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28)
528화. 33층, 마도공학의 도시 ‘리플로어’ (2)
자신의 체구보다 족히 2배는 더 커다란 보따리를 매고 끙끙대는 하플링.
“이… 이거 진짜 좋은 건데 한 번만 사주시면….”
나름대로 열심히 어필을 하긴 하는데, 누가 봐도 어설퍼 보인다.
근사한 진열장을 갖춘 상점들과 달리,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중구난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였고.
실제로 33층의 초입에 도착한 플레이어들 중 대부분은 하플링의 아이템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단 한 번뿐인 연계 퀘스트 기회를 굳이 덜떨어진 보따리상에게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유연화와 이태민 역시 나름대로 열심히 모은 정보들을 토대로 작전을 구상했다.
“형, 여기 보면 A구역의 공방 쪽에서 굵직한 퀘스트를 많이 준다고 해요.”
“연금학파가 있는 C구역도 나쁘지 않아. 통계상 A급 이상 퀘스트를 받은 플레이어 중 26%가 이쪽에서 했다고 했거든.”
유연화의 할아버지인 유천영을 통해 입수한 극비 정보.
이마저도 인맥과 막대한 돈을 투입하고서 얻은 것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애쓴 게 고맙긴 하다.
하지만 진혁은 싱긋 웃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어어…?”
“오빠?”
두 사람이 토끼 눈을 떴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을 짓는 건 덤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실제로 33층 입장 초반, 별빛 조각사나 그 외에 수많은 영화 소설 등에서 등장하는 클리셰 탓에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거주자에게 의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시라도 기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 법.
보따리상이나 길거리 가판대 등을 노리던 수십만이 넘는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쓰디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 이후로는 로또를 바라며 도전하는 인원의 수가 대폭 줄었고.
최근 들어서는 아예 가능성이 높은 곳 위주로만 사람들이 찾게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진혁이 하려는 짓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생각이 들 수밖에.
“거기 멋있게 생기신 분. 이거 한 개 사면 하나 더 주는 대폭 출혈 서비스… 아니, 하나만 사면 제가 앞으로 모든 구매품에 대해서도 절반 가격에….”
“응. 하나 살게.”
“하아. 역시 안 되는 거겠…네?”
진혁의 말에 하플링이 오히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로요?”
“공격이든 방어든 상관없지만, 화염 속성과 관련된 반지가 필요해. 순도는 최소 B급 이상이면 좋겠고.”
“물론 있죠! 당연히 있고 말고요!”
하플링이 허둥지둥 배낭을 내려놓고 안에 있는 것들을 꺼냈다.
각종 수정구와 독특한 형태의 각종 마도공학 아이템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량화에 아공간 효과까지 들어간 배낭이군.’
나오는 양을 보건대 겉보기와 달리 꽤나 공을 들인 배낭이 틀림없다.
섬세한 세공이 돋보이는 루비 반지 역시 마찬가지였고.
“어…떠세요? 가격은 20만 코인인데, 제가 최대한 빼드려서 15만까지는 어떻게 해드릴 수 있어요. 이거면 진짜 남는 것도 없어요. 헤헤.”
15만이면 원가 비슷하게 남는 건 맞다.
그러나 중요한 건 반지의 가격이 아니다.
코인을 지불하는 것과 동시에 발생되는 연계 퀘스트의 종류가 관건이지.
“형. 진짜 이게 맞아요?”
“오빠 다시 한 번만 생각해보자. 보니까 보따리상이 주는 화염속성 반지면 잘해봐야 파이어골렘이나 리자드 킹을 사냥하는 게 최선일걸?”
이태민과 유연화가 기를 쓰고 진혁을 말리려 했다.
이미 33층에 오기 전부터 파티플레이를 한 상태였기에, 파티장인 진혁이 수락한다면 나머지도 전부 같은 퀘스트를 받을 운명이었다.
“에헤이. 다들 언제부터 그리 재고 고민하고 그랬어? 예전에 했던 우리 방식 기억 안 나?”
미지의 층계나 퀘스트에 도전할 땐 언제나 즉흥적으로.
마음이 가는 걸 고르며 몸으로 부딪치는 게 일상이었다.
“알아요. 형 아는데….”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잖아.”
“현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어. 우리가 바뀐 건 아니니까.”
시간이 지났어도. 조건이 달라졌어도.
탑을 오르는 건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진혁은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두 사람의 말을 가볍게 받아 넘겼다.
“하아. 어쩔 수 없네요. 누나. 그만 포기해.”
“알고 있어. 진혁 오빠는 한 번 마음먹은 건 죽어도 안 바꾸니까. 대신, 나중에 그 찰거머리 검성이나 테레사 씨가 더 좋은 퀘스트를 진행한다고 삐지거나 그러지만 마.”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야 뭐가 됐든 상관없다. 어차피 계약자랑 함께한다면 그걸로 족하니까.”
엘리스까지 동의하자 그걸로 33층의 첫 단추가 될 연계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띠링!
[불의 길 – 연계 퀘스트 (1)]진행 난이도: F
내용: 마도공학을 이용해 반지를 강화시킨 다음 처음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파십시오.(파는 대상은 거주자여야하며, 협박이나 폭행 기만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표정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유연화와 이태민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얼굴이었고.
반면 진혁의 입 꼬리는 더더욱 높게 올라갔다.
……완벽하게 원하던 퀘스트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마워. 이걸로 진행할게.”
“저야말로 감사하죠. 헤헤. 아! 제 이름은 아이작이라고 해요. 하플링 종족이고 얼마 전에 성인식을 치러서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답니다.”
굳이 소개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하얀 수정 아이작.
탑이 나타난 후 7년이 지날 때쯤엔 상층부의 명망 있는 마도공학자가 되는 인재였으니까.
지금이야 빌빌대고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난다면 탑 내에서 알아주는 권위자 중 하나가 될 거라는 뜻이다.
그것도 ‘마도공학파’를 이끄는 수장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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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과 헤어진 진혁이 곧장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퀘스트를 하기에 앞서 몇 가지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웅성웅성.
가게 안은 꽤나 북적였다.
오롯이 33층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마도공학 안주들과 독특한 증류주들.
형형색색의 크리스털 잔에 담겨 나오는 먹거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자아냈다.
“계약자.”
엘리스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알고 있어.”
진혁이 힐끗 근처에 있는 테이블들을 훑었다.
조금 전부터 뒤를 밟기 시작한 플레이어들이 주위에 그득했다.
진혁이 오기 전까지 퀘스트를 받지 않은 채 지켜만 보던 이들이 진혁이 선택하는 것과 동시에 아이작에게 달려든 게 틀림없다.
똑같은 퀘스트를 받고 이쪽이 어떻게 움직일지 지켜보자는 계산에서다.
‘하여간 잔머리들은….’
진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시작은 똑같더라도 작은 변수 하나면 이후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텐데.
그것도 모르면서 무리수를 두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면 설마…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더욱 가관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이 몸을 등쳐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어떻게 할 셈이야?”
엘리스가 물었다.
귀찮은 날파리들이 달라붙는다면 아예 전부 다 날려버려주겠다는 으름장을 덧붙이며.
뒤늦게 방해꾼들의 존재를 깨달은 유연화와 이태민도 각각 능력을 발동시킬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아니야. 굳이 고생고생해서 찾아온 귀한 호구… 아니, 동료들을 내칠 수 있나?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주자고.”
진혁이 그 어느 때 보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말을 내뱉었다.
어깨 너머로 은은한 후광이 비췄다.
-오싹하네. 오빠가 저렇게 웃는 거 보니.
-누나. 차라리 저희가 지금 쫓아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과연, 뱀파이어보다 더 차가운 피를 가진 존재답구나. 짐은 아직도 멀었느니라.
그 모습에 괜히 더 불안불안해지는 세 명이었다.
덜컹.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움찔하고.
곁눈질을 하던 플레이어들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몰래 엿들으려고 하지 않으셔도. 다들 함께 탑을 오르는 입장인데… 제가 정보를 숨겨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
“그게 무슨….”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공유하겠다는 뜻입니다. 다 함께 잘 되기 위해서요.”
“설마….”
“오오오!”
“강진혁 플레이어님!”
“세상에나, 이런 대인배가 계시다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거대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몇몇은 터무니없는 기연에 서로 얼싸안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까지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곳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길드가 아닌 개인이거나 소수의 팀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다.
말이 좋아 용병이니 프리랜서지. 사실상 중, 대형급 길드에 들어가지 못 하는 2류 이하들의 모임이라는 소리.
그런 이들이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도박을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좋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F급 연계 퀘스트에도 저리 여유로운 걸 보면, 분명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는 방증이었으니 말이다.
“큼! 크흠. 제가 원래 좀 마음이 넓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죠.”
“저희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권위적이고 차가울 줄 알았는데… 이거 완전히 오해를 하고 있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뭐든지요?”
“네?”
“그러니까. 방금 본인 입으로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 그렇죠?”
호탕하게 웃던 중년의 남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자, 그럼 원활한 퀘스트 진행을 위해서 일단 다들 계약서 한 장씩만 좀 쓰고 할까요? 별거 아니니까요. 그리 자세히 읽어보지 않으셔도 돼요.”
진혁이 기다렸다는 듯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염혼의 낙인까진 아니다.
이건 나름 ‘인턴’이 될 자격이 있는 자들이나 받을 수 있는 것.
이건 그보다 아래의 비정규직.
그것도 며칠짜리 단기 계약직을 위한 계약서다.
1항부터 258항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온갖 불합리한 착취 조항만이 가득할 뿐이지.
“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가진 아이템은 모조리 귀속되며 하루 14시간씩 노동을 해야 한다뇨!”
“명예의 전당 및 모든 영상 업로드에 관한 저작권도….”
“심지어 식사도 한 끼에 100코인으로 제한되고 있어요.”
“화장실은 맘 편하게 가게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하루에 2번뿐이라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졌다.
“지금 다들 놀러왔어요?”
“아니, 놀러온 게 아니라….”
“우린 지금 33층을 공략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제 지휘만 잘 따라주신다면 여러분은 33층을 최초로 공략하는 원정대의 일원이 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깟 자잘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까? 조금씩 희생하고 양보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은 없냐고요.”
층계 최초 공략.
여기 중에 그 누가 그런 업적을 이룬 이가 있을까?
아니, 감히 그런 게 가능하리라고 상상한 이가 있을까?
다들 후발대로. 누군가 뚫어놓은 층계를 허겁지겁 뒤따라오기 바빴다.
자신의 분수보다 아득히 높은 곳이었기에, 최대한 안전하게 콩고물이나 주우면서 말이다.
……한때, 다른 이들보다 앞서 나가겠다고.
강해져서 당당하게 인류의 중심이 되겠다고 나섰던 자신은 더 이상 없다.
비겁하고 이해타산적인 자신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송두리째 바꿔주겠다고 하는 이가 나타났다.
충분한 경험과 능력이 있는 최강의 랭커가.
“절 믿고 함께 꿈을 이루시겠습니까? 아니면 그깟 몇 푼 안 되는 푼돈에 눈이 멀어 꿈을 잃어버리겠습니까?”
“함께….”
“함께 하겠습니다!”
“저도 다른 건 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곁에 두기만 해주십시오.”
플레이어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섰다.
어느새 얼굴에는 탑을 처음 만났을 때 간직했던 희망과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F급 퀘스트,… 강화해서 판매하기가 완료….] [E급 퀘스트, …불의 단서를 찾기가 완료….] [E+급 퀘스트, ‘화염 늑대의 이빨 500개 모으기가….]완벽한 공략루트와 풍부한 인적자원 그리고 착취를 넘어선 강제 노역까지.
삼박자가 갖춰지자 그 시너지는 3배가 아니라 10배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몇 주나 먼저 온 대형 길드들보다 훨씬 더 빠른 공략속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곳을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