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6)
56화 3층의 끝, 심장 없는 군대 (2)
우우웅!
암전된 시야가 돌아왔을 땐,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고풍스러운 동양풍 절을 연상케 하는 장소.
이곳이 바로 3층의 끝이자 이번 레이드의 주 무대가 될 격전지였다.
[3층 ‘심장 없는 군대’의 영역에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했습니다.]보스몬스터의 방에 진입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상태창.
이걸 보자, 드디어 ‘그 녀석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며칠간은 정신없이 바쁘겠군.’
난전은 자신이었지만, 이번 레이드에선 그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됐다.
저벅.
진혁이 절 외곽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놈들의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었다.
***
‘역시, 여기 단풍이 탑 내에서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니까.’
절경이라는 건 바로 여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 정도로 몇 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광활한 단풍 숲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단순히 단풍 구경이나 하려고 외각을 겉 돌고 있는 게 아니었다.
‘분명 이쯤에 있었는데…….’
진혁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나무들.
그중에서 다른 것과 다른 특별한 나무가 있다.
‘찾았다!’
진혁이 자리에 우뚝 멈췄다.
인면목(人面木)이라며 불리며, 옹이구멍 대신 사람의 안면을 갖고 있는 거목.
커뮤니티에도 몇 번 올라왔던 터라 사람들 사이에서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나무였다.
진혁이 나무에 다가가려던 바로 그때.
[‘하꼬탐방전문’ 님이 입장하셨습니다.]-하꼬탐방전문: 방제에 낚여서 이 몸이 왔다. 대형 길드 공략 예정에도 없는 보스방에 어떤 호구가 온 거냐?
첫 시청자가 입장했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을 확인한 시청자가 곧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꼬탐방전문: 하, 이 새끼도 가면 쓰고 어그로 끄네. 요즘 왜 이렇게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컨셉 잡은 놈들이 많지? 난 간다 ㅂㅂ.
[‘하꼬탐방전문’ 님이 퇴장하셨습니다.]음…….
요즘 가면을 쓴 놈들이 부쩍 늘은 모양이다.
저토록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이해는 한다.
어그로 끄는 것이야말로 초보 방송인들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중에서도 회랑을 공략한 가면을 쓴 플레이어라면, 확실히 모두가 눈독들일 만한 캐릭터였다.
비슷한 가면을 구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때.
[‘건빵이 미래다’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백수 위에 트수’ 님이 입장하셨습니다.]또 다른 시청자들이 들어왔다.
이번엔 두 명이다.
그것도 방송 끈 좀 길다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건빵이 미래다: 엌ㅋㅋ 뷰튜브 알고리즘 무엇? 3층 공략 방송이라 연관 검색에 뜬 건가?
-백수 위에 트수: 나도 그거 보고 들어옴ㅋㅋ 역시 킹튜브!
-건빵이 미래다: 와. 근데 솔플로 도전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똑똑! 저기요. 미쳤습니까 휴먼? 여기 100인 공격대가 와도 쩔쩔 매는 곳인 거 hoxy 모르심?
-백수 위에 트수: 길을 잃은 어린 고라니라면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어 주세요! 특별히 나가는 길 알려드림.
비웃음이 섞인 대화가 오고갔다.
‘귀엽네.’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렇게 시청자들이 떠드는 걸 보니 예전에 BJ 했던 생각도 나고, 간만에 추억에 빠질 것만 같았다.
‘그래. 이런 게 방송이지.’
시청자는 처음 보는 뉴비 BJ를 놀리지만.
BJ는 실력으로써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휘어잡는다.
그렇기에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이 녀석들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말이다.
진혁은 두 사람을 무시한 채 인면목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건빵이 미래다: 어? 저거 인면목이잖아?
-백수 위에 트수: 하긴 아직까지 간혹 있긴 하더라. 로또 바라고 인면목이 내는 탑의 퀴즈에 도전하는 놈들.
-건빵이 미래다: 뷰튜브를 아예 안 보는 사람인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하는 거 봤으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인면목이 내는 3가지 퀴즈를 모두 맞혀야 보상을 얻을 수 있었지만.
간혹 가다 한 문제를 맞히는 사람이 나올 뿐 2문제 이상 맞히는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나오질 않았다.
심지어 탑을 오르는 것보다 탑 내부를 탐험하는 걸 즐기는 탐험가 플레이어들조차도 말이다.
때문에, 이 나무는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오늘 진혁이 오기 전까지는.
쿠쿠쿠쿠쿠!
인면목이 몸을 뒤척인 건 바로 그때였다.
“끌끌끌! 모처럼 만의 인간이로구나.”
호박처럼 물든 눈동자가 진혁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동시에 기괴하게 뒤틀린 입에서 무구한 세월이 느껴지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놈도 나의 퀴즈를 풀기 위해 온 것이냐?”
“그런 셈이지. 그럼 어디 한번 맛깔 나는 문제 좀 내 봐.”
읏차.
진혁은 푹신하게 쌓여 있는 낙엽에 몸을 뉘었다.
푹신해서 좋다. 천연 매트리스에 파묻히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왼손으론 귀를 후비적거리는 건 덤이었다.
그 모습에, 인면목이 괴성을 내질렀다.
“뭐, 뭐 하는 짓거리냐?”
“응?”
“감히 누구 앞이라고 함부로 그딴 버릇없는 자세를 취하냔 말이다! 내 기분을 거슬렀다간 아예 손도 대지 못하는 수준의 문제를 내 버릴 수도 있다!”
“아…… 이거? 미안, 나는 몸이 편해야 집중이 잘되는 스타일이라서, 신경 쓰지 말고 문제나 내.”
“이이이익!”
-백수 위에 트수: ㅋㅋㅋㅋㅋㅋ 와. 컨셉 한번 오지게 잡았네.
-건빵이 미래다: 맨날 플레이어들 놀려대는 인면목이 대노하는 거 첨 봄.
[‘피자탕수육 존맛탱’ 님이 입장하셨습니다.]-피자탕수육 존맛탱: 이 방은 뭐냐?
-백수 위에 트수: 오. 새로운 시청자네. 꿀잼각 나오는 방임.
-건빵이 미래다: ㄹㅇ 좀 독특함. 플레이어가 쌍마이웨이 컨셉임.
[‘새영언환’ 님이 입장하셨습니다.]-백수 위에 트수: 오 또 들어왔다.
-건빵이 미래다: 이야. 이 방 잘 나가네. 근데 님 닉네임 무슨 뜻임?
-새영언환: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라구!
-피자탕수육 존맛탱: 이건 또 뭔 컨셉이냐? 낮술 먹고 옴?
조금씩 늘어가는 시청자 수.
시작이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들어왔던 시청자들이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시청해 주는 게 가장 긍정적인 신호였다.
이 방송이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 가며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때.
“좋다. 만약 네놈이 세 개의 질문에 모두 대답한다면, 내가 가진 단풍잎 중 원하는 걸 주겠다.”
인면목이 분노를 삼키며 대답했다.
쿨한 척 말하는 것치곤 목소리가 너무 떨리는 거 아니냐?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게 너무 훤히 보이잖아.
“나중에 가서 딴 말 하면 안 된다? 분명히 네가 갖고 있는 단풍잎 중에 내가 원하는 걸 준다고 했어?”
“나를 뭐로 보고! 나무 정령의 명예를 걸고 한 번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흐음. 그렇게까지 말하면 믿어 주지.”
정령의 맹세까지 했으니, 나중에 가서 말을 바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첫 번째 문제를 내겠다. 해수종인 ‘켈고른’이 서식하는 수심의 최적 깊이와 최적 온도에 대해 대답해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차 따위가 있어선 안 된다.”
시련의 탑 7층에 위치한 해구(海丘).
그곳에서 서식하는 몬스터가 바로 켈고른이다.
-백수 위에 트수: 와 첫 번째 문제부터 미쳤네. 켈고른이란 몬스터, 얼핏 들어보긴 했는데. 수심 온도를 어케 아누.
-건빵이 미래다: 정답! 존나 깊은 곳에 서식한다.
-피자탕수육 존맛탱: 얼음 물속이니까 차가울 듯. 한 5도? -5도? 아 모르겠다.
-새영언환: 그냥 틀리라고 낸 문제잖아 이건ㅋㅋㅋ.
시청자들이 질렸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하지만.
“깊이는 175m 수온은 1.5도.”
진혁은 곧바로 답을 말했다.
‘거기서 스노쿨링 한 게 몇 번인데, 그것도 모를까.’
한창 디즈니의 인어공주에 감명받아서 인어 코스프레를 한 뒤, 프리 다이빙을 지겹도록 했었다.
그래서 잘 알고 있다.
수심과 수온은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조류의 흐름까지 전부.
“…….”
인면목의 동공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할 말을 잃은 듯 입이 뻥긋거렸다.
“다음.”
“아직……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정답인 거 아니까 다음 거나 내. 머리 좀 써서.”
“……알겠다. 그럼 두 번째 문제를 말하지. 펠리아니의 해면체를 플레이어가 복용할 수 있는 방법…….”
“‘햇빛 사막의 소금’이랑 ‘2차 전식을 끝낸 프리스트가 만든 성수’를 냄비에 함께 넣고 겨울 동굴에서 자라는 백색 나무를 땔감으로 5시간 동안 조리하면 돼. 약불로 아주 천천히.”
“…….”
이번에도 정답이다.
인면목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정말로 까다로운 문제만 선별해서 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너무나 쉽게 맞혀 버리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남은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
인면목에게 주어진 출제 범위는 탑의 10층까지.
허나, 형평성이나 규칙 따위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3층의 가장 위대한 고목이자 수많은 지식을 망라한다는 자존심이 짓뭉개질 위기였으니까.
“마지막 문제다! ‘하늘 고원’의 자이언트 이글은 일 년 단 한 번만 짝짓기를 한다. 그게 몇 월 며칠이냐?”
-백수 위에 트수: 하늘 고원? 그런데도 있어?
-건빵이 미래다: 나도 처음 들어봄. 자이언트 이글이라는 몬스터도.
-피자탕수육 존맛탱: 와. 인면목. 저거 다 맞힐 것 같으니까 이상한 문제 낸 것 같은데?
-새영언환: 전부 모르는 걸 보면, 탑 저층에 있는 지역이 아닌 듯. 여기까지네.
그렇다.
하늘 고원이 있는 곳은 탑의 15층.
게다가 15층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내로라하는 고인물들조차 가 본 적이 없는 장소였다.
이거라면 결코 맞히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플레이어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저 건방진 인간도 좌절하고 또 절망할 것이다.
그게 당연하면서도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래,
분명히 그래야 했는데…….
“11월 17일. 탑에 첫눈이 내릴 때 말이군.”
결코 나와서는 안 되는 대답이 들렸다.
“어, 어떻게……. 대체, 대체 네놈은 누구냐? 누구길래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느냔 말이다!”
인면목이 온몸을 마구 흔들었다.
쿠쿠쿠쿠!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수많은 단풍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탑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고인물이야.”
“웃……기지 마라. 고작 인간 따위가 내 문제에 전부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흥분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면 네가 모르는 사실을 하나 알려 줄 테니까.”
“내가 모르는 거라고?”
“그래. 보아하니 자이언트 이글이 1년에 한 번만 짝짓기를 한다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거 아냐? 자이언트 이글은 개체수가 부족해지면 특별식으로 영양을 보충한 다음에 짝짓기를 두 번 할 수 있다는 거?”
“지, 진짜로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대체 어떤 걸 먹고…… 가 아니라. 커흠! 커흐으음!”
인면목이 다급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속에 있는 본심이 튀어나왔으니까.
-백수 위에 트수: ㅁㅊ! 나 이 퀴즈 돌파하는 사람 처음 봤음.
-건빵이 미래다: 와, 이게 말이 돼? 무슨 네이버 지식인도 아니고. 완전히 줄줄 꿰고 있잖아?
-피자탕수육 존맛탱: 완전 썩은물 같은데. 지린다. 진짜 이 방 들어온 게 신의 한 수인 듯.
-백수 위에 트수: ㅇㅈ. 덕분에 처음으로 보상 얻는 거 볼 수 있을 듯.
-새영언환: 과연 어떤 걸 고르려나.
인면목의 퀴즈를 통과하면 녀석이 보유한 특수 아이템 중에 하나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
붉은색 단풍은 화염 속성을 부여하고.
노란색 단풍은 방어력을 강화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초록색 잎은 이동 속도를 증가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건빵이 미래다: 당연히 공격력을 올려 주는 붉은 단풍이지. 공격대도 저 단풍 얻어서 4층 공략하려고 악착같이 퀴즈에 도전했잖아.
-새영언환: 나는 차라리 노란 단풍 고를 듯. 그놈들한테 버티려면 방어력이 필수지.
-백수 위에 트수: ㄴㄴ. 초록 잎으로 이속 올려서 아예 안 맞으면 그만임. 이속! 이속! 이속! 언노운 형아, 이속으로 가즈아!
-건빵이 미래다: 남자는 닥공! 닥공! 닥공!
-새영언환: 어허 무슨 소릴! 방어야말로 상남자의 자존심이오!
채팅창이 아주 난리가 났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게 확실시되는 상황.
자신들의 채팅 또한 공개될 게 뻔하니 당연히 흥분될 수밖에.
“어서 말해라. 이중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인면목이 재촉했다.
시청자들의 시선 또한 집중됐다.
어느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3층 보스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 같은 단풍잎은 네 머리 감추는 데나 많이 쓰고. 검은색 잎 있지? 그거 내놔.”
진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번에도 모두의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