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87)
587화. 최악의 아포칼립스 (2)
저벅.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익숙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정말 사람 한 번 꼬시는 재주는 남다르시군요. 이곳은 저도 별로 탐험하고 싶지 않은 장소인데 말입니다.”
탑의 위대한 탐험가 ‘페시스’.
최악의 미궁에서조차 길을 찾아내는 그의 길 찾기 능력이라면, 은둔자의 마을에서도 가장 안전한 루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득이하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한 일을 처리하는 중이셨을 텐데 죄송하네요.”
“하하하. 아닙니다. 그보다 제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네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갔던 곳인데….”
“대충 찍어 맞춰봤습니다. 페시스 씨라면 왠지 그곳에 갔을 것 같아서요.”
지금 타이밍쯤에 페시스는 한창 ‘요틀레암 협곡’을 탐험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 협곡은 아직까지 탑의 거주자들 중 그 누구도 끝을 보지 못한 험지.
당연히 페시스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을 거다.
하지만.
그 대단한 페시스가 무려 2달이란 시간 동안 허탕만 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창의적으로 생각해도 제자리걸음만 했다는 소리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진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요틀레암 협곡을 끝까지 주파하기 위해선 단순히 길을 잘 찾기만 해서는 안 된다.
숲의 정령들과의 친밀도를 일정 이상 올리기 전까진 숨겨진 길 자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정 이상 친밀도를 올리더라도 숲을 통과하는 데 3개의 히든 피스가 필요했다.
하나같이 극악의 입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들로만 말이다.
그런 포인트를 모른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용없을 터.
“제가 마침 그곳에 가본 적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숲으로 나들이나 가보죠.”
“직접 같이 와주시겠다는 겁니까? 정보만 주시는 게 아니라요?”
요틀레암 협곡은 공교롭게도 천유성과 함께 가기로 약속한 곳이기도 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게 된 셈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어디까지나 희생하는 마음과 선의를 베푸는 인류애로 포장해야 한다.
“물론,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믿고 돕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가 제 삶의 모토이거든요.”
진혁이 생긋 웃었다.
일말의 의심마저 녹여버릴 정도로 따사로운 미소였다.
“하하, 역시 진혁 님은 정말 이타적인 분이셨군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최선을 다해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페시스가 ‘탐색’ 스킬을 발동합니다!]새로운 루트가 펼쳐졌다.
* * *
“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은둔자의 마을을 지배하는 세력들이 저마다 헛바람을 내뱉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돌파된 적 없는 난공불락의 미로.
최고의 닌자들과 미로 설계자들이 투입되어 완성시킨 게 바로 이 걸작이었다.
그러나.
이 미로는 더 이상 완벽함의 상징이 되지 못했다.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돌파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멍하니 보고 있지만 말고 진법을 발동시켜라! 저대로 가만히 놔둘 것이냐!”
상급 닌자의 호통에 미로 설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인법과 주술 그리고 환술.
겹겹이 쳐진 방어 주문에 미로 군데군데의 모양이 시시각각 변했다.
쿠쿠…쿠쿠쿠쿵!
드르륵…철컹!
길이 아닌 곳에 길이 생기고. 기존의 길이 없어진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지형과 지물 속에선 규칙 따위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단 한 명.
“이쪽입니다.”
페시스를 제외하곤.
탓!
좌우로 길게 갈라진 틈을 지나 쭉 뻗은 외길이 나왔다.
검게 물든 어둠 속은 얼핏 봐도 위험해 보였다.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 만큼.그러나 페시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심층부까지 파고들었다.
수많은 함정들이 발동되었지만, 페시스가 손을 쓰는 게 언제나 한 발 더 빨랐다.
‘역시 대단하긴 대단하네.’
진혁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름대로 미로를 공략하는 방법을 궁리해봤으나, 페시스처럼 기발하고 참신한 길을 찾진 못했다.
다시 한번 봐도 천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탑에 있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킬 만큼.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의 뛰어난 재능을 영원히 부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복사 조건: 위대한 탐험가인 페시스는 지금껏 수많은 업적을 달성했지만, 그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페시스의 업적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준다면 그가 가진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칭찬이 과하면 과할수록 높은 랭크의 능력을 복사할 수 있습니다.)]한마디로 극한까지 빨아주란 이야기다.
차고 넘치다 못해 기분이 나쁠 정도로.
“크흠!”
함정이 조금 잠잠해지자 진혁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울리지 않게 칭찬을 하려니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겁니까?”
“그래. 계약자가 배가 고픈 게로구나. 잠시 숨 좀 고를 겸 풀코스 식사랑 디저트를 먹는 게 어떠냐? 절대 짐이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계약자가 허기져 보여서 그러는 것이다. 꼴깍.”
쟤는 배 안에 걸신이라도 들어온 건가.
어떻게 하면 하루 종일 먹는 생각뿐이냐.
“그게 아니라 페시스 씨의 길 찾는 능력이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와서요. 어떻게 하면 그런 눈썰미를 가질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있어야죠.”
“하하하. 과찬의 말씀을. 아무렴 제 미천한 능력이 신격들도 인정한 강진혁 플레이어님만 하겠습니까?”
아니, 칭찬해주려 했더니 오히려 이쪽을 칭찬해주면 어떡하냐.
겸양이 몸에 배어 있다 못해 찌든 상태다.
하여간 이런 꽉 막힌 놈들을 띄워주기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얼굴에 철판을 까는 거야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
무엇보다 분명히 봤다.
페시스의 입꼬리가 아주 미미하게 씰룩이는 것을 말이다.
칭찬에 목말라 있던 페시스에게 있어 이쪽의 인정은 달가울 수밖에 없겠지.
좋아.
단맛을 좋아한다면 당뇨에 걸릴 만큼 목구멍까지 설탕을 쑤셔넣어주마.
“그깟 신들에게 인정받는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정작 길 하나 제대로 못 찾는 길치인데? 그에 비해 페시스 씨는 난공불락의 미로를 막힘 없이 공략할 수 있죠. 탑을 오르는 데 있어 최고의 재능이라면 바로 페시스 씨의 것일 겁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싸움 좀 할 줄 아는 사냥개, 아니, 사마귀에 불과합죠. 암요.”
“…가, 강진혁 플레이어님?”
“계약자. 뭐 잘못 처먹었느냐?”
두 명의 얼굴이 생전 처음 보는 형태로 변했다.
어이가 없겠지.
이해한다.
말을 하는 나도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었으니.
[시스템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합니다!] [더욱더 자신을 폄하하고 상대를 치켜세우라고 닦달합니다!]하앍거리는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다시 한 번 생각하지만, 시스템이라는 게 보통 변태가 아니다.
허나, 능력만 복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능력을 토대로 더 높은 차원의 능력을 융합할 수만 있다면!
잠깐의 수치와 흑역사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저는 페시스 씨가 부럽습니다. 그리고 또 당신과 함께하는 이 여정이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이 미로 공략은 훗날 탑의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될 것이며, 결국에 한 신화로서 기록될 테니까요! 저는 그 위대한 원정을 이끄는 영웅의 짐꾼 정도로 회자될 순 있겠죠!”
진혁이 열변을 토했다.
성공을 알리는 상태창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그, 그만…. 부탁드립니다. 제발 누가 들을까 봐 겁나니 그만해 주십시오.”
“계약자. 짐은 지금 살심을 억누르느라 굉장히 노력하고 있느니라.”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오른 페시스와.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엘리스.
그리고 낄낄대는 시스템 창이 온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띠링!
[능력 복사에 성공하였습니다.]시스템 빼고 모두가 괴로운 이 악몽은 한참이나 지난 후에서야 간신히 끝을 맞이할 수 있었다.
* * *
세 갈래 방향으로 침입한 적들.
처음에는 고작 열댓 명도 안 되는 놈들 따위야 순식간에 박살낼 것이라 확신했다.
은둔자의 마을을 사분하는 세력 중 무려 셋이 연합을 했으니 당연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설령 이곳에 온 게 신들이라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결과를 까고 보니 상황은 완전히 예상을 뒤엎어버렸다.
강하다.
압도적일 만큼.
신흥 세력인 해적단은 숫자는 적으나 어지간한 거대 세력보다 강한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흐음. 역시 오합지졸들로는 안 되는 건가.”
니알라토텝이 턱을 긁적였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너무나 평온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시간 벌이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녹색 가루의 농도가 70%를 넘겼으니까요.”
올드 가드들 역시 태연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모두를 한낱 도구로만 취급하는 모습이….
……마을을 이끄는 이들의 인내심을 건드렸다.
“우리가 시간 벌이밖에 안 된다고?”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퍼어엉!
말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고령의 닌자가 한 줌 핏물이 되어 흩어졌다.
고문술사 중 하나는 몸이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후두둑.
몇 안 되는 육편만이 바닥을 지저분하게 어지럽혔다.
니알라토텝이 보랏빛 촉수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냈다.
“조금 귀여워해 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군요. 사냥개는 사냥이라도 잘 해야 하는 법인데, 그대들은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질 않습니까?”
싸늘하게 변해버린 말투.
한번이라도 대꾸라도 했다간. 아니, 대꾸하려는 시늉이나 동작조차 했다간 죽는다.
그런 공포감이 심장을 옥죄어왔다.
방금 전까지 자존심을 세우려던 이들이 삽시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만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는 위대하신 분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의외로 니알라토텝의 살기는 너무나 쉽게 누그러졌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법 크게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지만, 잔존 병력을 모으면 아직 충분히 반격을 가할 수 있을 터. 약간의 시간만 주신다면 광장에서 또다른 기습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들의 역할은 여기서 끝났으니까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버러지들을 긁어모아봤자 어차피 결과는 똑같을 테니, 굳이 번거롭게 기습 같이 귀찮은 걸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입니다. 아! 정확히는 마지막으로 해줘야 할 게 한 가지 남아 있긴 하네요.”
두건을 쓰고 있는 이가 말없이 니알라토텝의 곁으로 다가왔다.
사멸자.
과거 태고의 존재들에게 위협을 가했던 괴물이다.
[아포칼립스의 전조가 매우 강하게 일어납니다.] [완전한 발동까지 한 가지 조건만을 남겨두었습니다.]“전부 먹어치워.”
니알라토텝이 나지막이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