신 우리 테레사가 심성도 곱고 요리도 잘하고 신앙심도 깊고.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외모도 어딜 가서 빠지질 않습니다.”
누가 딸 바보 아니랄까봐.
막내딸을 사랑하는 부성애가 물씬 느껴진다.
하긴, 테레사라면 전 세계 수많은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구애할 만하긴 하지.
시련의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 중, 인기투표를 하면 언제나 TOP 5 안에 드는 게 그녀였으니까.
무엇보다 국제적인 대기업만큼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진 로젠베르크 가문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점은 가히 사기적인 조건이었다.
“테레사 씨는 저도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
말을 하던 진혁이 흠칫 몸을 떨었다.
등골을 따라 흐르는 싸늘한 냉기.
니알라토텝이나 슈브니구라스를 상대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차가운 살기다.
오싹하고.
진혁의 등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저 멀리 복도의 끝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쌍의 붉은 눈동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오오오……!
이제 막 잠에서 깼는지 은발이 쭈뼛쭈뼛 일어난 엘리스가 도끼눈을 뜨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손으로 잡은 벽에 금이 가는 게 보였다.
자칫하다간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겠다.
“크험! 험험험! 어서 더 말씀해보시죠. 우리 막내 딸내미가 어떻다고요?”
“……정말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탑을 오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 과연…….”
더스틴이 충격 받은 듯 말끝을 흐렸다.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그만 제 욕심만 챙길 뻔했군요.”
이걸로 포기하겠지.
덕분에 이 저택은 물론 본인의 목숨까지 건졌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분노한 진조로부터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탑을 오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걸 제시해 드릴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더스틴이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이걸 어떻게……?”
진혁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사진에 있는 물건은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종류였던 것이다.
“후후후. 마음에 드실 줄 알았습니다. 정말 어렵게 구한 건데, 그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더스틴이 어깨를 잔뜩 들어올렸다.
[다비드 ‘나폴레옹의 대관식’]입수 난이도: SS
내용: 화려하고 웅장했던 황제의 대관식. 이 그림을 보유하고 있는 자는 자신의 전성기 때의 힘과 능력을 재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한 시간은 3분이며 쿨타임은 1달입니다. 단, 이 아이템의 허용치를 넘어가는 힘을 발휘하게 될 경우 아이템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든.
혹은 병이나 심각한 부상의 재해를 입었든.
이 그림을 사용한다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3분뿐이지만, 최강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
‘내가 사용한다면…… 탑의 정상을 올랐을 때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건가.’
아이템이 파괴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어쨌든 한 번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메리트는 그거 한 개만 있는 게 아니다.
강화.
대장장이 오룬에게 부탁한다면 이 그림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오룬 영감님이라면 도박을 해 볼 만하지.’
리스크를 감당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화된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간극’에 버금가는 사기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강화 시 ‘부분회귀(部分回歸)’가 가능합니다.]단순히 한 인물의 전성기를 재현할 뿐 아니라…… 한 시대의 황금기를 재현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위그드라실이 굳건히 자라나 있던 북유럽의 전성기를.
“이건……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닐 텐데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타이탄 길드에서 22층에 있는 대형 미궁을 공략하면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걸 제가 독자적으로 입수했습니다. 다행히 거기 공대장이 저에게 큰 빚을 진 적이 있었거든요. 물론,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엄청나게 큰 대가를 지불했지만요.”
22층에 있는 미궁이면…… ‘패왕의 전쟁터‘에서 얻었다는 건데…….
극악의 확률이긴 하지만,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워낙 심한 노가다를 뛰어야 해서 그렇지. 조건이 충족되면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나오기도 하니까.
“이걸 얻으려면 제가 어떤 걸 해야 하는 건가요?”
“흠흠.”
진혁이 미끼를 물자, 더스틴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드디어 걸렸구나 하는 표정을 지은 건 덤이었다.
“내일 밤 로젠베르크 전통의 약혼식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초대 받은 신랑 후보들이 모여 이 저택 어딘가에 있는 테레사를 찾아내는 거죠. 우승자는 테레사는 물론 로젠베르크 가문의 모든 걸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약혼……식이요?”
“그렇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만 원하시면 제가 테레사가 있는 장소를 사전에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하아…….”
진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템을 얻으려면 테레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결혼에 골인하게 될 터.
가장 큰 문제는 저 뒤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는 진조 여왕님이었다.
이제는 분노를 넘어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의지를 뿜어내고 있는 엘리스가 마력을 줄기줄기 방출하고 있었다.
쿠쿠쿠쿠쿠쿠!
저택 전체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뭐, 뭐지. 지진인가? 조심하십쇼. 강진혁 플레이어님.”
더스틴이 양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이 주위는 지진이라곤 아예 없는 곳인데…….”
“저, 저도 처음이에요.”
저택을 관리하는 관리인들도 저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악의 경우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손에 넣더라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