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496)
496화. 블랙 레타나들의 여왕 ‘리어퀸’ (2)
공허했다.
믿었던 이들에게 버림받고. 가지고 있는 모든 영광과 명예가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으니까.
그렇기에.
누구도 이 슬픔과 절망을 이해해줄 수 없기에.
……괴로웠다.
그리고 그런 감정마저 잊혀져갈 즘.
다시 한 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과거의 치욕을 씻을 수 있는 기회와.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엘리스가 고유 성창 ‘개벽의 계시록’을 발동합니다!]붉은 고리와 함께 나타난 붉은 꼬챙이들.
“엑센시온!”
엘리스의 몸에서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이 터져나왔다.
폭풍이 된 핏방울들이 일제히 앞으로 쇄도했다.
“흐음. 역시,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건 여전하구나.”
엑센시온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콰아아앙!
콰콰콰쾅!
날아든 작살들이 허공에서 가루가 되어 흩뿌려졌다.
검은색 막으로 된 실드에서 불길한 기운을 뿜어냈다.
“안 됐지만, 지금의 난 내 영지에서와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네가 아무리 발악해봤자 소용없다는 뜻이지.”
“그깟 방패쯤이야 계속 두드리다 보면 박살나게 되어 있느니라. 감히 짐의 앞에 그 면상을 드러낸 걸 뼛속까지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쿠쿠쿠쿠쿠!
엘리스의 기운이 한 층 더 거세졌다.
체내에 있는 마력을 모조리 태워버려도 상관없다는 듯이.
“엘리스!”
진혁이 다시 한 번 외쳤다.
당연한 말이지만, 엘리스에겐 그 외침이 전달되지 않았다.
‘젠장, 이거 골치 아파지겠는데.’
시스템의 제약을 풀어버린 엑센시온과 레드 드래곤 타미아.
게다가 타미아가 들고 있는 저 뼈로 된 창은…….
또 다른 의미에서 심상치 않은 무기였다.
‘고대룡의 뼈까지 손에 넣은 건가.’
이 정도 되는 사이즈의 일을 둘이서 작당했을 리는 없다.
하스팅, 아니, 어쩌면 니알라토텝뿐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들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수리부엉이가 언급한 적 있던 변수 역시 가능성 중 하나로 떠올랐다.
뭐가 됐든 지금 당장은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게 관건이다.
진혁이 테레사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알겠어요!”
테레사가 즉각 움직였다.
이번에는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닌 퇴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으아악!”
안일만과 로마노스프키가 있던 곳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나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 타이밍에 올드 가드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비명 소리를 미루어 보건대 이미 상황은 늦었다.
누군가는 이미 죽었고 다른 하나가 살인을 저질렀으리라.
이제는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구하는 수밖에.
“강수아 씨!”
“네, 네…….”
강수아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넋이 나갔는지 손발이 덜덜 떨렸다.
“정신 차리세요!”
“네? 네……!”
“지금 당장 나머지 사람들 데리고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정신 차리라고요!”
진혁이 강수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어째서…… 왜 우리 쪽 사람끼리 서로 죽이는…… 저는 뭐가 뭔지…….”
강수아가 더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을 자아냈다.
“그쪽에 있는 동료 중 하나가 껍데기는 알던 사람이지만, 알맹이는 다른 놈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줄 테니, 나머지 사람들이라도 데리고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세요.”
콰아앙!
퍼퍼퍽!
“끄아아악!”
또 다른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와중에도 올드 가드는 착실하게 프라임 서비스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럴 수가……. 아, 알겠어요, 일단, 후퇴할게요.”
추가적인 피해가 나는 건 강수아가 해결해주겠지.
진혁이 즉각 반대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걸로 최소한의 방비는…….
푸욱!
“어……?”
진혁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등 쪽에서 느껴지는 시큰한 통증.
정확히 어깻죽지에 날카로운 단검이 박혀 있었다.
진혁이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이야, 살기까지 완벽하게 숨겼는데, 그 와중에 이걸 반응한다고? 진짜 인물은 인물이네.”
강수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너……가 올드 가드였다고? 그럼 저 뒤에서 날뛰고 있는 건…….”
분명, 생명력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는데.
설마…….
“맞아. 이곳에 온 올드 가드는 하나가 아니었어. 아무렴, 당신 같이 성가신 사냥감을 사냥하는데 나 혼자 왔을까 봐?”
“상위 5위 안에 들어가는 올드 가드라 들었는데, 그 와중에 힘을 합치다니. 자존심이고 뭐고 없나봐?”
진혁이 쓴맛을 다시며 검을 뽑았다.
주르륵…….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별의 가호’와 ‘만다라’가 발동되었다.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시켜버리는 힘은 이 정도 상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낫게 할 것이다.
그런데.
욱씬! 시큰!
상처는 조금도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찔린 부위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주……. 그것도 절대판정의 저주인가.”
진혁이 단검을 바라봤다.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칼날.
“역시 눈썰미가 좋네. 석화의 단검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악화돼 결국엔 몸 전체가 돌덩이가 되어버리지. 물론, 당신 능력이 출중한 거야 알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 거야.”
빌어먹을.
정말 제대로 걸렸네.
리어퀸은 물론 엑센시온과 타미아에 이어 올드 가드까지 상대하게 생겼으니까.
‘테레사랑 월영도 지네들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다하느라 도울 여력이 없어.’
무엇보다 강수아의 말대로 지금 입은 상처는 심상치 않았다.
⁕ ⁕ ⁕
같은 시각.
엘리스와 엑센시온의 전투 역시 더더욱 격렬해졌다.
수백 개의 꼬챙이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붉은 섬광만이 날아간 궤적을 밝혔다.
콰콰콰콰쾅!
그러나, 엑센시온은 엘리스가 날린 꼬챙이들을 모조리 요격했다.
검은 빛을 띤 꼬챙이들이 또 다시 허공을 가득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좋아. 아주 좋구나! 그때는 미치도록 강해서 두려움마저 느꼈었는데……. 역시 덜 떨어진 인간 따위랑 계약을 하니 반푼이가 되어버렸군!”
엑센시온이 광소를 터뜨렸다.
몇 번의 공방전이 거듭될수록 확연히 기울어지는 전세.
엘리스의 옆에 떠 있는 꼬챙이의 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반면, 엑센시온은 여전히 건재했다.
“내…… 계약자를 보고 덜떨어졌다고 지껄이지 말거라. 내 계약자는 탑에 존재하는 그 어떤 존재보다 강하다.”
“푸하하! 아주 제대로 콩깍지가 씌었나보군. 하긴, 녀석 나름대로는 용을 쓰긴 썼으니까.”
타락한 자의 회랑에 봉인된 엘리스를 꺼내고 탑의 30층대까지 등반한 건 분명, 엄청난 성과다.
인간치고는 말이다.
그러나, 이 앞으로는 인간을 초월한 영웅들과 신들의 영역.
지금까지 오만하게 날뛰던 플레이어는 날개가 꺾인 채 추락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받아내기 조금 더 버거울 거다. 엘리스.”
“얼마든지 오거라. 아직 짐은 힘을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엘리스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콰콰콰콰콰콰!
붉은 창과 흑색 창이 교차한다.
엄청난 수의 마력덩어리들이 격돌하자 거대한 파장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크오오오!”
“키에에!”
주변에 있던 지네들이 그대로 휘말렸다.
마치 천재지변처럼.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크하하! 그걸론 부족하다. 더, 더 발악해 보거라. 네 철천지원수가 눈앞에 있지 않느냐!”
잔뜩 달아오른 엑센시온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위에서…….
아래로.
수십 개의 꼬챙이들을 엮어 만든 창이 낙하했다.
[엑센시온이 Lv?? ‘카오스 스피어’를 소환합니다!]“큭!”
엘리스가 즉각 붉은 칼날들을 꺼냈다.
수백 개의 칼날들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하나의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다.
보유한 것 중에서 가장 튼튼한 방어 스킬.
하지만…….
콰아아앙!
낙하한 창의 위력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종류였다.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유성에 그대로 직격당한 것마냥, 수십 개의 충격파가 일어났다.
⁕ ⁕ ⁕
후두둑…….
파편들이 떨어졌다.
“아……으…….”
먼지투성이의 엘리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붉은 칼날들은 모조리 박살이 나 땅에 떨어진 상황.
간신히 막긴 했지만, 피해는 컸다.
‘왼쪽 팔은 더 이상 쓰기 힘들겠어. 폐랑 간도…… 다쳤고.’
언제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겼는지 계약자로부터 오는 마력의 공급 역시 약해졌다.
‘설마…… 다치기라도 한 건가.’
엘리스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비틀거리는 진혁이 보였다.
어깨 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양을 보건데, 중상이 틀림없었다.
당장…… 도와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계약자를 구해야 한다.
저벅.
엘리스가 부상당한 몸도 내팽개쳐 둔 채 진혁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벅.
발걸음이 무겁다.
시야 또한 흐릿하다.
그럼에도 가야 한다.
어떻게든 곁에 있어줘야 한다.
자신이 왔다고 알려줘야 한다.
“아…….”
엘리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자욱한 먼지 사이로, 저 멀리 진혁의 얼굴이 보였다.
“호오. 그걸 막은 건가.”
하나, 차가운 목소리는 엘리스가 진혁에게 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파팟!
엘리스의 다리에 길고 얇은 검상이 나타났다.
레이피어를 뽑아든 엑센시온이 엘리스의 길을 가로막았다.
“비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몰골이면서도 여전히 주둥아리는 살아있구나.”
“비키라고!”
“입으로 명령하지 말고. 힘으로서 말해라. 몰락한 전대 가주여.”
파츠츠!
엑센시온의 레이피어가 눈부시게 타올랐다.
검붉은 룬어가 새겨진 검은 아타락시아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오는 성유물이었다.
“그때 네가 패배했던 것도 진조라면 당연히 익히고 있어야 할 검술을 태만히 했기 때문이었지.”
원거리 공격은 기본.거기에 근접전에도 특화되어야 하는 게 가주로서의 소양이었다.
“어디, 받아낼 수 있겠나?”
엑센시온이 칼끝을 까딱였다.
“나도…… 배웠어.”
엘리스의 작은 입이 벌어졌다.
“뭐라 중얼거리는 거냐?”
“나도 레이피어를 쓰는 법을. 검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투덜거리던 자신에게 레이피어를 가르쳐 준 계약자.
레이피어를 다루는 법이라면 몇 번이고 익혔다.
자신이 아는, 탑에서 가장 강한 자로부터.
우우웅!
엘리스가 아공간 인벤토리를 개방했다.
나타난 건 순백의 검신을 가진 레이피어.
한 송이 꽃처럼 흐드러진 손잡이가 엘리스의 오른손에 자리 잡았다.
“자세는 그럭저럭 잡혔군. 해서 마력이 고갈되고 부상당한 그 몸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보아하니, 너와 계약한 계약자 역시 마력을 나눠줄 형편이 아닌 듯싶은데?”
“그건 상관없어. 내 힘으로…… 계약자를 구하러 갈 테니까.”
[계약의 일시적으로 끊깁니다.] [자체 마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모든 마력이 고갈 시 대상은 소멸합니다.]붉은 상태창이 연이어 나타났다.
[개벽의 계시록 – 순혈의 천사 ‘리뎀션’이 발동됩니다!]한 쌍의 날개가 세 쌍으로 갈라졌다.
붉은 고리가 하얀색으로 물들며, 검과 날개의 색이 같아졌다.
희면서도 붉은 마력의 향연.
이것이 엘리스의.
아니,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근접 전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