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38)
538화. 블랙 드래곤 ‘팬드래건’ (1)
파츠츠!
창 밖 너머에서 전해지는 열기.
낮을 밝히는 흑염은 마치 일식을 보는 것만 같았다.
진혁이 반사적으로 마법을 영창했다.
[트리플 매직 – ‘아이스 실드’가 발동됩니다!] [빙하조형 – ‘절대 결빙’이 발동됩니다!]쩌저저적!
순식간에 창문 전체가 얼어붙었다.
동시에.
콰콰콰콰콰콰!
거대한 불길이 건물을 강타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
외벽에 붙어 있던 창문들이 모조리 박살났다.
깨진 유리 파편이 열기를 견디지 못해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으아아악!”
“저, 저기 하늘을 봐…!”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도망쳐!”
난데없는 공격에 공방에 있던 마도공학자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지역도 아니고. 리플로어의 중심부가 공격당했으니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특히 직격을 당한 3층은 진혁이 있는 곳을 제외한다면 아예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비명과 화염이 한데 어우러진 지옥이 펼쳐졌다.
허공에 떠 있던 팬드래건이 공방의 안쪽을 바라봤다.
“호오….”
입에서 흘러나온 건 짧은 감탄사.
모든 게 폐허로 변했지만, 얼음으로 만들어진 벽은 건재했다.
그 짧은 찰나에 이 정도 수준의 빙계 마법을 사용한 것만 봐도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네놈이 요즘 탑을 떠들썩하게 만든다는 그 장본인인가 보구나.”
“이야. 내가 요즘에 좀 유명해지긴 했지? 별로 실감은 안 났는데, 난데없이 도마뱀 한 마리가 아는 척할 정도면 말이야.”
“도마뱀…이라. 하하하. 이 몸에게 그 따위 말을 지껄이는 놈을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더라. 너무 까마득해서 기억도 나질 않는구나.”
팬드래건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야말로 억겁의 세월.
언제나 종의 정점으로 군림하며 자신 외의 모든 생명들은 벌레와 마찬가지로 여겼다.
그런데 그런 벌레가 감히 자신에게 저딴 말을 지껄이다니.
[팬드래건이 Lv??? ‘흑염구’를 발동합니다!]“목적은 네놈이 가지고 있는 고대룡이지만…. 대화를 하기 전에 먼저 교육이 좀 필요할 것 같아.”
손끝에 맺힌 검은 불덩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크기를 더해갔다.
멀리 있어도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느껴진다.
화르륵!
불덩이가 진혁의 정면을 노렸다.
같은 불길로 싸워서는 안 된다.
‘태초의 불꽃’이나 ‘카스카 디아슬라브’로도 흑염구를 뛰어넘을 순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빙하조형 ‘아이스 에이지’가 발동됩니다!]상극의 능력으로 최대한 상쇄시키는 것뿐.
겹겹이 펼쳐진 얼음 장벽이 다시 한 번 불덩이를 막아섰다.
콰아아앙!
……치이이익!
엄청난 수증기가 뿜어졌다.
하지만, 시야를 확인할 여유 따윈 없다.
퍼퍼퍼펑!
연이은 흑염구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으아아악! 가, 강진혁 플레이어님!”
아이작이 양손으로 머리를 싸맨 채 비명을 질렀다.
“허허허… 시부레. 그냥 내 공방에서 술이나 마시다 곱게 뒈질걸. 저 악마 놈한테서 살아보겠다고 괜히 이 먼 곳까지 왔다가 타죽게 생겼구먼.”
오룬은 모든 걸 체념한 듯 품에서 시가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걸 보며 삶을 깔끔하게 포기한 지 오래였다.
‘확실히 고대종은 고대종이라 이건가.’
조만간 한 번 만나게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미완성인 시점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와도 하루만 더 늦게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이제 와서 어긋난 타이밍을 탓해봤자 소용없다.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주자들과 도시가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이 도마뱀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뿐이다.
“영감님.”
진혁이 꼴꼴꼴 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 오룬을 불렀다.
“꿀꺽꿀꺽… 크으, 무슨 일인가?”
“제가 신호하면 최대한 빨리 뛰세요. 아이작. 너도.”
“뛰라고? 어느 쪽으로…?”
“드래곤이 상대라면 어디로 가도 소용없을 텐데요?”
오룬과 아이작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드래곤.
도망을 쳐봤자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는 것에 지나질 않는다.
그 말대로 리플로어의 어느 곳으로 가든, 팬드래건으로부터 안전한 장소 따윈 없었다.
딱 하나.
“유적 입구로 갈 거야.”
나노리프가 있는 유적을 제외한다면.
“설마… 호랑이를 피하자고 늑대굴로 들어가자는 말씀입니까?”
“이런 미친….”
“그게 가장 효율 좋은 방법이야.”
휴전 기간 동안 나노리프는 대대적으로 유적을 보강하고 있을 터.
모르긴 몰라도 크리드가 있을 때보다 몇 배는 강력한 함정과 카드들을 준비해 뒀을 것이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벌써부터 두 보스 몬스터들이 난감해하는 광경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 ⁕ ⁕
콰콰콰콰콰콰!
또다시 흑염이 쏟아지자 얼음벽이 완전히 녹아버렸다.
“알량한 장난질은 다 끝난 건가? 그래서… 이제 뭐 어쩔 셈이지?”
팬드래건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데이라이트’가 발동됩니다!]빛이 번쩍이며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반격을 하거나 또다른 방벽을 준비할 거라 생각했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튀어!”
고함소리와 함께 진혁이 도주를 택했다.
강한 빛에 눈살을 찌푸리던 팬드래건이 텅 빈 3층을 바라봤다.
이미 모두들 건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주자들보다도 강자라는 놈이 가장 재미없는 루트를 고르는군. 멍청하게 이 몸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이미 마력 탐지에 진혁과 나머지 떨거지들의 위치가 정확히 감지된 상태.
쫓아가서 죽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좌표고정’, ‘텔레포트’.
고서클의 마법이 발동되는 덴 1초가 걸리지 않았다.
시야가 바뀌며 공방이 아닌 새로운 장소가 나타났다.
“……뭐, 뭐냐 여긴?”
이번에는 제아무리 팬드래건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곳으로 도주할지 궁금하긴 했으나, 설마 그 장소가 33층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험난하다고 알려진 ‘유적’일 줄이야.
게다가 진혁이 서 있는 곳은 일전에 나노리프가 열어두었던 게이트의 입구 아닌가?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졸지에 유적의 보스 몬스터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셈이 된다.
“어서 와. 유적은 처음이지?”
진혁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환영인사를 대신했다.
“이 빌어먹을 쥐새끼 놈이… 저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따라가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이냐?”
“뭐, 그걸 예언하는 건 내 알바 아니고. 따라올지 안 올지는 잠시 뒤에 알 수 있겠지.”
그야말로 명백한 도발.
손가락을 까딱이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진혁의 모습에 팬드래건이 대노했다.
처음에는 귀찮은 적을 해치울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저 가증스러운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는 일념만이 가득했다.
콰앙!
팬드래건이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 ⁕ ⁕
탓!
유적 안에 들어온 진혁이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살기.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간 고대룡의 분노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래도 실컷 도발한 덕에 나만 쫓아오네.’
오룬과 아이작은 정반대로 보내뒀으니 당분간은 안전할 터.
이제는 1:1 술래잡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차례다.
바로 그때.
[나노리프가 이건 계약과는 다르지 않느냐며 따집니다!]붉은색 상태창이 점멸했다.
둘 사이의 약속은 3일.
한데, 진혁은 그보다 빠르게 유적으로 돌아왔다.
“나도 약속은 가능하면 지키자는 주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어. 저 뒤에 보이지?”
진혁이 검은 화염이 타오르는 뒤편을 가리켰다.
길길이 날뛰는 팬드래건의 존재감은 무시할래야 할 수 없었다.
[나노리프가 드래곤이 어째서 이곳에 왔느냐고 묻습니다.]간접 메시지가 재차 점멸했다.
상태창이 아까보다 훨씬 더 붉은 빛으로 물든 걸로 보아, 팬드래건의 현현에 엄청난 경계심을 느끼는 게 틀림없었다.
‘하긴, 누가 보더라도 유적을 빼앗으려 하는 걸로 보일 테니까.’
이쪽으로서는 이 오해를 꽤나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진혁이 표정을 가다듬었다.
크흠! 큼!
“그게… 드래곤이 원채 욕심이 많아야지. 애초에 난 이곳에서 마도공학과 정령들의 비밀을 푸는 게 목적이었거든. 그래서 여기저기 정보를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그걸 들은 팬드래건이 이 유적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싶어했어. 불의 정령왕이 남긴 유산이 탐이 난다나 뭐라나? 하지만 난 차마 그런 횡포를 지켜볼 수 없어서 경고를 해주려고 이곳에 온 거야.”
입에 침 따윈 바를 필요 없다.
입만 열면 청산유수처럼 나오는 거짓말은 이미 경지에 이른 상태였으니까.
[……!]진혁의 말에 나노리프가 멈칫했다.
단순히 진혁을 적으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속이 깊고 진정으로 33층을 이해해주다니.
지금까지의 편견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심정을 증명하듯.
철컹! 쿠웅!
벽을 따라 빼곡히 배치되어 있던 함정들이 멈췄다.
붉은 빛이 녹색으로 바뀌며 진혁을 아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신, 포탑들이 일제히 팬드래건을 노렸다.
이어진 건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발이었다.
퍼어어엉!
콰아앙!
“큭!”
팬드래건의 주위로 실드가 펼쳐졌다.
용언(龍言)으로 인해 캐스팅 자체가 생각되었지만, 그럼에도 폭풍처럼 쏟아지는 폭격은 성가셨다.
무엇보다 대체 왜 나노리프가 자신만 공격하는지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설마, 저 인간이 말도 안 되는 이간질이라도 한 건가?’
능글맞게 웃고 있는 꼴을 보니 더더욱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나노리프! 속지 마라! 난 네가 아니라 저 인간이 목적이다!”
“어이구. 그런 분이 수정 탑의 현자들을 전부 몰살시켜버렸다고? 리플로어와 각 유적들은 서로 불가침조약을 맺었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나노리프가 새로운 정보에 당황합니다.] [나머지 두 현자 역시 죽은 거냐고 되묻습니다.]“그래, 바로 저 녀석이 범인이야. 33층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잇속만 챙기려고 하고 있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머지 현자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다만, 팬드래건의 성격이라면 계획이 어긋났을 때 그 둘을 제거했을 확률이 높았다.
[나노리프의 적개심이 최대치로 올라갑니다!]팬드래건의 머리 위로 붉은 느낌표가 떠올랐다.
이제는 완전히 적으로 인식했다는 뜻.
지면에 균열이 일어나며 거대한 수정구를 단 골렘들이 일어났다.
긴 창을 휘두르는 골렘들이 팬드래건의 주위를 완벽하게 포위했다.
그러나.
“날파리들이 귀찮게 하는구나.”
아무리 포위망을 구축하고 포탑들을 발동한들.
상대는 고대룡이다.
평범한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규격 외의 존재인데, 하물며 고대룡은 개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과 다름없었다.
가벼운 손짓.
중얼거리는 입술.
그것만으로 앞을 가로막던 골렘들이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역시나, 괴물은 괴물이다.
완전히 성체로 각성한 고대룡의 위용에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대한 빨리 나노리프와 합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하긴 하는데… 이대로라면 떨쳐내기가 쉽지 않겠는데?’
생각보다 함정이 무력화되는 게 빨랐다.
발목을 붙잡는 정도는 돼 줘야 하는데, 아예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니.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상대가 원하는 걸 미끼로 주어 시간을 끌어주는 수밖에.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활성화시켰다.
일렁이는 표면을 뚫고 나온 건 입가에 불길을 머금은 불의 정령 ‘살라맨더’였다.
“주인!”
살라맨더가 진혁을 보고 격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주인을 만났다는 게 무척이나 반갑다는 눈치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미안. 살라맨더야.”
“응?”
“잠깐만 가서 시간을 좀 벌어줘.”
진혁이 대뜸 살라맨더에게 까만 비늘 옷을 입힌 뒤, 노란색 서클렌즈를 끼웠다.
‘모오오기이이’라는 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붙여둔 건 덤이었다.
“주인, 이게 무슨….”
“안녕.”
살라맨더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혁이 살라맨더의 몸통을 잡고 대뜸 뒤쪽으로 던졌다.
정확히 팬드래건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