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40)
540화. 블랙 드래곤 ‘팬드래건’ (3)
“엣헴! 다들 이 몸의 명령을 따라라. 내가 주인이 인정한 대장이니까!”
운디네를 필두로 한 정령수들.
“미요오오!”
“흐음. 우릴 부른 걸 보니 또 다시 쉽지 않은 일이 일어난 모양이군.”
후라이드와 말랑흑두루미 역시 진혁의 부름에 응답했다.
“상대는 드래곤. 그것도 고대룡의 반열에 오른 성체야. 승산은 7.25% 정도 돼. 응.”
프레이가 무미건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눈에 봐도 든든해 보이는 면면들.
고구마를 내보낼 순 없었으니, 그 외엔 사실상 전력을 투입한 셈이다.
우뚝하고.
팬드래건의 움직임이 멈췄다.
조금 전까지가 정령을 미끼로 삼으며 장난질을 한 거였다면.
이제는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호오. 덜떨어진 놈치고는 꽤나 쓸만한 소환수들을 모았군. 주인 된 놈의 자질을 보고 모인 건 아닌 것 같고…. 뭔가 약점이라도 잡은 건가?”
“약점이라니. 거 말이 너무 심하네. 내가 워낙에 잘해주니까 다들 조건 없이 따르는 거지. 안 그래, 얘들아?”
진혁이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당연하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슬금슬금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하거나. 당장이라도 토를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들 같으니라고.
이래서 잘해줘봐야 다 소용없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저 검은 도마뱀을 막아야 하니. 화가 나도 참는 수밖에.
‘다들 나중에 보자.’
진혁이 애써 표정관리를 했다.
“그럼, 뒤를 잘 부탁해. 5분… 아니, 3분 정도만 끌어줘도 충분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돌렸다.
“누가 도망가도 좋다고 했지?”
물론, 그걸 가만히 지켜볼 팬드래건이 아니었다.
용언에 의해 순식간에 허공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8서클의 화염 마법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하나라도 적중했다간 뼈까지 녹아버릴 위력이다.
바로 그때.
콰아앙!
두 개의 단창을 교차한 프레이가 진혁과 화염구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단창에 가로막혀 사분의 일로 쪼개졌다.
“…….”
팬드래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용언은 동 서클이라 해도 훨씬 더 뛰어난 위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물며 지금 펼친 마법은 고대룡인 자신이 시전한 용언이 아닌가?
콰콰콰콰쾅!
뒤이어 날아간 화염구들 역시 잘게 쪼개져 흩어졌다.
피어오른 불꽃들이 허공을 따라 흐드러졌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평범한 인형 나부랭인 줄 알았더니. 호문쿨루스였던 건가. 완성이 되었다곤 들었지만, 두 눈으로 본 건 처음이군.”
“응. 나도 고대룡과 싸우긴 이번이 처음이야.”
“최강의 전투병기라고 한다지? 하지만, 주인을 잘못 선택했구나. 하필이면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는 무능하고 비겁한 놈을 따르다니.”
팬드래건이 프레이를 향해 손바닥을 폈다.
“어떠냐? 나와 함께한다면 버림패로 쓰는 게 아니라 실력에 걸맞은 대우를 보장하겠다. 원한다면 이 층계 전체를 주는 것도 고려해보지. 참고로 이건 너희 모두에게 해당하는 제안이다.”
아무리 욕심이 없는 이라도 층계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은 혹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부와 명예가 보장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제안을 하는 건 다름 아닌 고대룡.
허언이 아닌 충분히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과 능력이 있는 절대자였다.
“33층이라면…. 설마, 이 전체를 우리에게 준다고?”
“여기 진짜로 엄청나게 큰 곳인데.”
“와아. 죽은 살라맨더도 관짝에서 뛰쳐나오게 할 만큼 매력적이네.”
“이 정도면 이 자리에 없는 고구마 대장님도 동의할걸? 내가 대신 대답해줄까? 모기이이!라고.”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미, 미요오오!”
“흐음 이 몸에게 딱 어울리는 제안이긴 한데….”
모두의 눈에서 탐욕이 맺혔다.
진혁에게 충성하는 것과 한 층계를 지배하는 것.
두 개를 저울에 올린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굳이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내가 선택한 주인은 한 명뿐이야.”
프레이는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세상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배신할 마음은 없었다.
팬드래건이 아니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이를 만났으니까.
“그, 그래! 나도 사실 배신할 생각 없었어!”
“나도!”
“당연한 소릴!”
“미요미요!”
“크흠! 사신수는 명예와 긍지를 아는 존재이거늘. 같은 용족으로서 치욕스럽지도 않느냐!”
프레이가 선수를 친 이상 나머지가 뒤통수를 치긴 애매해져버렸다.
“48층의 그놈을 처리하려면 강력한 장기말들이 많이 필요해서 가능하면 살려두려 했건만…. 기어이 함께 죽겠다면야 어쩔 수 없지. 지금부터 너희들이 한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려주겠다.”
화르륵!
팬드래건의 양손을 따라 검은 불길이 솟구쳤다.
서클 따위로 분류할 수 없는 흉흉한 마력.
콰콰콰콰콰콰콰!
고대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끝이 없을 것만 같은 통로가 끝났다.
눈부신 빛이 퍼지며 거대한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적의 심층부에 도달했습니다.] [보스 몬스터 ‘나노리프’가 당신을 바라봅니다.]각종 룬어가 새겨진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절그럭거렸다.
그 한가운데엔 작은 소년의 모습을 한 나노리프가 구속되어 있었다.
잔뜩 심통이 난 얼굴에서 불만이 뚝뚝 묻어나왔다.
“하아…. 평화롭게 잘 살고 있었는데, 진짜 너 때문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네.”
“따분한 일상에 신선한 자극을 준 거라고 말해주면 안 될까? 내 덕분에 심장이 쫄깃쫄깃해졌잖아.”
“그걸 말이라고! 아니, 됐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 네 소환수들이 제법 강하긴 하지만, 저 괴물을 막아낼 수는 없어.”
“그거야 그렇겠지.”
동급인 후라이드는 아직 어리고 경험이 적다.
프레이 역시 고유 성창까지 개방할 수 있으나, 팬드래건을 이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런 좁은 통로에서는 특유의 기동력을 살리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스에게 마력을 몰빵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아타락시아의 진조는 고대룡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절대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엔 이 유적에서 원하는 걸 얻지 못한다.
‘엘리스에게 마력을 전부 쏟아부을 순 없어.’
불의 정령왕 이그니의 흔적.
그걸 찾기 위해선 몇 가지 특수한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거기에 엘리스의 혈계 마법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서는 슬슬 꺼내도 되겠지.’
진혁이 결심을 굳혔다.
우우우웅!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호박색 눈동자와 새카만 비늘.
“모기이이!”
특유의 울음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고구마가 진혁의 품에 쏙 들어와 안겼다.
“그래그래. 우리 구마. 잘 지냈어?”
“모기!”
고구마가 꼬리를 살랑였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의 귀여움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팬드래건이 그렇게 찾던 고대종이 저 녀석이군. 그걸 넘기고 목숨을 건지는 게 계획인 거… 아악!”
말을 하던 나노리프가 이내 비명을 질렀다.
고구마가 나노리프의 팔을 오물오물 깨물어버린 것이다.
“야! 이 녀석 치워줘. 당장… 아야야. 잘못했어. 내가 말실수한 거야!”
“모기이이!”
“괜히 우리 애 심기 건드리지 말고.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할 거니까 협조 부탁해. 알고 있지? 괜히 자존심이나 세우다간 다 같이 죽는다는 거.”
“그쯤이야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널 이곳까지 부른 거잖아. 그런데, 설마, 팬드래건을 쫓아낸 다음에 바로 날 칠 생각은 아닌 거겠지?”
나노리프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잔뜩 돋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도 서슴없이 버리는 냉정함.
오롯이 결과만을 추구하는 성격이라는 걸 직접 본 이상, 쉽사리 등을 맡길 수가 없었다.
막말로 지금 이 관계는 임시 동맹일 뿐. 언제라도 서로에게 칼을 찔러댈 수 있었으니까.
“크흠! 다들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 걱정은 마. 유적을 통과한 것으로 인정만 해준다면 이그니의 흔적을 찾고 바로 떠날 테니까.”
“그게 정말이야? 얌전히 떠난다고?”
“직접 봐서 알겠지만, 난 목적만 달성하면 되지 굳이 쓸데없는 데 힘을 쏟진 않아.”
“……그래. 그건 똑똑히 봐 와서 알고 있지.”
극한의 가성비와 효율을 추구하는 성격.
다른 것보다 지금 한 이 말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증거였다.
나노리프와 진혁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유적을 방어하기 위한 동맹이 결성되었다.
“그럼, 내가 뭘 해주면 돼? 이 방안에서야 통로에 있는 것보다 골렘이든 방어 포탑이든 훨씬 더 강력하고 다양한 걸 꺼낼 수 있긴 한데….”
“그것보다 그 사슬을 이용해 유적의 마력을 한 곳으로 모아줘. 불 속성으로만.”
“그건 좀 힘든 요구인데, 아무리 나라도 한 속성만 골라내는 건….”
“나노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마도의 핵을 개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일 텐데? 2번과 7번 심장을 메인으로 쓰고.”
“……!?”
나노리프가 헛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급속히 팽창하는 동공.
“너… 어떻게…. 내 능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 몇 번째 심장을 써야 한다는 건 나도 모르는 거였는데.”
“우연이야. 너라면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해서 찍어봤어.”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란 거야?”
“믿고 안 믿고는 자유지만 지금 그걸 따지는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어떻게, 내 말대로 마력을 모아줄 거야 말 거야?”
“하아, 알겠어. 대신 이 쇠사슬을 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나노리프가 자신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을 움직였다.
철그럭! 철컥!
쇠사슬은 나노리프에게 마력을 공급하는 원천인 동시에 스스로를 제약하는 구속구이기도 했다.
[‘나노 테크놀로지’ – 마도의 핵이 발동됩니다!]강한 제약을 할수록 강한 힘을 얻는 법.
나노리프가 쇠사슬을 따라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쇠사슬을 따라 붉은 룬어들이 일제히 빛을 뿜어냈다.
그 순간.
콰앙!
콰아앙!
팬드래건이 유적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겠지. 지긋지긋한 술래잡기도 이걸로 끝이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하지만, 이리저리 도망 다니면서 시간을 제법 벌었어.”
더 이상 도망갈 이유는 없다.
이제 원하는 조건들이 모두 갖춰졌으니까.
진혁이 두 개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동시에.
지금까지 아껴두었던 마력이 일제히 해방되었다.
[고유 성창 ‘백야(白夜)’가 발동됩니다!]쏴아아….
눈송이들이 흩날리며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지며 백광이 검신마저 지워나간다.
이것이 바로 천유성이 도달하고자 했던 검의 극의다.
팬드래건이 눈으로 덮인 심상 세계에서 조소를 내뱉었다.
“이딴 세계를 만든다 해서 그 검이 나에게 도달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분명, 드래곤을 사냥하는 데 있어 소드 마스터의 존재는 위협적이다.
오러 블레이드는 9서클의 실드는 물론 드래곤 스케일마저 가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든든한 마법사와 힐러들의 후방 지원이 있을 때의 이야기.
단신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더군다나 팬드래건은 완벽한 조합을 갖춘 공격대를 수십 차례나 박살내 본 경험까지 있었다.
진혁이 뭘 할지 정도는….
……눈을 감고도 예측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리다.
콰앙!
진혁이 앞으로 도약했다.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하얀 검강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런데.
우우우웅!
검이 팬드래건에 닿기 바로 직전, 팬드래건의 몸이 그대로 사라졌다.
“인간들이 흔히 드래곤이라고 해서 원거리 전에만 능하다는 착각을 하곤 하던데….”
블링크를 이용한 단거리 공간 전이.
이어진 건 공간 자체를 태워버리는 거대한 폭발이었다.
“난 오히려 근접전을 더 즐긴다.”
콰아아앙!
진혁이 서 있는 곳이 그대로 증발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