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05)
505화. 아래층에서의 변수(2)
[‘최상급 마정석’이 소멸했습니다.] [성유물 ‘구미호의 맹세’가 소멸했습니다.]넘어온 건 본신이 아닌 분신뿐.
하지만, 사념체라 해도 탑 밖으로 나오는 덴 막대한 제약이 걸리는 법이다.
분신이 넘어온 것만으로도 성유물과 최상급 마정석이 사라졌다.
“계, 계약자!”
“진혁 씨. 당장 이쪽으로 와보세요!”
가장 먼저 안드리아를 발견한 엘리스와 테레사가 다급히 진혁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잘 놀고 있었는…… 어라?”
구시렁대며 다가온 진혁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탓이다.
“안드리아?”
만약을 대비해 준 ‘구미호의 맹세’는 말 그대로 위기 상황에서 쓰라고 지급해준 것.
그걸 사용했다는 건 현재 정신병동에 커다란 변수가 생겼다는 뜻이리라.
“진혁…… 님.”
안드레아가 비틀대다 쓰러졌다.
사념체가 이 정도로 피해를 받았다는 건. 본신 역시 무사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설마…… 정신병동이 공략당했다는 건가?
하지만, 시련의 탑 커뮤니티나 전체 상태창에서 정신병동이 클리어됐다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 * *
시련의 탑 5층 ‘정신병동’.
이곳은 지금껏 인류가 정복한 층계 중에서도 조금 예외적인 곳이다.
10층 아래에선 대부분의 미궁과 던전 등이 공략되었고 간혹 가다 난이도 높은 유적만이 미공략지로 남아있었는데.
유일하게 이 정신병동만이 유적이나 미궁이 아닌 와중에도 난공불락의 위치를 자랑했던 것이다.
“룰루랄라.”
안드리아는 여느 때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정신병동 내부를 순찰했다.
“크르르…….”
“크오오오!”
삼각형 모양의 철제 투구를 쓴 ‘심판자’들이 안드리아를 보자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그래. 별 다른 이상은 없는 거지?”
“크오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오늘도 평화로운 모양이다.
‘진짜 많이 변하긴 변했네. 내가 이런 위치에 다 서 보고.’
그래.
지옥 같은 제물의 삶.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파리 같은 인생을 바꿔 준 게 바로 진혁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던 교주를 죽이고 수많은 광신도들을 제압해버렸으니까.
그 덕분에 꿈에도 꾸지 못했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때.
띠링! 띠링! 띠링!
안드리아의 앞에 연거푸 상태창들이 나타났다.
보스 몬스터에게만 전용으로 보이는 특수 알림음이었다.
[새로운 침입자들이 정신병동에 출입했습니다.] [지금부터 생존을 위해 던전을 방어하고 적들을 처리하십시오.] [긴급 상황으로 인해 인근에 있는 다른 던전의 보스 몬스터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됩니다.]플레이어들이다.
숫자는 약 스물.
이제 막 던전의 입구에 들어왔기에 어느 정도 강자들인지는 파악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숱하게 침입자들을 상대해본 안드리아에게선 한 점의 긴장감도 엿볼 수 업없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이고 피해 없게 적들을 요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진혁 님이 사람을 함부로 죽이진 말라고 하셨지.’
안드리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디까지나 거점 방어가 주력.
치명상보다는 제압을 통한 퇴패를 우선시 했다.
“소규모 공격대인 데다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의 비중이 높군요. 탱커 숫자가 명인 걸 봤을 때 C-7 타입으로 대비하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꽤나 젊은 남성 다크 엘프가 곁에 다가왔다.
안드리아의 부관이자 정신병동의 행정책임자인 ‘아데만’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능력을 증명했기에, 안드리아는 아데만을 최측근으로 삼고 또 신뢰하고 있었다.
“함정들을 활성화시키고 그 심판자들을 포인트별로 배치해줘. 네 말대로 배치 타입은 C-7로 하면 될 것 같아. 대신, 만약을 대비해 섬멸자도 깨워두고.”
“섬멸자라면…… 너무 과한 대처 아닌지요?”
심판자의 상위격인 섬멸자.
이들은 정신 병동을 구성하는 27개의 구역 중 한 구역을 통째로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였다.
그런 섬멸자들을 고작 20명 상대로 배치하라는 건 아무리 봐도 과잉 대응.
하지만.
안드리아는 공격대의 밸런스를 보고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미 많은 고배를 마신 플레이어들이 저렇게 공격적인 구성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탱커 숫자는 오직 한 명.
거기다가 메인 힐러 역시 정식 프리스트가 아닌 서브 힐러를 두었다.
그에 반해 멤버들 대부분이 공격에 특화된 딜러들로만 이루어진 상황이다.
아예 생각이 없는 바보들이든가.
그것도 아니면 힐러나 탱커가 필요 없는 괴물들이든가.
둘 중에 하나라는 뜻이겠지.
“굉장히 꼼꼼하시군요. 안드리아 님은.”
“원래 꼭 어설프게 자신감이 붙었을 때 방심하다가 당하곤 하더라고.”
“흐음. 그건 다른 던전의 보스 몬스터들에게 들으신 경험담입니까?”
“으응. 그, 그렇다기보단…… 책에서 읽었어.”
‘던전 파워 디펜스’. ‘언더로드’.
언젠가 진혁이 던전 방어를 위해서 꼭 참고하라고 알려준 서적이다.
제3자의 경험을 통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기에, 안드리아는 이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알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과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정도면 변수 자체를 막을 수 있겠죠.”
아데만이 즉각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조금 뒤에는 모든 게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예상은 붕괴됐고,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커졌으며.
던전은 함락당하기 직전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안드리아는 간신히 분신체만을 따로 만들어 탑 밖으로 보냈다.
서로가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시련의 탑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기 위해서.
[피해가 한도치를 초과했습니다.] [분신체가 소멸했습니다.]파스스…….
안드리아의 몸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
진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신체까지 사라진 지금, 안드리아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 없었다.
침묵을 깬 건 천유성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
“안드리아를 버릴 순 없어.”
“도우러 간다는 거군.”
“그래야지. 정신병동 아니, 안드리아는 소중한 동료니까.”
거점 한 개를 먹고 있다는 건 여러 의미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다.
탑의 상층부에 있을 ‘거대 테마’를 고려한다면 미정복 던전은 반드시 필요한 요건.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는 지켜야 했다.
‘대형 길드들에게 있어 정신병동은 계륵 같은 존재라고 여겨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설마, 이 정도 실력자들이 투입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단순히 명성을 얻기 위해서라면 여기보다도 훨씬 더 좋은 미궁이나 유적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일이 벌어진 이상 이제는 예측이 아닌 대응의 영역이다.
“나머지 분들 생각은 어떠세요?”
그래도 예의상 물어는 봐야겠지.
명색이 코인물 코퍼레이션은 주주의 의견들을 존중하는 기업이었으니까.
“관리자들 회의까지는 아직 9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요.”
“뭐, 약자를 도와주는 거야 말로 고귀한 뱀파이어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
테레사와 엘리스도 합류의 뜻을 밝혔다.
* * *
우우웅!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낡은 곰팡이내와 간간이 섞인 피비린내.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풍경까지.
5층에 온 것은 꽤나 오랜만이다.
역시나, 곧바로 수많은 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온 몸이 조각조각 난 채 널브러진 광신도들은 처참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끔찍하군.”
어지간한 참혹함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천유성마저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큼 폭풍이 휩쓸고 간 곳엔 풀 한 포기 남아있지 않았다.
“좀 서두르긴 해야겠네요.”
“맞아. 일방적으로 도륙당한 걸 보니 공격대가 안쪽으로 한참이나 들어가 있을 거야. 어쩌면 안드리아가 있는 보스룸까지도…… 위태위태할지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던전의 입구만 보더라도 결말이 보였으니까.
함정들 또한 여기저기 반파되어 스파크만 튀어오르고 있었다.
탓!
……툭!
순식간에 네 명의 그림자가 앞으로 내달렸다.
정신병동 안으로 들어오자 피비린내가 더욱 짙어졌다.
이제는 광신도들뿐만 아니라, 머리에 삼각형 철제 투구를 쓴 심판자와 거대한 덩치를 가진 몬스터들의 시체도 보였다.
……서둘러야 한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 전에 더욱더.
“먼저 갈게.”
“뭐?”
‘천천히 뒤따라와.”
콰앙!
진혁이 일보에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사라졌다.
‘검마천령보’가 극성에 접어들었기에, 속도는 바람보다 빨랐다.
그런데 바로 그때.
쏴아아아…….
기묘한 한기가 등골을 따라 스쳐 지나갔다.
“……!?”
위험하다. 진혁이 단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허공에 붉고 푸른 선이 교차했다.
그러나 충격을 전부 다 상쇄시키진 못했는지, 몸이 반대편 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이야, 팔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생각으로 친 건데, 역시 대단하긴 대단하네. 듣던 것보다 몇 단계는 더 강해.”
백발의 남자가 키득댔다.
가녀린 체구와 장난기 가득한 얼굴.
눈동자에 새겨진 오망성은 ‘탐식의 눈’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이런 힘을 보유한 게 일개 플레이어일 리 없다.
거주자…… 그것도 신격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존재다.
[‘탐식의 눈’이 대상을 꿰뚫어봅니다!]그런데.
욱씬!
“……큭!?”
[대상의 ?재가 ???이기 때문에 ?? ? ??니다.]작은 면도칼이 시신경을 모조리 헤집은 느낌이다.
시큰한 감촉이 머릿속까지 울려 퍼졌다.
여태껏 레벨의 격차나 다른 이유로 상대의 상태창을 간파하지 못한 적은 있었어도.
상태 알림 메시지 자체를 왜곡시킨 경우는 없었는데.
“누구냐, 너…….”
“네가 기존에 알고 있던 인물 중에는 없으니까. 괜히 정보를 캐려고 하진 마. 헛수고야 헛수고.”
백발의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말하는 것과 달리 특유의 장난기 가득 넘치는 말투와 표정은 여러 의미에서 틈이 많아 보였다.
분명 저런 성격이라면…….
“니알라토텝이 보낸 거면 올드 가드 중 하나일 텐데, 이상하네. 고만고만한 놈들은 전부 다 알고 있지만, 너 같은 얼굴은 처음인데?”
“올드…… 가드라고? 내가?”
“그래, 태고의 존재들이 아래에 있는 잡무를 처리하려고 뽑은 놈들. 너도 거기 속한 놈 아니었어?”
이번엔 진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순간.
오싹!
내쉬는 숨이 얼어붙을 듯한 냉기가 뿜어졌다.
[???가 Lv??? ‘빙하천결’을 발동합니다!]“하하, 어이가 없네. 탑의 제약에 묶인 필멸자들 따위랑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다니. 그 녀석 부탁이고 뭐고 다 엎어버려야 하나?”
역시나.
약간의 도발로도 발끈한다.
빙하천결이라면 탑에 존재하는 빙계 마법 중 최상위 능력.
‘빙하조형의 상위 버전을 익힌 놈이라…….’
정확한 정체까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 높은 몇몇 후보군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잃은 건 방금 전 냉기를 보호하느라 쓴 대량의 마력 정도.
썩 나쁘지 않은 교환이다.
“웃어?”
백발의 남자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아니, 그냥…… 모처럼 새로운 자극거리가 나와서 흥미로웠거든.”
“그럼, 진짜로 흥미로운 게 뭔지 알려줄게. 마침, 내가 이곳에 혼자 온 게 아니거든. 지금부터는 아주 재밌어질 거야.”
* * *
같은 시각.
조금 뒤에서 진혁을 쫓던 엘리스가 눈앞에 다가오는 두 남녀를 바라보며 우뚝 멈췄다.
“네가 엘리스라는 꼬마 숙녀니?”
칠죄종 ‘질투’.
아름다운 흑발이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요염한 외형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른침이 넘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옆엔.
진혁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질투의 허리춤을 꼭 끌어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