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83)
583화. 사멸자의 유물 (1)
꿀꺽….
“흐음.”
“아포…칼립스라….”
여기저기서 침 넘어가는 소리와 깊은 한숨 소리가 교차했다.
아무리 탑에 관심을 끊었다고 해도. 층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최악의 재앙에 관해서까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진혁의 말대로 당장 동맹을 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군.”
모두가 믿는 와중에도 마더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겁니까?”
“아니… 아포칼립스 자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이 정도 위험부담을 지고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의심이 가는 건 다른 이유다.
아포칼립스는 발동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울뿐더러,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는 희귀 현상.
그런데.
“그런 일이 왜 탑과는 인연이 끊어진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거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탑에서조차 버림받은 곳이 바로 이 ‘은둔자의 마을’이었으니까.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덩치는 산만해서 의외로 예리한 구석이 있네.
진혁이 재빨리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거야….”
“설마, 너희 때문은 아니겠지?”
“……!?”
순간, 너무 놀라 헛바람을 내뱉을 뻔했다.
정곡을 찔려도 아주 제대로 찔렸으니까.
그러나 표정에 나타난 당혹감은 채 0.1초도 되지 않았다.
“우리가 아포칼립스를 몰고 왔다는 건 지나친 억측 아닌가? 애초에 우리가 아포칼립스와 연관될 정도의 인물들이라면 당신이 우릴 모를 리가 없잖아? 십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아닌 다른 층계에 있었을 테니.”
최악의 재앙과 관련되었다면 상위 세력이나 거대 신화와 연관이 되어 있을 수밖에.
평범한 거주자들 때문에 이런 대형 이벤트가 생긴 경우는 전무했다.
그렇다고 십 년 남짓한 기간에 상층까지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는 건 더욱더 말이 안 되는 일.
결국, 진혁이 아포칼립스와 연관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는 가정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마더의 의심이 일부나마 풀렸다.
“그것도 맞는 말이군. 하지만,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다. 어째서 아포칼립스가 이런 외진 곳에 관심을 갖게 된 건지에 대한.”
마더의 질문에 진혁의 입에서 낯선 이름 하나가 튀어나왔다.
“사멸자.”
누군가를 지칭하는.
흔하디 흔한 이름 하나.
그러나 그 이름이 갖는 의미와 무게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낳을 수 있었다.
“…….”
이번엔 마더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진혁과 마찬가지로 0.1초 남짓한 찰나의 변화였지만, 차이점이라면 진혁은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시 알고 있었군.‘
과거 탑을 오르던 랭커.
지금 클로에가 갖고 있는 ‘속사의 랭커’의 원류가 바로 사멸자였다.
클로에 역시 그 흔적을 찾아 이 은둔자의 마을에 들어왔고. 지난 십몇 년의 세월 동안 몇 가지 단서 정도는 모았을 터.
이 점을 잘만 설계한다면 놈이 남긴 유품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어, 어떻게… 네가 그분을 알고 있는 거지?”
그분이라….
거 참, 한참 전에 죽은 인물을 어지간히 숭상하고 있는 모양인가 보네.
누가 보면 평생을 모시고 산 스승님인 줄 알겠다.
그래도 팬심 덕분에 일은 훨씬 더 쉽게 풀리게 됐다.
어디 보자.
콘셉트를 어떻게 잡으면 좋으려나?
잠깐 고민하던 진혁이 다시 한 번 빠르게 리볼버를 놀렸다.
촤르르르…타앙!
한 발의 탄환이 허공을 꿰뚫었다.
노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툭!
날개를 잃은 파리가 그대로 테이블 위에서 파닥이는 걸 보기 전까진.
아직까지 파닥거리는 게 숨통은 완벽하게 붙어 있는 상태였다.
“내가 그분의 유일한 직계 제자거든. 정확히는 스승님의 스승님의 스승님의… 아무튼 겁나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 사멸자가 계셨지.”
숭상하던 이의 후계자.
이건 못 참을 거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마더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반가움과 놀라움을 쏟아낼 거라는 것과는 반대로 혼란과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분에게 제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워낙 베일에 싸이신 분이니까. 당연히 정보가 제한되었을 거야. 하지만 방금 전 내 솜씨를 보면….”
“아니, 그런 말이 아니다. 바로 몇 달 전에 그분께서 내게 직접 말씀하셨다. 내가 그분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
빌어먹을.
사멸자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이번엔 표정 관리에 완벽하게 실패했다.
온갖 경우의 수를 죄다 계산하고 왔건만, 설마 이런 가능성이 튀어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 * *
릭이 아포칼립스가 일어날 거라 했을 때, 정확히 어떤 종류의 아포칼립스가 일어날지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머릿속에 눌어붙어 있었다.
베헤모스와 크라켄이라는 아포칼립스가 이미 끝난 시점에서 또다시 굵직하게 쓸 만한 카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놈을 죽이지 않았던 거였나.’
50층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몇 안 되는 랭커.
당연히 그 뿌리를 짓밟아 놨을 거라 생각했건만, 50층은 사멸자를 제거하지 않았다.
대신 이 은둔자에 마을에 가둬둔 채 철저하게 정보를 은폐해 뒀지.
먼 미래에,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밀 수 있는 또 다른 적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골치 아프게 됐네.’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어째서 놈들이 과거 탑을 올랐을 때 사멸자를 사용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현실이 된 지금 새롭게 개입된 변수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어느 쪽이든 가능성은 열려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유와 원인을 찾는 게 아니다.
눈앞에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총잡이들을 상대하는 게 우선이지.
“증명해라. 네가 정말 그분의 제자라는 걸.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철컹!
드르륵….
여기저기서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
술집 안에 있는 마피아들의 숫자는 총 78명.
상대하지 못할 건 아니었으나, 난전이 될 경우 이쪽에서도 희생자가 나올 확률이 있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움직일 타이밍을 엿봤다.
팽팽하게 시위가 당겨진 듯한 상황.
툭!
진혁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놓았다.
룬어가 새겨진 탄환이다.
“이건….”
마더가 테이블 위에 떨어진 은탄을 덥썩 집어들었다.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각인이 인상적이다.
특유의 이니셜 ‘S’가 새겨진 그리고 육망성과 고대 룬어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문양은 틀림없는 사멸자의 유물 중 하나였다.
“내가 사멸자 님의 제자가 아니라면 이런 건 어떻게 가지고 있을까?”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에 마더가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확실하군.”
더 이상 의심하는 건 억지의 영역.
이제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제우스에게 감사를…!
평생 동안 열심히 모아둔 유품. 이쪽에서 아주 요긴하게 자알 쓰겠습니다.
“같은 제자들끼리 잘 지내보자고요. 아!”
진혁이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마주쳤다.
“보아하니 내 쪽이 직계고 그쪽은 방계 같은데, 크흠! 뭐, 선배 대접 받으려는 건 아니고 족보가 꼬이지 않으려면 서열 정리는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제가 꼰대 짓에는 진짜 관심이 없는데, 나중에 스승님이 보시게 되면 굉장히 불편해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무언가를 팔 때 스승팔이만큼 좋은 게 없다.
더욱이 그 스승이 무자비하기로 악명이 높다면 더욱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짐도 계약자의 말에 동의한다. 자고로 위아래가 명확해야 권위가 서는 법. 또한 짐 역시 해적단의 NO2라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라마.”
“나도 저 빌어먹을 놈과 라이벌 관계니 앞으로 편하게 대하겠다.”
“힐러가 귀족인 건 다들 아시리라 믿어요.”
“대장장이 역시 중요한 포지션이지. 아무리 못해도 서열 5위 안에는 넣어줘야 한다.”
“모기모기!”
여기저기서 자신을 대우해달라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졸지에 마피아들은 엄한 상전이 여러 명 생기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악독한 것들로만.
하지만, 다른 존재도 아니고. 사멸자와 관련이 있는 자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 앞으로…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마더가 쇳물을 삼키는 심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표정은 좀 풀고요. 기분 나빠지려 하니까.”
“죄…송합니다.”
완전히 그어진 위아래.
마더가 꼬리를 마는 것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은둔자의 마을, ‘남쪽의 바운티 헌터’와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임시 동맹이 체결되었습니다.] [악명이 +1,000씩 추가 상승합니다.] [마을에 있는 나머지 세력들이 새로운 세력 변화를 인지합니다.]이제는 은둔자의 마을에 거대한 폭풍이 몰아칠 차례였다.
* * *
새로 나타난 드잡이들이 바운티 헌터를 통째로 흡수해버렸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을 전체가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기존에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던 세력 균형이 한 방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결국, 각 세력을 대표하는 랭커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 ‘마더’가 항복을 한 거지?”
“엄청나게 강한 놈들이란 걸 수도 있지. 듣자 하니 자신들의 아지트인 술집에서 만났다고 하던데.”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마더가 머리를 숙인다는 건 말이 안 돼. 차라리 전부 죽었으면 죽었지.”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차라리 탑 밖에서 놈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는 건 어떨까? 이 정도 되는 강자들이라면 분명 뭐라도 소문이 났을 거야.”
“아니, 그건 마을의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잊지 않았겠지? 우리는 탑에서 도망친 은둔자들이고. 이곳은 철저하게 그곳과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걸?”
“그래… 알고 있다.”
1급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임에도 이곳이 탑의 거대 세력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이유.
그건 완벽하게 탑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불가침 조약을 지키는 한, 이곳은 이곳만의 세상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는 소리다.
다시 한 번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끼이익….
적막을 깨고 나무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분명 회의 중에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을… 허억?”
말을 하던 랭커가 헛숨을 들이마셨다.
경비를 맡긴 부하들이 모조리 쓰러져 있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방금 들어온 이들에게서 풍기는 기운이었다.
오싹!
전신의 솜털이 모조리 곤두섰다.
맹수 앞에 선 초식 동물처럼.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압도적인 절망을 마주했다.
덜덜덜!
팔과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어온 강자 중에 강자들이지만, 본능적인 공포를 억누를 순 없었다.
“흐음. 그래도 한 자리에 다 모여 있어서 일일이 찾는 수고는 덜 수 있게 됐군요.”
기다란 지팡이가 바닥 위로 질질 끌렸다.
드르륵. 드드득!
기분 나쁜 불협화음이 고막을 두드렸다.
동시에, 보랏빛으로 얼룩진 촉수들이 내부를 빼곡히 메우기 시작했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절로 나오는 존칭.
이곳에 있는 모두가 덤벼도 상대도 되지 않을 거다.
아니, 전원의 목숨을 내던지더라도 저자의 피부 한 꺼풀을 가져갈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둘 사이의 격차는 절대적이었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뭐, 그것까지 당신들이 알 필요는 없고. 그냥 편하게 니알라토텝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 친구는 이번 일을 도와주러 온 조력자고요.”
“…….”
니알라토텝의 옆에는 두건을 두른 이가 서 있었다.
시체 썩는 지독한 냄새와 그보다 더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살아 있는 존재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자다.
“제가 여러분께 온 건 살아남을 수 있는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함입니다. 굉장히 골치 아픈 놈이 이곳에 왔는데, 처음엔 귀엽게 봐줬더니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머리 끝까지 기어오르려고 하더군요.”
재롱잔치는 선을 안 넘을 때나 귀여운 법.
“해서 이번에는 좀 더 완벽하게 사냥을 해볼까 합니다. 지금도 완벽하긴 하지만, 아마 여러분의 도움이 있다면 더욱 완벽해지겠죠?”
이건 최후의 동아줄이다.
잡는 자는 살아남을 테고.
거절한다면 즉시 죽게 되는.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있어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