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76)
576화. 깊은 반란의 불씨 (2)
“크윽….”
엘리스가 붉은 입술을 포갰다.
순혈의 왕관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몰아닥친 마왕들.
개개인의 힘도 강력했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놈들이 끌고 온 병력의 수였다.
‘끝이 없어.’
몇 배나 몇십 배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셈하는 게 무의미한 수준의 마족과 마수들이 그야말로 물밀듯이 베리엘의 영지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왕관을…!”
“왕관만 손에 넣으면 마신께서도 우리의 비원을 들어주실 거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생포해야 해.”
모두의 눈동자에선 오롯이 한 개의 열망만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쳇. 거의 호랑이 굴에 양념을 바르고 들어온 꼴이군. 그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은 건가?”
“나도 몰라. 계약자는 그냥 최대한 오래 버티라고만 했어.”
“녀석다운 말이긴 하구나.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젠 꽤나 아슬아슬하거든.”
베리엘이 성벽을 타고 오는 적들을 바라봤다.
이미 외곽과 평야 지역을 전부 포기한 채 최대한 거점 방어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기껏해야 몇 시간.
그 안에 적들이 내성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그마저도 다른 마왕들이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견제를 해서 버티는 거지. 만약 힘을 하나로 합친다면 버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베리엘 님. 차라리 여길 버리고 잠시 몸을 피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이곳에 계속 있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어요.”
“왕관 역시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저걸 가지고 있으면 추격대가 마계 끝까지 쫓아올 거예요.”
새로 뽑은 혈족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늘어놨다.
하지만.
“안 돼.”
엘리스는 이 자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진혁이 부탁했다.
베리엘을 도와 영지를 지켜달라고.
그렇게 최대한 버티고 있으면 반드시 이기게 해주겠노라 말했다.
그 말을 믿는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계약자라면….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었으니까.
[엘리스가 개벽의 계시록 – ‘블러드 캐슬’을 발동합니다!]꿀렁!
주위에 요동치던 핏방울들이 일제히 성벽을 따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놈은 짐의 성역에 들어오거라.”
마치 살아 있는 실핏줄처럼.
성벽 전체에 혈계 마법이 덧씌워졌다.
“키에에?”
“크르르….”
거침없이 성벽을 타던 마수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퍼퍼퍼퍽!!
실핏줄에서 솟구친 가시들이 미친 듯이 침입자들을 꿰뚫어버렸다.
일종의 절대 방어.
대군용 방어 스킬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상황 속에서 빛을 발했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입을 쩍 벌릴 만큼 터무니없는 스킬이다.
‘이게 순혈의 진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인가.’
베리엘이 감탄과 경외를 담아 엘리스를 바라봤다.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인원으로 거점을 방어하는 것이.
‘재밌군.’
다시 한 번 드는 생각이지만, 진혁이라는 인간과 한 배에 타서 다행이다.
만일 다른 사도를 선택했다면 이토록 가슴 뛰는 흥분감과 고양감을 느끼지 못할 테니까.
“후퇴는 없다. 모두 끝까지 각자의 위치를 지키도록. 나는 오랜만에 다른 마왕 놈들과 인사나 좀 나누고 오지.”
베리엘 역시 흑창을 어깨에 기댄 채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 * *
열렸던 창이 닫혔다.
명계에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크하하! 보아하니 네놈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나 본데, 딱하게 됐구나. 이곳에서 발이 묶이게 생겼으니.”
제우스가 광소를 터뜨렸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린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특히 곤혹에 빠진 진혁을 보고 있자니 1,00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우리 꼬맹이 여왕님을 너무 우습게 보네. 아마 너와 내 싸움보다 오래 버틸 거니까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너 따위야 내 번개 한 방에 잿가루가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화르륵!
제우스가 눈이 시린 번개를 꺼내 들었다.
어두웠던 명계에 거대한 빛이 강림했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갑주 역시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
이것이 올림포스의 최고 주신.
‘제우스’의 완전무장이다.
‘과연…이런 느낌이었지.’
진혁이 제우스의 마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손가락을 움찔였다.
오랜만에 싸워보는 강적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일어났다.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 터.
평소라면 이 긴장감을 좀 더 즐겼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겠네.’
간을 보는 건 생략하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를 개방했다.
[‘패도의 왕관’이 발동됩니다!]나온 건 묵빛을 띤 왕관이었다.
우우웅!
전신의 신경을 따라 묵직한 마력이 흘렀다.
심장이 요동치고 감각이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래, 네놈에게도 왕관이 있었지. 무림의 그 골치 아픈 놈과 싸우기 싫어 내버려뒀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왕관까지 손에 넣도록 하겠다.”
제우스가 아스트라페를 든 채 어깨를 뒤로 젖혔다.
투창이 온다.
진혁이 자세를 잡았다.
이 거리에서 번개를 피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렇다면….
정면에서 받아내고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것뿐.
진혁이 양발로 단단히 지면을 지탱한 채 온 신경을 제우스에게 집중했다.
순간, 제우스의 주위로 모든 마력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쿠쿠쿠쿠쿠쿠!
인지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일점을 향해 응집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타들어가고 의식을 잃을 것만 같다.
“감히 신에게 덤빈 걸 후회하며 죽어라. 필멸자여.”
촤촤촤촤!
아스트라페가 쏘아졌다.
하데스의 숨통을 끊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강력하다.
진혁이 발뭉과 서리혼령의 창을 동시에 꺼내 교차했다.
동시에 ‘만다라’와 ‘별의 가호’를 통해 만들어낸 빛줄기로 전신을 감쌌다.
콰아아앙!
0.1초도 안 되는 찰나에 끔찍한 충격이 의식을 강타했다.
세포 하나하나가 갈가리 찢긴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싶다.
하지만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
한 번의 공격이 이루어진 지금이 놈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으니까.
진혁이 서리 혼령의 창을 집어 던졌다.
연기 사이로 얼음 줄기가 쇄도했다.
“……!?”
이번엔 제우스가 당황할 차례였다.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를 고작 투척하는 데 사용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뿐.
멍청하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내가 공격에만 특화되어 있는 줄 아느냐!”
[제우스가 성유물 ‘번개 갑옷’을 발동합니다!] [번개의 권능으로 인해 1m 이내에 있는 성유물의 발동이 제한됩니다.]번개들이 모여들어 갑옷의 형태로 변했다.
능력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는 사기적인 방어 스킬.
퍼억!
창이 제우스의 가슴을 꿰뚫지 못한 채 그대로 막혔다.
“그래도 제법이구나. 대충 던진 창으로 이 갑옷을 절반이나마 부수다니… 허억?”
실소를 머금던 제우스의 표정이 180도 변했다.
서리혼령의 창에서 지독한 냉기가 솟구쳤기 때문이다.
쩌저적!
얼음 가루들이 제우스의 몸에 달라붙었다.
무언가 채 해보기도 전에 갑옷은 물론, 살갗까지 얼려버렸다.
능력의 발동을 제한한다는 번개 갑옷의 권능을 무시해버리다니.
“무슨… 놈의 창이냐, 이건?”
수없이 많은 세월을 살면서 어지간한 성유물에 대해선 전부 알고 있건만.
이런 종류의 능력을 가진 창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그러나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검마천령보’를 사용한 진혁이 제우스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큭!”
제우스가 그 와중에도 반응했다.
손을 앞으로 뻗어 전격을 집어던졌다.
퍼어엉!
진혁의 몸이 새카만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아니, 변해버렸다고 생각했다.
“화, 환영이라고?”
‘잔류월광’을 통해 만들어낸 가짜.
기척이 느껴진 건 바로 위였다.
부웅!
제우스가 종이 한 장 차이로 발뭉을 피했다.
덕분에 자세가 살짝 무너졌다.
그만큼 기습은 날카로웠다.
“제법이긴 하다만….”
파츠츠!
또 다른 아스트라페 하나가 진혁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찜찜한 위화감이 가시질 않았다.
설마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시큰!
생소한 감각이 온몸을 헤집었다.
⁕ ⁕ ⁕
공격 기회는 단 한 번.
우우웅!
양손으로 잡은 발뭉에 본연의 마력과 패도의 왕관의 마력이 더해졌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섬광 같은 검격이 가로질렀다.
카가각!
서리혼령의 창으로 인해 생긴 균열에 칼날이 무게를 더했다.
한 무더기의 스파크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크아아!”
제우스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단연컨대 이런 통증은 처음이었다.진
혁이 마력을 집중하며 힘을 실어 넣으려 했다.
조금만 더 하면….
몸통을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퍼퍼퍼퍽!
진혁이 있던 자리에 번개로 만든 창들이 떨어졌다.
지면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걸레짝이 되었다.
“휴우….”
진혁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온몸이 구멍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
“이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이… 네놈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고 있는 것이냐? 올림포스의 지배자이자 앞으로 탑을 정복할 절대자가 이 몸이란 말이다!”
“확실히 칼침 한 번 놓은 게 크긴 큰가 봐.”
완전히 뚜껑이 열려버린 제우스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계의 하늘 위로 셀 수 없는 아스트라페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두 눈이 푸르게 변한 제우스가 살기를 줄기줄기 흘렸다.
[제우스가 고유성창 ‘뇌신(雷神)’을 발동합니다!]대상을 완전히 태워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는 아스트라페의 특성상 1초 무적은 소용없다.
유일한 보험은 ‘별의 가호’를 통한 부활뿐.
[고유능력 ‘트리플 매직’이 발동됩니다!]얼음과 불 그리고 번개와 빛으로 이루어진 속성 마법들이 한 번에 펼쳐졌다.
콰콰콰쾅!
파치칙!
여기저기서 천둥 소리와 굉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숫자의 차이는 확연했다.
하늘을 빼곡하게 메운 아스트라페는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제아무리 날랜 놈이라도 이 모든 걸 피하진 못하겠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맞는다면 그땐 내 승리다.”
“으음. 아스트라페 그거 한 개 만드는 데 엄청 투자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나 하나 때문에 다 사용하려고?”
진혁이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한 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아까 전에 내 동료들이 다 어디 갔냐고 했었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헤라클레스의 가족들을 찾고 있거든.”
유일한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족쇄.
그게 사라진 헤라클레스는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을 거다.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명령을 따라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고.
“지금까지 노예처럼 부려먹은 반신이 자유를 얻게 된다면 그 오랜 분노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타임 리미트가 걸린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단지.
그게 자신이 아니라는 걸 모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