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80)
580화. 은둔자의 마을 (1)
수북이 쌓인 판돈.
테이블 위에는 보기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성유물과 각종 아이템들이 넘쳐났다.
“…….”
“…….”
여기저기서 살기가 맴도는 눈빛이 번뜩였다.
가진 걸 죄다 걸어버린 탓에 뒤가 없던 것이다.
지켜보던 진혁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러길래 왜 저리 무식하게 배팅을 해서는….’
도박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린 게 없다.
저토록 앞뒤 안 재는 걸 보면 말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진혁 플레이어님?”
레이즈에 응할지 아니면 포기할지를 묻는 것이다.
글쎄 어떻게 해야 하려나.
진혁이 가진 패를 만지작거렸다.
“후후. 계약자. 짐의 패는 매우 강하느니라.”
엘리스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 패도 만만치 않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라.”
“저도예요.”
“모기이이.”
“승산은 33.25%야. 응.”
저마다 자신이 들고 있는 게 최강이라고 말하고 있다.
흐음.
홀덤의 홀 자도 모르는 게 얼마나 강한 패를 들고 있는 건진 모르겠다만….
다들 불쌍해서 어쩌나.
이런 류의 내기는 시작 전부터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되어 있는데?
[탐식의 눈이 대상의 패를 간파합니다.]이미 진혁은 모든 멤버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가 뭘 들고 있는지.
얼마를 배팅할 것이며, 블러핑을 치거나 낚시를 하려는 건지. 전부.
‘테레사 씨는 K, Q를 들고 있고 오룬 영감은 10.10파켓이라….’
두 사람 입장에선 나름 해볼 만하긴 하다.
고구마는 구마답게 9, Q 클로버.
안드리아는 10,9
프레이는 A,J
천유성은 무려 KK다.
‘와, 킹파켓이라니.’
AA에 이어 모든 패 중에서 2번째로 좋은 카드다.
하여간 이 녀석도 운은 더럽게 좋다.
동시에 하필이면 상대가 나라는 사실이 불쌍해 죽을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엘리스.
위대하신 가주님이 가진 패는 2, 7이었다.
아무래도 자존심만 센 뱀파이어는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최고인 줄 아는 모양이다.
이게 머리싸움이 아니라 기세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진심으로?
‘물가에 내놓은 애라니까.’
전투 외에는 세상 물정을 아예 모른다.
[‘행운 스탯’이 최고치로 발동된 상태입니다.]진혁이 슬쩍 자신의 패를 내려다봤다.
AA.
현존하는 최고의 패.이상한 카드만 깔리지 않는다면 가장 이길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인을 한 판에서 굳이 운에 모든 걸 맡길 필요는 없겠지.
‘행운 스탯에 다른 사람의 패를 모조리 볼 수 있다면 결국엔 모든 걸 쓸어올 수 있을 테니까.’
진혁이 최고의 패를 그대로 덮었다.
“이거 무서워서 게임을 할 수가 있나? 첫 판부터 너무 열 올리지 말고. 기왕 시작한 거 느긋하게 즐기자고.”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 ⁕ ⁕
그렇게 3시간 정도가 흐르고.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패배할 수 있는 확률은 0.0015%야. 응.”
“허허허. X발.”
여기저기서 비탄과 탄식에 잠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완벽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패배.
그동안 애지중지 모아놨던 것들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특히, A포 카드와 진혁의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만났을 땐, ‘여기 사장 나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혁이 화려한 보석이 치장된 왕관을 머리에 쓴 채 와인을 길게 들이켰다.
“캬아.”
이게 예전에 열린 탑 최대 경매에서 최상급 마정석 35개에 거래된 ‘신의 눈물’이라 불린 와인이다.
장인이 포도 한 송이 송이를 고르고 골라 1.800년에 걸쳐 숙성시킨 걸작 중의 걸작.
거기에 천유성에게서 얻은 요검 ‘류화’로 최고급 스테이크를 썰어 먹었다.
바로 그때.
콰앙!
천유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남의 패를 전부 보고 치는 것도 아니고… 승률이 100%라니. 이걸 믿으란 소리냐!”
줄기줄기 흘러나오는 살기.
검이 없는데도 칼날이 목에 닿는 것만 같았다.
“어허. 깨끗하게 승부에 승복할 줄 알아야지. 그럼, 내가 사기라도 쳤다는 소리야?”
“네놈이라면 치고도 남을 놈이다. 관련된 스킬이나 고유 능력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고.”
뜨끔!
순간, 당황해서 헛바람을 들이마실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스스로 맞다는 걸 자백하는 꼴이었으니까.
하여간 눈치는 더럽게 빨라가지고.
“크흠! 큼! 증거 없으면 함부로 의심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나도 이 모든 걸 꿀꺽할 생각은 없어. 내가 양아치도 아니고. 통 크게 인심 써서 이 지도에 있는 곳에 함께 가주기만 하면 딴 것의 반은 돌려줄게.”
이 게임을 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곧 가는 은둔자의 마을은 탑의 고인물조차 알지 못하는 지역과 인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
결국,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했다.
“그런 거라면… 그냥 같이 가자고만 해도 되는 거 아닌가?”
“맞아요. 진혁 씨 부탁이라면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모기모기!”
“하하하. 뭐 그것도 그런데, 제가 워낙 예절 교육을 잘 받아서 다른 사람의 동의를 꼭 받아야 해서.”
절대 그곳에 가면 수치스러운 일을 겪어야 한다든가.
으음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든가.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동방예의지국의 청년으로서 양심이 찔려 그러는 거다.
“수상한데….”
천유성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애병기인 류화를 이대로 잃는다면 그게 가장 큰 타격이었으니까.
결국,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은둔자의 마을로 가는 공격대가 결성되었다.
“흐음. 강진혁 플레이어님.”
홀덤이 끝나자 릭이 진혁을 불렀다.
“아, 딜링 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재밌는 게임을 했네요.”
“그건 다행이군요. 그것보다 잠시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릭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
여유롭게 게임을 즐기던 때와 달리 표정에선 진중함이 묻어나왔다.
뭔가 있는 건가.
“알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죠.”
진혁이 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리를 옮겼다.
야경이 훤히 보이는 테라스에서 새로 구한 커피를 내려 릭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릭이 조심스레 커피를 마시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취향에 맞는 거겠지.
그걸 위해서 일부러 특별한 원두와 기계를 사용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뭔가요?”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올림포스를 정복하고 나서 탑에 여러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알고 계시죠?”
“크흠. 제가 일을 좀 크게 벌리긴 했죠.”
“후우. 관리국이 완전히 뒤집어질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나머지 관리자들도 앞으로 반 년은 야근이 확정이고요.”
릭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불평이나 하자고 부른 건 아니고 사실 중요하게 말씀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제 새벽 저희 쪽에 반갑지 않은 이가 찾아왔거든요.”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면…?”
“강진혁 플레이어님도 이미 만나보셨을 겁니다. ‘운영자’라고 하는 존재들에 대해서 말이죠.”
“……!?”
이번엔 진혁의 표정에 변화가 일어날 차례다.
설마, 운영자와 접촉한 이야기를 본인이 먼저 꺼낼 줄이야.
‘릭이 놈들과 한패라면 그 사실을 최대한 숨기고 싶어했을 텐데….‘
지금까지 의심했던 정황들이 모두 망상이었단 말인가?
그게 아니면 이쪽이 눈치채고 있다는 걸 알고 먼저 선수를 친 것인가?
어느 쪽이 됐든 머리가 훨씬 더 혼란스러워졌다.
“반응을 보니 알고 계신 게 맞나 보군요.”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본 운영자의 이름은 ‘관짝송’이라고 불리는 자였습니다. 처음 보는 기묘한 힘을 썼으며 관리국의 모든 보안을 너무나 손쉽게 파훼했죠.”
그렇겠지.
제아무리 관리국이 철통이라고 하더라도. 그 모든 걸 디자인한 존재를 뛰어넘을 순 없을 테니까.
“…그래서 놈이 뭐라고 하던가요?”
“한 세력이 왕관 3개를 독점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제 50층의 제한이 풀리면서 훨씬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모든 걸 관리자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경고했죠.”
관리자들의 최우선 임무는 탑의 균형과 평화를 지키는 것.
하지만 그 모든 게 박살 나게 생겼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관짝송은 그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파고든 것이다.
“……관리자들이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나오게 되겠군요.”
“벤디비아와 전 반대했습니다만…. 이미 대부분의 관리자들이 관짝송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입장입니다. 앞으로 고인물 코퍼레이션 분들에게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상황들이 펼쳐지겠죠. 예를 들어….”
릭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다음 행선지에 ‘아포칼립스’를 풀어놓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나온 말은 짧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건 엄청나게 중요한 정보다.
‘아포칼립스’를 특정한 것만으로도 적이 다음으로 움직일 경우의 수가 대폭 축소되었으니.
“그런데, 그런 내부 정보를 당사자인 저에게 말해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예? 제가 뭔가 말했나요? 전 그저 맛있는 커피에 대한 감상평을 혼자 중얼거렸을 뿐입니다만?”
릭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하. 아뇨…. 아닙니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들었나 보네요.”
이걸로 릭에 대한 평가가 조금 수정됐다.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팔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날 밤.
우우웅!
게이트가 열리며 공간이 길게 좌우로 갈라졌다.
[탑 ??층. 히든 플레이스 ‘은둔자의 마을’에 입장합니다.]회색빛으로 물든 하늘과 차가운 바람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을 맞이했다.
“여기가 진혁 씨가 조심해야 한다고 하던 그곳인가요….”
“확실히… 평범한 층계는 아닌 것 같군.”
테레사와 천유성이 경계가 가득 섞인 투로 중얼거렸다.
공기를 통해 전해지는 음습한 마력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층계 전체가 유령도시인 것처럼 안개까지 짙게 깔려 있었다.
“저기 저 앞에 마을이 보이는데, 저쪽에 먼저 가 봐야 할까요?”
안드리아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서 흐릿했지만, 마을로 보이는 외견이 드문드문 보였다.
“맞아. 아! 근데 잠깐만….”
모두가 움직이려 하는 걸 진혁이 불러세웠다.
“또 뭐냐?”
“그 꼴로 가면 우리가 다른 층계에서 왔다고 광고를 하는 거나 다름없을걸?”
탑에서도 가장 끔찍하고 무자비한 범죄자들이 모이는 쓰레기통이 저곳이다.
이렇게 뽀얀 모습으로 갔다간 순식간에 난도질당할 터.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면 그에 걸맞은 모습을 할 필요가 있었다.
“설마….”
평소 코스프레에 트라우마가 있던 천유성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유경험자는 이래서 좋다.
자신의 운명을 빠르게 직감했으니까.
“맞아. 그 설마야.”
진혁이 생긋 웃었다.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각종 의상과 분장 도구가 우르르 쏟아졌다.
차마 입에 담긴 힘든.
지나가던 범죄자도 동료라고 오인할 만한 파렴치한 옷들이었다.
“다들 약속했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지금부터는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아니라, 고인물 해적단이 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