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75)
575화. 깊은 반란의 불씨 (1)
가벼운 발걸음에선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처럼.
두건을 쓴 이가 소리 없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야영지에 들어왔다.
타닥…. 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침입자가 열심히 주위를 훑으며 무언가를 찾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들 푹 자고 있으니 볼 일이 있다면 내게 말해라.”
나무에 기대 있던 천유성이 입을 열었다.
두건을 쓴 이가 멈칫했다.
“……당신이 천유성인가 보군요.”
“날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당신은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주요 전력이자 디오니소스를 혼자서 쓰러뜨린 랭커니까요.”
아마 상위 신격들 중에서 천유성이란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을 거다.
그만큼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이들의 이름은 하루가 다르게 널리 알려지는 중이었다.
스릉!
천유성이 검을 반쯤 뽑았다.
시퍼런 검광이 달빛을 타고 번져나갔다.
‘검의 노래’를 발동시키려 하는 것이다.
“저는 그저 대화를 하러 왔을 뿐이에요! 강진혁 플레이어는 어디 있는 거죠?”
“누군가를 찾기 전에 자기 정체부터 밝히는 게 먼저 아닐까. 뭐, 됐다. 생포한 다음에 천천히 캐물어보도록 하지.”
콰앙!
천유성이 자리를 박찼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검이 어지럽게 가로질렀다.
살초는 아니지만, 일검 일검이 상대의 기동력을 빼앗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큭!”
두건을 쓴 이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설렁설렁 상대하다가는 당한다.
‘진심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는 건가.‘
일단은 진정시킨 다음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결정이 내려지자 행동이 빠르게 이어졌다.
파츠츠!
가녀린 손끝에 검은 스파크가 맺혔다.
흉흉한 기운이 퍼져나가자 모닥불의 불길이 거칠게 흔들렸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천유성 역시 양손으로 검을 잡은 채 마력을 해방했다.
[추혼검무 제10식….]검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에 맞서 이질적인 운무가 피어올랐다.
[스킬 ‘깊은 밤의 파도’가….]하지만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기 바로 직전.
“하도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넌 불침번이나 서라 했더니 이 늦은 밤에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진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났다.
잔뜩 만들어낸 듯한 하품을 하는 건 덤이다.
그 옆에는 잠옷 차림에 테레사와 안드리아가 서 있었다.
“으으음….”
“무슨 일이래요?”
잠에 취한 표정으로 눈을 비비면서.
“침입자가 와서 제압하려고 하던 참이다.”
제압이라….
누가 봐도 생포가 아니라 토막을 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농담이 아니라 저놈이라면 진짜 죽여 놓고 실수였다고 한마디 툭 던질 놈이다.
하지만, 직접 말로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저 녀석 아직 피 맛을 못 봤으니까.’
천유성의 심기는 가능하면 건들지 않는 게 안전하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고생했어. 이제부터는 내가 맡을게. 상대도 나한테 볼일이 있는 것 같으니까.”
“쳇.”
천유성이 마지못해 검을 집어넣었다.
두건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애써 말려준 진혁에게 감사의 뜻에서.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스륵….
두건을 벗자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 이름은 페르세포네입니다.”
“뭐…라고?”
“설마.”
“페르세포네라면… 올림포스의 주신 중 하나잖아요!”
모두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자라는 건 예상했지만, 설마 주신 급이 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난데없이 페르세포네라니.
“당신은 놀라지 않는군요.”
페르세포네가 진혁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유일하게 감정 기복이 없는 건 진혁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 제우스와 제가 나눈 대화를 엿들었을 테니까요. 한 번 정도는 찾아올 거라 예상했습니다.”
페르세포네가 올 거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
그리고….
“그럼, 사실인가요? 제우스 님께서 제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이?”
페르세포네가 이 질문을 할 거라는 것 역시 정해진 수순이었다.
크흠! 큼!
먼저 목부터 가다듬고.
그다음엔 감정을 제대로 실어 넣어야 한다.
“사실입니다. 하데스 님과 싸운 건 사실입니다만 저희 둘은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무승부로 끝내려고 했었습니다. 굳이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는 대신 새로운 합의점을 찾아보려고 했었죠.”
진혁이 비통한 표정을 자아냈다.
최대한 슬프고 안타깝다는 것처럼.
아니,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을 삼키는 것처럼.
상주 앞에 선 가장 친한 친구의 모습을 가장했다.
“하데스 님은 마지막 순간에 분노에 가득 차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워낙에 큰 상처를 입으셨기에 저에게 대신 부탁하셨죠. 자신의 형제에게 비수를 꽂아달라고요.”
페엥!
손수건을 꺼내 코까지 풀었다.
흐르지 않는 눈물도 훔쳤다.이건 먹힌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사기를 치고 다닌 덕에 연기력이 정점에 오른 상태였으니까.
“그…랬군요. 정말로 제우스 님… 아니, 제우스가 그런 거였어요….”
페르세포네가 조용히 진혁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지금이다.
“해서 말인데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예.”
진혁이 석류 하나를 꺼내 페르세포네에게 건넸다.
“이걸 다른 주신에게 몰래 먹여주세요. 제우스면 제일 좋겠지만, 헤라나 헤르메스라도 상관없습니다.”
“이걸….”
석류를 받은 페르세포네의 얼굴이 미미하게 떨렸다.
명계에 영원히 속박되게 된, 과거의 일이 떠오른 탓이리라.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자유를 잃는다는 건 그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자신의 가족을 죽였다.
그때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스트라페로 하데스를 죽인 것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1시간 전 하데스의 시신을 수습할 당시 그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페르세포네가 석류를 주머니 안에 넣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제우스를 제외한 나머지 신들을 죽이진 말아주세요. 그거만 약속한다면 당신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좋네요. 저도 쓸데없는 살생은 최대한 막고 싶습니다.”
그걸로 또 다른 동맹이 결성되었다.
⁕
잠시 뒤, 페르세포네가 떠나고.
나머지 멤버들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진혁을 바라봤다.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치는 거짓말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보다 황당한 건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설계했다는 점이다.
특히 천유성은 황당함을 넘어 공포의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이건 미리 짠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
운이 좋다는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전부 미리 알고 있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설마….’
박물관에서부터 느낀 묘한 위화감.
처음에는 진혁이 과거 탑을 20층 대까지 올랐다고 생각했었다.
이후에 함께 하게 되면서 30층 대도 가봤을지 모른다 생각했었고.
하지만.
‘전부 틀렸어.’
고작 30층 대가 아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30층 대 후반.
어쩌면 40층 대 중반을 넘어섰을 수도 있다.
‘저 녀석이라면 탑의 정상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을까.’
최근 탑에 관한 정보를 모았을 때, 신화를 망라하는 신들을 넘어 입에 담아선 안 되는 ‘그 존재들’에 관한 언급이 몇 번이고 있었다.
워낙 접근이 까다롭고 어려웠기에 그 이상을 캐내진 못했지만, 분명 정상을 지배하는 놈들이 있었다.
천유성이 강한 호기심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꼈다.
더욱더 강해지고 말겠다는 열망을 불태우면서.
* * *
제우스가 있는 올림포스에선 한창 연회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명목상은 죽은 주신들을 추모하고 남은 이들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였다.
가장 상석에 앉은 제우스가 암브로시아를 들이켰다.
감정 따윈 없는 표정이다.
사실 제우스에게 있어서 몇 명의 주신들이 죽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오롯이 올림포스의 수장인 자신이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뿐.
주신들이야 이후에 또 다른 이들을 뽑아 채우면 그만이었다.
강자야 언제든지 새롭게 나타나는 법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제 남편과 형제자매들을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르세포네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 악마 같은 놈 때문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 나 역시 오랜 형제를 잃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복수를… 해야겠죠? 제 남편의 원수한테요.”
“당연한 소릴. 놈을 산 채로 생포할 때 가장 먼저 그대에게 그 기회를 주겠다.”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군요. 그럼,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올림포스의 최고신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페르세포네가 단지에 담긴 암브로시아를 제우스와 자신의 잔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건배를 제안했다.
페르세포네가 먼저 암브로시아를 마셨다.
다음으로 제우스가 가득 담긴 암브로시아를 단숨에 들이켰다.
“허면….”
페르세포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제 복수가 꼭 이뤄지길 기도하겠습니다.”
“…무슨?”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갑고 흉흉한 살기에, 제우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휘청하고.
몸이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절대 판정 ‘명계의 명령’이 발동됩니다!]쿠쿠쿠쿠!
지면에서 검은 끈들이 올라와 제우스의 몸을 단번에 속박했다.
“이깟 장난질을 하고도 살아남길 바라는 것이냐?”
명계의 명령이 절대 판정이긴 해도 제우스를 영원히 붙잡아둘 순 없다.
고작해야 몇 시간.
그게 한계이리라.
“몇 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돌아온다면 당장 새카맣게 태워서 죽여버리….”
제우스의 말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곧바로 시야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올림포스의 전경이 사라지고 피와 죽음만이 가득한 명계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 중앙엔….
결전의 준비를 끝낸 진혁이 서 있었다.
“역시 네놈 짓이었나. 한 방 먹었군.”
제우스가 혀를 찼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유리한 조건과 상황을 만들려 했는데.
오히려 상대가 원하는 대로 싸우게 생겼다.
“그러게 밑에 사람들한테 잘 좀 했어야지. 이용할 대로 이용만 하다가 가차 없이 버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잖아?”
“네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어이가 없구나. 안 좋은 소문이란 소문은 죄다 돌고 있는데 말이다.”
“크흠! 헛소문이야 헛소문. 다들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러고 보니 그 잘난 동료들은 죄다 어디에 두고 혼자 있는 거지? 설마, 날 상대로 혼자 왔을 리는 없을 테고. 어디서 기습이라도 준비하고 있는 건가?”
“글쎄, 어떠려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며 도발하는 모습.
전형적으로 싸움 전에 상대를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여유로운 걸 보니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나 보구나.”
소식?
“갑자기 무슨 소식?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재밌는 이벤트라도 있었던 건가?”
“크하하하! 자기한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사냥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다니. 정말 애처롭기 짝이 없구나.”
광소를 터뜨린 제우스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번개를 엿보는 문’이 개방됩니다!]파츠츠!
번개와 번개로 이루어진 창문을 통해 은발의 진조가 보였다.
엘리스다.
여전히 피로 이루어진 혈계 마법을 난사해대는 걸 보니, 미리 지시한 대로 순혈의 왕관을 통해 마력을 공급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콰콰콰콰콰!
콰아아앙!
엘리스의 주위로 터무니없이 많은 수의 적들이 포진해 있었다.
“빌어먹을. 당장 피해라! 퇴로를 확보해야 한다.”
사력을 다해 지휘를 하고 있는 베리엘과 가장 선두에서 적을 막아내고 있는 엘리스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너, 너무 많습니다!”
“돌격부대는 전부 궤멸. 탈출 루트를 뚫는 데 실패했습니다.”
“방어선이… 무너집니다!”
베리엘의 혈족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마계의 온갖 마왕들이 왕관을 확보하기 위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엘리스와 베리엘이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였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 건 네놈 쪽인가 보구나.”
제우스가 느긋하게 아스트라페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