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32)
532화. 몽상의 다리 (1)
붉은 상태창이 연이어 점멸했다.
안개가 완전히 걷히며 다리의 풍경이 들어왔다.
시야가 확보돼서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악의 함정이 발동됨에 따라 이 일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지.
“왜! 어째서! 안개를 걷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은 겁니까!?”
요한네스가 진혁을 향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 가지 규칙을 말해준 것도 아니고. 딱 하나. 단 하나만 조심하라고 경고했었으니까.
그런데 아메바도 아니고 그 빌어먹게도 쉬운 걸 몇 분도 안 돼서 까먹을 줄이야.
“그냥 보기에 좀 답답해서 걷어냈더니 이렇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진짜 반성하고 있는 중이에요. 자, 봐요. 손도 들고 있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지금 강진혁 플레이어님 때문에 다 망하게 된 건 안 보입니까? 그런데도 그딴 실없는 웃음이나 흘리고 있을 때냔 말입니다!”
“흐음. 그러니까.”
진혁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트롤 짓을 하는 것은 안 되는 거고…. 당신이 우리 전부를 상대로 뒤통수를 치는 것은 된다 뭐 이런 건가?”
“예?”
허를 찔린 듯, 요한네스가 헛바람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인….”
“몽상의 다리엔 오감을 교란시키는 효과 따윈 없어. 안개 역시 우리에게 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 가디언의 수면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
“딸꾹! 어…어…어떻게 그걸 다 알고 있는 거지? 이 다리는 처음이었을 텐데….”
“그거야 알 거 없고. 이제부터 발에 땀나게 뛰어다녀보자고. 위대한 현자 씨. 아주 공평하게 말이야.”
안전지대에서 킬킬대며 구경하는 시간은 끝났다.
지옥불을 지폈으면 불 지른 놈도 아궁이 속에 함께 들어와야 인지상정일 터.
죽든가. 아니면 살아서 다리를 통과하든가.
남은 건 둘 중 하나뿐이다.
바로 그때.
파츠츠…! 파츳!
이터널 골렘의 마도 양자포가 완전히 형태를 갖췄다.
조금 전까지의 범위가 다리 위였다면.
이제는 요한네스가 있는 곳 역시 마도 양자포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다.
“으아아악!”
요한네스가 비명을 지르며 뒤쪽으로 물러섰다.
“큭!”
“우선은 현자님을 지켜라!”
나머지 마도공학자들이 재빠르게 진형을 갖췄다.
동시에.
콰콰콰콰콰콰콰콰!
눈부신 빛이 유적 안을 휩쓸었다.
“모두 제 뒤쪽으로 오세요!”
선두에 선 이태민이 반투명한 방패를 꺼냈다.
[이태민이 기계군주 – ‘플라즈마 실드’를 사용합니다!]방패는 녹색 빛을 내며 순식간에 그 크기를 키웠다.
콰아아앙!
곧바로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다리 자체가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다.
하지만, 이태민은 꿋꿋이 그 모든 화력을 전신으로 받아냈다.
자신이 물러섰다간 그 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쿠쿠쿠쿠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몇 시간 같던 몇 초가 흘렀다.
마침내 마도 양자포의 빛줄기가 잦아들었다.
“혀, 혀…엉…!”
이태민이 힘겹게 가지고 있던 검을 던졌다.
마도공학을 통해 만들어낸 근접 무기, ‘스톰 세이버’다.
…지금이다.
쾅!
진혁이 단숨에 허공 위로 솟구쳤다.
스톰 세이버를 따라 무시무시한 검강이 뿜어졌다.
우우우웅!
서로 다른 두 개의 마력이 거칠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오…오?”
이터널 골렘이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보통 강한 공격 다음에는 반드시 그걸 메우기 위한 공백이 찾아오거든.”
수정구가 잔뜩 달려 있어 출력이 좋은 것도 공격할 때나 장점이지. 이렇게 무방비할 때는 약점만 잔뜩 노출시키는 꼴이다.
이터널 골렘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본체를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폭풍처럼 질주하는 진혁의 움직임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툭…툭! 탓!
손가락 사이로 날아든 진혁이 ‘검마천령보’를 이용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가속이 더해졌다.
이제는 가로 막는 것 따윈 없다.
얄팍한 실드가 펼쳐져 있긴 했으나….
그거야 검강 앞에선 있으나 마나 한 유리벽일 뿐.
콰득!
검이 목을 따라 횡으로 가로질렀다.
너무나 깔끔한 검격에 이터널 골렘의 머리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빙그르르 회전한 머리가 다리 아래로 사라졌다.
비틀하고.
거대한 몸체 역시 균형을 잃은 채 추락했다.
⁕
‘태민이 덕분에 쉽게 해결했네.’
유연화와 엘리스 역시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든든하게 제 역할을 다해주었다.
덕분에 이쪽의 피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반면.
“끄으으….”
“쿨럭! 컥! 커억!”
“힐링 포션을… 누구나 좋으니까. 좀 도와줘!”
요한네스가 있던 쪽은 처참했다.
요한네스를 포함해 이곳에 온 마도공학자는 열둘.
그중에서 절반이 방금 전 공격에 죽거나 크게 다친 것이다.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방심했던 것과 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특히 요한네스는 충격으로 인해 아직까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이었다.
“내가 워낙 착해서 말해주는 건데.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은 없을 거야. 아아. 화나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노려보진 말고. 복수도 좋지만, 그것도 목숨이 붙어 있을 때나 가능한 거 아니겠어?”
안개가 걷힌 이상 조만간 가디언이 완전히 깨어날 것이다.
이곳에 설치된 함정들 또한 모조리 발동될 터였고.
다시 말해.
지옥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소리다.
⁕ ⁕ ⁕
철컹! 철컥!
여기저기서 들리는 격철음.
입자포와 양자포가 사방에서 뿜어졌다.
콰콰콰콰쾅!
퍼어어엉!
실드를 끌어올리고 각자 가진 도주기로 최대한 공격을 피한다.
이미 몇 시간 동안 이어진 격전 속에서, 일행들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맡으며 패턴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당연히.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이어지는 함정들을 파훼하는 건 진혁이었다.
“거기서 왼쪽, 그래. 그리고 바로 다음에 가장 끝에 있는 포탑들을 노려줘.”
완벽한 지시로 언제나 반 박자 먼저 타이밍을 빼앗는다.
거의 예지에 가까운 예측에 지켜보던 이들은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대단해….’
‘역시, 이게 강진혁 플레이어님인가.’
‘영상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 직접 눈앞에서 보니… 완전히 괴물이잖아?’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우리랑은 아예 차원이 달라.’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이미 신격화된 상태.
진혁이 하는 말이라면 짚을 지고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끼기긱….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격철이 맞물리는 게 아닌, 격철 자체가 어긋나 비틀어지는 듯한 불협화음.
진혁의 손이 우뚝 멈췄다.
‘드디어 오는 건가.’
이 유적을 지키는 가디언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보스 몬스터보다도 더욱 위협적인 괴물이.
[몽상의 철신 ‘크리드’가 현현합니다!]저 앞에서 기묘하게 생긴 무언가가 다가왔다.
170cm 남짓한 신장.
성인 남성과 닮은 인간형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얼굴의 반쪽은 얇은 철로 되어 있었다.
피처럼 시뻘건 동공이 진혁에게 향했다.
“뭐야, 고작 몇십 명 가지고 여길 건너려고 했던 거였어?”
크리드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다 문득 시야에 요한네스가 잡혔다.
“아하, 저 영감탱이가 있었구나. 어? 근데, 이거 뭐야? 아하하하. 진짜야? 날 여기에 처박아둔 머저리가 감히 안전지대도 없이 이곳에 기어 들어왔다고?”
안개가 걷힌 걸 확인한 크리드가 미친 듯한 광소를 터뜨렸다.
다리 위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여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으으으….”
요한네스의 전신이 벌벌 떨렸다.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에선 오롯이 공포란 감정 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나머지 마도공학자들 역시 잔뜩 긴장한 채 도망갈 곳을 찾기 바빴다.
“흐음. 저 녀석이 그렇게나 강한 것이냐?”
엘리스가 물었다.
“꽤 성가시긴 해. 적어도 이 다리에서 만큼은 대영웅급과 신격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면 될 거야.”
최소로 잡아도 일전에 만났던 헥토르 이상.
다른 거주자들도 33층을 공략할 때 크리드와 마주치는 건 피했었다.
보유한 능력이 너무나 사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지금쯤이면 고유 성창까지 완전히 개방했을 타이밍이려나?‘
‘탐식의 눈’이 대상을 스캔했다.
[크리드 아크스트라오]레벨: ???
고유 성창: 철련화(鐵䜌華)
고유 능력: 철의 제국
스킬: Lv37 ‘철의 육체’, Lv36 ‘철신’, Lv36 ‘마도창파’… 내용이 너무 많아 ‘접어두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복사 조건: 한때 33층을 이룩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크리드는 이후 현자들에 의해 배신당하고 유적에 갇혔습니다. 그런 크리드에게 있어 이 다리는 자신을 속박하는 감옥 그 자체일 터. 크리드의 복수를 하게 만들어주면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하게 되며, 만약 크리드를 도발해 쓰러뜨릴 경우 그가 가진 고유 성창과 고유 능력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고유 성창이야 필요 없다 치더라도 ‘철의 제국’은 ‘기계 군주’의 상위 버전으로 여러 의미에서 쓸모가 많다.
뭐, 복수를 이루게 해주는 거야 어려울 것도 없지.
그건 굳이 복사 조건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해줄 생각이다.
문제는….
저 골칫덩어리를 어떻게 도발한 다음 쓰러뜨리느냐는 건데.
진혁이 고민하는 사이 크리드가 움직였다.
“일단 거치적거리는 놈들부터 전부 치운 다음에 천천히 대화하자고. 영감. 아주 길고 즐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천천히 죽일 생각은 없는지 크리드가 키득거리며 손을 뻗었다.
끼기긱!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손바닥을 통해 나타난 건 백탁색의 꼬챙이.
화려한 장식 따윈 없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섬뜩할 정도의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디 보자… 먼저.”
파아앙!
꼬챙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도약했다.
“큭!”
이태민이 몸을 일으켰다.
빠르긴 하지만,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닐 터.
다시 한 번 실드를 가동해 막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콰드득!
“……어?”
갑주에 균열이 일어났다.
꼬챙이가 외갑을 박살내고 내부까지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꼬챙이는 단순히 관통력만 지닌 것이 아니라, 일단 파고든 지점으로부터 주변을 잠식하는 효과까지 지니고 있었다.
“헤에. 그래도 꽤 단단하네. 진즉에 갈기갈기 찢겨 죽었어야 했는데, 마도공학을 좀 알고 있는 놈이라서 그런가? 잘 버틴다 너?”
“이런 괴물 같은….”
이태민이 식은땀을 흘리며 사력을 다해 꼬챙이의 침투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시간을 조금 지체시키는 게 고작. 앞으로 몇 초만 있다면 콕피트까지 강철로 된 실핏줄들이 침투할 것이다.
바로 그때.
콰콰콰콰콰쾅!
붉은 선혈로 만든 꼬챙이들이 뿜어졌다.
크리드가 사용했던 꼬챙이들이 그대로 튕겨나가버렸다.
“하찮은 미물 따위가 감히 짐 앞에서 재롱잔치를 벌이는구나.”
엘리스가 하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넌….”
크리드가 처음으로 움찔했다.
조금 전까진 요한네스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취해 몰랐는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의 존재를 이제야 인지하게 되었다.
“흥. 짐을 알고 있나 보구나.”
“물론 알다마다. 예전에 가장 50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절대자 중 하나를 내가 모를 리 있겠어?”
크리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밖에서의 이야기. 적어도 이 다리 위에서는 네 잘난 능력도 소용없을 거야.”
“호오. 그것 참 재미없는 도발이로구나.”
등 뒤의 일그러진 공간에서 수많은 붉은 꼬챙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공간을 따라 뻗어나간 꼬챙이들의 수는 육안으로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짐의 능력이 통할지 통하지 않을지는… 이 손으로 직접 시험하도록 하겠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