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39)
539화. 블랙 드래곤 ‘팬드래건’ (2)
“히이이이익!”
“모기이이이!”
생생한 비명소리와 녹음된 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
살라맨더가 격하게 전신을 파닥였지만, 가속도가 제대로 붙은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이건…!”
팬드래건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멈췄다.
눈앞을 향해 날아오는 건 너무도 익숙한 외형.
검은색 비늘과 샛노란 호박색 눈 그리고 특유의 울음소리까지.
계속해서 찾아 헤매던 고대룡이 틀림없었다.
골렘을 박살내는 것도 잠시 잊은 채, 팬드래건이 살라맨더를 덥썩 붙잡았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구나. 줄곧 찾았었다. 또 다른 동족… 응?”
그런데.
막상 품 안에 안은 걸 본 팬드래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손에 넣은 건 고대룡이 아닌 불의 정령.
그것도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포장해둔 가짜였다.
“모, 모기이이?”
살라맨더가 애처롭게 중얼거렸다.
최대한 동정심과 애틋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리고 그것이 살라맨더가 현계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이 빌어먹을 잡놈이 감히, 나를 기만해?”
화르르륵!
“끼에에엑!”
지옥불이 작렬하자 살라맨더가 정령계로 역소환 당해버렸다.
곧바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팬드래건이 추격의 고삐를 더욱 거세게 당겼다.
십여 초간 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콰콰콰콰콰콰!
지면의 돌들이 모조리 박살나며 가속도를 더했다.
[팬드래건이 ‘펜타클 메이커’를 발동합니다!]“비켜라!”
다중차원의 고유마법.
서로 다른 색의 화염이 뿜어졌다.
“그오오오!”
“오오오오!”
최상위 등급의 골렘들이 그 자리에서 증발해버렸다.
상급 마정석으로 구동되는 포탑들 역시 맥을 못 추긴 마찬가지였다.
유적의 지형 자체를 바꿔버릴 만큼 압도적인 위용.
심지어 이 모든 건 본체로 현현한 것이 아닌 인간 형태의 폴리모프 상태로 펼치는 중이었다.
“젠장, 뭐라도 좀 해 봐!”
진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유적의 보스고 나발이고 간에, 나노리프 입장에서도 팬드래건을 막지 못했다간 자기 안방이 쑥대밭으로 변하게 될 거다.
남의 집 불 구경 하듯 관망만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나노리프가 마도공학 ‘나노테크놀러지’를 발동시킵니다!]끼리릭…!
촤촤촤촤촤촤!
벽에서 아주 작은 수정들이 쏟아졌다.
마치, 메뚜기 떼처럼 수천 개의 수정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거친 소용돌이를 만들던 수정들이 곧 하나의 형태를 이뤘다.
“크오오오!”
머리가 일곱 개 달린 거대한 늑대의 형상.
한눈에 봐도 엄청나 보이는 체구다.
늑대의 입에서 각각 강력한 빛이 응집되었다.
7개의 빛줄기가 하나로 응축되며 직선의 형태로 뻗었다.
콰콰콰콰콰….
…투콰아앙!
“……흡!”
처음으로 팬드래건의 몸이 튕겨나갔다.
소형 브레스를 맞은 듯한 충격이 뼛속까지 전해졌다.
“쳇, 짜증나는 장난감을 만들어놨군.”
당연히 제대로 싸운다면 상대조차 되지 못할 테지만, 중요한 건 저 늑대를 쓰러뜨리는 데 또 다시 몇십 초라는 시간이 허비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진혁은 쾌재를 불렀다.
“잘한다. 잘해!”
보나마나 저게 나노리프가 3일이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틀림없었다.
원래라면 성가신 적일 테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한 아군이 된 셈이다.
⁕ ⁕ ⁕
같은 시각.
탑의 또다른 층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뿌드득!
“그놈이 숨을 쉬고 있는 1분 1초를 참을 수가 없구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제우스가 암브로시아가 담긴 그릇을 우그러뜨렸다.
“…….”
“…….”
으깨진 음식이 식탁을 더럽혔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 일에 토를 달지 못했다.
그 정도로 제우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우리 쪽도 피해가 너무 컸어. 칼리가 그 모양이 되어버렸으니까. 에덴 놈들은 상황이 불리해지자마자 꼬리를 내빼버렸고.”
“힘의 균형 자체가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저번 사건 이후 마계 역시 베리엘이 급속도로 영향력을 끌어올리고 있으니까요.”
천세의 신격인 ‘시바’와 코끼리의 형상을 한 ‘가네샤’도 한 마디씩 덧붙였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올림포스와 천세 두 세력은 저번의 대전쟁 이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반대로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함께 한 아스가르드와 이집트 그리고 마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언제 자신들의 영토를 잃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두 개의 왕관이 한 세력에 있는 것도 위협적이긴 마찬가지였다.
‘패도의 왕관’과 ‘순혈의 왕관’.
탑의 절대적인 힘을 상징하는 두 성유물 또한 반드시 회수해야만 한다.
“드래곤들은 어떻게 됐지? 아직 놈들은 가세하지 않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하데스가 물었다.
그러자 침묵을 지키던 헤르메스가 즉시 입을 열었다.
“새로운 로드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터라… 다른 일에 끼어들 여력이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갔을 때도 찬밥 취급만 하더군요.”
“망할 도마뱀 놈들은 왜 항상 되도 않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로드 자리를 투표로 정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쯧.”
지켜보던 아레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오롯이 힘이 전부인 전쟁의 신의 입장에선 드래곤들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령계나 제3 세력을 끌어들일 수는 없는 건가?”
중상층부에 위치한 세력들 중에서 몇몇은 제법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립적인 포지션에 있는 그들만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전력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다들 지금 현 사태를 관망하려는 쪽이어서….”
헤르메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길이 막혀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결국 이 모든 문제는 고인물 코퍼레이션… 아니, 강진혁이라는 놈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면, 다른 세력들을 신경 쓸 게 아니라 강진혁에게만 집중해야 합니다. 단단하게 대비가 되어 있는 곳이 아닌 예상치 못한 곳을 찌르는 방식을 사용해서요.”
전혀 다른 곳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냐?”
“어떻게 여길….”
신격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중 결계가 겹겹이 쳐진 ‘엘리시온’은 올림포스 내부에서도 가장 은밀한 장소 중 하나였을 터.
그런 엘리시온에 허락받지 않은 자가 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아.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여러분들 편이거든요.”
남자가 싱그러운 웃음을 지은 채 양손을 들었다.
재빨리 자기소개를 덧붙인 건 덤이었다.
“제 이름은 25년째 다이어트 중… 크흠. 내가 왜 하필 이름을 이런 걸로 지어선 쯧. 방금 건 잊어주시고 그냥 편하게 25년이라 불러 주시면 됩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하하,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법이죠.”
25년이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머지 신격들의 경계심이 더욱더 올라갔지만 제우스는 오히려 상대의 당돌한 모습을 높게 샀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이곳에 왔다는 것부터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차피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기도 했고.
“그래. 그 말대로 그대가 누구인지는 아무래도 좋아. 솔직히 말해 관심도 없지.”
“하하하. 역시 위대하신 그리스의 최고신답게 대화가 잘 통해서 좋네요.”
“서론은 됐고. 그래서 놈의 약점이라는 게 뭐지?”
제우스의 말에, 25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브라함의 반지.”
“반지…? 반지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생뚱맞게 반지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평범한 반지가 아닙니다. 진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를 구속시킨 매개체죠.”
“……!?”
“……그 진조를???”
그제서야 신격들의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25년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 엘리스는 강진혁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께서 그 계약에 개입할 수만 있다면 지금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킬 수 있게 되겠죠. 막말로 둘이 적대관계가 된다면 강진혁이 엘리스에게 손을 댈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놈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앗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맞습니다. 그러니 강진혁이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려야겠죠. 예를 들면… 녀석이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갔을 때라든가.”
탑 안에서야 항상 반지를 끼고 살지만, 유일하게 예외인 곳이 바로 탑의 밖에 나갔을 때다.
익숙한 세계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 시점이 공략 가능한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탑의 밖이라….”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누군진 몰라도 엄청난 정보를 가져다주었군.”
신격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이제껏 상층부의 거주자들은 탑 외의 일에는 관심을 두질 않았다.
시스템적인 제약이 걸려 있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 굳이 탑의 밖으로 나가야 할 메리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저 생태계 교란종인 진혁만 제거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감내할 수 있었으니까.
신격들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지금 저 제안을 가지고 온 이의 정체와 그 목적이 무엇이냐는 건데.
‘상관없지.’
‘누가 됐더라도 우리가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 놈은 없을 테니까.’
‘이용할 대로 실컷 이용해주마.’
‘그다음에 제거를 하든지 해버리면 돼.’
‘후후후. 신격들이 뭘 생각하는지 안 봐도 뻔히 보이네요.’
서로가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채.
“그럼, 함께하는 걸로 하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후.”
또다른 동맹이 결성되었다.
⁕ ⁕ ⁕
콰콰콰콰콰!
또다시 바로 옆으로 흑염구가 스쳐지나갔다.
치이익!
증발해버린 바위와 검게 타들어간 대리석에서 매캐한 연기가 솟구쳤다.
‘휘유. 아슬아슬했네.’
진혁이 마른침을 삼키며 힐끗 뒤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분노를 넘어 증오로 가득한 팬드래건이 보였다.
살라맨더를 이용해 사기를 친 게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나노리프가 있는 곳인데….’
보스 몬스터와 합류해 공동전선을 펼친다면. 그리고 유적의 최심부에 위치한 ‘그곳’에서 싸울 수 있다면 승률은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문제는.
“당장 거기 서라! 계속 도망만 친다면 산 채로 갈가리 찢어버리겠다!”
아무리 극한까지 보법을 펼치더라도 팬드래건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나노리프가 군데군데 공간왜곡 결계를 펼쳐뒀기에 망정이지.
텔레포트를 사용했다면 이미 술래잡기는 끝나버렸으리라.
진혁이 아공간으로 손을 뻗었다.
“히이익!”
살라맨더의 최후를 지켜봤던 정령수들이 안간힘을 쓰며 버티려 했다.
하지만 진혁의 억척스러운 손길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최후까지 항전하던 운디네가 딸려 나왔다.
“주인! 나… 나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 해변도 가보고 싶고 깨끗한 물에서 놀고도 싶고… 그 만년설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싶어.”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원래라면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은 들어주는 법이다.
다만, 지금은 긴급 상황이라 배려를 해줄 여유가 없다.
그래도….
……살라맨더 때처럼 막나갈 순 없겠지.
공포 정치에도 선이 있는 법이지. 너무 막무가내로 나가다간 항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걱정 마. 운디네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설마 너 혼자 달랑 보내겠어?”
“그, 그럼…?”
“든든한 지원군을 붙여줄 거야. 누가 뭐래도 넌 정령수들을 이끄는 리더잖아.”
“리, 리더… 내가…? 그래. 맞아. 내가 리더였지.”
운디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직책이 사람, 아니, 정령을 만든다고.
어느새 두 눈에선 의욕이 가득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쪽도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최고의 패를 선보일 차례다.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좌우로 길게 갈라진 아공간.
그곳에서 지금까지 뽑아두었던 최강의 소환수들이 모조리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