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07)
507화. 질투의 원죄 & 최악의 상성 (2)
어느 쪽을 선택해도 지옥이 되는 상황.
진혁이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먼저 물을게.”
“뭐든지.”
“내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건가?
더 이상 멸망이라는 공포에 떨지 않은 채. 지금까지처럼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는 말이다.
“90일 안에 다음 층계를 공략한다면 계속해서 살 수 있겠지.”
결국, 탑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진혁 한 명뿐이라는 뜻.
나머지는 오히려 진혁이 사라진 세계에서 층계 공략을 이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마. 보통 길을 걸을 때 개미들이 얼마나 죽는지 신경 쓰는 놈이 얼마나 있겠어? 어차피 차원은 무한하니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 따위는 얼마든지 있는데?”
진혁이 관짝송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자, 이제 결정을 내릴 시간이야. 뭐,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장난기와 함께 섞여 있는 확신.
눈동자에 있는 오망성이 은은하게 빛났다.
“미안하지만, 그 넓은 방주에서 혼자 지낼 자신은 없어서 말이야. 외로운 고인물 놀이는 한 번이면 충분하거든.”
“그건…… 좀 실망인데.”
관짝송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거절은 곧 파멸.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인질을 모조리 죽여 버릴 생각이다.
[빙하천결…….]파츠츠!
얼음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안드리아를 가둔 얼음에 금이 쩍하고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찌질하게 협박이나 하지 말고. 의견이 서로 갈릴 땐. 우리가 원래 하던 방식대로 처리하자고.”
“우리 식대로라면…… 설마, 미션을 하자는 말이냐?”
미션.
시청자와 BJ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계약이다.
잔고가 두둑한 시청자는 BJ에게 짓궂거나 까다로운 미션을 걸고. 그 성패에 따라 후원을 하거나 벌칙을 수행하게 만드는 게 핵심.
BJ 중에서는 이 미션에 울고 웃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온갖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방송계의 정수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하하하, 진짜 재밌네. 지금 나랑 미션빵이라도 하자는 거였어?”
“옛날 생각도 나고 좋잖아? 게다가 이건 너한테 유리한 조건이야. 나에 대해서 24시간 내내 관찰하던 관음증 환자들이 너희였으니까.”
은유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그마치 720시간 동안 방송을 했던 적도 있다.
잠자는 것까지 캠코더 앞에서 하면 한 달 생활비를 지원해준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 변태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했던 게 다름 아닌 관짝송이었다.
“넌 정말 날 잘 알고 있다니까. 그래서. 내기 종목과 그 결과는 뭐로 할 셈이지?”
“뻔한 거 아니겠어? 내가 진다면 얌전히 너희 쪽으로 들어갈게. 반대로 내가 이기면 이번에는 얌전히 물러가.”
“흐음. 다른 건 필요 없이 순순히 사라져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잖아?”
“…….”
관짝송이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만약 저울에 올라간 기댓값이 엇비슷했으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흘려 넘겼겠지만.
옛 추억팔이가 섞인 적절한 미끼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이건 포기할 수 없겠지.
다른 놈은 몰라도 관짝송이 이런 도발을 넘길 리 없다.
게임 따위가 아닌.
현실에서 내기를 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하…… 우리 진혁이는 왜 이렇게 거절을 할 수가 없냐. 거절을.”
“받아들인다는 거냐?”
“대신 미션의 종류는 내가 정한다. 불만은 없겠지?”
“알겠어. 마음대로 해.”
진혁의 말에, 관짝송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미션 자체를 즐기면서도 지지 않을 만한 종류라면…….
역시나 답은 하나뿐이다.
“얼음 땡으로 하지.”
상대의 몸에 손을 직접 대어야 승리.
대신, 그 전에 능력을 사용해 몸을 얼려버리면 탈락되지 않는다.
빙하조형의 상위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관짝송으로선 이 미션에서는 압도적인 강점을 보유하고 있을 터.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9할 이상의 승률을 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좋아.”
진혁은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들어. 그 용기를 높이 사 선공 정도는 양보해 주지.”
관짝송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동시에.
콰앙!
진혁이 앞으로 내달렸다.
‘얼음 땡’의 핵심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속도.
특히, 예측하지 못 하는 타이밍을 노린다면 빙계 능력의 상하관계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변주에 변주를 줘야 해.’
필살을 노린다면 상대가 여유를 부리고 있는 처음이 가장 확률이 높으리라.
화르륵!
진혁의 손에 검붉은 마그마가 일어났다.
뒤를 잡고.그 다음엔 왼쪽을 잡는다.
3초도 안 되는 찰나에 페인트만 4번을 섞었다.
뭐가 진짜이고 뭐가 가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거의 4명으로 보이는 진혁이 동시에 화염 마법을 퍼부었다.
[고유 능력 ‘카스카 디아슬라브’가 발동됩니다!]“……!”
‘빙하천결’이 곧바로 발동되면서 엄청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화력도. 타이밍도 완벽하다.
뭐 하나 흠 잡을 게 없을 만큼.
콰콰콰콰콰!
검붉은 화염의 파도가 지면을 휩쓸었다.
그런데.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빙하천결로 만든 얼음방벽을 박살내진 못했다.
표면만 약간 녹았을 뿐.
얼음벽은 여전히 건재했다.
“휘유. 매콤해라. 이런 건 또 언제 익혔대?”
관짝송이 연기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이걸 반응할 줄이야.
과거 시청자들이 심상치 않다는 건 수리부엉이 때부터 느꼈지만, 이건 예상치를 아득히 상회했다.
완전히 괴물이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사용할 수 있다면 몰라도. 지금 수준에서는 일대일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엔 내 차롄가?”
관짝송이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빙하천결 ‘빙설목(氷雪木)’이 개화합니다!]얼음 가루들 사이서 자라난 백색의 나무.
[이동속도가 3%만큼 하락합니다!] [이동속도가 5%만큼 하락합니다!] [이동속도가…….]끝없이 올라가는 상태창.
눈서리가 들러붙을수록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러면 상대의 손을 피하는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디, 놀아보자고.”
관짝송의 몸이 눈보라 속으로 녹아들었다.
콰아앙!
진혁이 반사적으로 ‘빙하조형’을 사용해 몸을 얼렸다.
관짝송의 손가락이 얼음을 반쯤 파고들었다.
정말 아슬아슬했다.
몇 센티미터만 더 들어왔으면 그대로 게임이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공격이 이어졌다.
콰아앙!
진혁이 서 있던 곳이 그대로 폭발했다.
얼음 덩어리가 된 지면을 가까스로 벗어난 진혁이 허공 위로 높게 솟구쳤다.
근거리가 안 된다면 원거리에서 공략하면 될 터.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접근해 봐야겠네.’
진혁이 ‘데이라이트’와 ‘적색 마탄’을 동시에 발동했다.
⁕ ⁕ ⁕
“하아, 하아……. 하아.”
엘리스의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들썩였다.
흐트러진 마력과 흔들리는 눈동자.
손가락으로 톡 건들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다.
‘좋아, 여기는 이 정도 요리하면 될 것 같고…….’
베네티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처음 왔을 때부터 이곳 전체에 펼쳐둔 결계.
‘다중 최면’과 ‘환술’이야말로 질투의 장기였다.
우우우웅!
마력과 마력이 이어진다.
6개의 작은 육망성들이 연결되자, 6개의 원을 주축으로 한 대마법진이 완성되었다.
[10성급 결계 ‘몽환의 환상향’이 발동됩니다!]무려 10성급에 해당하는 환각 계열의 결계.
스산한 안개가 순식간에 주변을 감쌌다.
동시에. 뿌옇게 가려진 시야 속에서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뭐……지?”
천유성이 검을 든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감이 흐트러진 탓에 적아를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카카캉!
안개 속에서 날카로운 날붙이 소리와 함께 진혁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진혁과 월영이 미친 듯한 검격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부우웅…….
……카카카카캉!
검과 검이 부딪친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검무는 진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종류였다.
마치, 드디어 상대할 만한 적을 만났다는 것처럼.
진심을 다해 월영과 싸우고 있었다.
“네놈…….”
천유성의 입가가 비틀렸다.
진혁의 표정에 나타난 만족스럽다는 미소도.
볼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과 여기저기 그어진 검상들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짜라는 건 알고 있다.
이미 엘리스와 싸우는 걸 똑똑히 지켜봤으니까.
그런데 왜일까.
달콤한 향에 취해 있다 보니 가짜와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하게 덧씌워졌다.
‘나도 많이 갈고닦았다. 너와의 대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아니, 이제는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단 말이다!’
천유성이 반사적으로 류화에 손을 갖다 댔다.
우우웅!
요기가 당장이라도 뿜어지고 싶다는 듯 꿈틀댔다.
[질투의 감정이 급속도로 증폭됩니다.]‘저기엔 내가 있어야 한다.’
두 눈이 녹색으로 물들며.
‘월영이나 다른 누구가 아니라.’
콰앙!
천유성이 앞으로 질주했다.
⁕ ⁕ ⁕
같은 시각.
테레사 역시 베네티가 펼친 ‘몽환의 환상향’에 걸려들었다.
‘뭐지……?’
전신이 나른해지는 감각.
특히 후각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테레사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갈 거야?
타락을 했을 때에만 들리던 또 다른 인격의 목소리.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그 목소리의 깊이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만을 신경 썼다고?”
-그렇잖아? 너야 어떻게 되든 말든, 엘리스나 천유성 안드리아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이들의 행복만을 신경 썼지. 정작 네 자신은 뒷전으로 미뤘어. 네가 정말로 바라는 게 뭔지 알면서도 애써 억누른 채 말이야.
“아니야. 나……난…….”
테레사가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미 유형화된 검은 그림자가 테레사의 볼을 붙잡은 채 귓가에 속삭였다.
붉은 눈동자가 세로로 가늘어졌다.
-봐 봐. 저기. 너만 빼고 행복해 하잖아?
속삭이는 말에, 테레사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곳엔 진혁과.그 진혁의 손을 붙잡고 있는 엘리스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그걸 지켜만 보고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이.
-왜 너는 모든 걸 잃기만 해야지?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싶지 않다.
조연이 아닌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의 행복한 파트를 누리고 싶었다.
‘그래…….’
나라고 왜 그러면 안 돼?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순 없었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테레사의 눈동자가 그림자와 같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파츠츠!
그리고 몽환의 환상향이 무너지며.
[차원과 차원이 이어집니다.]환상으로 만들어진 진혁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진짜 진혁이 있는 곳이 나타났다.
“강진혁!”
“진혁 씨……!”
천유성과 테레사가 동시에 진혁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