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45)
545화. 고대룡의 레어 (2)
겉보기에는 형편없는 외형.
그 누구라도 낡고 부서진 보석 상자가 대체 왜 이곳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팬드래건 역시 그런 이유 때문에 이걸 따로 진열장에 보관한 게 아닌 황금 더미 옆에 놔둔 거겠지.
그래도.
‘마력의 이질감을 느껴서 보물 창고 안에 넣어둔 걸 보니 어쨌든 감은 꽤나 좋네.’
텅 빈 보석 상자는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진혁의 입가가 격렬하게 씰룩였다.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네크로노미콘’에 관한 단서.
이 보석 상자는 그 중에 하나였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알 수 있는.
‘어디 보자….’
진혁이 조심스럽게 상자에 손을 갖다 댔다.
까끌까끌한 나무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상자’를 선택하셨습니다.]이 상자의 본 모습을 보려면 상당히 섬세한 과정이 필요하다.
마력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건 물론, 상자의 봉인을 푸는 데 있어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이 부분을 누르고… 여기를 돌린 다음에….’
철컥! 찰칵!
보석 상자의 격철이 계속해서 돌아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상자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상자’가 개방됩니다.] [‘태고의 숲’으로 가는 지도가 떠오릅니다.]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림.
상자의 표면을 따라 얽히고설킨 우로보로스의 미로가 떠올랐다.
‘이걸 여기서 얻을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되면 네크로노미콘을 확보하는 게 훨씬 더 편해지겠어.’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기연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머지 모든 이득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이제는 마음 편하게 아이템들을 고르면 된다.
진혁이 느긋하게 보물 창고 내부를 거닐며 추억이 가득 담긴 아이템들을 훑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길고 길었던 쇼핑이 끝났다.
‘고대룡의 피를 머금은 철가루’.
‘번개를 마시는 창’.
‘아크 리치의 마도서’.
‘아틀란티스의 마지막 물방울’.
고른 것은 총 넷.
앞으로 탑을 등반하고 신격들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아이템들 역시 따로 선별해 보관해두었다.
“나는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넌 다 골랐어?”
진혁이 옆에 있는 엘리스를 바라봤다.
“으으으음…으음.”
엘리스는 여전히 끙끙대며 보물들을 모으고 있었다.
하여간 욕심은 산더미 같아선.
어차피 다음에 또 와도 될 텐데, 한 번 왔을 때 모든 걸 다 가지고 가고 싶은 모양이다.
내버려뒀다간 쇼핑으로 삼일 밤낮을 보내게 될 테니 이쯤에서 선을 긋는 게 좋겠지.
아직 33층에서 ‘이그니의 흔적’을 찾는 연계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의 휴전을 중재하는 일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최대한 토르나 로키 등을 자제시켜두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스?”
“자, 잠깐 기다리거라. 1시간… 아니, 30분만 더.”
“안 돼.”
“그럼 10분만이라도!”
엘리스가 거의 울다시피 매달렸다.
“10분이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따라와.”
“응!”
환하게 웃는 엘리스를 뒤로한 채 진혁이 보물 창고에서 나왔다.
“이제 끝나신 겁니까?”
밖에서 기다리던 헬버그가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일이 있어서 오늘은 이쯤에서 끝낼게요.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이곳 관리를 잘 부탁드립니다. 조만간 제 원래 거점에 있는 친구들도 이곳으로 보낼 건데, 이 레어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도 찾아주시고요. 돈이야 창고에 있는 걸 얼마든지 꺼내 써도 됩니다.”
46층의 거점 강화.
이것 역시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도록 하죠.”
“그럼, 이만…. 아! 맞다.”
발걸음을 옮기기 전 진혁이 잠시 멈췄다.
워낙 일이 정신없이 흘러가서 깜빡했는데, 처음에 그토록 호전적이던 헬버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그걸 알아야만 했다.
‘내가 팬드래건을 죽였다는 걸 알았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랬으면 진즉에 항복부터 했겠지.’
과거에 상대해본 고대룡의 가디언들은 극도로 폐쇄적인 성격을 가졌고.
때문에 외부의 소식에 둔감했다.
그런데, 헬버그의 태도가 갑작스레 변화했다는 건 그 사이에 무언가 변수가 생겼다는 뜻.
“지금 이 레어에 다른 누군가 와 있는 건가요?”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하나뿐이다.
진혁의 질문에 헬버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
릭으로부터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하지만, 새로운 주인이 한 명령과 상급 관리자의 부탁.
두 개를 저울에 올려놓는다면 어느 걸 골라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제게 정보를 준 사람은 릭 헤네시. 탑의 상급 관리자입니다.”
“릭… 헤네시.”
진혁이 무겁게 그 이름을 곱씹었다.
하필이면 상급 관리자가 이 타이밍에 이곳에 왔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는 확률이다.
“릭이 뭐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하던가요?”
“주인님과 마찬가지로 레어에 있는 보물들을 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다면서 매입이나 교환을 제시하더군요. 뭐라고 했더라? 특별한 성유물이나 아티팩트가 아니라 별로 가치가 없는 물건이라 했는데….”
“……!”
이 레어에서 대상단의 주인인 릭이 관심 있을 만한 건 단 하나.
‘보석 상자’뿐이다.
그리고 이쪽과 같은 걸 노리고 있다는 건….
‘릭… 역시 태고의 존재들과 연관이 있던 거였나.’
진혁이 지금까지의 일들을 퍼즐처럼 맞춰나갔다.
* * *
33층 리플로어.
진혁과 엘리스를 포함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늦었다. 분명, 1시간 전에 만나기로 했으면서…!”
카페에서 기다리던 천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아이스 카페라떼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후식으로 시켜둔 수정 케이크까지 전부 먹었다.
“어머나. 진혁 씨! 엘리스 씨! 여기예요!”
반면, 테레사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미안, 얘가 장난감 본 어린애마냥 쇼핑에 푹 빠져있어서…. 억지로 끌고 오느라 늦었어.”
“지, 짐이 언제 어린애마냥 굴었다는 말이냐!”
엘리스가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그래도 창피한 걸 알긴 알아서 다행이다.
“그건 그렇고. 무슨 연계 퀘스트를 골랐던 거냐? 여유 있는 걸 보니 제법 쓸 만한 걸 진행 중인 것 같은데…. 그래봤자 내가 선택한 것보단 좋을 리 없겠지만.”
“뭐, 별건 아니고 홍염의 연계 퀘스트라고. 이그니의 흔적을 찾고 있어.”
“홍염의… 설마, 그 히든 퀘스트 말이냐?”
천유성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33층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최상위 히든 퀘스트.
그걸 누가 해금했나 했는데, 저 빌어먹을 고인물 놈이 찾아낸 거였다.
검의 경지를 초월한 자들만이 성공할 수 있는 특수 퀘스트.
마도공학과 검술의 조합을 통해 수정으로 감싸진 리플로어의 하늘을 베어내는 게 목표다.
히든 연계까진 아니어도 몇 번의 고난이도 퀘스트를 돌파한 끝에 간신히 퀘스트의 마지막에 도달했건만.
그 모든 게 부질없게 되었다.
일반적인 SS급 퀘스트는 아무리 해봤자 히든에 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뿌드득.
이번에도.
……이번에도 또 뒤처졌다.
어떤 식의 승부를 펼치더라도 매번 결과는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단 한 번의 승리를 따내는 게 불가능한 현실.
‘발악해봤자… 소용없다는 건가.’
그 절망감이 미치도록 견디기 힘들었다.
바로 그때.
진혁이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하… 근데 이게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서 이후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고. 불의 흐름을 제어해서 절벽에 남겨진 이그니의 흔적을 찾으라는 건데, 애초에 그게 말이 되는 건지. 절벽에 남겨진 건 검흔(劍痕) 같긴 한데 하아… 머리 아프네. 몇 번을 봐도 도무지 감이 안 잡히네.”
“네놈도 방법을 찾지 못 했다는 거냐?”
“응. 나로서는 역부족이야.”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반면, 천유성의 얼굴이 아까와는 180도 달라졌다.
불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도.
그걸 통해 새겨진 검흔을 파악하는 것도.
자신이라면 가능했다.
애초에 만능형인 진혁과 달리 검에 특화된 길을 걸어왔었으니까.
’이걸 밝혀내면 내가 저 놈보다 뛰어다나는 게 증명되는 거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하…! 고작 그것도 못 하면서 히든 퀘스트에 도전하다니. 그 검흔이 있다는 절벽으로 안내해봐라. 내가 직접 살펴보고 해결해주겠다.”
“그게, 진짜 난해한 데다 33층 중에서도 상당히 험지에 있는 거라서. 어지간해선 가는 것조차 쉽지 않거든.”
“네 눈엔 내가 어지간한 놈으로 보이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정말 괜찮겠어?”
“문제없다.”
천유성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좋아.
이걸로 든든한 노예1호를 얻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이렇게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바보가 또 있나 싶긴 하다.
자존심만 슬쩍 건드려주면 알아서 척척 움직여줬으니까.
“와아, 모처럼 다 같이 뭉쳐보겠네요.”
테레사도 합류할 의사를 표했다.
“너희 둘은 어때. 괜찮아?”
“저야, 유성이 형과 테레사 누나가 와준다면야 대환영이죠.”
“나도 찬성. 어차피 연계 퀘스트를 끝까지 해야한다면 지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태민과 유연화도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짐도 괜찮느니라.”
엘리스까지 동의하는 것으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연계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
33층의 외각에 위치한 절벽.
높이만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자연의 조각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사를 늘어놓게 만들었다.
특히, 윗부분에 은은하게 펼쳐진 안개와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새들은 신화 속에서나 볼 법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절벽을 따라 좌우로 죽죽 그어진 검흔.
그리고 그 주위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불꽃들이었다.
[히든 연계 퀘스트 ‘이그니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 흔적을 통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하십시오.] [정확한 단서를 얻게 된다면 과거의 기억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어지럽게 그어진 검흔과 불규칙한 불꽃은 도저히 그 행적을 짐작할 수 없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중간 중간에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치열한 전투가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어떻게, 좀 알겠어?”
“확실히 어렵긴 하군. 이 정도로 패도적인 초식은 처음 본다.”
“에이, 역시 너도 모르나 보네. 천하의 검성이라고 해도 딱 플레이어들 수준에서나 통하는 거였구나.”
진혁이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은 채 혀를 쯧쯧 찼다.
“빌어먹을. 여기서 얌전히 구경이나 하고 있어라. 내가 너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말테니까.”
천유성이 가장 앞에 섰다.
스릉!
검을 뽑고 천천히 절벽에 나 있는 궤적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유성이 고유 능력 ‘검의 노래’를 발동합니다!]불꽃이 칼날을 따라 모이고 또 흩어졌다.
……부드럽다.
분명, 천유성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광경일진데.
과거의 검격을 읽어내고 이그니의 전투를 재현해내는 능력은 마치 실제로 겪은 것만 같았다.
‘저 녀석도 진짜 천재라니까.’
시도 때도 없이 덤비려 하는 게 문제지. 그것만 아니라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동료일 거다.
바로 그때.
[전장에 대한 이해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조건을 일부 충족하였습니다.] [검의 궤적과 남겨진 불꽃이 과거를 회고합니다.] [신화 속 전쟁이 재현됩니다!]모두의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기존의 보이던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