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70)
570화. 올림포스, 신들의 안식처 (3)
쿠쿠쿠쿠쿠!
데메테르의 고유 능력이 발동되자 모든 게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건조해진 환경.
공기 중의 수분뿐 아니라, 체내에 있는 것까지도 모조리 증발해버리고 있다.
“아….”
“으윽….”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입술.
말라버린 목구멍에서 쥐어짜는 듯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저 서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특히나 화 속성을 다루는 안드리아와 신성력이 전부인 테레사로서는 이 능력이 극상성에 가까웠다.
게다가.
“끼익…. 끼기긱….”
“끼리릭….”
곡식들 사이에서 밀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마다 기다란 낫으로 무장한 채. 세상 불길한 안광을 불태웠다.
안드리아가 즉시 ‘여우불’을 꺼내 허수아비들에게 날렸다.
퍼퍼퍼펑!
건조한 공기와 잘 타는 잎사귀 덕에 여우불의 화력이 평소보다 몇 배는 올라갔다.
허수아비들이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쿠웅!
공격을 한 안드리아 역시 휘청이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
머리가 핑핑 돈다.
약간의 마력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그대로 의식의 끈을 놔버릴 것만 같았다.
“자랑하던 능력들도 제대로 힘을 못 쓰겠죠. 믿었던 것들이 모조리 박살나는 기분일 테고요.”
데메테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손에 쥔 건 상수리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하고 낡은 낫.
데메테르의 성유물인 ‘수확의 낫’이다.
지금까지 수확한 곡식의 수만큼 능력치가 올라가는 특성을 지닌 초희귀 아이템으로.
단 한 번도 무기의 사용에 사심이 섞여 있지 않아야만 한다.
파스스….
그런 수확의 낫에 균열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곡식을 베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되어진 낫이 처음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데 쓰이려 했기 때문이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이 전투 후에 더 이상 이 낫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살기를 해방시킬 생각이었다.
쿠쿠쿠쿠쿠!
데메테르의 주위로 흉흉한 기운이 일어났다.
[고유 성창 ‘흉년(凶年)의 상’의 발동됩니다!]데메테르의 표면이 흙빛으로 변했다.
‘가뭄’의 힘을 그대로 간직한 몸은 닿는 공격들을 무로 돌릴 것이며, 반대로 공격하는 대상의 체액은 모조리 빨아버릴 것이다.
천천히 뻗은 낫이 안드리아의 목으로 향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상대의 숨통을 끊는 것쯤이야 닭 모가지 비틀듯 간단했으니까.
하지만, 낫이 목덜미에 닿기 바로 직전.
콰아앙!
측면에서 눈부신 광휘가 폭발했다.
[테레사가 고유 능력 ‘별의 가호’를 발동합니다!]사력을 다해 발현시킨 신성력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쏘아졌다.
“……!!”
데메테르가 손바닥을 뻗어 신성력을 그대로 증발시켜버렸다.
그러나, 공격을 방어하면서 생긴 틈을 테레사가 완벽하게 이용했다.
탓!
코앞까지 좁혀진 거리.
공간이동에 가까운 도약에 눈부신 별빛이 하나로 합쳐졌다.
테레사가 데메테르의 다리 아래에서 검을 움켜잡았다.
기회는 단 한 번.
이 검에 모든 걸 쏟아 붓는다.
테레사의 눈동자가 은은하게 빛났다.
아래에서….
…위로.
별을 머금은 검격이 솟구쳤다.
콰콰콰콰콰콰!
흉년의 상으로 덕지덕지 바른 기운과 피부마저 베어버릴 수 있는 신성력의 극의였다.
“크읍!”
흑색 피가 뿜어져 나왔다.
데메테르의 배에서 가슴에 이르기까지 긴 상처가 생겨났다.
제법 깊은 상처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감히 내 몸에 생채기를 내다니….”
데메테르의 주위에 있던 허수아비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수많은 낫들이 테레사의 갑옷을 난도질했다.
“아아악!”
방패로 몸을 가리고 신성력으로 만든 방어막을 펼쳤으나.
달려든 허수아비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언니!”
안드리아가 무리를 하며 테레사를 도우려 했다.
콰앙!
안드리아의 몸이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다.
보통 허수아비들보다 몇 배는 큰 놈이 안드리아의 머리를 짓눌렀다.
“당신네들은 정말 포기라는 걸 모르는군요. 지금쯤이면 체내에 수분이 부족하다 못해 세포들이 갈가리 찢기는 기분일 텐데 말이죠.”
데메테르가 구속당한 안드리아의 곁에 다가왔다.
그리고 낫을 목덜미에 갖다 댔다.
“이미 승부는 났고… 저도 편히 보내드리고 싶긴 하지만, 워낙에 저희 쪽에서 흘린 눈물이 많아서요. 포세이돈 님을 잃고 괴로워하는 바다의 하급 신들도 그렇고. 아폴론을 잃고 방황하는 아르테미스야 말을 할 것도 없죠.”
그러니.
똑같이 갚아줘야 한다.
지금 올림포스 전체를 잠식한 슬픔과 비애의 무게만큼 말이다.
“대체 어느 쪽을 먼저 죽여야 남은 쪽이 더 고통스러워할까요. 당신인가요? 아니면 저쪽에 있는 성녀분일까요?”
“안드리아!”
데메테르가 안드리아의 목을 부드럽게 긁자, 테레사가 허수아비들 속에서 안드리아를 불렀다.
“당장 그 손을 멈추세요!”
“성녀분 쪽은 꽤나 절실한가 보네요.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어떨까요? 성녀분을 베어버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요.”
데메테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테레사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에서다.
완벽하게 주도권을 잡은 채 농락하는 모습.
능력의 상극 차이도 절망적이었지만, 일말의 자비도 없는 잔혹한 손속은 더욱 최악이었다.
서걱!
“아아악!”
테레사의 목덜미에 같은 상처가 생겼다.
흘러나온 피는 금세 증발되어버렸다.
상처를 따라 더욱 강렬한 갈증과 메마름이 파고들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낫이 하얀 피부를 가로질렀다.
‘별의 가호’가 즉각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게 오히려 독이었다.
고통이 지속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아…. 하아…. 하아….”
테레사가 숨을 헐떡였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다 안타깝네요. 어차피 복수는 이 정도면 충분하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북유럽과 나머지 동맹들의 꿍꿍이를 말하세요.”
“…말 못 해요.”
서걱!
“아아악!”
“이래도 버틸 건가요? 이래도?”
서걱!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 뇌수까지 태워버렸다.
단순히 베는 것이 아닌, 영혼을 지져버리는 느낌이었다.
“절대 말 못…해요.”
“시간을 끌수록 고통만 길어질 뿐입니다. 차라리 전부 다 말하고 편해지세요. 여기엔 비난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말 못해. 아니, 안 해!”
테레사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절대로 동료들을 배신할 생각 따윈 없었다.
설령 그 대가가 끔찍한 죽음이라도.
“성기사답게 질기긴 하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괴롭혀주겠습니다. 그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말이죠.”
“키에에….”
“키이이….”
데메테르의 명을 받은 허수아비들이 재차 고문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테레사와 안드리아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더 이상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갈증과 피로로 인해 의식까지 날아가기 직전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데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버티다니…. 신들조차도 이렇게 할 순 없었을 겁니다. 적이지만 존경스러울 정도군요.”
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뭔가를 얻을 수 없다.
데메테르가 낫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허면….”
이 모든 계획을 세우고.
올림포스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 원흉이라면 어떨까?
그라면 모든 걸 알고 있을 거다.
복수를 하기에도 최고의 대상이었고.
“강진혁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그 인간은 어느 정도 고통을 견딜지 궁금하군요.”
이미 최강의 힘을 손에 넣었다.
낫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상대가 그 누구라 해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게이트가 개방됩니다.]일그러진 균열 너머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진혁이었다.
“진혁 씨….”
“진혁 님….”
두 사람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하데스와 싸우고 있는 지금 데메테르가 개입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만큼 직접 상대해본 데메테르는 강렬했다.
그리고 만약 진혁이 데메테르의 포로가 되어 자신들과 같은 아픔을 겪어야만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면….
……우우웅!
쿠쿠쿠쿠쿠…콰아앙!
엄청난 화염과 그에 못지않은 광휘가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키에에에!”
“케에에엑!”
허수아비들이 일거에 사라졌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위력이다.
“무슨…?”
데메테르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분명, 여전히 ‘흉년의 상’은 발동되고 있을 진데.
저들에겐 한 줌의 마력도 남아있지 않아야 정상일 텐데.
대체 어째서.
다 쓰러져가는 반시체들에게서 이런 터무니없는 힘이 느껴지는 것일까?
*
지킨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그걸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상관없었다.
테레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천사 가브리엘의 권능이 발현됩니다!] [고유 능력 ‘별들의 부름’이 발동됩니다!]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
마력과 마력들이 하나로 이어지며 순백의 날개를 만들어냈다.
[성녀의 숭고한 의지가 하늘에 닿습니다.] [고유 성창 페이즈 2 ‘암굴의 성녀’가 발동됩니다!]3쌍의 날개가 완전히 펼쳐졌다.
은빛으로 빛나는 갑주에 화려한 룬어들이 돋아났다.
인간의 몸으로 천사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힘.
한계를 넘어선 고유 성창은 지금껏 봐 왔던 고유 성창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파스스….
눈부신 백광 속,
황금색 가루들이 흩날렸다.
“당신을… 진혁 씨에게 가게 할 순 없습니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데메테르를 정면에서 응시했다.
[안드리아가 고유 성창을 해방합니다.]안드리아 역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9개의 꼬리에서 피어오르는 겁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고유 성창 ‘천년 여우’가 현현합니다!]고대종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화 속 신수.
5층의 주인이 완전히 각성했다.
“진혁 님을 해치려는 것은 그 누구라도 용서치 않아.”
으르렁대며 드러난 이빨.
잔뜩 세워진 손톱이 예리하게 빛났다.
* * *
“…….”
뿌드득.
여러 상황을 동시에 지켜보던 하데스가 표정을 왈칵 구겼다.
일대 다수의 대결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게 바로 데메테르다.
워낙 평소에 평화적이어서 그렇지.
제대로 화가 난다면 그 어느 주신도 함부로 말리기 힘든 괴물이라는 소리다.
조금만 더 있으면 데메테르가 이쪽에 가세해 함께 진혁을 상대할 계획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두 명이 동시에 각성을 했다니….’
그것도 하나하나가 주신급에 필적할 만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디오니소스 역시 천유성과의 대결에서 쉽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특유의 술로 인한 향락과 아프로디테에게서 받은 비약까지 사용했지만 천유성 앞에선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음욕이 통하지 않는 남자가 존재한다는 걸 믿어야 하는 순간이다.
“봐 봐. 그래서 말했잖아. 우리 쪽은 따로따로 떼어놔도 강하다고.”
진혁이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말해 일이 이 정도로 잘 풀릴 줄은 몰랐다.
천유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테레사와 안드리아가 고유 성창을 각성한다는 건 계산에 없던 일이었으니까.
‘다… 내가 평소에 너무 인덕을 많이 쌓아서 벌어진 일인가.’
사장님을 구하려고 몸을 불사르는 사원들이라니.
평소에 얼마나 훌륭한 리더였는지가 증명된 셈이다.
하아.
이래서 남들에게 베풀며 손해만 보는 삶을 사는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