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44)
544화. 고대룡의 레어 (1)
“어서 가보자꾸나. 짐도 이 정도 상층부에 있는 레어는 처음이니라.”
엘리스가 신바람이 난 표정으로 진혁을 재촉했다.
1초라도 빨리 내부에 쌓인 온갖 진귀한 보물들을 보고 싶다는 게 말투에서 뚝뚝 묻어나왔다.
하긴, 어떤 심정인지 이해는 된다.
고대룡이 직접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 시점에서 46층을 올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되었을 테니까.
진혁 역시 소풍 온 기분으로 이 과정을 즐겼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쿠쿠쿠쿵!
갑자기 양 옆에 쌓여 있던 잿가루들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계약자?”
모습을 드러낸 건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기괴한 형태의 몬스터들이었다.
네 개의 팔다리에 각기 다른 무기를 쥔 몬스터들이 붉은 안광을 번뜩였다.
“끼기긱!”
“께에에!”
돌과 철이 맞부딪치면서 나는 비명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가디언인가….”
이 빌어먹을 도마뱀 놈이 최후의 최후까지 장난질을 친 게 틀림없다.
길고 긴 양피지 속에서 가디언에 대한 종속권은 빼놓은 모양이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충족시켜야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두었거나.
어느 쪽이든 즐거웠던 소풍이 꽤나 스펙터클하게 변하게 되었다.
콰앙!
쾅!
여섯 마리의 가디언들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침입자들을 발견한 이상 처리하는 게 기다언들의 본능.
불의 기운을 머금은 마력이 일제히 진혁과 엘리스에게 향했다.
물론.
“골치 아프네.”
“하등한 미물들이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구나.”
진혁과 엘리스 입장에선 이런 가디언 따위가 덤빈다는 게 기가 막힐 뿐이었다.
콰콰콰콰콰!
솟구친 얼음기둥이 정면에서 덤비던 가디언들을 송두리째 얼려버렸다.
옆을 노리던 놈들은 엘리스의 꼬챙이가 사정없이 꿰뚫어버렸다.
“켁!”
“케에….”
압도적인 격차.
호흡 한 번 하는 찰나에 고대룡의 가디언들이 전멸해버렸다.
⁕ ⁕ ⁕
팬드래건이 46층의 화산지대에 자리를 잡은 지는 1만 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가디언들과 관리자들이 이곳에서 생을 보내왔다는 소리다.
그리고 현재.
“뭐, 뭐야 저놈은?”
팬드래건의 레어를 총괄하는 가디언의 우두머리 ‘헬버그’는 난데없는 상황에 패닉에 빠졌다.
선대의 선대를 넘어 무려 7세대째 이어온 가디언의 임무.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꽤나 여러 차례의 침입자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쓸데없는 호승심이거나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그야말로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가디언들이 일격에 전멸하다니….”
입구에 배치해둔 건 전체 가디언들 중에서도 상위 종으로 구성된 문지기들.
그런 놈들을 저렇게 가볍게 제압했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헬버그가 이빨로 손톱을 연신 갉작였다.
‘젠장….’
하필이면 팬드래건이 자리를 비운 이 틈에 이런 대형 사건이 벌어질 줄이야.
바로 그때.
“흐음. 뭔가 일이 생겼나보군.”
옆에 앉아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멋들어진 중절모에 흰색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
상급 관리자 ‘릭 헤네시’였다.
“……예. 꽤나 성가신 침입자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허허. 침입자라니… 대체 누가 감히 흑염룡이 지배하는 곳에 함부로 발을 들이민단 말인가?”
릭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에 손을 갖다 댔다.
“상급 관리자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제 선에서 어떻게든 처리할 수… 으응?”
말을 하던 헬버그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가디언의 뒤로는 수백 마리가 넘는 마그마 리자드들이 대기하고 있을 터.
그런데.
콰콰콰콰콰콰!
“케에에에!”
“키에에에!”
화면 속에서 보이는 장면은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최강을 자랑하는 고대룡의 직속 군단이 갈가리 찢겨 나간다.
걸리는 족족 박살이 나는 병력들.
마치, 거대한 폭풍우가 몰려오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다.
“흐음. 역시, 그렇게 된 거군. 이러니 상대가 안 될 수밖에.”
“릭 님. 그렇게 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넨 이 레어 밖의 소식은 아예 모르는 건가?”
“저야… 이곳을 지키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니까요. 한데, 저자가 대체 누구길래 릭 님께서도 알고 계시는 겁니까?”
헬버그 역시 30층대부터 40층대에 이르는 신격과 거대 세력들에 대해선 어지간히 알고 있었다.
위협이 되든 혹은 손님의 자격으로든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연코.
그 중에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인간이 이 정도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물론, 알고 있네.”
릭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모를 리가 없지.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진심으로 충고하건대, 모든 가디언들을 물리고 최대한 예를 갖추는 게 좋을 걸세. 살고 싶다면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 설마, 저 인간이 릭 님께서도 부담스러워 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란 겁니까?”
“그걸 대답해주기 앞서… 어째서 이 레어의 주인이 자신의 안방이 쑥대밭으로 변하고 있는데 반응을 하지 않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군.”
“그거야 당연히 바쁜 일이 있으시니….”
말을 하던 헬버그가 급속도로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해도.
자존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본거지가 무너지는 것보다 급한 일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 * *
진혁이 상급 리치의 목을 붙잡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을….”
리치가 말을 더듬었다.
모든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믿기지 않았다.
우두둑!
가벼운 손짓과 함께 목이 꺾였다.
라이프 포스 베슬이 파괴당하지 않았으니 소멸되진 않을 테지만….
힘의 차이를 봤으니 다시 부활한다 해도 덤비진 못할 것이다.
“계약자. 이 레어는 그대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지.”
“근데 뭔 놈의 방해꾼들이 이리 많은 것이냐? 다들 눈만 마주쳐도 덤벼대니 모처럼 갖춰 입은 옷이 엉망이 되었다.”
엘리스가 짜증이 가득 담긴 말을 쏟아냈다.
잔뜩 해지고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린 드레스는 더 이상 드레스라 부를 수도 없다.
진귀한 보물들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잔뜩 즐기려 했건만.
현실은 치열하기 짝이 없었다.
진혁 역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감히, 새로운 주인을 몰라보고 이렇게 고생시키다니.
나중에 일렬종대로 모은 다음에 갖은 고문을 해줄 생각이었다.
저벅.
쿠웅! 쿵!
새로운 리치들과 대형 몬스터들이 또 다시 빼곡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된 놈들인지 그토록 찍어눌러도 겁을 먹질 않는다.
팬드래건이 얼마나 혹독하게 다뤄왔는지가 증명되는 순간이다.
“후후후…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보물이고 뭐고 간에 아주 다 쓸어버려주지. 레어 자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
“엘리스? 잠깐, 진정 좀….”
“비키거라! 짐은 지금 진심 100% 모드니라!”
[엘리스가 고유 능력 ‘블러드 로드’를 발동합니다!]핏방울들이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든 마력을 쏟아 부을 생각에서다.
그렇게 전투가 다시 시작되려던 그때.
우우웅!
모두의 앞에 게이트가 나타났다.
허둥지둥 튀어나온 건 가디언들의 총대장 ‘헬버그’였다.
“죄, 죄송합니다. 다들 공격을 멈춰라! 당장 멈추란 말이다!”
헬버그가 서둘러 가디언들을 말렸다.
동시에 진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머리를 조아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새로운 주인이시여.”
콰앙!
지면을 박은 머리에서 핏방울이 흘렀다.
이마가 찢어졌지만, 고통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계속해서 연락이 두절되었던 팬드래건.
그 이유가 설마 저 인간에 의해 죽은 것일 줄이야.
릭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온몸이 덜덜 떨려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당신이 여기 책임자입니까?”
“예… 예! 용암 종족의 헬버그라고 합니다! 이전까지 팬드래건 님… 아니, 팬드래건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었죠.”
“헬버그라… 용암 종족이면 지능도 높고 일 처리를 잘하기로 유명한 종족이네요? 레드 드래곤이나 블랙 드래곤들이 자주 가디언으로 임명한다고.”
“맞습니다!”
“배운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으시겠군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진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가디언의 장이라는 자가 주인을 공격한다는 건 어디서 배워처먹으신 건가요?”
“예?”
오싹하고.
분위기가 급변했다.
차가운 살기가 레어 전체를 짓눌렀다.
“새로운 가디언을 뽑고 레어 관리하고 하는 게 복잡하고 귀찮아서 그냥 이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건데… 밑에 있는 놈들이 반항적이면 그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할 것 같네요.”
-반항하면 죽인다.
-반항 안 해도 죽인다.
진혁과 엘리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팬드래건보다 훨씬 더 흉흉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충실한 부하가 되어 주인님과 안주인님을 만족시켜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지껄이든 짐은 네놈들을 모조리 죽여… 응? 안주인님? 나보고 안주인님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고귀하시고 아름다운 밤의 귀족이시여.”
“크흠. 큼! 계약자, 그만하거라. 이 녀석 많이 반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엘리스가 진혁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후우. 알겠습니다. 일단 부상당한 가디언들부터 치료하고 레어 복구를 진행해주세요. 지금부터 이곳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을 겁니다.”
기존의 거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점.
심지어 아직까지 상층부의 거대세력들은 이쪽이 팬드래건의 레어를 먹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우리엘이나… 올림포스 그리고 천세 쪽 놈들도 거점 공격을 하려면 기존의 걸 노리겠지.’
시간까지 덤으로 벌었으니 최상의 조건들을 모두 갖춘 셈이다.
좋아.
대충 집안 정리도 끝났으니 이제 고대룡의 보물창고란 곳이 얼마나 화려한지 볼 차례다.
진혁이 헬버그의 안내에 따라 레어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각종 리치들과 골렘 그리고 대형 몬스터들이 좌우로 도열한 채 자리를 지켰다.
도착한 곳은 육중한 문이었다.
두 마리의 용이 음각으로 새겨진 검은 문은 수십 개의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이미, 이곳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얻으셨으니 손만 갖다 대도 저절로 열릴 겁니다.”
“그건 좀 편리하네요. 이 안에는 나랑 엘리스만 들어갈 테니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해주세요.”
“분부하신 대로….”
헬버그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쿠쿠쿠쿵!
굉음과 함께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곧이어 입이 쩍 벌어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엄청난 양의 마정석과 각종 아티팩트들.
산처럼 쌓인 황금이야 굳이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특히, 한 켠에 늘어져 있는 유리관에는 최상급 성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최소한 S급 이상.
‘측정 불가’로 보이는 것들도 보인다.
“와아….”
엘리스의 동공에 금빛 물결이 스쳐지나갔다.
“기대 이상이긴 하네.”
진혁 역시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지간한 거대 세력들의 창고를 송두리째 털더라도, 이런 양질의 보물들을 찾아볼 순 없으리라.
꿈틀!
꿈틀!
아공간 인벤토리가 격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안에 있던 고구마가 달콤한 마정석의 향을 맡아버린 것이다.
“그래, 우리 구마도 고생 많이 했지.”
수명까지 반납하며 본신으로 현현했는데. 적절한 보상을 주어야 할 거다.
나머지 정령수들과 소환수들에게도 줄 만한 아이템들이 있었다.
“모기이이!”
밖으로 나온 고구마가 마정석 더미를 향해 폴짝 뛰었다.
와드득! 콰드득!
숨 한 번 쉬지 않고 단숨에 마정석을 먹어치우는 모습.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걸 보니 내 배가 다 부르는 것 같다.
“헤에에… 호오오. 이건 짐의 격과 맞는구나. 와아아! 이거, 이게 여기 있었어? 이거 진짜 찾았던 건데!”
엘리스도 화려한 보석과 장신구들을 고르는 데 푹 빠져 있었다.
확실히 엄청난 게 많긴 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격을 달리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진혁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하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실소.
설마, 여기서 이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