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55)
555화. 아스가르드의 배신자 (3)
오싹…!흐르는 피가 차갑게 식는다.
진혁이 그 자리에서 두건을 벗어던졌다.
역한 기운이 턱밑까지 차오른 터라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큭!”
나머지 멤버들도 한 박자 늦게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
천유성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다.
칼날을 따라 녹색빛을 띤 강기가 솟구쳤다.
“이게 무슨…?”
“마, 마력 반응이 이상해요.”
테레사와 안드리아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우우웅!
태양의 반지로부터 뿜어져나오는 기괴한 마력과 올림포스 전체가 공명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진혁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탐식의 눈’을 통해 살펴봤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던 반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지 자체만으로는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으니까.
‘특정 지형에 도달해서 산에서 나오는 특유의 마력과 접촉해야… 발동되는 방식인가.’
이런 식으로 함정 속에 함정을 파다니.
완전히 허를 찔린 셈이 되었다.
진혁이 재빨리 마력을 갈무리했다.
핏줄이 산 채로 타들어가고 전신에선 식은 땀이 흘렀지만, 어쩔 수 없다.
무리를 해서라도 이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이미 손가락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반지로부터 무언가 꿀렁이며 몸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독…?
아니, 저주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별의 가호’와 ‘만다라’로도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브라함의 반지’에 강한 충격이 발생합니다.] [균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와의 계약에 이상이 생겼습니다.]급격히 떠오르는 상태 메시지들.
더 늦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우웅!
올림포스에 들어오기 전부터 겹겹이 펼쳐둔 다중결계들이 동시에 발동되었다.
지면을 따라 이어진 선들이 솟구쳐 올라 허공에 닿았다.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처녀자리’가 발동됩니다!]하늘이 검게 물들며 별들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처녀자리의 특성은 ‘상태 이상 해소’.
특히 ‘저주’를 비롯한 관념적인 개념에 근접하는 것들까지 아우르는 대결계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뒀던 게 빛을 발할 시간이었다.
별빛이 진혁의 몸을 따스하게 감쌌다.
그런데.
지끈! 지끈!
“……이럴 수가.”
반지는 여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통증 역시 그대로였고.
바비치가 한 짓이 아니다.
아무리 거신이라도 이런 일이 가능할 리 없었으니까.
바로 그때.
“그대가 결계에 엄청난 조예가 있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이번엔 제대로 준비 좀 해봤죠.”
거인들 사이에서 긴 흑발을 가진 여신이 나타났다.
전쟁의 여신이자 승리의 여신.
‘아테나’였다.
“네가 장난질을 친 거야? 날 엮으려고?”
“호랑이를 잡는데 준비가 소홀할 수가 있겠습니까? 동원할 수 있는 카드는 모조리 동원할 수밖에요.”
“이야, 위대하신 여신님께 호랑이라는 표현도 듣고. 영광이네. 과분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
“상대를 긁으면서 흔드는 것도 당신이 주로 쓰는 전략 중 하나죠. 하지만, 저에게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쿵!
아테나가 창을 아래로 내리쳤다.
은은한 파장이 넓게 퍼져나갔다.
동시에.
장막 사이로 가려져 있던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숲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광활한 초원으로 변신한 순간이다.
대기하고 있던 건 엄청난 수의 병력.
창과 방패로 무장한 근육질의 전사들이 으르렁댔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이 죄다 모였구나!”
“네놈들 때문에 북유럽 놈들에게 농락당한 걸 생각하면….”
“최대한 길게 가지고 놀다가 죽여주마!”
그저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던 먹잇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유럽은 결코 올림포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위그드라실을 유린하고. 패주병들을 농락하며.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을 짓밟은 게 바로 자신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개입으로 인해 모든 게 뒤바뀐 지금.
분노는 당연히 한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쿵!
전사들이 진형을 갖춘 채 완벽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크르르….”
“키에에에!”
사이클롭스와 세이렌 등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마수들 역시 전투에 가세했다.
“빌어먹을.”
천유성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 있는 아테나만으로도 만만치 않은데, 저 많은 수의 적들까지 상대하는 건 단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기습의 이점까지 사라진 시점에서 승산 역시 함께 사라진 상태였다.
테레사와 안드리아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병력의 배치를 살폈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방진에 빈틈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준비를 많이 하긴 했네. 하지만, 그거 알아?”
진혁이 흩어져가는 마력을 다시 한 번 갈무리했다.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처녀자리의 이슬비’가 발동됩니다!]별빛이 비가 되어 내렸다.
특이한 건 병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단 한 명만을 위한 이슬이라는 점이다.
“……이건?”
바비치가 촉촉하게 젖는 몸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자신의 목을 향해서.
목에 차고 있는 거대한 보석이 이슬비에 닿자 묘한 광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강력한 정화의 힘이 스며듭니다.]“내 황도십이궁은 저주 파기에 특화된 능력이거든. 당연히 타이탄들을 구속하는 제약에도 영향을 끼치지.”
아테나라면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타이탄이 봉인에서 풀려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걸 깨달은 타이탄들이 올림포스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다.
그러나.
진혁의 한 수에도 아테나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마치, 이 정도는 예상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과연, 허무하게 당하기만 하진 않는군요. 허나, 당신이야말로 착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저 역시 당신이 소수인원으로 이곳을 노린다면 비장의 수 하나 정도는 가지고 올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들을 가장 아프게 할 만한 비장의 수는 단 하나.
타이탄에게 모종의 수를 쓰는 것뿐.
그것만 대비하고 있다면 변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적절한 미끼만 던져둔 겁니다. 바비치라는 타이탄의 모습을 이용해서 말이죠. 안 그런가요?”
아테나가 던지듯 바비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거대했던 바비치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특수 스킬 ‘거짓된 현신’이 해제됩니다.]퍼어엉!
연기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타난 건 바비치가 아닌 훨씬 더 작은 체구를 지닌 이였다.
“하나같이 옳은 말씀입니다.”
태양을 그대로 머금은 듯한 금발.
북유럽의 주신 중 하나인 ‘발두르’였다.
여러 후보 중에서 누가 배신자였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된다.
내면 깊숙이 권력욕이 내재되어 있는 로키나 헬라가 아니고.
어째서 저 얌전하던 신이 배신을 한 걸까?
“이유가 뭡니까…?”
“이유라… 간단합니다.”
발두르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멸망할 게 뻔히 보이는 세력과 50층의 비호를 받고 있는 세력의 주신 자리라면 굳이 저울에 올릴 필요도 없겠죠. 때마침 당신 덕… 아니, 당신 때문에 올림포스 측에서 태양의 신의 자리가 공석이 되어버렸더군요. 그래서 그 자리 역시 덤으로 약속받았습니다.”
결국, 가능성 높은 곳에 배팅을 하겠다는 뜻.
특히 북유럽에서 토르와 로키에 밀리는 포지션상 불만이 계속해서 쌓여왔다.
왜 자신은 항상 2인자도 아닌 3인자나 그 이상의 병풍에 불과할까 하는.
“네놈이… 감히 오라버니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네까짓 게 말이냐!”
아르테미스의 두 눈이 맹수의 눈동자처럼 가늘게 찢어졌다.
어느새 손에는 팽팽하게 시위가 당겨진 활이 쥐어져 있었다.
화살이 사라졌다.
엄청나게 빠르고 강력한 바람 소리.
아무리 피폐해졌더라도 사냥의 여신이 가진 힘은 여전했다.
그것도 잔뜩 화가난 상태라면 더욱더.
하지만.
콰아앙!
화살은 발두르의 바로 앞에서 막혔다.
방패를 든 아테나가 아르테미스를 노려봤다.
“아테나! 비켜라! 그놈은 내 오라버니를 모욕했단 말이다!”
“올림포스를 배신한 주제에… 그대야말로 잘도 지껄여대는군요.”
“큭!”
두 여신 간에 기싸움이 이어졌다.
진혁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아테나는 상대하기 어렵다니까.’
올림포스의 주신 중에서 가장 마주치기 싫은 신을 꼽으라면 단연코 아테나가 일순위였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자랑하는 제우스보다 모든 상황을 철저하게 설계를 하는 쪽이 훨씬 더 까다로웠으니까.
그래.
이런 특성을 몰랐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마주하는 게 처음이었다면….
“병력들을 전부 이쪽에 집중해줘서 고마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가능한 한 많은 적이 모여 있는 게 좋았다.
이곳에 올림포스의 주력이 모여있다면, 반대로 다른 곳의 방비가 그만큼 헐겁다는 뜻이었으니.
“…그게 무슨 말이죠?”
무슨 말이긴.
“잊지 못할 한 방을 선물해주겠다는 말이야.”
우우웅!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독특하게 생긴 아이템을 꺼냈다.
아테나의 두 눈이 급속도로 커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얼굴을 한 채,
“그, 그건…?”
그래, 모를 리가 없겠지.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자신들을 지옥까지 몰고 갔던 최악의 성유물을.
[기간토마키아를 알리는 드럼을 발동합니다!] [타이탄들을 구속하는 봉인이 풀립니다.] [천재(天災)의 아포칼립스가 시작됩니다.]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 ⁕ ⁕
먼 옛날.
세상에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는 올림포스가 멸망할 뻔한 일이 있었다.
바로 거신족, ‘타이탄’들이 모조리 몰려와 올림포스를 쓸어버리려 한 것이다.
제우스를 비롯한 주신들이 힘을 합쳐 이에 대항했지만, 수많은 타이탄들을 몰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올림포스는 타이탄들의 손에 떨어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걸 구원한 이가 있었으니….
신화 속 최강의 영웅 중 하나인 반신 헤라클레스였다.
12개의 과업을 달성한 헤라클레스는 예언에 따라 타이탄들을 몰아내고 올림포스를 구원했다.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신화를 써내려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괴물이 없지.’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최전방.
위그드라실이 있는 북유럽의 심장부에선, 토르가 헤라클레스의 발을 묶어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타이탄들이 길길이 날뛰더라도 방해할 수 있는 놈은 없다는 뜻이다.
‘엘리스의 계약이 완전히 깨지기 전에 끝내야 해.’
정확히 어떤 장난질을 쳤는지까진 몰랐으나, 저주를 건 대상이 죽는다면 저주 역시 그 힘을 잃게 될 거다.
“마, 막아라! 당장 막아야…!”
아테나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콰콰콰쾅!
콰아앙!
올림포스의 여기저기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졌다.
보석으로 억눌렀던 타이탄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오오오!”
지금까지 억눌려왔던 걸 토해내듯. 타이탄들의 안광이 붉게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