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42)
542화. 이름 없는 고대룡 (1)
“모기이이이!”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포효.
결계가 무너지며 모습을 드러낸 건 고구마였다.
이미 나노리프를 통해 막대한 양의 마력을 공급받은 터라, 배가 터질 듯이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상태였다.
파츠츠츠!
입에 머금고 있는 붉고 흰 화염이 매 초마다 크기를 더해나갔다.
“너는….”
팬드래건의 시선이 고구마에게 향했다.
이곳에 온 가장 큰 목적은 같은 고대룡의 존재를 확인하고 녀석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
인간 따위에게 종속된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찾아줄 수 있다면…!
그 의미를 깨닫게 해줄 수 있다면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다리거라! 우선 내 말을 먼저 듣고….”
팬드래건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모기이이이!”
고구마의 브레스는 그것보다 한 발 더 빨랐다.
한순간에 눈부신 빛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뒤이어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풍이 몰아쳤다.
콰콰콰콰콰콰!
“크아아악!”
용언으로 만든 실드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파괴력.
고대룡의 브레스가 팬드래건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 * *
치이익!
고열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짙은 수증기가 뿜어졌다.
고대룡의 브레스답게 마력의 잔류물 역시 일반적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크으으….”
팬드래건은 그 공격을 직격으로 맞고도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다.
온몸의 비늘이 그슬리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으나, 단지 그것뿐.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여전히 생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방금 전 공격으로 인해 화만 잔뜩 돋운 꼴이 되었다.
‘이걸로도 안 되나.’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헤츨링 버전으로는 아무리 나노리프의 마력을 주입받았다고 해도 부족한 모양이다.
“장난은… 여기까지 받아주겠다. 뭘 모르고 하는 건 실수니까 말이지.”
“모기?”
“보다시피 같은 고대룡이어도 격의 차이는 존재하는 법.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저 인간을 죽이고 나와 함께해라. 원한다면 이것도 아낌없이 주도록 하겠다. 너도 알고 있겠지? 마정석이야말로 최고의 영양식이라는 것쯤은?”
후두둑.
손에서 쏟아진 건 굵직한 마정석들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드워프들이 2차 가공을 한 예술품에 가까운 마정석들이었다.
“모기이….”
고구마가 두 눈을 반짝였다.
다른 건 몰라도 마정석만큼엔 진심인 성격이었기에, 입에선 반사적으로 굵은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마정석뿐 아니라 원하는 게 있다면 내가 최대한 맞춰주겠다. 이런 재화 따위야 나에게 있어선 아무것도 아니니.”
팬드래건이 고구마를 회유하기 위해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모든 게 데스티아를 상대하기 위한 빌드업이었으니까.
물론.
진혁의 입장에선 그렇게 갖은 애를 쓰고 있는 팬드래건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아주 한 대 때려 달라고 애원을 해대고 있구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이 뒤통수를 후려갈기기 최적의 타이밍이다.
진혁이 다시 한 번 발뭉을 움켜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다시 한 번 시간을 벌어야 한다.
‘천마신공’의 초식이 펼쳐지자 발뭉의 검신이 수십 개로 나뉘어졌다.
각각의 칼날에 실린 검은색 검강은 이미 몇 미터 이상 솟구쳐 있는 상태.
처억.
순간, ‘바람의 영역’과 ‘태초의 불꽃’이 시야를 가렸다.
연기 사이로 검격이 쏟아졌다.
“그래. 탐나지 않느냐? 이 마정석… 커억?”
고속검까지 발동되었기에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무수히 많은 타격을 적중시킬 수 있었다.
콰콰콰쾅!
퍼퍼퍽!
팬드래건의 몸에 깊은 상처가 죽죽 그어졌다.
핏물이 진득하게 배어나왔다.
그나마 실드를 펼쳐뒀기 때문에 이 정도의 피해로 끝난 거지. 아니었다면 칼날이 피부가 아닌 몸속까지 파고들었을 것이다.
“진짜 엄청 질기긴 하네. 드래곤 가죽.”
진혁이 혀를 찼다.
반면, 팬드래건은 고통과 분노로 얼룩진 표정을 자아냈다.
“이 빌어먹을 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지금 대화 중인 건 보이지도 않는 것이냐?”
하늘에서 내리는 검은 빗줄기.
파츠츠!
검은 낙뢰들이 사정없이 지면을 내리쳤다.
콰콰콰쾅!
메테오 스트라이크보다 위력은 약하지만, 공격 속도와 숫자가 압도적이다.
진혁이 ‘이형환위’와 ‘검마천령보’를 섞어 가며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도망을 치면서도 말로 도발하는 건 빼먹지 않았다.
“에헤이. 그러게. 왜 싸움 중에 한눈을 팔아? 나도 가만히 들어주고 싶었는데, 허점이 너무 보이니까 어쩔 수 없이 손이 움직인 거 아냐? 이건 100% 너 잘못이라고.”
“뚫린 입이라고 역겨운 궤변을 잘도 지껄이는구나.”
고구마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가해진 기습에 제법 큰 피해를 입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놈이야 지금껏 수없이 많이 상대해봤지만, 이 정도로 욕 나오게 틈을 노리는 놈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심지어 요리조리 도망치며 이죽여대는 걸 보자니 억장이 다 무너지는 기분이다.
죽든가 죽이든가.
둘 중에 하나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같은 하늘을 지고 살아갈 수가 없었다.
화르륵!
팬드래건의 입에 거대한 흑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직 드래곤에게만 허락된 최강의 성명절기.
‘브레스’다.
[고유 성창 ‘플레이그’가 발동됩니다!]기다란 채찍의 형상을 띤 브레스.
닿는 대상이 그 무엇이든 태워버리는 흑염이 동굴 전체를 가로질렀다.
치이익!
공기가 타들어가면서 검은 불꽃들이 점점 더 그 수를 불려나갔다.
순간, 진혁의 몸이 살짝 비틀거렸다.
산소가 사라짐에 따라 시야가 살짝 어지러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진혁의 감각에 무언가 감지되었다.
공기 중에 타오르던 흑염들이 또 다른 채찍이 되어 고구마를 낚아채려 하는 것을.
……지금이다!
콰앙!
진혁이 그 자리에서 도약했다.
정확히 고구마가 있는 곳을 향해서.
그리고 채찍이 고구마를 낚아채려 한 순간, 진혁이 그 사이를 끼어들었다.
“위험해! 구마야!”
“모기?”
푸욱!
낯설고도 이질적인 감각이 몸속을 파고들었다.
이미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뜨거운 불덩이가 살을 헤집는다는 게 유쾌할 리 없었다.
더욱이 그것이 고대룡의 브레스라면 더욱더.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긴 상처.
이건 한눈에 보더라도 치명상이다.
“잔인한… 녀석. 우리 구마를 죽이려고 이런 식의… 쿨럭! 기습을 할 줄은 몰랐네. 그래도… 다행이야. 네가 다치지 않아서.”
진혁이 고구마를 꼭 끌어안았다.
따뜻한 감촉이 비늘 너머 심장까지 전해졌다.
“아, 아니. 난 죽이려는 게 아니라… 납치를 하려던 거였는데. 거기에 괜히 네놈이 끼어든 거잖….”
“닥쳐! 아무튼 그렇다면 그런 거야. 커억. 쿨럭… 구마야. 난 이제 틀린 것 같아. 너라도 꼭 살아. 내 몫까지….”
진혁이 슬쩍 빙하조형을 녹여 만든 물방울을 눈에 갖다 댔다.
옥구슬 같은 물방울이 볼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모기이이이!”
고구마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공기가 급변했다.
나타난 것은 거대한 게이트.
그리고 일그러진 공간 너머….
[고대종 ‘???’가 현현합니다!]세상이 또 다시 개벽했다.
⁕ ⁕ ⁕
엄청난 크기의 몸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살기와 마력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 누가 이 모습을 보며 작디작은 드래곤을 떠올릴 수 있을까?
윤기가 흐르는 검은 비늘과 샛노란 눈동자만이 이 드래곤이 고구마의 본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진명은 아직도 개방이 안 되었네.’
유대관계를 쌓으며 여러 조건들을 클리어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진명을 알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고구마의 본신을 불러낸 것에 만족해야겠지.
‘1초 무적’을 이용해 채찍이 심장에 닿는 순간만큼은 방어한 게 컸다.
살을 내준 덕에 출혈량이 큰 것도 연출상으로는 꽤나 훌륭한 역할을 해줬다.
“크오오오!”
주인을 공격한 자에 대한 격노.
고구마의 포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저 인간 놈이…! 진정해라. 네 주인 놈은 멀쩡하단 말이다. 피만 거창하게 흘릴 뿐이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단 말이다!”
팬드래건이 상황을 파악하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설득해야 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고구마에게 그런 말들이 들릴 리 만무했다.
[고대종 ???가 고유 성창 ‘단죄의 검’을 소환합니다!]팬드래건의 플레이그에 맞서 고구마 역시 고유 성창을 꺼내들었다.
이제는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팬드래건 역시 운명을 직감한 듯, 모든 마력을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우웅!
파츠츠!
극한까지 모인 두 개의 고유 성창이 서로를 향해 뿜어졌다.
콰아아앙!
첫 번째 충돌로 인해 동굴의 기둥들이 수수깡처럼 박살났다.
“히이이익!”
나노리프가 얼마 안 남은 기둥을 붙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이미 구속을 하던 쇠사슬들은 모조리 박살난 지 오래.
가지고 있던 마력 역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구마에게 넘겨준 상태였다.
이제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이기길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다.
콰콰콰콰콰콰!
팽팽한 빛줄기들이 일진일퇴를 반복하며 교착을 이루었다.
“크아아아!”
“크오오오!”
두 마리의 고대룡이 전력을 쏟아붓는 광경은 다시 보지 못할 장관을 자아냈다.
동굴이 부서지고 파편들이 떨어진다.
폭주하는 마력들이 스파크가 되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팬드래건의 빛줄기가 조금씩 단죄의 검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본신의 마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팬드래건과 달리. 강제적으로 본신체를 끌어온 고구마에겐 한계점이 뚜렷했던 탓이다.
“역시, 기대 이상으로 강하구나. 제대로 된 싸움이 됐다면 내가 졌을지도 모르겠어.”
팬드래건이 완벽하게 상대를 찍어누르기 위해 여유분의 마력을 재분배했다.
이걸로 승부는 결정되었다.
……만약, 또 다른 누군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야, 마침 딱 좋게 한 방 먹일 수 있겠네.”
진혁이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이 명예도 모르는 간악한 놈! 이건 고대룡끼리의 신성한 결투다. 한데, 거기에 감히 끼어들겠다고 하는 것이냐!”
“내가 고대룡이냐?”
“뭐?”
“아니, 네 말대로 난 간악하고 명예도 모르는 잡배인데, 왜 고대룡이니 드래곤이니 하는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 건데?”
시련의 탑에 존재하는 유일한 진리는 약육강식.
강자만이 위로 올라가고 약자는 도태되고 매몰된다.
단지 그것뿐이다.
진혁이 고구마의 옆에 섰다.
우우웅!
따사롭게 퍼지는 기운.
마력과 마력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고유 능력 ‘만상공유’가 발동됩니다!] [고대종 ‘???’의 ‘단죄의 검’을 소환합니다!]이글거리는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고구마의 단죄의 검에.또 다른 브레스가 가세했다.
쿠쿠쿠쿠쿠쿠쿠!
두 줄기의 빛이 팬드래건의 심장부로 향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어떻게 인간 주제에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브레스를….”
팬드래건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비명을 질렀다.
모든 게 악몽같을 수밖에 없었다.
수만 년이 넘는 세월간 쌓아온 지식과 상식.
그 모든 게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