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86)
586화. 최악의 아포칼립스 (1)
끼기긱! 끼이익…!
기괴한 불협화음이 고막을 찔렀다.
전신에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한 감촉이 목덜미를 타고 퍼져나갔다.
기껏해야 몇 초.
그 뒤엔 고문 기구의 이름처럼 두개골이 박살나버릴 것이다.
바로 그때.
-나에게 맡겨. 신성력 따윈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날뛸 수 있게 해줄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달콤한 악마의 유혹이다.
‘안…돼.’
하지만 ‘타락’을 사용할 때마다 아주 조금씩 본인의 인격을 빼앗기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상. 저주받은 힘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최악의 경우 나중에는 자신의 검이 향하는 곳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
-너도 알잖아. 내가 움직이는 게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는 걸. 나라면 저기 있는 지저분한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어.
재차 울려퍼지는 목소리.
“으윽…!”
테레사가 모든 마력을 동원해 헤드 크래셔를 파훼하려 했다.
허나, 신성력과는 상극의 힘이 은은하게 빛나는 별빛을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이제 남은 건 1초.
끼긱!
격철이 맞물렸다.
녹슨 철로 만든 고문 기구가 덜컥였다.
그런데. 나사가 조여지기 바로 직전.
카아앙! 강기를 듬뿍 머금은 검이 고문 기구를 베어버렸다.
잘린 철에서 붉은 열이 일렁였다.
“성기사가 싸우기엔 최악이군.”
천유성이 앞으로 나섰다.
“유성 씨….”
“저 녀석은 내가 맡겠다.”
“하지만…!”
“인격을 교체한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신성력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거다. 쓰러뜨린다면 정면 승부가 가능한 내 쪽이 낫겠지.”
“미안해요.”
“괜찮다. 쉬고 있어라.”
천유성이 류화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차갑게 갈무리된 살기가 모조리 검집 안에 응축되었다.
발로는 단단히 지면을 지탱하고.
몸은 활처럼 팽팽해졌다.
“누가 오든 소용없다. 네놈들하고 난 살아온 세월이 다르니까.”
카트란이 그에 맞서 거대한 낫을 뒤로 젖혔다.
동시에 무시무시한 마력이 한 곳으로 응집되었다.
쿠쿠쿠쿠쿠!
지금까지 고문하며 죽인 이들의 원념과 쌓아온 악행이 모이더니 이내 하나의 형을 이루었다.
[고문실체화 – ‘아이언 메이든’이 발동됩니다!]쩌저적!
수많은 이들을 공포 속에 죽게 한 고문기구.
그 누구라도 이 안에 갇히면 거짓된 진실이라도 실토하며 자비를 구하게 된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유 성창 ‘참회의 시간’이 발동됩니다!] [제한 시간 0h : 9m : 59s] [제한 시간 내에 아이언 메이든을 파괴하지 못한다면 능력의 발동 대상 안에 있는 생명체를 소멸시킵니다.]“이 마을에서만큼은 난 탑의 주신들에 육박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절대 판정의 효과가 붙은 고유 성창.
이것이 카트란이 지닌 최악의 능력이다.
“별거 아닌 능력이군. 설명은 거창하지만 결국엔 그 쓸데없이 거대하기만 한 고문기구만 박살내면 끝이라는 소리 아닌가?”
“할 수 있다면….”
카트란이 낫으로 허공을 그었다.
우우웅!
갈라진 틈 사이로 새의 부리 가면을 쓴 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원이 검은 오러와 시독(尸毒)을 다룰 줄 아는 강자들이었다.
“…어디 얼마든지 다가와 보거라. 지금까지 이 진형을 뚫은 적은 없었으니까.”
겹겹이 쌓인 적들이 천유성과 카트란 사이를 가득 채웠다.
테레사와 안드리아가 있다고 한들 도저히 10분 안에 도달하기 힘든 숫자였다.
“사, 살가죽을 죄… 죄다 벗겨주지. 벗겨줄 거야. 히히히… 히히.”
“살려달라고 애걸하게 만들어주겠다.”
“저 조각 같은 얼굴이 어떤 식으로 변할지 기대돼서 미칠 것만 같아.”
각종 고문기구로 무장한 부리 가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시간 제약에 절망적인 물량.
그러나 압도적인 격차에도 불구하고 천유성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우우웅!
검끝을 따라 공명하는 푸른 기운.
‘시험해 볼까.’
천유성이 검의 노래에 맞춰 호흡을 극한까지 조절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앞을 봐야 할 순간에 두 눈을 감았다.
적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며 새하얗게 물든 심상 세계엔 오롯이 자신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누구도 있어서는 안 될 세계에 자신과 또 하나의 인물이 서 있었다.
수천, 수만 번.
단 한 명의 존재를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그 존재에게 인정받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그럼에도 발끝조차 미치지 못했던 현실에 절망하고 또 좌절했다.
이제는 현실과 타협할 때도 됐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애증을 넘어 이상향이 되어버린 존재.
‘너를 쓰러뜨리고….’
파츠츠!
응축된 마력이 한계를 넘어섰다.
작은 검집 속에 폭풍이 담겼다.
‘내가 탑의 정상에 오르겠다.’
그게 이 세계에 잔류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
백야추혼검(白夜追魂劍).
기존의 완성된 검에.
제1식(第一式).
자신의 색을 집어 넣는다.
최강의 라이벌을 꺾기 위해 만들어낸,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발도술.
이것이.
‘신검발도(神劍拔刀)’
단 하나의 존재를 넘어서기 위해 고안해낸 일검이다.
초식이 완성되자 한 줄기 섬광이 대기를 갈랐다.
서걱!
한 점의 군더더기도 찾아볼 수 없는 최강의 발도였다.
직선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좌우로 갈라져 흘러내렸다.
“컥… 커억?”
“킥….”
수백의 부리 가면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당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피 분수가 쏟아지면서 카트란과 천유성 사이에 길이 열렸다.
[탑에 새로운 검이 탄생했습니다.] [시스템이 플레이어 천유성에게 ‘검성’의 칭호를 수여합니다.] [놀랄 만한 업적은 내일 하루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탑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검의 정점에 이른 이가 천유성이라는 것을.
“허억…. 허억.”
천유성이 참았던 호흡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드디어 검을 완성시켰다는 기쁨과 함께 전신에 엄청난 피로도가 몰려왔다.
한계를 넘어선 집중력이 모든 체력을 먹어치워버린 탓이었다.
부우웅….
…콰아앙!
무시무시한 파공성 뒤에 끔찍한 충격이 찾아왔다.
천유성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튕겨나갔다.
“크읍!”
솔직히 말해 방금 전 공격을 막아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특유의 반사신경이 아니었다면 두 동강이 나버렸을 것이다.
문제는….
기적이라는 건 보통 한 번으로 끝나버린다는 점이다.
“감히… 감히 내가 애지중지 모은 아이들을 다 죽여 버리다니. 보기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놈이로구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카트란이 흉흉한 살기를 내뿜었다.
자신의 반쪽이나 다름없던 이들을 잃었으니 당연히 분노가 넘쳐 흐를 수밖에.
“하지만 시스템의 인정을 받은 놈이라도 아직까지 그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아니더냐?”
카트란이 낫을 높게 치켜들었다.
천유성이 몸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덜덜 떨리는 팔과 다리는 마음처럼 반응하지 못했다.
물을 먹은 솜마냥, 모든 것이 너무도 무겁게만 느껴졌다.
“빌어…먹을.”
천유성이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문 채 카트란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정말로 끝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건 목으로 파고드는 날붙이의 감촉이 아니었다.
카아앙!
먼저 날과 날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발생했고.
뒤이어 달짝지근한 목소리가 바로 옆 귓가에 속삭였다.
“답답해빠진 우리 순딩이나 남자에게 미친 당신이나 2% 부족한 건 마찬가지라니까.”
[테레사가 ‘타락’을 발동합니다.] [인격이 교체됩니다.]파츠츠…!
카트란과는 궤가 다른.
매혹적이면서 끈적끈적한 기운이 솟구쳤다.
“저 고문녀에겐 있고 너희들에겐 부족한 게 뭔지 알아?”
검게 물든 갑주와 검.
두꺼웠던 갑주는 얇아지다 못해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공수의 탄탄함은 성기사였을 때보다 몇 배는 강렬했다.
“바로 광기야.”
소중한 사람이니 이뤄야 할 목표니 뭐니 하는 거창한 것들이 있는 게 문제다.
순수하게 적을 죽이고 살과 뼈를 베어버리는 것.
그 단순한 쾌감에 중독되어야지만 비로소 한 단계 높은 차원에 이를 수 있다.
“지금부터 내가 보여줄게. 진짜 미친 것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카가각….
테레사가 검으로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만면에는 피처럼 진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 * *
카카가강!
무수히 교차하는 그림자 속.
진혁과 엘리스가 앞을 향해 내달렸다.
엄청나게 빠르고 강력한 돌파력이다.
“놈들이 인법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각종 환술과 인법이 중첩된 대결계.
적을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수 있는 최고의 사냥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마을의 고수들 역시 태반이 전투 불능의 상황에 빠졌다.
은둔자의 마을에 있는 다른 거대 세력과 전면전을 치른 것도 아니고. 탑의 주신들이 쳐들어온 것도 아닐진대.
고작 두 명에게 이런 피해를 입었다는 건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그 정도로 진혁과 엘리스의 조합은 위협적이었다.
“지독한 놈들.”
2m가 넘는 수리검을 든 고령의 닌자가 혀를 찼다.
지금까지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을 여럿 상대해봤지만. 이토록 무지막지한 놈들은 처음이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콰콰콰쾅!
촘촘했던 포위망에 구멍이 생겼다.
침입자들이 마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 몰아넣고 있겠지?”
지옥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도 했다.
“예. 의심 따윈 하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저 길이 맞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흐음. 이제부터는 놈들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이 앞은 최악의 미로.
한번 들어가면 내부자의 안내 없인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
실제로 탑의 대영웅 급 중 여럿이 이 안으로 들어왔다가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다.
척.
닌자들이 그 자리에서 추격을 멈췄다.
같은 시각.
마을 안을 헤집던 엘리스는 무언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길을 따라 아무리 달려도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계약자. 이거 뭔가….”
“그래. 확실히 장난질을 제대로 쳐놨나 보네.”
광역 탐색 스킬인 ‘천라지망’으로도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
완벽한 미로라는 소리다.
“갇힌 것이냐?”
“아마도….”
미로를 공략하는 방법은 알고 있다.
이 정도 난이도 높은 미로는 각 설계자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는데, 그 특성들을 파악해 역으로 거슬러 갈 수 있으면 된다.
문제는 시간.
아무리 탑의 온갖 미로를 공략한 진혁이라도 단기간에 공략법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그럼, 큰일이로구나. 1분 1초가 급하거늘….”
엘리스가 송곳니를 살짝 드러냈다.
외통수에 몰렸을 때 하는 특유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보험을 하나 들어놨거든.”
고구마를 통해 마더에게 전달하라 한 메시지.
그중 하나가 빛을 발할 시간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벅.
골목의 그림자 너머로 새로운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