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00)
500화. 순혈의 전쟁 (1)
사기(詐欺).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착오를 불러일으키거나 속이는 일을 칭하는 말이다.
“대체 뭐 하는 짓이냐!”
천유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경쟁이 중요하다고 해도 여왕을 확보하는 게 모두에게 우선인 사항.
그런데 진혁의 방해는 레이드 자체를 망쳐버리는 행위였다.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야? 내가 여왕님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여왕님…? 이게 술을 처먹었나. 아까 전엔 분명… 읍읍!”
천유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함쳤지만, 진혁은 재빨리 손으로 천유성의 입을 가로막았다.
“당장 그것부터 치워, 험악하게. 쯧.”
진혁이 서둘러 리어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저벅.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인데, 주위에 있는 블랙 레타나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보여준 위용이 워낙 대단했을뿐더러, 애초에 진혁에게서 살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걱정 마세요. 이제부터는 제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자, 이리 오세요. 어서요.”
“……??”
리어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거부할 순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이 정도로 강한 지원군은 없을 테니까.
‘어차피 내가 저쪽에 붙어 봤자 마력 흡수용으로 쓰이다 버려질 거야.’
지금까지 엑센시온과 타미아가 해온 꼴만 봐도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때문에 리어퀸은 지금 진혁의 연극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게 새로운 동아줄일지도 몰랐으니.
* * *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진혁이 고민하고 있는 리어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엑센시온과 타미아의 고압적인 태도로 보건대, 리어퀸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나름대로 한 무리를 이끄는 군주라면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당연한 일이리라.
그리고 진혁은 그 점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마침내 리어퀸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대와 함께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상하지 않게 해줄 수 있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진혁이 한 점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누가 봐도 진심이 뚝뚝 묻어나온다.
게다가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 역시 갖추고 있었다.
하나, 리어퀸의 마음을 돌린 가장 큰 이유는….
‘동료를 위해 자기 한 몸을 기꺼이 불살랐어.’
엘리스라는 진조가 다쳤을 때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분노.
그건 결코 가식이 아니었다.
정말로 주위에 있는 이들을 소중히 할 줄 알았기에, 그리고 그걸 위해서라면 모든지 할 수 있었기에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알겠다. 그대를 믿어 보도록 하지.”
리어퀸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레타나 종족이 당신을 따릅니다.] [계약에 의해 리어퀸을 비롯한 모든 블랙 레타나들은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임시 동맹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진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이걸로 엑센시온을 상대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하게 됐다.
반면,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엑센시온은 분노가 가득 실린 역정을 내질렀다.
“리어퀸! 이게 무슨 짓거리냐!”
인간과 몬스터의 동맹이라니!
그것도 자신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바로 코앞에서 뒤통수를 칠 줄이야.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파츠츠!
엑센시온의 등 뒤로 검은색 꼬챙이들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마력이 실린 흉기들이었다.
하지만.
리어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계속 흔들린 건 사실이었으나, 완전히 편을 정한 지금은 오롯이 한쪽을 위해서만 싸울 생각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걸 말해다오. 뭐든지 아낌없이 지원하겠다.”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죠. 그럼 먼저….”
진혁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블랙 카이저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블랙 카이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우리 애가 마력이 한창 달려서요. 식사 보충 좀 하겠습니다.”
“식사라니, 그게 무슨….”
“그냥 가만히 지켜보시면 됩니다. 별거 아니에요.”
진혁이 리어퀸의 관심을 흩뜨렸다.
“엘리스.”
“응!”
“실컷 먹고 회복해.”
“호오오. 정말 다 먹어도 돼?”
“그럼. 얼른 회복해야 또 싸우지.”
두 눈을 반짝인 엘리스가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호로록. 냠냠. 쪽쪽.
엘리스가 송곳니를 박은 채 연신 볼을 오물거렸다.
“키이이….”
순식간에 블랙 카이저의 얼굴이 수척해졌다.
단기간에 과도한 혈액을 잃은 탓이다.
“피, 피를 빠는데?”
“괜찮습니다. 죽을 때까진 안 빨아요.”
엑센시온과 달리 이쪽은 최소한의 선을 지킨다.
그사이 엑센시온에 의해 수십 마리의 블랙 카이저들과 수백 마리의 블랙 레타나들이 희생당했지만, 덕분에 엘리스는 빠르게 마력을 회복했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크아아! 이런 빌어먹을 떨거지들이…! 다 죽여 버리겠다!”
엑센시온이 고함을 질렀다.
아무리 죽여도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적들 때문에 심기가 완전히 뒤틀려버렸다.
[엑센시온이 성유물을 개방합니다!]아공간에서 개봉된 아이템은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쏴아아아….
공기가 바뀐다.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마력은 진혁마저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저 마력은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엑센시온이 그 성유물에 대한 단서를 갖고 있다곤 하지만, 놈의 수준으로는 절대 그 이상을 찾아낼 순 없을 텐데?
하스팅이나 니알라토텝이 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상의 누군가가 개입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엑센시온의 손에 들린 익숙한 아이템은 틀림없는 ‘왕관’ 중 하나였다.
[‘순혈의 왕관’이 개방됩니다!]탑에 존재하는 최강의 성유물이자 50층에 도달하기 위한 열쇠.
상위 거대 세력들마저도 얻지 못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히든 피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패도의 왕관’ 이후 두 번째 왕관이 등장한 것이다.
쿠쿠쿠쿠쿠쿠!
엑센시온이 순혈의 왕관을 쓰자 주위의 핏방울들이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죽어라.”
부우웅… 콰콰콰콰쾅!
피로 만든 꼬챙이들이 주위를 휩쓸었다.
이건 아무리 단단한 외피를 가진 곤충계 몬스터라 해도 소용이 없다.
적어도 ‘혈계 마법’에 관한 한 극한의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게 ‘순혈의 왕관’이었으니까.
최초의 진조가 만들어 탑의 태초부터 내려온 성유물.
엑센시온의 머리 위로 붉은 왕관이 완전히 그 형을 갖췄다.
[순간 접속 – ‘블러드 비기닝’이 발동됩니다!]붉은 대검이 불길한 빛을 내며 타올랐다.
동시에.
“키…이으이이….”
“케에…에에….”
블랙 레타나들의 몸이 그대로 말라붙었다.
단순히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피를 빼앗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화력.
“이, 이 정도라니….”
리어퀸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든든하던 병사들이 볏짚 인형처럼 쓰러진 걸 보며 두려운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유성 씨!”
“그래, 알고 있다.”
테레사의 말에 천유성이 움직였다.
양산형 병사들로는 한계가 있을 터.
가능성을 만들려면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
‘저 빌어먹을 고인물이 회복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진혁 씨에게 숨을 고를 여유를 만들어줘야 해.’
서로가 같은 생각을 품은 채.
[천유성이 고유 능력 ‘검의 노래’를 발동합니다!] [테레사가 고유 능력 ‘별의 가호’를 발동합니다!]두 개의 고유 능력이 각기 다른 빛을 뿜어냈다.
가볍고.
빠르게.
테레사와 천유성이 왼쪽과 오른쪽에서 엑센시온을 노렸다.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겠어? 2:1인데?”
타미아가 뼈로 만든 창을 만지작거렸다.
“잔챙이들쯤이야 몇 놈이 덤벼도 상관없다.”
엑센시온이 양 손으로 검을 잡은 채 앞으로 나섰다.
콰앙!
테레사가 방패를 비스듬히 세워 초격을 받아냈다.
“……크읍.”
무겁다.
확실하게 충격을 흘려냈음에도 손에 전해지는 저릿한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그 찰나를 벌어준 탓에 나머지가 움직일 수 있었다.
카카카캉!
천유성이 물 흐르듯 ‘추혼검’의 초식을 이어나갔다.
벌떼처럼 파고드는 연격은 엑센시온의 빈틈을 매섭게 파고들었다.
탓.
검로를 지우며 잔상이 잔상을 덧씌운다.
단순히 마력의 양에서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지만, 특유의 검술과 그 검술을 완성하기 위해 쌓아온 노력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카아아앙!
“흠!”
엑센시온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일 보로 검의 간격에서 벗어난 천유성이 엑센시온의 목을 노렸다.
동시에.
[월영이 고유 능력 ‘음영극살’을 발동합니다!]그림자 속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월영은 기동성의 중심이 되는 다리를 노렸다.
어느 것 하나 대응하기 까다로운 절초다.
하지만.
“가소롭구나.”
뼈를 깎는 노력도.
백만 명 중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재능도.
심지어는 뭘 해도 되는 행운마저도 넘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왕관’이 지닌 힘이다.
엑센시온의 주위에 떠 있던 검붉은 구체들이 일제히 모습을 바꿨다.
육망성이 새겨진 얇은 원의 형태로.
그리고 이어진 것은 피로 만들어진 칼날 채찍들의 광란이었다.
촤촤촤촤!
수십 개의 육망성에서 튀어나온 칼날 채찍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보고 대응하거나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물리적으로 모든 공간을 모조리 찢어발겼기에, 무언가를 해볼 여지 자체가 없었다.
“커헉!”
“으아아악!”
천유성과 월영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콰콰콰콰쾅!
그나마 방어 능력이 뛰어난 테레사만이 치명상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방패가 걸레짝으로 변하긴 했지만.
“두… 두 분 괜찮으세요!”
테레사가 곧바로 월영과 천유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신성력으로 치료를 한다면… 위험한 고비는 넘길 거라 생각하면서.
“누가 그런 걸 허락한다 했느냐?”
엑센시온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츠츠츠…!
또 다시 칼날 채찍들이 고속으로 움직였다.
“……!”
콰콰콰쾅!
테레사가 서 있던 곳에 붉은 폭풍이 몰려왔다.
⁕ ⁕ ⁕
[마력이 모두 회복되었습니다.]흡혈의 시간이 끝났다.
초췌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어느새 완전한 모습을 갖춘 엘리스가 진혁의 옆에 나란히 섰다.
“계약자.”
그리고 평소와 같은 얼굴로 진혁을 바라봤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진다.
지금까지 함께 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이 순간에도 옆에 있어서 고맙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자. 이제 우리가 나서줘야 해.”
“응. 알고 있어.”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달리 마력이 역으로 흐른다.
엘리스의 손길을 타고 따스한 기운이 몸 속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우우우웅!
엘리스의 마력을 주입받고.
주입받은 마력을 통해 능력을 깨운다.
[고유 성창 ‘개벽의 계시록’이 발동됩니다!]엘리스의 어깨 위로 붉은 고리가 떠올랐다.
왼쪽 어깨에는 새하얀 날개가 돋아났다.
어둠 속에서도 고고함과 긍지를 잃지 않았던 아타락시아의 가주.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완전무장이 완성됐다.
그리고.
극한까지 이루어진 동조화는 또 하나의 능력을 개화시켰다.
[이해도가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고유 능력 ‘만상공유(萬象共有)’가 발동됩니다!]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
[고유 성창 ‘개벽의 개시록’이 발동됩니다!]마찬가지로 진혁의 어깨 위에도 붉은 고리가 생겨났다.
오른쪽 어깨엔 검은색 날개가 돋아났다.
같은 공간에서 펼쳐진.
두 개의 계시록.
아타락시아의 긍지를 되찾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