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69)
569화. 올림포스, 신들의 안식처 (2)
“허억…. 후욱….”
거칠어진 호흡.
옆구리에서 굵은 피가 콸콸콸 쏟아졌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다.
타이탄들로부터 뺏어낸 타르타노스의 잿빛 갑주 세트를 입었고. 거기에 거점으로부터 얻는 버프까지 챙겼건만….
상대는 그 모든 걸 비웃기라도 하듯 일방적으로 찍어눌러버렸다.
대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격차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강자들을 상대해왔고 또 박살냈었으나….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명계의 신전이 파훼당한 적은 없었다.
“쿨럭! 아레스가 당할 만하군.”
이렇게나 당하고도 무의식 중에 상대를 얕보려는 게 남아있었나 보다.
호흡을 가다듬은 하데스가 표정에서 모든 감정을 없애버렸다.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
“간다.”
[고유 성창 ‘명계의 지배자’가 발동됩니다!]쿠쿠쿠쿠쿠쿠!
주위에 흩뿌려져 있던 검은 연기들이 모조리 하데스의 등 뒤로 모여들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바람과 빛마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압축되었다.
곧이어 기괴한 형태의 손아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모든 게 까맣게 물든 악마의 손톱 같았다.
“곤충도 아니고 팔이 막 자라나네.”
“놀라긴 너무 이르구나. 어디, 이건 어떤 식으로 대응하나 볼까.”
촤아아악….
하데스의 그림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진혁이 있는 곳까지 뻗었다.
동시에 그림자 속에서 검은 가시들이 튀어나왔다.
“……!?”
촤촤촷!
진혁이 허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전신이 꼬치구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안도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손들이 기어왔다.
얼핏 봐도 수십 개 이상.
이건 전부 다 피하지 못한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진혁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열린 틈 사이로 무시무시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서리혼령의 창’이 마력을 해방한 것이다.
[잃어버린 시대 – ‘천년결빙’이 발동됩니다!]창끝이 지나간 곳에 절대영도의 선이 그어졌다.
쩌저적!
손아귀들이 통째로 얼어붙었다.
흠칫하고. 하데스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떨렸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어차피 창날에 닿는 부분만 얼어붙는다면, 그보다 더욱 많은 수의 손아귀들로 몰아붙이면 될 터.
‘명계의 지배자’가 발동된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많은 손아귀들을 부릴 수 있었다.
[스틱스의 저주 ‘망령의 강’이 발동됩니다!]각 손아귀에서 돋아난 비명을 지르는 얼굴들이 기괴한 장면을 연출했다.
“끼에에에!”
“케에에!”
수천 개의 손아귀들이 파도가 되어 범람했다.
게다가 그 위로 스틱스 강을 부유하는 사공 ‘카론’이 거대한 배 위에서 자기 몸집보다 큰 낫을 휘둘렀다.
영혼을 수확해 간다는 망령의 낫이다.
‘닿았다간 위험하다.’
대상의 트라우마를 강제로 끄집어내는 능력.
조금 전에 느꼈던 저주들이 극대화된 형태다.
바닥을 집어삼킨 그림자 속에서도 수백 개의 가시들이 정신없이 튀어나왔다.
‘천마군림보’를 사용해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곤 있었지만, 애초에 공격 루트가 워낙 다양하다.
숫자도 너무 많았고.
이런 식으로 거리를 좁혔다간 하데스에게 도달하기 전에 이쪽이 먼저 지쳐 떨어져나갈 게 뻔했다.
‘젠장, 끝도 없겠어.’
차근차근 공략하는 건 애초에 성미에 맞지도 않는다.
진혁이 서리혼령의 창에 마력을 쏟아 부었다.
우우웅!
창이 은은하게 빛나며 창날의 끝에 푸른 마력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압축에 압축을 거듭하는 냉기.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으면서 냉기로 만들어진 파장이 퍼져나갔다.
그렇게 냉기가 절대 영도에 도달한 순간.
창의 모습이 변했다.
창날이 줄기로 나뉘더니, 각 창날에 아름다운 각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성명절기, ‘서리혼령의 언령’이 해방됩니다!]최상급 성유물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낸다면, 그 성유물이 가진 고유의 성명절기를 사용할 수 있다.
서리혼령의 창은 이전에 사용해본 적이 없는 종류였지만….
절대적 성유물들이 가진 특징은 한결같을 거다.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그렇기에.
자신을 다루는 이가 누군가에게 쓰러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건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진혁이 서리혼령의 창과 자신의 마력의 싱크로율을 하나로 맞췄다.
보통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한 만큼 섬세한 작업이었지만, 고인물에게 있어 이 정도는 그리 높은 난이도가 아니었다.
다가오는 파도들의 흐름에 맞춰….
……마력을 완전히 해방한다.
냉기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실이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그 뒤를.
콰콰콰콰콰!
세상을 얼려버릴 만한 폭풍이 몰아쳤다.
“키에에….”
“케에….”
비명을 지르던 손아귀들의 소리가 순차적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 빙하기가 도래함에 따라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하데스 역시 최상급 성유물을 소유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타르타노스의 잿빛 갑주의 마력이 해방되자 녹색 운무가 냉기를 막았다.
갑주의 위로 악마의 형상을 한 눈과 입이 생겨났다.
눈과 입의 구멍에선 녹색 연기가 연신 피어올랐다.
완벽하다는 말 외엔 할 수 없는 공격과 방어다.
그래도 차이점이라면….
“크으으….”
방어한 쪽의 피해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쿨럭! 케엑… 커어어억!
하데스가 입으로 검은 연기들을 토해냈다.
지금까지 명계에 온 죽은 자들의 영혼이었다.
그만큼 충격이 크다는 뜻이겠지.
자신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소모하는 중이었으니까.
반면.
진혁은 아직까지 여유롭다는 듯 창을 어깨에 걸쳤다.
시간은 짧았지만, 이미 승부가 어느 정도 갈린 셈이다.
뿌드득.
하데스가 어금니를 부러져라 갈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진혁의 머리통을 으깨버리고 싶었으나, 몸은 일어서려고 할 때마다 계속해서 휘청거렸다.
우선은… 시간을 벌어야 한다.
혼령들은 여전히 넘치도록 많았으니, 몸 따윈 금방 회복되리라.
“나와라.”
하데스가 그림자들이 뭉친 곳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크르르….”
“컹! 컹! 커엉!”
“헥헥헥!”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크기의 개가 뛰쳐나왔다.
명계를 지키는 수문장. ‘케르베로스’.
정확히는 케르베로스를 키메라 버전으로 새로 만든 것이었다.
누더기를 기워 만든 듯한 세 개의 머리가 미친 듯이 짖어댔다.
“이젠 하다하다 똥강아지까지 꺼낸 거냐? 그걸론 시간벌이밖에 안 될 텐데?”
“그거면 충분하다. 자, 저 건방진 인간 놈을 물어뜯어라!”
콰앙!
하데스의 명령이 떨어졌다.
케르베로스가 진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진혁이 재차 창에 마력을 주입했다.
좀 전의 성명절기는 아니었어도 충분히 힘을 실은 일격이었다.
그런데.
쩌저적!
“커엉!”
얼음 줄기에 맞은 케르베로스는 주춤할 뿐,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언데드라서… 냉기에 저항이 있는 건가.’
명계에서도 가장 혹한의 지역에서 제조했을 테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화염 계열 능력을 쓰거나 다른 식으로 공략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여기선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쓰는 게 좋겠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소환수에는 같은 소환수를 쓰는 것으로 말이다.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자, 너도 나와. 밥값할 시간이다.”
“훗! 명상도 오래 했더니 좀이 쑤시는군. 그래서 고귀한 이 몸을 부른 이유가… 우어어억!?”
모처럼 밖으로 나온 말랑흑두루미가 달려드는 키메라 케르베로스에 기겁했다.
적어도 자초지종은 들을 뒤에 싸울 줄 알았는데, 코앞에서 기습을 당했으니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게다가 케르베로스는 말랑흑두루미로서 가장 상대하기 꺼려하는 타입이었다.
“크아아! 침, 그 더러운 주둥이를… 우웩. 입냄새도 너무 심하다. 빌어먹을. 이건 아니지 않느냐!”
미친 듯이 물어뜯으려는 케르베로스의 입에서 썩은 침이 폭포수처럼 튀었다.
말랑흑두루미의 얼굴이 축축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좋은 제물… 아니, 든든한 동료였습니다.”
진혁이 짧게 성호를 그은 뒤, 말랑흑두루미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런 상황일 때 신수들만큼 좋은 몸빵이 없다.
* * *
화려한 술병들이 가득 찬 방안엔 천유성이 나타났다.
향긋한 포도주 향이 코끝을 찌른다.
올림포스의 열두 주신 중에서 이 정도로 술에 환장한 건 한 명뿐이 없겠지.
“디오니소스인지 뭔지 하는 주정뱅이 신이 있는 곳으로 왔나 보군.”
천유성이 가장 술 냄새가 진동하는 곳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 향긋하고 감미로운 액체야말로 신이 인간들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이거늘. 그대는 손톱만큼 짧은 인생을 살면서 그 축복마저 누리지 못하는 건가?”
“술 마시는 취미는 없다.”
“호오. 그럼 어떤 취미가 있지?”
“글쎄….”
취미라.
딱히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기껏해야 고양이 밥을 주거나 강진혁 그 개 같은 놈에게 도전하는 것 정도가 유일하게 흥미 있는 활동이다.
하지만, 굳이 한 가지만 더 꼽자면….
“베어버리는 거라면 꽤 즐기는 편이다. 특히, 네놈 같이 나르시시즘에 빠진 얼간이라면 더욱더.”
천유성이 검을 목에 대고 긋는 시늉을 했다.
여유롭게 술을 홀짝이던 디오니소스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우두둑!
술잔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졌다.
“재밌구나. 나 역시 건방진 인간을 짓밟아버리는 걸 매우 즐기는 편이다.”
더 이상의 대화 따윈 필요 없다는 듯, 디오니소스가 곧바로 가장 자신 있는 능력을 사용했다.
[디오니소스가 고유 능력 ‘향략의 밤’을 발동합니다!]알싸한 향기가 뇌 속까지 파고들었다.
동시에 천유성 앞에 아름다운 외모를 한 여자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관능적이고 고혹적인 자태와 숨이 턱 막힐 듯한 살 내음.
……이건 환각이다.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크윽….”
모든 걸 알면서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검을 잡은 손과 몸을 지탱하는 발이 굳어버렸다.
“후후후. 남자라면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게야.”
천국을 맛보게 해주면서.
지옥으로 떨어뜨려주마.
디오니소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같은 시각.
테레사와 안드리아 역시 낯선 장소에 떨어졌다.
“어라, 언니. 저희들은… 함께 있도록 했나 본데요?”
안드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당혹감보다는 그저 테레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그러게….”
반면, 테레사는 미심쩍은 듯한 눈초리로 주위를 살폈다.
헤르메스가 각개 격파를 하겠노라 호언장담한 이상. 놈들이 선의로 이쪽 둘을 붙여줬을 리 없다.
실수를 했을 리는 더더욱 없고.
그렇다는 건.
‘우리가 함께 있어도 상관없다는 거겠지.’
어쩌면 둘 이상의 적을 상대할 때 더욱 자신 있는 주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천유성을 딴 곳으로 보낸 걸 보면, 근접형 딜러에겐 다소 약하다는 것 또한 잡아낼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사사삭….
테레사와 안드리아의 앞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공기가 한 차례 달라졌다.
“언니!”
“그래. 나도 느꼈어.”
평화로움과는 대조되는 강한 마력이 감지되었다.
조금 더 시야에 집중하자 누런 곡식들이 익은 들판에 풍요의 여신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보였다.
데메테르가 침입자를 바라봤다.
“어린 아가씨와 숙녀분이라… 아무래도 제 상대는 당신들인가 보군요. 혹시 저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이름은 익히 들어봤습니다.”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메테르.
비교적 평화롭고 온순하다고 알려진 주신이었지만, 그런 온순한 성격일수록 진심으로 대할 경우 더욱 무섭다.
바로 지금처럼.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당신들은 우리들의 평화를 앗아 갔습니다. 형제와 자매들을 잃고 어쩌면 올림포스의 존립까지도 무너뜨릴지도 모르죠.”
그러니.
“제가 여기서 당신들을 막겠습니다.”
지금까지 상대해본 적 없는 낯설고 기괴한 능력이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