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95)
495화. 블랙 레타나들의 여왕 ‘리어퀸’ (1)
진조.
탑의 상층부에 거주하는 상위 절대자들.
그 중에서 각 가문의 가주를 맡고 있는 이들은 격이 달랐다.
[엑센시온 오브 아타락시아]엘리스의 자리를 빼앗은 새로운 가주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지독한 집념은 블랙 레타나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이자는 진심이다.
블랙 레타나의 여왕. ‘리어퀸’이 엑센시온을 바라봤다.
“제약만 풀어주면 되는 건가?”
“그래, 나와 이곳에 온 이들만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면 그 뒤부턴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엑센시온의 옆으로 또 한 명의 존재가 나타났다.
붉은 단발머리.
뼈로 만든 창과 방패가 눈에 띈다.
레드 드래곤의 일족인 ‘타미아’였다.
움찔하고.
리어퀸이 뒷걸음질 쳤다.
본능적으로 상위종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탓이다.
“당신은….”
“잡아먹진 않을 테니, 너무 겁먹지 마. 지네 고기는 취향에 안 맞으니까.”
타미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경계심 가득 섞여 있던 리어퀸의 표정이 한층 누그러졌다.
“드래곤까지 있으면… 확실히 인간 몇으론 감당이 안 되겠군. 침입자들을 전부 쳐죽이는 데 문제없겠어.”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그래. 내 아이들은 당신들을 따를 것이다.”
리어퀸이 옆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콰직! 콰드득!
“키에에!”
“케에에엑!”
갑자기 블랙 레타나들이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녹색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끔찍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동족상잔의 현장.
이 모든 게 엑센시온과 타미아의 제약을 풀기 위한 의식이었다.
열 마리, 스무 마리 그리고 오십마리.
10분도 되지 않아 동굴 안에 시체들이 가득 찼다.
“이런 식으로 마력 공급원을 마련하고 시스템을 뒤트는 건가. 군집체의 특성이 아니면 엄두도 안 나는 방법이군.”
엑센시온이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진조 ‘엑센시온’과 레드 드래곤 ‘타미아’의 제약이 해금됩니다!] [제한 시간: 11h : 59m : 59s]승낙과 제물.
두 개의 숭고한 의지로 인해 탑에 거주하는 최상의 존재들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드디어 됐군.”
허공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하스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욱씬!
아직까지 잃어버린 팔이 쑤신다.
아니, 이 지긋지긋한 통증은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자존심 때문이리라.
‘올드 가드니 뭐니 하는 잡것들에게 밀려 공을 빼앗기진 않을 거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준비한 회심의 카드를 사용해 당당히 니알라토텝에게 가치를 인정받겠다.
고작 상급 관리자에서 끝나려고 이토록 고생을 해온 게 아니었으니까.
⁕ ⁕ ⁕
동굴 안으로 들어온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동안 진혁은 프라임 서비스 길드의 멤버들을 꼼꼼하게 훑었다.
지나치게 살갑게 다가오는 강수아.
돌멩이로 인해 급격하게 의심을 사게 된 안일만.
전용 힐러이면서 공격 마법을 능숙하게 다루는 산드라와 먼 거리를 탐색하면서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레인저 조나단.
속을 보이지 않는 원거리 딜러 로마노프스키까지.
‘의심을 하자고 보니 끝도 한도 없네.’
범인이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 특정이 안 되니 그게 더욱 흥미를 자극했다.
마피아 게임이라도 하듯, 숨어 있는 적을 특정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충 녀석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는 짐작이 된다.
‘마지막에 여왕이랑 손을 잡고 이쪽의 뒤통수를 치려는 거겠지.’
전력의 대부분을 앞으로 집중하고 있는데, 뒤에서 기습을 받는다면 그 효과는 지대할 터.
하물며 기습을 하는 대상이 올드 가드의 상위권 존재라면 더 이상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파팟!
바로 옆에 있던 흙더미가 갈라졌다.
튀어 나온 건 길이 30cm 크기의 지네들.
크기는 작지만, 맹독을 가진 놈들이었다.
하지만, 벌레들이 진혁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바로 직전.
“벌레 따위가 감히 주군에게 이빨을 들이대다니.”
월영이 그림자에서 나타났다.
서걱!
검이 반원을 그리자 벌레들의 몸이 수십 토막이 되어 잘려나갔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솜씨다.
새삼스레 같은 편이어서 정말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별 말씀을.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월영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반대로 철없는 여왕 폐하께선 연신 칭얼거렸다.
“계약자. 여왕인지 뭔지 있다는 곳까지는 아직 먼 것이냐? 짐을 이런 칙칙한 곳에 가둬둔다면 피부가 금방 상한단 말이다.”
누가 철없는 뱀파이어가 아니랄까봐.
가만히 있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거의 다 왔으니까. 이거라도 먹으면서 조금만 참아.”
진혁이 엘리스의 입에 큼지막한 초콜릿 과자를 물려줬다.
바삭바삭한 크러스트와 녹진한 초콜릿이 일품인 수제 과자다.
“고작 이깟 걸로. 바삭… 짐을… 바사삭. 호오. 호오오… 오물오물. 꿀꺽.”
5초도 안 돼 과자가 뱃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좀 진정할래?”
“하나만 더 주면 고려해 보마.”
“이거 비싼 거야. 신세계 백화점에서 한정판으로 산 거라고.”
“짐이 명하노니 내놓거라. 오늘 하루 동안은 절대 징징대지 않으마. 또 과자값은 확실하게 하겠다.”
뭐, 그렇다면야.
진혁이 과자를 하나 더 입에 물려주었다.
엘리스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작은 입을 오물거렸다.
“어라?”
“왜 그러느냐, 계약자. 설마, 반만 달라는 거라면… 그, 그건 좀….”
“그런 게 아니라, 천라지망을 통해 포착했던 놈이 사라졌어.”
“계약자의 능력을 파훼했다는 뜻이야? 아니면….”
“죽은 거겠지. 부상이 심각했으니까.”
다행히 위치를 봐선 목적지까지 도달한 뒤에 죽은 것 같은데….
문제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마력 중 일부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내가 알고 있던 리어퀸은 이 정도 마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데.’
마력의 질도. 그 종류도 상이했다.
특히나, 자신의 힘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게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걸렸다.
둥지에 들어온 적에게 자신을 과시하면 과시했지. 오히려 숨긴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올드 가드 쪽이랑 뭔가 계획을 세워뒀다는 건가.’
이제 결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상대에게 허를 찔리지 않기 위해선 한 발 더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진혁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통로가 끝나는 부분에 밝은 빛이 비췄다.
“주군, 저 앞에….”
“도착했나 보네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거운 마력이 공기를 짓누른다.
이 앞이 여왕이 있는 곳이다.
* * *
한 걸음을 더 내딛자 보이는 시야가 완전히 달라졌다.
수많은 블랙 레타나와 블랙 카이저들.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몬스터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여왕 ‘리어퀸’이 마력을 해방합니다!]쿠쿠쿠쿠쿠쿠!
동굴 전체가 격하게 흔들렸다.
“나의 왕국에 잘 왔다. 인간이여.”
리어퀸이 옥좌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프라임 서비스 길드의 멤버들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32층의 보스급 중 하나를 직접 마주하자 싸우려던 전의가 먼지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반면.
“흐응. 벌레 주제에 감히 짐을 내려다보는구나.”
“마계에서 만났던 마왕에 비하면 별거 아니네요.”
엘리스와 테레사는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다.
모처럼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에 온 몸이 근질거리는 듯 보였다.
“여왕은 내가 맡을게. 서포팅은 월영이. 그리고 시선을 끌고 잡몹을 상대하는 건 엘리스와 테레사 씨가 하는 걸로. 마지막으로 프라임 길드 분들은 후방에서 오는 놈들만 잡아 주세요.”
“도와드리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강수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괜히 어설프게 돕다간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집니다. 정 돕고 싶으면 원거리 지원이나 부탁드려요. 그리고….”
진혁이 조심스레 한 마디 덧붙였다.
“절대 다른 사람들은 전투에 개입하지 못하게 말려주세요. 혹여, 억지로라도 개입하려 하면 저희 쪽에 경고만 해주시면 됩니다.”
현재 가장 의심스러운 건 안일만.
토르의 가호를 받지 않고도 번개를 견딘 놈이다.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꼬리를 드러낼 터.
그걸 방지하기 위한 게 강수아의 경고였다.
척.
모두가 자세를 잡았다.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고작 그만한 숫자를 끌고 와서 내 왕국과 싸우려 하다니.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벌레 퇴치하는데 뭐하러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오겠어? 이 정도면 충분하고 넘치지.”
리어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혁의 말이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냈다.
“전부 쓸어버려라.”
“크오오오!”
“케에에에!”
수많은 지네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엄청난 양의 독운무가 쏟아졌다.
산성 더듬이들 역시 매캐한 액체를 흩뿌렸다.
그야말로 지옥에 가까운 광경.
하지만, 테레사의 ‘별의 가호’를 시작으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길을 열겠습니다.”
눈부신 십자가가 앞을 밝혔다.
콰콰콰콰콰!
콰아아앙!
여기저기서 거센 폭발음이 들렸다.
피와 살이 튀기고. 검격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고유 능력 ‘괴력난신(怪力亂神)’이 발동됩니다!]진혁의 어깨 너머로 4개의 황금 팔이 나타났다.
벌레는 역시 짓눌러 죽여야 제 맛.
거대한 팔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했다.
퍼퍼퍽!
블랙 레타나들이 그대로 으깨져버렸다.
곧바로 세 개의 능력이 연이어 발동됐다.
‘멸천만독(滅天萬毒)’과 ‘빙하조형’으로 만든 녹색빛 얼음 파도.
거기에 ‘해류의 의지’가 더해지자, 죽음을 모는 해일이 동굴을 휩쓸었다.
“쿠에에엑!”
“크와아!”
수십, 수백 마리의 블랙 레타나들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쓸려나갔다.
“무, 무슨…!”
리어퀸이 두 눈을 부릅뜬 채 기함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광역기가 존재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놀라는 건 잠시뿐이었다.
진혁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월영 역시 반대편으로 파고들었다.
탓.
툭…!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오는 두 개의 그림자.
근접계 딜러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공격이었다.
리어퀸의 양 옆으로 블랙 카이저들이 호위하듯 둘러쌌다.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지근거리에서 발동된 검은 검강.
블랙 카이저들이 무 썰리듯 썰려 나갔다.
이제 여왕의 실드를 벗겨낼 정도의 충격만 준다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터,
그런데 칼날이 날아간 그 순간.
콰아아앙!
단검이 허공에 튕겨나갔다.
욱씬!
팔에 시큰한 감촉이 파고들었다.
진혁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
이 느낌은 설마…?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인간 놈!”
너무나도 낯익은 목소리.
새하얀 은발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진조는 틀림없는 진조 ‘엑센시온’이었다.
거기에 뒤에 적발의 여성 또한 평범한 거주자가 아니다.
눈동자 색과 머리색이 같은 건 물론, 드래곤 족 특유의 마력이 가득 배어 있었다.
‘빌어먹을.’
이런 변수가 갑자기 끼어들다니.
이렇게 된다면 전략을 다시 구상해야 한다.
그런데.
콰앙!
무언가 치고 나갔다.
“엑센시오오온!”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에선 억겁의 세월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자신을 지하 구덩이에 유배시켰으며. 자신을 따르던 이들 또한 함께 지옥에 밀어 넣었던 당사자.
오직 그 녀석을 죽이겠다는 생각만이 엘리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엘리스! 안 돼!”
진혁이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