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59)
559화. 천재(天災), 기간토마키아의 서막 (4)
아무리 강력한 무기라 하더라도 통제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스는 진혁을 옭아매기 위한 완벽한 족쇄였다.
언제나 함께하며 고난을 극복하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였으니까.
“그래서 계속해서 둘이 함께하도록 유도했다. 만에 하나 강진혁이란 플레이어를 제거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사용할 수 있게.”
그리고 운영자들과 적대관계가 된 지금이….
엘리스의 봉인을 깨뜨릴 적기다.
“적어도 놈들의 계획은 그랬다. 나도 이 사실을 최대한 빨리 알려주고 싶었지만, 이곳에 오는 일이 쉽지 않았어. 방해가 너무 극심했거든.”
수리부엉이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상처 입은 팔을 보여줬다.
심상치 않은 관통상에선 아직까지 검은 불꽃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늦은 건 아니야. 봉인이 완전히 풀리기 전에 도착했으니까.”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야?”
“그래. 한 가지 있다.”
수리부엉이의 말에 엘리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아직 진혁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이 소중한 행복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이었으니.
“뭐든지 할게. 말해줘.”
“탑 안에서는 저주가 계속해서 악화되게 되어 있다. 회랑에 있을 때부터 느꼈겠지만, 피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는 것도 탑의 마력과 공명하기 때문이거든. 하물며 발두르의 반지로 인해 물꼬가 터진 지금은 그 욕망이 몇 곱절은 강해졌을 거다. 이건 아무리 나라 해도 막을 방법이 없어.”
그렇다면….
무대를 탑의 밖으로 옮기면 된다.
진혁이 가장 안심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는 현대였으니까.
수리부엉이가 품 안에서 보라색 액체가 든 유리병을 꺼냈다.
검지 한 마디 정도 되는 유리병 안에서 액체가 찰랑였다.
“밖으로 가서 이걸 마셔라. 그럼 저주의 상당 부분을 중화시킬 수 있을 거다.”
“…알겠어.”
엘리스가 병을 꼭 손에 쥐었다.
여전히 호흡은 가빴지만, 정신은 이전보다 더 또렷해졌다.
새로운 방법이 생긴 이상 지체할 틈은 없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우우우웅!
수리부엉이가 밖으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개방했다.
게이트 너머 익숙한 고층 랜드마크가 보였다.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을게.”
“감사는 일이 다 잘 마무리된 다음에 해라.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니까.”
“응. 그래도… 감사 인사는 하고 싶었어.”
엘리스가 수리부엉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그렇게 엘리스가 사라진 순간.
파츠츠…!
공간에 균열이 생겼다.
수리부엉이 바로 옆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계속해서 차원 틈에 몸을 숨기고 있던 제3자였다.
“어때? 속은 것 같지?”
다이어트만 25년째였다.
“역시, 강진혁이란 이름을 꺼내니 바로 낚이는군. 어차피 녀석 입장에서 다른 대안도 없었을 테지만.”
수리부엉이의 모습 역시 어느새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관짝송.
과거, 진혁의 시청자인 동시에 지금은 완전히 다른 곳에 붙어버린 운영자였다.
오롯이 진실만을 말했거나 혹은 거짓말로 일관한다면 의심을 샀겠지만.
그 두 가지를 적절하게 섞은 탓에, 엘리스로서는 완전히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불쌍하긴 하네. 사랑이 뭔지… 모든 걸 내팽개치더라도 달려가잖아.”
“그래서 우리가 그녀를 후보로 선택한 거 아니겠나?”
“하긴, 그것도 그렇군.”
두 운영자가 여유롭게 말을 주고받았다.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황.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꽤나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 * *
쿵! 쿵! 쿵! 쿵!
물밀듯이 몰아치는 공세.
타이탄들이 그리스의 전사들을 유린하며 올림포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아주 든든하구만!”
덕분에 치열하게 난전을 벌이던 북유럽 측에선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토르가 광소를 터뜨리며 묠니르를 움켜잡았다.
푸른 스파크 역시 기세 좋게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반면.
“……기간토마키아가 다시 일어났단 말인가.”
헤라클레스는 복잡한 표정으로 올림포스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올림포스 자체에도 막강한 결계와 수많은 방어병력들이 포진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것만으로 거신들을 막기엔 무리였다.
자신이 가야 한다.
그래야만 올림포스를 지킬 수 있다.
문제는….
저 지긋지긋한 천둥의 신이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상황이 지나치게 지저분한 것 같은데. 당장은 각자의 거점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나? 승부야 다음에 다시 내는 것으로 하고.”
“흐음. 천하의 헤라클레스가 꽁지를 빼려 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급한가 보구나.”
“네놈과는 제대로 된 조건에서 승부를 내고 싶을 뿐이다.”
“나 역시 한쪽 팔이 묶인 맹수를 사냥하고 싶진 않지만….”
토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회담 중에 먼저 뒤통수를 친 건 너희 쪽이다. 그런 비겁한 겁쟁이들을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싸워줄 이유는 없지.”
수단과 방법 따윈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세력을 위해서.
전력을 다해 상대를 박살내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붕!붕!붕!
묠니르가 거친 포효성을 터뜨렸다.
번개들이 일점으로 응축되며 무지막지한 마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큭….”
헤라클레스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정리하는 수밖에.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전투가 이어졌다.
같은 시각.
우리엘이 있는 에덴 쪽에서도 격한 논쟁이 오고가고 있었다.
“어째서 병력을 움직이지 않는 겁니까!”
“설마, 우리를 배신할 생각인 건가요?”
아프로디테와 데메테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고운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질 정도로.
두 여신의 분노는 하늘까지 닿은 상태였다.
하지만,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무슨 빌어먹을 사정이 있길래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마계의 마왕 중 하나가 에덴의 영역을 침범했다. 우리가 다수의 병력을 이곳으로 보낸 걸 눈치챈 거겠지.”
마왕 베리엘.
최근 들어 마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거느린 군주 중 하나다.
워낙에 종잡을 수 없는 성격 탓에 예전부터도 골치가 아픈 적이었지만.
군타페르의 세력까지 집어삼킨 지금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가신 적이 되어 있었다.
“에덴에는 아직 상당수의 수비 병력이 남아 있지 않나요? 가브리엘과 미카엘을 포함해 대천사들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그게 문제다.”
우리엘이 딱 잘라 말했다.
“놈들은 우리와는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 때문에 내 영역이 침범당하더라도 지원은커녕 베리엘이 쉽게 공격을 할 수 있게끔 은연중에 돕기까지 하고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베리엘이 조금이라도 깊숙이 들어온다면 그 뒤를 치기 위한 주력 병력이 온전해야 했으니까.
물론.
베리엘의 침공도.
우리엘의 방조도.
모두 진혁이 계획한 작전의 일부였다.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잘 짜여진 연극인 셈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일 없는 아프로디테와 데메테르로선 이 이상 압박을 가할 수가 없었다.
“하아.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군요.”
데메테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에덴 놈들이 발등을 찍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엘리스가 사라짐에 따라 거대 세력 천세의 발이 풀렸다.
더군다나 아테나가 데리고 온 세력들 역시 움직일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
이제부터가 반격을 할 타이밍이다.
⁕ ⁕ ⁕
올림포스의 중턱을 넘어서자, 신화의 축을 담당하는 영웅들과의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쿨럭….
오르페우스의 입에서 굵은 피가 흘러내렸다.
특유의 자랑스러운 리라는 이미 연주를 멈춘 지 오래.
가슴에 입은 상처 역시 치명상에 가까웠다.
깊은 검흔에서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왔다.
“역시, 영웅들이 강하긴 강하네. 기본 스펙도 훌륭하고 튼튼해서 패는 맛이 있다니까.”
진혁이 홍련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내며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았다.
[오르페우스의 리라 – 파란색]입수 난이도: SS
내용: 연주를 할 경우 적에겐 환각을 불러일으키고 아군에겐 사기를 끌어올립니다. 리라를 연주하는 이의 실력에 따라 버프와 디버프의 상승폭이 달라집니다.
으음.
이제 곧 죽을 사람에게 이런 귀한 건 필요 없겠지.
아무렴, 악기보다는 당장 가슴에 난 구멍을 메우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진혁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리라가 있던 자리가 깨끗해졌다.
‘좋아, 좋아.‘
올림포스의 주력도 박살내면서, 덤으로 달달한 보상까지 얻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은 지옥이 아니라 보물창고다.
“으아아아!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가 쓰러진 걸 본 이아손이 고함을 질렀다.
[이아손이 ‘아르고 호의 원정대‘를 발동합니다!]극한의 원정을 함께 했던 동료들.
아르고 호에 소속된 모든 영웅들의 능력치가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동시에.
콰앙!
양손으로 검을 잡은 채 진혁을 향해 돌진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일격에 뼈를 끊어버리겠다는 듯, 검이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만들어냈다.
그 순간.
카아앙!
검이 방패에 가로막혔다.
“대영웅이란 분께서 뒤에서 기습이라니…. 신화에서 듣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군요.”
테레사가 신성력을 가득 실은 방패를 휘둘렀다.
이아손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잘한다. 우리 테레사.
역시 성녀가 뒤에 있으니 이렇게 든든할 수 없다.
이래서 너도 나도 자기 편을 만들려고 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지지하고 응원해줬으니까.
“상처 입은 이의 소중한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이야 말로 파렴치한 짓거리가 아니더냐!”
이아손이 다시 한번 외쳤다.
지지 마라.
아무리 맞는 말 같아도 받아쳐야 한다.
그게 고인물 코퍼레이션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그건….”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게 있던 테레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쳇….
아무리 팩트로 후두려 패도 얼굴에 철판을 깔 줄 알아야 하는 법이거늘.
이래서 착한 애는 안 되는 모양이다.
진혁이 테레사 대신 앞으로 나섰다.
“파렴치한 건 남의 영토에 마음대로 쳐들어가는 너희들 이야기고. 우린 오히려 억압받는 북유럽을 구원하기 위한 해방군이야.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돼.”
그리고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카카카캉!
“큭!”
이아손이 바쁘게 검을 놀렸다.
호오. 나름 나쁘지 않네.
제대로 된 검술이라기 보단 극한까지 단련된 반사신경에 가깝다.
그 자체만으로도 지금까지 어지간한 적들을 찍어누르는 데 충분했을 테지만….
콰아앙!
“어설퍼.”
단순히 그것만으로 무에 모든 것을 건 무림의 검술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진혁이 측면에서 날아오는 검의 궤도를 살짝 비틀면서 그대로 목젖을 향해 찌르기를 시도했다.
완벽한 카운팅 공격.
방패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사각을 노린 것도 치명적이었다.
홍련이 정확한 틈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칼날이 목젖에 닿으려는 그 순간.
우우웅!
이질적인 마력이 끼어들었다.
궤를 달리하는 짙은 위화감.
진혁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이 마력은 설마….
알고 있는 종류다.
분명 경험해 본 적 있는 놈들의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