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25)
525화. 사상 최악의 술래잡기 (1)
릭의 입가에 가득 드러난 미소.
보통 저 능구렁이가 저런 행동을 보일 때는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게 좋다.
무슨 짓을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으니까.
“크흠! 다른 게 아니라… 모처럼 이렇게 많은 전사들이 모였는데, 과연 누가 최강의 전사인지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강의 전사.
그 말에 고기를 우물거리던 전사들이 멈칫했다.
입가에 번들거리는 기름기를 닦으며 두 눈을 매섭게 빛냈다.
심장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었으니까.
“후후. 역시, 다들 관심이 있으신가보군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꽤나 재밌는 내기를 하나 생각해 뒀습니다.”
릭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허공을 따라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마스터 ‘강진혁’.]“내기는 간단합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는 플레이어 강진혁! 이분을 잡아내는 분이 내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릭의 선언에 진혁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빌어먹을.
역시나 이럴 줄 알았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을 때 그대로 내뺐어야 했는데….’
어쩐지 순순히 술과 먹을 것을 푸나 했더니. 이런 꿍꿍이속이 있었을 줄이야.
모르긴 몰라도 이런 어그로성 짙은 이벤트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속셈이 틀림없었다.
고디락마저 몰락한 지금. 가장 유력한 차기 상급 관리자는 릭이었으니까.
“아! 물론, 보상 역시 있어야겠죠.”
릭이 이번엔 아공간을 개방했다.
붉은 물결이 일어나며 그 안에서 한 쌍의 날개가 달린 황금 투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뜨거운 심장 – 특수 아이템.]입수 난이도: S
칭호: ‘가장 용맹하고 위대한 전사’를 획득할 수 있게 됩니다. 이 투구를 쓴 이는 모든 세력의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통솔력이 300%만큼 오를 수 있습니다.
릭이 자체 제작한 투구.
능력도 능력이지만, 착용 시 불꽃이 흩날리는 이펙트는 모든 전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오오오!”
“그거 재밌겠군!”
“가뜩이나 몸이 근질근질 거렸는데, 이런 내기라면 더할 나위 없지.”
“바라던 바다!”
모두가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유럽은 물론, 트롤 부족인 카라칼과 바바리안들이 관절을 우두둑 꺾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진정한 전사가 될 수 있는 일에 꽁무니를 뺄 생각은 없었다.
반면, 나머지 멤버들은 흥미롭다는 듯 먹을 것을 먹으며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굳이 이 전쟁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전원을 적으로 돌린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골치가 아프다는 상황은 변함없었다.
“잠깐만요! 이러면 제가 너무 불리하잖습니까! 뭣보다 당사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이런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거예요?”
진혁이 타당한 반론을 제기했다.
“그거야… 이런 내기가 있어야 축제가 더욱 흥이 돋는 법이니까요. 허허, 농담입니다. 농담. 검은 그대로 집어넣으세요. 검강까지 실으면 이 늙은이는 죽을지도 몰라요.”
“그럼 제대로 된 변명을 좀 늘어놓으시는 게 어떨까요?”
진혁이 ‘홍련’에 불어넣은 푸른 불꽃을 만지작거렸다.
무려 500이 넘는 마력으로 발현시킨 강기는 이제 길게 뻗다 못해 유형화된 불꽃의 형태로 부서지고 있었다.
“큼!큼! 당연히 강진혁 플레이어님께도 이기실 경우 그에 걸맞은 걸 보상하려고 했습니다.”
“듣고 있어요.”
“아까 얼핏 듣자하니 올림포스 측과 중재를 하시려나 보던데… 제가 대화를 조금 더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게끔 몇몇 아이템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건 살짝 흥미롭긴 하다.
릭이라면 제우스의 뒤통수를 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나쁘진 않은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하네요. 저도 제 나름대로 준비한 카드가 있거든요.”
진혁은 깔끔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흐음.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이건가요.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릭이 재빨리 품에서 녹색 인장이 찍힌 양피지를 꺼내들었다.
“……!?”
이번엔 진혁이 움찔할 차례였다.
‘락 브레이커 스크롤’.
12성급에 해당하는 주술이나 봉인 결계 등을 파훼하는 데 특화된 아이템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얻은 성유물 중 하나에 봉인이 걸려 있는데.
저 스크롤만 있다면 굳이 오룬이나 다른 경우의 수를 따지지 않아도 되리라.
무엇보다….
‘역시 내가 필요로 하는 걸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어.’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릭의 통찰력은 단순히 눈치가 좋다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관짝송’이 말했던 부분이 더욱 뇌리에 박히는 순간이다.
문제는….
‘저 릭이 그런 점을 모를 리 없다는 건데….’
이토록 대놓고 표시를 하는 게 어떤 꿍꿍이속인지. 그 속내에 무슨 의도가 숨어있는지. 그게 미치도록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릭의 술수에 걸린 척 해줄 수밖에 없다.
‘저 스크롤은 필요한 거기도 하고.’
진혁이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릭의 웃음이 한층 더 짙어졌다.
“당사자의 허락도 얻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게 만들어도 되겠군요. 보니까 몇몇 분들은 이번 이벤트를 관망하기만 하시려는 것 같은데… 이 릭 헤네시가 또 그런 모습은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죠.”
우우웅!
릭의 손짓에 새로운 규칙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자! 이렇게 한다면 다들 관심을 좀 가지실는지요?”
[중급 관리자의 특수 권한이 발동됩니다!] [제약이 가해집니다.] [플레이어 강진혁을 최초로 붙잡을 경우 ‘1일 노예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됩니다.]순간. 바로 옆에 있던 이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호오….”
“저건 좀… 탐나네요.”
“1일 노예권이라….”
결코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
모두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각자의 망상에 빠져들었다.
-그래, 엘리스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소중한 내 동반자야. 너무 사랑스러워서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다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 핏방울처럼 붉은 눈동자에 건배 할까?
진혁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흥분을 주체 못 한 엘리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24시간이면 정말로 많은 걸 할 수 있다.
정말로 많은 걸….
“후후후! 좋다! 짐도 참전하겠노라!”
카아앙!
카카카카캉!
정신없이 부딪치는 검.
매섭기 짝이 없는 검무는 보는 것만으로도 솜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쪽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났다.
결국 양 손에 단검을 든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자조 섞인 말투를 쏟아냈다.
-내가 졌다. 100번을 아니 1,000번을 덤벼도 절대 똑똑하고 카리스마 넘치고 위대한 네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아. 대체 어떻게 하면 너처럼 강해질 수 있는지… 하아. 안 되겠지. 난 영원히 안 될 거야.
진혁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친 듯이 행복했다.
24시간이 이토록 짧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니, 우승은 내가 갖겠다.”
천유성이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야욕을 뿜어냈다.
솔직히 말해 저 노예권을 얻기 위해서라면 다시 한 번 메이드복을 입으라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테레사 씨. 재미없게 기도나 하지 말고 오늘 하루는 저랑 함께 일탈을 해보는 게 어때요?
테레사의 머릿속엔 진혁과 탑 밖에서 이색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언제나 교리와 예법에 얽매여 있던 삶.
담장 너머 펼쳐진 달콤한 자유는 너무도 유혹적이었다.
“진혁 씨…랑 함께한다면 더 재밌을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의 내면에 깊이 감춰져 있는.진정한 ‘테레사’를 봤고 또 이해해준 사람이었으니까.
테레사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참전 의사를 내비쳤다.
“……나쁘지 않아 응. 승산은 22.35% 정도.”
프레이 역시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진혁 님을 노예로 부릴 수 있다니….”
“주인을 노예로라니. 이건 못 참지.”
“모기이이!”
“주군과의 주종관계가 하루 동안 역전된다는 뜻인가.”
“흐음. 본좌가 이기면 24시간 지옥의 마교수련관을 함께 가야겠군.”
그 외에도 다양한 멤버들이 노예권을 두고 군침을 흘렸다.
꿀꺽….
진혁의 목을 타고 마른 침이 넘어갔다.
이건 뭔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단순히 내기에서 지고 이기는 걸 떠나서….
노예권을 얻은 놈이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누가 당첨이 되든 24시간 동안 악몽이 시작될 거라는 게 불 보듯 뻔했다.
* * *
콰앙!
진혁이 자리를 박차고 뒤로 내달렸다.
빠르게 바뀌는 시야.
부유석과 부유석을 넘나들며 최대한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관건이다.
[남은 시간 0h : 29m : 42s]제한 시간은 30분.
그 안에만 잡히지 않으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희망일 뿐.
세상 일이라는 게 그리 녹록하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콰콰콰콰콰콰!
붉은 피로 만들어진 폭풍이 몰려왔다.
완전히 눈동자가 맛이 가버린 엘리스가 박쥐들을 대동한 채 날아오는 중이었다.
엘리스의 시선이 연신 부유석 사이를 오갔다.
“여기서 계약자의 냄새가 나.”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코를 킁킁거리는 것만으로도 위치를 찾아내는 게 말이 되나?
포위망이 빠르게 좁혀졌다.
부유석 가장자리에서 몸을 감추고 있던 진혁이 마침내 엘리스에게 발각되었다.
”찾았다!”
”젠장.”
진혁이 박쥐들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날렸다.
손에 닿을 듯, 말 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격전이 이어졌다.
“얌전히 짐한테 잡히거라. 도망치지 말고!”
엘리스가 연신 양 손을 파닥였다.
[엘리스가 Lv?? ‘흡혈의 축제’를 발동합니다!]순간, 흩어져 있던 박쥐들이 하나로 모여들었다.
수천 마리의 박쥐들이 한 방향으로 날더니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었다.
“죽일 셈이냐! 너!”
“그거야 계약자가 잘 안 잡히고 요리조리 도망만 치니까 그렇지! 어디 하나 날아가기 싫으면 얌전히 내 거가 되란 말이야!”
“미안하지만, 그런 취향은 없거든. 정중하게 사양할게.”
“그럼 어쩔 수 없지. 힘으로 빼앗는 수밖에.”
엘리스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눈처럼 하얀 은발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무시무시한 기운이 한 곳으로 응집됐다.
그런데 바로 그때,
파츠츠…!
측면에서 또다른 빛이 뿜어졌다.
예리하게 갈무리된 기운.
‘추혼검‘의 일검이 완전히 발현되었다.
서걱!
엘리스가 공격을 하기 바로 직전 검격이 허공을 갈랐다.
박쥐들로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바보… 검성! 왜 하필 이럴 때 방해하는 건데!”
방해를 받은 엘리스가 발끈했다.
“저 녀석은 내 먹잇감이다.”
천유성이 그런 엘리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양손으로 검을 붙잡았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그걸 깨달았는지 엘리스도 더 이상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남은 건 오롯이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뿐.
콰콰콰콰쾅! 카아아앙!
곧바로 검과 피보라가 충돌했다.
‘차라리 올림포스랑 다시 한 번 붙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처음에 제한 시간 30분쯤은 너끈하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꼴을 보아하니 10분도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최소한 뒤통수를 치지 않을 만한 아군을 만들어야지만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첫 번째 후보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