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02)
502화. ‘순혈의 전쟁’ (3)
본래라면 지네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땅굴.
하나 이곳엔 이제 새로운 종족이 가문의 존폐를 건 채 대치하고 있었다.
벨루스가 감격에 찬 얼굴로 엘리스를 바라봤다.
대체….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 순간을 꿈꿔 왔을까?
꾸욱.
벨루스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내렸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옥 같은 토굴에 처박혀 달빛이 어떤 건지조차 잊고 살아왔었다.
하나, 뼈를 깎고 영혼이 갈려나가는 동안에도 복수를 하겠다는 갈망을 포기하진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타락시아의 가주 자리를 찬탈하고 자신이 믿고 따르는 엘리스를 배신한 놈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노라고.
그리고 마침내….
일족의 숙원을 풀 수 있는 시간이 도래했다.
“가주께서 명하셨다.”
스릉!
벨루스가 허리춤에 찬 레이피어를 뽑았다.
핏빛으로 물든 칼날이 눈부신 감광을 쏟아냈다.
“엑센시온에게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라!”
“오오오오!”
“복수의 시간이다!”
“다 죽여 버리겠다!”
동굴 전체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기에, 사기는 하늘 끝까지 솟구쳐 있는 상태였다.
“엘리스… 기어이 네 밑에 있는 것들까지 전부 다 희생시킬 생각인 건가?”
“희생당하는 건 너희 쪽이겠지. 이기는 건 우리일 테니까.”
엘리스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파츠츠…치칫!
마력과 마력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정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쳐라.”
엑센시온 쪽에서도 돌격할 준비를 끝냈다.
곧.
콰콰콰콰콰콰!
서로 다른 진형의 뱀파이어들이 정면에서 격돌했다.
“크아아악!”
“아아악!”
퍼퍼퍼펑!
콰아앙!
각종 혈계 마법들이 어지럽게 난무했다.
레이피어와 레이피어가 교차하며, 피와 비명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었다.
[테레사가 Lv19 ‘축복받은 손길’을 발동합니다!]쏴아아아….
테레사 덕분에 천유성과 월영도 어느새 컨디션을 되찾았다.
“이 정도면 될 거예요.”
테레사가 상처 부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고맙군.”
“뭘요.”
천유성이 짧게 감사를 표했고 테레사는 살포시 웃는 것으로 답했다.
이제부턴 전투에 합류할 수 있게 됐으니, 더욱더 고인물 코퍼레이션 쪽에 힘이 실리게 되리라.
마지막으로 진혁의 편으로 합세한 토르 역시 제 몫을 톡톡히 다 했다.
[‘묠니르’ – 천둥의 부름을 발동합니다!]망치에 담기는 푸른 번개.
오직 토르만이 다룰 수 있는 성유물은 힘에 관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콰아아앙!
“큭!”
타미아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충격을 반쯤은 흘렸는데도 충격이 뼛속까지 전해졌다.
‘본체가 아니라면… 쉽지 않겠는데.’
그렇다 해서 여기서 성체의 모습으로 현현했다간 다른 드래곤들의 관심을 끌게 될 거다.
드래곤들에게 있어 탑의 아래층을 돌아다니는 건 어디까지나 ‘유희’의 일종으로 허용되는 관례.
하지만, 본신으로 현현하는 순간부터는 그 범주가 유희를 아득히 벗어나게 된다.
최악의 경우 드래곤 로드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계획이 밝혀지게 될지도 몰랐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타미아가 뼈로 된 창을 시계 방향으로 휘둘렀다.
붕붕붕!
창이 파공성을 질러댔다.
[‘브륜힐라’ – 윈드포스가 발동됩니다!]고대룡 브륜힐라는 ‘바람’과 ‘가속’의 권능을 관장하는 용이다.
힘에서 밀린다면 속도전으로 몰아붙이면 될 터.
바람의 창날은 아무리 단단한 육체로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 ⁕ ⁕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포지션에서 전투를 치르는 동안.
진혁과 엘리스는 엑센시온을 압박했다.
[고유 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두 개의 단검에 검은 강기가 실렸다.
거기에 ‘패도의 왕관’에 의한 스탯이 추가되자 검강의 선명도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
콰앙!
신법 역시 차원이 달라졌다.
순식간에 측면을 잡은 진혁이 단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작디작은 단검에서 나올 거라곤 상상하기 힘든 굉음.
하지만, 엑센시온 역시 대검을 젓가락마냥 다루며 진혁의 검에 대응했다.
쇠와 쇠가 부딪친다.
진혁의 검이 속도에 치중된 신속을 자랑한다면.
엑센시온의 검은 일격 일격에 상대를 분쇄해버리겠다는 필살을 자랑한다.
카가가각!
‘열화가속’으로 인해 가속된 검이 진혁의 정수리를 향했다.
이건 피했다간 자세가 무너진다.
진혁이 두 개의 단검을 교차해 그 일격을 받아냈다.
본래라면 단검은 견뎌도 팔이 부서질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패도의 왕관’으로 인해 이 정도 충격은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대검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다소 가벼워졌다.
엑센시온이 검을 그대로 버려둔 채 사라진 것이다.
“……!”
진혁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바로 뒤에서.엑센시온의 손이 번개처럼 쇄도했다.
가주 정도 되면 손톱을 세운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성유물에 버금가는 위력을 자랑할 터.
[‘천마신공’, ‘천마신권(天魔神拳)’이 발동됩니다!]진혁의 주먹이 그보다 반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우두둑…!
“크읍….”
종이 한 장 차이로 주먹이 엑센시온의 배를 파고들었다.
진혁의 눈동자 바로 몇 센티미터 앞에 검은색 손톱이 우뚝 멈춰 있었다.
콰아앙!
엑센시온의 몸이 그대로 반대편으로 날아가버렸다.
태고의 존재들에게도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천마신공을 맨몸으로 맞은 이상, 제아무리 왕관의 가호를 받고 있다 해도 무사하긴 힘들 거다.
‘가능하면 그대로 죽었으면 좋겠는데….’
글쎄 그건 마음처럼 되진 않겠지.
역시나, 부서진 파편 속에서 엑센시온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게 보였다.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엑센시온이 더욱 저돌적으로 나오리라.
“엘리스.”
“응. 준비됐어.”
엘리스가 바닥에 새겨진 실핏줄들을 바라봤다.
17가지 룬어가 새겨진 대마법진은 마력이 주입된다면 즉시 발동될 터였다.
“내가… 아타락시아의 가주다. 다 죽어버린 망령 따위가 감히… 감히 내 자리를 다시 빼앗을 순 없단 말이다!”
광기로 인해 번들거리는 두 눈.
예상했던 것처럼. 엑센시온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었다.
100m… 50m, 그리고 10m.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이제는 휘두른다면 대검이 즉시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지금이야!”
진혁의 고함과 함께 엘리스가 지면을 향해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엘리스가 Lv?? ‘선혈의 꽃’을 발동합니다!]핏방울들이 얇은 선으로 나뉘어지더니 곧 소용돌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운데 갇힌 엑센시온은 하나의 거대한 믹서기에 들어간 꼴이 되었다.
“쥐새끼 같은…. 언제 또 이런 걸 뒷구녕으로 준비한 거냐?”
엑센시온이 콧방귀를 뀌었다.
피로 만든 것이라면 순혈의 왕관으로 파훼가 가능할 터.
함정쯤이야 대수로울 바 없었다.
그런데.
“……뭐지?”
순혈의 왕관으로도 지배권을 빼앗아오는 게 쉽지 않았다.
정확히는 서서히 지배권을 가져오고 있긴 하지만, 그 속도가 터무니없이 느렸다.
“쉽지 않을 거야. 나름대로 공을 들인 거거든.”
준비한 기간이 긴 만큼, 마법의 위력과 구속력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콰콰콰콰콰!
완성된 마력이 폭발했다.
지면에서부터 솟구친 피보라가 천장을 뚫고 하늘까지 솟구쳤다.
치이이익!
녹아버린 바위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굉…장하네.”
“저게 아타락시아의 전대 가주가 지닌 힘인가.”
격렬하게 전투를 치르던 타미아와 토르마저도 시선을 돌릴 정도.
뿌드득!
하스팅은 완전히 똥 씹은 얼굴로 변해 있었다.
“가, 가주시여!”
“이런 잡것들이 감히…!”
“빨리 다 쓸어버려라. 당장 엑센시온 님을 도와드려야 한다!”
엑센시온을 따라온 혈족들 역시 천재지변과 같은 마력에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피의 폭풍 속에서도 엑센시온은 여전히 건재했다.
“고작 이 정도로… 이 따위 걸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녀석도 그저 입만으로 엘리스를 가주 자리에서 끌어내린 게 아닌 모양이다.
꼭 왕관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생존에 대한 집착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데미지는 충분히 입혔다.
엘리스가 레이피어를 잡은 채 진혁의 옆에 섰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기 위해선 마력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심장을 노려야 한다.
탓.
콰앙!
진혁과 엘리스가 동시에 앞으로 달려나갔다.
주공을 맡은 건 진혁.
카가가가강!
매서운 검격이 몰아쳤다.
게다가 허를 찌르는 엘리스의 레이피어 역시 지친 몸으로 받아내긴 버거웠다.
주욱! 서걱!
엑센시온의 몸을 따라 붉은 핏줄이 죽죽 그어졌다.
대부분의 공격을 받아치긴 했으나, 자잘한 상처들이 쌓여갔고.
머지않아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보다 피해를 입는 속도가 빨라졌다.
더 이상 상처가 회복되질 않는다.
바로 그때.
엑센시온의 몸에 맺힌 핏방울들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고유 능력 ‘혈폭(血爆)’이 발동됩니다!]데카서스의 가주 ‘아뮬람’에게서 복사한 능력.
피부가 시작점이 되는 공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크아아아!”
엑센시온이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충격이 꽤나 컸는지 크게 거리를 벌렸다.
말이 간격을 확보한 거지 깜짝 놀라 도망치는 것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엑센시온이 거친 호흡을 들이마셨다.
짧은 기간, 지나치게 많은 마력을 소모한 탓에 온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강제로라도 전투를 계속할 수 있는 게 바로 ‘순혈의 왕관’이 지닌 능력 중 하나였다.
쿠쿠쿠쿠쿠!
모든 마력을 쥐어짠다.
바닥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 각오로.
“이것까진… 쓰고 싶지 않았거늘.”
[엑센시온이 고유 성창 ‘블러드 브레스’를 발동합니다!]“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걸 무로 되돌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죽는 것보단 목숨이 붙어 있는 게 나았다.
혈족들을 전부 잃더라도 자신만 살아 있으면 또 다른 기회가 있을 테니까.
“끄으으….”
“가, 가주님?”
“몸이… 내 몸이…!”
엑센시온을 따라온 혈족들이 전신을 쥐어뜯었다.
몸에서 흘러나온 혈액이 전부 엑센시온에게 흘러들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엑센시온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검 끝에 모든 마력을 집중시켰다.
쿠웅!
털썩.
하나 둘 쓰러진 혈족들.
그와 반대로 엑센시온의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
파츠츠츠!
붉은 액체로 된 브레스가 격렬하게 타올랐다.
[‘순혈의 왕관’이 혈계 마법을 강화시킵니다!]충분한 제물과 더할 나위 없는 성유물이 만났다.
최강의 브레스를 발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터.
“이 싸움에서 살아남는 건 나다.”
엑센시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 ⁕
엑센시온이 고유 성창을 발동했다는 건 나름대로 배수의 진을 쳤다는 뜻.
“이번 걸로 싸움이 끝날 거야.”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야?”
아무리 그래도 혈족들까지 희생시켜 발동하는 브레스다.
피하지 않는다면 위험부담이 말도 안 되게 높아질 수밖에.
하지만.
“날 믿어?”
진혁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엘리스가 조용히 그 질문을 곱씹었다.
타락한 자들의 회랑에서 처음 만나 지금껏.
믿으라는 말에 단 한 번의 거짓도 없었다.
설령,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해도 진혁이 말한다면 한 점의 의심도 품지 않을 것이다.
“응, 당연히 믿지.”
엘리스가 싱긋 웃었다.
그렇게 진혁이 오른손으로 엘리스의 레이피어를 잡았다.
엘리스 역시 왼손으로 레이피어의 붙잡았다.
백익(白翼).
흑익(黑翼).
두 명이 가까이 겹치자 반쪽짜리 날개가 완벽한 한 쌍을 이루었다.
서로가 다른 색으로 만났지만, 백과 흑은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러워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한정 능력 ‘블러드 윙’이 발동됩니다!]날개의 색이 붉게 변했다.
동시에.
레이피어의 검신을 타고 붉은 강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