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26)
526화. 사상 최악의 술래잡기 (2)
스승님이야 아웃.절대 한 배를 타줄 위인이 아니다.
안드리아 역시 어느 시점부터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고구마나 운디네를 비롯한 소환수들과 정령수들이야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녀석들이 지금까지 잘해준 은혜도 모르고… 두 눈에 독기가 잔뜩 올라 있었다.
하여간 이래서 배부르게 하면 안 되는 건데….
다음부터는 마음 약해지지 말고 조금 더 악독하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최종 후보는….
스스슥!
“주군!”
음영극살을 통해 나타난 ‘월영’이었다.
아무리 눈앞에서 당근을 흔들어대도 꿋꿋하게 신념을 유지하는 동료.
월영이 진혁을 보호하듯 곁에 섰다.
“그동안 잘 지냈어?”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주군께선 언제나 수난이시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그보다 뒤를 좀 부탁해도 될까? 무리한 요구인 건 아는데 지금 당장은 믿을 게 너밖에 없거든.”
천유성에 엘리스에… 조만간 테레사나 나머지 멤버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광기어린 적들을 상대로 홀로 맞선다는 건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으리라.
그럼에도.
“후우. 제가 지켜야지 누가 주군을 지키겠습니까.”
월영은 사심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쌜쭉한 표정을 짓는 게 이 녀석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평이다.
‘나중에 좋은 신부감이라도 찾아줘야지.’
이렇게 순딩이어서 누가 훅하고 채갈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럼, 부탁할게.”
진혁이 월영에게 뒤를 맡긴 채 조용히 몸을 피했다.
다행히 엘리스와 천유성은 서로를 물어뜯느라 이쪽에 대한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았다.
* * *
유독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는 부유석 위.
저벅.
이벤트를 총괄하는 릭을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상급 관리자 중 하나이자 다크 엘프족을 대표하는 ‘벤디비아’였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상급 관리자 ‘바스카빌’도 보였다.
식물계 종족인 라이프 시드의 원로인 바스카빌은 걸을 때마다 그 자리에 각종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오! 오셨습니까?”
릭이 두 관리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릭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벤디비아와 바스카빌의 낯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니,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짙은 경계심마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흐음…. 아무래도 이벤트에 관한 수다나 떨러 오신 건 아닌가보군요. 새로운 상급 관리자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시려는 것도 아닌 듯하고요.”
“릭.”
벤디비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죠.”
“그대는… 대체 뭔가?”
“어떤 걸 물으시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만… 혹시.”
릭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척!
어느새 벤디비아의 손에 묵빛이 도는 단궁이 나타났다.
화살이 시위에 걸리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걸린 화살이 그보다 더 빠르게 사라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이 아닌, 차원과 차원을 건너 뛴 저격.
릭의 관자놀이 바로 옆에 검은색 화살이 나타났다.
설령 그 대상이 신격이라 할지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기습이다.
그런데.
콰아앙!
화살은 은으로 만든 지팡이에 막혀 튕겨나갔다.
“역시, 평범한 중급 관리자가 아니었구나.”
“다짜고짜 공격한 걸로도 모자라 억측까지 해대는 겁니까? 전 단지 살기 위해서 반격했을 뿐입니다.”
“닥쳐라! 네놈이 50층과 만났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더러운 뒷거래를 하는 건 하스팅뿐인 줄 알았는데… 설마 상급 관리자 뒤에 네놈이 있었을 줄이야.”
“그 이야기는 최근에야 절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뜻인데… 이상하군요. 하스팅은 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데 말이죠.”
릭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니알라토텝이 양쪽에서 장난질을 쳤을 리는 없을 테고, 역시 수리부엉이 쪽입니까? 허허. 그 자는 참… 여러 의미에서 골치가 아픈 존재로군요.”
“…….”
뜻밖의 이름이 나오자 벤비디아가 침묵했다.
릭은 그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제 쪽에서도 몇 가지 질문을 좀 해야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질문이라고? 감히 우리에게 말이냐!”
“됐네. 벤디비아. 일일이 반응해 줄 필요는 없어. 대화는 저 놈을 제압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바스카빌이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쿠쿠쿠쿠쿠!
부유석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굵직한 식물들의 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죽이려는 것보단 생포해서 심문을 하려는 의도에서다.
[바스카빌이 고유 능력 ‘엔드리스(Endless)’를 발동합니다!]생명이 태어나고 스러져가는 영겁의 과정.
개화한 식물들 사이에서 또 다른 식물들이 자라나며 온 천지가 녹음으로 변했다.
정신계인 ‘환각’과 ‘수면’과 ‘이완’ 효과를 동시에 지닌 식물들은 단순히 근처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버텨내기 어려웠다.
동시에 벤디비아 역시 활에 새로운 화살을 걸었다.
콰득!
단궁이 길어지며 장궁으로 변했고 5개의 화살에는 검은 흑염이 연신 피어올랐다.
“가겠습니다.”
“알겠네.”
벤디비아와 바스카빌이 한꺼번에 마력을 해방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어쩔 수 없나.”
릭이 중절모를 눌러썼다.
파츠츠…!
보랏빛 스파크가 피어오른 건 바로 그때였다.
형언할 수 없이 흉흉한 기운이 부유석 전체를 짓눌렀다.
쿠웅!
벤디비아와 바스카빌이 자신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터무니없는 압박감에 각자가 발현시켜둔 능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크흡….”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아니,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심지어는 숨을 편히 내쉬는 것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격차.
하스팅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라는 건 인지하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었건만….
‘그걸로도 부족했다는 말인가.’
상급 관리자 두 명이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제압당하는 건 예측 밖의 일이었다.
“조용히 흘러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아쉽게 됐어.”
릭의 목소리가 180도 달라졌다.
온화하고 부드러웠던 음색은 간데없고.
차갑고 잔인한 기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파츠츳!
또 다시 보라색 스파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끔찍한 격통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그런데.
우우웅!
[12성급 대결계 ‘한계 접속’이 발동됩니다!]벤디비아와 바스카빌 사이에 황금빛이 이어졌다.
오롯이 둘 이상의 상급 관리자가 있을 때에만 발휘할 수 있는 권능.
관리자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힘이 릭의 마력에 격렬히 저항했다.
“호오. 그래도 발악이라는 걸 하는군. 상급 관리자라는 타이틀을 거저 단 건 아닌 모양이야.”
릭이 순수하게 감탄사를 늘어놨다.
“네놈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한계 접속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를 상대하긴 쉽지 않을 거다. 바스카빌!”
“알겠네!”
두 상급관리자가 고유 성창을 발동시켰다.
[벤디비아가 고유 성창 ‘흑철의 역습’을 발동합니다!] [바스카빌이 고유 성창 ‘생명의 꽃’을 발동합니다!]거대한 식물과 그 위로 몰려드는 검은 화살의 파도.극한까지 끌어모은 마력의 폭풍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릭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지팡이를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탁…. 탁. 탁!
땅을 세 번 내려치는 것으로 대응은 충분하다.
[릭 헤네시가 개변능력 ‘태고의 촉수’를 발동합니다.]릭의 발밑을 따라 보라색 촉수들이 솟구쳤다.
“이벤트 주최자로서 그 끝은 지켜봐야 해서 말이지. 미안한 이야기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하겠어.”
콰콰콰콰콰콰!
부유석 속에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났다.
⁕ ⁕ ⁕
콰아아앙!
“껄껄껄! 이제 그만 포기하거라. 그래봐야 독 안에 든 쥐인 법이니까.”
“스승님! 제발 좀…!”
암황과 진혁이 바위를 앞에 두고 대치했다.
[제한시간 0h : 2m : 54s]이제 남은 시간은 3분.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운 데다 월영이 적절하게 시선을 잘 끌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거의 끝무렵이 다 되어서 커다란 복병을 만났다.
“그새 움직임이 더 좋아졌구나.”
앞에는 암황이.
“도망칠 수 있는 확률은 0.2% 미만이야. 응.”
왼쪽은 프레이가.
“저, 정령 특전대! 절대 주인을 놓치면 안 돼!”
“어차피 나중에 죽을 거 24시간이라도 행복을 누려야지.”
“맞아맞아. 그치 대장?”
“모기이이!”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오른쪽은 고구마를 비롯한 정령수들이 빈틈없는 포위망을 구축한 상태다.
그렇다고 뒤로 돌아서자니 그쪽에선 엘리스의 거대한 마력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진혁이 유일한 퇴로라 할 수 있는 절벽 쪽을 힐끗거렸다.
공중을 날 수 있는 건 소수다.
아무리 스승님이 근육덩어리라도 이 높이에서 뛰어내릴 생각은 하지 않겠지.
어림잡아도 몇 킬로미터는 가볍게 넘어 보였으니까.……
기회는 단 한 번.
최고의 도주기로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진혁이 한 호흡에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다.
두 발을 따라 새로 얻은 능력이 빛을 발했다.
[고유성창 ‘다운 폴’이 발동됩니다!]스스로가 거대한 유성이 되어 낙하하게 만드는 능력.
다운 폴의 힘이라면 단숨에 하늘 위까지 솟구친 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다.
물론, 저 빠꼼이들을 상대로 두 번 이상 사용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번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하고말고.
하지만 ‘다운 폴’이 완전히 발동되기 바로 직전.
[신격 ‘울부짖는 천둥’이 현현합니다!]하늘에서 푸른 낙뢰가 떨어졌다.
낙뢰가 정확히 진혁이 가려는 길을 가로막았다.
콰아아앙!
묠니르를 든 거대한 체구의 신격.
“주인공이 벌써 퇴장하면 쓰나?”
“암, 24시간 동안 우리랑 꼭 붙어 있어야 하거늘.”
“마지막에 반전을 노렸나본데, 아쉽게 됐어.”
그 옆에는 베리엘과 아누비스 역시 함께 있었다.
빌어먹을.
마지막까지도 쉽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아니, 그보다….
“우승자는 한 명뿐일 텐데, 어째서 세 명이 동맹을 맺은 겁니까?”
조각조각 나눠 가질 것도 아니고 동맹이라는 걸 왜 맺는 건지 모르겠다.
“그거야 걱정할 필요 없다. 우선 그대부터 확보한 뒤, 공평하게 시간을 나눠서 소유할 셈이니까.”
아….
그런 거라면 또 할 말이 없네.
욕심이 턱까지 차오른 양반들이 오순도순 잘 지낸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제 순순히 포기해라. 아무리 그대라도 이 많은 수를 상대로 1분이나 버틸 순 없어.”
1분은커녕 10초도 쉽지 않다.
그래.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아직 저에게도 비장의 수가 한 가지 남아있어서요.”
“호오. 비장의 수라고?”
토르의 입가가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허세인지 아니면 정말로 뭔가 있는지 기대가 된다는 표정이었다.
“자, 이제 그만 지켜보고 다들 저 좀 도와주시죠. 거창한 대가를 약속드릴 순 없지만, 이 일은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진혁이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크하하!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는 거냐? 다들 널 잡기 위해서 혈안이….”
토르의 웃음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중소 세력 ‘베드라미움’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중소 세력 ‘치우’가 당신의 요청에 응답합니다.] [중소 세력 ‘잉카의 저녁’이 망설임 없이 움직입니다.] [중소 세력 ‘흙인형의 원석’이….]무수히 응답하는 수많은 세력들.
이들에겐 거창한 조건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진혁의 환심을 사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조금 전 올림포스의 대학살을 막아준 것만으로도.
이 자리에 올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