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92)
592화. 탑 건 (3)
저벅.
니알라토텝의 곁에 나타난 건 늘씬한 체형의 무희였다.
겉으로는 지독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외모.
하지만,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일개 무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강하다.
그 어떤 절대자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툴차’.
50층을 지배하는 태고의 존재 중 하나이며 아자토스의 궁전에서 그의 유희를 담당하는 죽음의 무희였다.
워낙 모든 걸 따분해하는 아자토스를 유일하게 즐겁게 해주는 역할이었기에, 툴차의 위치는 50층 내에서도 꽤나 높은 축에 속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냐? 시스템의 제약이 완화됐다고 해도 네가 여기 올 정도는 아닐 텐데?”
니알라토텝의 미간이 대번에 구겨졌다.
툴차는 여러 의미에서 마주하기 껄끄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아아. 내가 온 거? 릭이 힘을 좀 써줬어. 궁전에만 있으려니 좀 갑갑해야지.”
“릭이…?”
“응. 네가 고전하고 있으니 겸사겸사 도와주라고 하던데? 내가 현현할 수 있게 제약을 풀어주겠다고 하면서. 아, 물론 부탁 한 가지를 들어줘야 한다고 하긴 했어. 궁전에서 기르는 묘목 하나만 달라고 하더라고. 꼭 한 번 키워보고 싶다나 뭐라나.”
아자토스의 궁전에 있는 나무들은 보라색 마력을 내뿜는 특별한 나무들이다.
원래라면 결코 외부로 반출해서는 안 되는 태고의 생물.
그런데 그걸 달라고 하다니….
니알라토텝의 뜻을 간파한 툴차가 걱정 말라는 듯 한 마디 덧붙였다.
“어떤 거 때문에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진 알겠는데, 묘목이 완전히 자라날 일은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그건… 그렇지.”
50층의 특수한 환경과 거름 그리고 물. 이 모든 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을 때만 자랄 수 있는 게 ‘권태의 묘목’이다.
제아무리 릭이라 해도 그걸 가능하게 할 순 없을 터.
상급 관리자면서 동시에 대상단을 운영하는 수집가답게, 그저 묘목을 소장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옳으리라.
“여긴 걱정 말고 우둔한 골짜기로 가. 강진혁인지 뭔지 하는 놈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힘을 많이 쓴 너라도 그 정도 침입자들을 처리하는 건 가뿐하잖아?”
레드 드래곤과 칠죄종 나태와 바운티 헌터들을 이끄는 마더.
그리고 그 외의 플레이어들로 구성된 공격대.
제법 강하긴 하지만, 자신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골짜기로 간다면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기분이군.‘
어쩔 수 없다.
여전히 릭의 노림수가 찜찜하긴 했으나,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툴차와 사멸자 그리고 올드 가드의 조합이라면 강진혁이 아니라 그 어떤 세력이 오더라도 박살내 버릴 수 있었다.
“알겠다. 이곳은 맡기도록 하지.”
니알라토텝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적의 사령탑이 교체되었다.
진혁이 저 멀리서 거대한 마력의 파장이 사라지는 걸 감지했다.
‘니알라토텝이 골짜기로 떠났나 보네.’
마더를 통해 내린 마지막 명령.
그게 제대로 이행된 게 틀림없었다.
첫 번째 관문을 무사히 넘고 간신히 한숨 돌리게 된 셈이다.
다음은….
진혁이 미친 듯이 총을 쏴대는 사멸자를 바라봤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사멸자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날뛰고 있었다.
타다다다당!
퍼퍼퍽!
지면이 박살 나고 벽이 사라진다.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룬탄은 잔류월광으로 만들어낸 분신체들을 빠른 속도로 제거하는 중이었다.
“쳇!”
짧게 혀를 찬 진혁이 속도를 한 단계 더 올렸다.
동시에 ‘패도의 왕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사멸자의 눈가에 이채가 스쳤다.
탑의 정점을 상징하는 성유물.
상층부의 거대세력을 이끄는, 주신이나 절대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한순간, 수없이 쏟아지던 탄환의 양과 질이 달라졌다.
카카카카카강!
콰앙! 콰콰콰광!
“키에에에!”
“케에에!”
미간을 꿰뚫린 유령들이 비명을 지르다 사라졌다.
재생을 하는 것보다. 그리고 다음 탄환이 발사되는 것보다.
이제는 오히려 진혁의 속사가 반 박자 더 빨라졌다.
중간에서 피어오르던 불꽃이 점점 더 사멸자 쪽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퍽!
핏…!
피부를 따라 붉은 선들이 죽죽 그어졌다.
이렇게는 안 된다.
그렇게 판단한 사멸자가 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몸을 움직였다.
탓…!
바람을 가르는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100m.
진혁과의 거리가 정확히 그 정도 벌어졌다.
동시에 사멸자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운이 180도 달라졌다.
오싹하고.
마을 전체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뭐지?”
“……결국 그걸 쓰려는 거군.”
치열하게 치고받던 엘리스와 올드 가드들도 잠시 싸움을 멈출 정도의 마력이다.
흉흉한 기운이 리볼버로 몰려들었다.
마치, 층계 전체에 있는 마력이 전부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다.
진혁 역시 제 자리에 우뚝 멈줬다.
“고유 성창…인가.”
“호오. 분위기만으로도 감지한 건가?”
“마력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는 고유 성창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이 거리가 사격의 위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도 하고.”
“괜히 왕관을 손에 넣은 게 아니군. 제법 재밌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만, 이번 걸 받아내진 못할 거다.”
“최고의 총잡이가 전력을 다해준다니 영광이네.”
“나 역시 모처럼 강한 적을 상대하게 되어서 기쁘구나. 이런 삶도 그럭저럭 나쁘진 않겠어.”
사멸자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맺혔다.
진혁이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제 슬슬 흔들어볼 시간이다.
“태고의 존재들한테 구속된 삶에 의미가 있다고? 단순히 목줄을 찬 사냥개에 지나지 않을 텐데?”
“…….”
사멸자가 멈칫했다.
“네놈이… 월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대충은 알고 있어. 당신이 한때 태고의 존재들에게 도전했던 등반자라는 것도. 싸움 끝에 패배해 몰락했다는 것도. 그리고 비루하게 그 삶을 연명해가고 있다는 것도.”
뿌드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멸자의 두 눈에 굵은 핏줄이 섰다.
단순히 분노의 감정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압도적인 적을 상대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절망, 그걸 넘어 절대 다시는 싸우고 싶지 않은 체념의 감정까지 배어 있었다.
“어디서 나에 대해 주워들었나 보구나. 허나, 네놈 역시 그들에게 맞선다면 나와 같은 결과를 겪게 될 것이다. 또한 어설픈 실력과 오만에 찬 자존심 따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느끼게 될 테지.”
태고의 존재들은 천외천의 자리에 위치한 자들.
설령, 주신이나 그보다 더 강력한 등반자라 하더라도 어찔 수 없다.
애초에 태초부터 범접하지 못하도록 선을 그은 게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니.”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달라.”
포기하지도 절망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거다.
자신감에 찬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도 한때는 그리 생각했었다. 어린 등반자여. 먼저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해본 경험자로서 그 끝에 네가 바라는 것은 없을 거다.”
“뭐, 의견 차이는 날 수 있겠지. 그래도 끝까지 도전해볼 생각이야.”
“그렇군.”
진혁의 말에 사멸자는 자신도 모르게 부럽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당신은 괜찮은 거야?”
묻고 싶은 게 바로 이거다.
수많은 세월을. 그리고 앞으로도 억겁의 세월을 놈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삶.
거기에 자유롭게 탑을 오르며 긍지와 자부심을 갖던 등반자는 더 이상 없느냐고 묻고 있었다.
사멸자의 입이 그 어느 때보다 굳게 다물어졌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겠는가?
이미 썩어 버린 몸뚱어리에 인형처럼 영혼만 주입되어 있는 인형.
그게 랭커 사멸자의 최후이자 현실이었다.
자유를 원하지 않는 삶은 단 하루도 상상해 본 적 없단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악몽 같은 현실은 영원히 계속될 테니까.
그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바꿀 수 없었다.
이 자 역시 같을 것이다.
자신이 꿈꾸고 도달하고자 했던 곳은. 그 누구도 갈 수 없을 것이다.
“주둥아리만 살았구나. 됐다. 어차피 이제 곧 죽을 약자의 헛소리를 더 이상 들을 필요는 없겠지.”
사멸자가 총의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댔다.
붉고 푸른 마력이 화려한 형태로 흐드러졌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진혁이 자신과 똑같은 마력의 파장을 내뿜으며 총의 손잡이에 손을 갖다댔다.
같은 자세.
같은 동작.
같은 마력이다.
그럴 리 없다.
이건 오롯이 탑 전체에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고유 성창.
타고난 재능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합쳐져서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누군가 이걸 습득할 가능성은 단연코 없었다.
“어설픈 흉내를…!”
고함을 내지른 사멸자가 완전히 마력을 해방시켰다.
진혁 역시 마력을 해방시켰다.
[고유 성창….] [고유 성창….]빛과 빚이 이어지며 발밑을 따라 육망성이 떠올랐다.
속사와 정확도 그리고 위력의 룬이 새겨진 대마법진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사멸자 자신의 고유 성창이었다.
문제는.
[…‘빌리 더 키드’가 발동됩니다!] […‘빌리 더 키드’가 발동됩니다!]그 능력이 발동되는 게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거울을 마주하듯.
서로 같은 능력이 서로를 바라봤다.
아니.
똑같다는 생각은 이어지는 광경에 삽시간에 무너져내렸다.
기존의 능력을 바탕으로 방출계 능력 두 개가 추가로 융합되었다.
연이어 나타나는 상태창과 함께 육망성의 사방으로 4개의 오망성이 추가되었다.
[융합에 성공했습니다!] [고유 성창 ‘크로노 스피어’]입수 난이도: 측정 불가
내용: 고대 유적의 이름을 딴 신화 속 무기로 이 탄환을 사용한다면 태고의 존재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최강의 고대 룬어 탄환으로 그에 걸맞은 총을 필요로 합니다. (총이 없을 경우 위력이 80%만큼 감소합니다.)
[융합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하나의 고유 성창이….
……더욱 거대한 고유 성창에 의해 지워진다.
서서히 부서지는 대마법진.
사멸자의 주위로 조각조각 난 마력의 파편들이 홀어졌다.
“나는 놈들을 넘어설 거야.”
진혁이 감정 없이 사실을 고했다.
“그리고 내가 오르는 탑엔 당신 같은 노예가 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 누구든 실력만 있으면 자유롭게 탑을 오를 수 있도록.”
[고인물 코퍼레이션 해적단이 새로운 선원의 합류를 제안합니다.]진혁이 사멸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길고 긴 어둠에서 벗어나. 함께 위를 보자고 제안하면서.
* * *
니알라토텝이 침입자들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입구에는 여러 명의 남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소롭군. 고작 너희들만으로 이 골짜기에 들어온 것이냐.”
정신 나간 살인귀 쌍둥이 남매.
칠죄종 중 하나인 나태.
바운티 헌터 등.
툴차가 말했던 적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었다.
진혁이나 엘리스에 비하면 지금의 제약으로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오히려 고작 이 정도 멤버로 이 금지까지 기어 들어온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페시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안에 들어가면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한 채 시체가 될 테니까.
심지어 가장 성가실 거라 예상했던 레드 일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덜덜덜….
“으으으.”
“저… 괴물을 또 만날 줄이야.”
대부분의 바운티 헌터들은 니알라토텝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캬아. 이상한 눈깔 괴물이네.”
“잘라 먹는 맛이 있겠어. 저래도 속은 빨갛겠지? 내장이랑 피도 잔뜩 있을 테고.”
물론,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들은 아예 공포라는 감정 자체가 없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는….’
니알라토텝의 머릿속에 이죽거리던 진혁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 영악한 놈이 건방지긴 했으나 무모하진 않았다.
치밀하게 계산을 하며 수싸움을 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었으니까.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척수에 눌어붙은 기분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우우웅!
[게이트가 개방됩니다.]니알라토텝의 바로 뒤편에 게이트 한 개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