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94)
594화. 태고의 존재 ‘툴차’ (2)
쿠쿠쿠쿠쿠쿠!
녹색 화염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마치. 영혼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빛깔이다.
저절로 손을 뻗어 저 속으로 걸어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계속 쳐다보지 마! 말려든다!”
진혁의 고함소리에 나머지 멤버들이 정신을 차렸다.
“빌어먹을. 싸우기도 전에 이 정도로 압박을 받은 건 처음이다.”
“신성력도… 통하질 않아요.”
천유성과 테레사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들에게는 아직 50층의 존재와 맞설 만큼의 능력과 경험이 없다.
‘올드 가드들을 상대하라 하면서 내가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겠어.’
어차피 올드 가드들 역시 툴차가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나머지 멤버들을 먼저 공격할 터.
방심하고 있을 틈을 노릴 기회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진혁이 서리혼령의 창과 사복검을 각각 꺼내들었다.
바로 옆에선 사멸자가 총을 잡은 채 진혁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덜덜덜….
손발이 떨리는 게 보인다.
이미 50층과 싸워본 사멸자로선 지금 이 싸움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괜찮아. 위험한 공격은 전부 내가 받아낼 테니, 당신은 평소에 하던 대로 싸워주면 돼.”
“정말… 혼자서 일선을 맡을 수 있는 건가?”
“뭐, 쉽진 않겠지.”
즉사할 수 있는 패턴만 129개에 중경상을 입을 수 있는 패턴은 8,000개가 넘는다.
그나마 이제는 전성기를 재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있고 기본 스탯이 탄탄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거다.
진혁이 싱긋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압도적인 괴물을 상대로 조금도 겁먹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다.
“킥! 진짜 듣던 대로 재밌는 인간이라니까. 공포에 겁을 상실한 걸까? 아니면 정말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걸까? 궁금해 미치겠네.”
툴차가 진혁과 십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키득거렸다.
정말로 재밌어 죽겠다는 말투다.
하긴, 여태껏 자신들에게 제대로 반항해본 적이 손에 꼽긴 하겠지.
그마저도 사멸자 이후로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일이 전무하다시피 했을 거다.
먼저 고개를 숙이고 밑으로 기어들어와 아부를 떨든가. 아예 관심을 끊고 자신들의 영역에만 관심을 갖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간혹 주제를 모르는 놈들도 있긴 했지만, 그 자존심 센 놈들조차도 감히 겉으로 불만을 표시하진 못했었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이레귤러가 나타났다.
50층에게 정면으로 칼을 들이미는 머저리가 말이다.
“한번에 죽이면 너무 시시하고. 최대한 오래 가지고 놀다가 죽여야 할 텐데, 고민이네. 어때? 그 주둥이만큼이나 몸뚱아리도 튼튼한 거야?”
“평소에 칼슘 섭취를 잘 해서 튼튼한 편이니 그런 부분은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아자토스의 무희라고 했나?”
“아하하! 이거 인간들 사이에서도 내 소문이 났나 보네. 맞다. 내가 바로 위대하신 분의 즐거움을 담당하고 있지.”
“그것 참 희한하네.”
진혁이 진심으로 고민에 잠긴 표정을 자아냈다.
“뭐가 희한하다는 거지?”
“아니, 그 추한 몰골로 누군가의 즐거움을 담당한다는 게 신기해서. 아, 아니면 아자토스란 친구의 취향이 굉장히 독특한 편인가? 하긴, 나도 고릴라가 춤추는 거 보면 귀엽긴 하더라고.”
“뭐, 뭐라고?”
추하다?
태고의 존재들 사이에서 가장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 자신을 보고?
순간. 툴차의 몸에서 녹색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콰콰콰과과과!
빛에 닿은 부분들이 급속도로 썩어들어갔다.
반경 수백 미터가 초토화 되어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살기다.
“다시 한 번 지껄여 보거라. 나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제가 위대하신 분의 아름다움을 감히 파악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라고 할 줄 알았냐? 미모는 무슨. 태고의 존재들의 미의 기준은 다시 한 번 태어나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크아아아!”
인내심이 바닥난 툴차가 대번에 손을 휘저었다.
[툴차가 Lv??? ‘풍화의 소용돌이’를 사용했습니다!]녹색으로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진혁의 정면을 향해
쇄도했다.
직경은 약 2m.
공격 자체의 반경은 넓지 않지만, 쇄도하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반응을 하기 전에 폭풍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신속의 왕관’을 착용했습니다!]제우스에게서 얻은 왕관이 빚을 발했다.
소용돌이가 진혁을 집어삼키려는 타이밍에 진혁이 한 발 먼저 움직였다.
콰앙!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일격에 적을 박살내버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툴차는
완벽하게 등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툴차의 몸 주위로 녹색 운무가 응집되었다.
또 다른 소용돌이를 소환해 공격 자체를 부패시켜버리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마력이 완전히 갖춰지기 직전.
[고유성창 ‘네메시스’가 발동됩니다!] [고유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최강의 일격을 사용하기 위한 신체와. 그 일격을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합쳐졌다.
촤촤촤촤!
사복검이 어저립게 좌우로 움직였다.
…카가각!
녹색 운무 위로 살모사들이 미친 듯이 기어다녔다.
제대로 된 방비가 갖춰지기 전에 마력이 빠르게 깎여 나간다.
“큭!”
툴차의 입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짜증나는 공격인 건 맞았지만, 조금만 집중한다면 무리 없이 방어가 가능할 터.
바로 그때.
투광! 콰아앙!
두 줄기 섬광이 툴차의 안면과 심장을 강타했다.
기회를 엿보던 사멸자가 회심의 사격을 가한 것이다.
허를 찌르는 타이밍도 상대를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위력도 완벽하다.
다만….
“…하아아….”
상대가 너무 강하다는 것뿐.
날카로운 공격을 연거푸 가했음에도 툴차의 몸엔 그 흔한 상처 하나 없었다.
대신 짜증이 났는지 아름다웠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사멸자가 질렸다는 듯 뒷걸음질쳤다.
급소에 맞고도 저리 멀쩡한다면 아무리 많은 사격을 가해봤자 성질만 돋구는 꼴밖엔 되지 않는다.
반면.
진혁은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에 군침을 흘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태고의 존재의 능력을 복사할 수 있는 기회!
이 맛에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물러날래야 물러날 수가
없다.
엔돌핀과 도파민이 신경 전체룰 타고 미친 듯이 질주했다.
‘어디 보자…. 조건이 뭐려나?’
동공이 재빠르게 상태창을 훑고 내려갔다.
[죽음의 무희 ‘툴차’]레벨: ????
스탯: 힘 ???? 마력 ???? 민첩 ???? 체력 ????
스킬: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일부만 간파할 수 있습니다.
고유능력: 역병창궐
고유성창: 태고의 무희
[복사조건: 아자토스의 유희를 위해 존재하는 툴차는 풍화와 쇠퇴를 담당하는 크툴루의 신격입니다. 최고의 무희인 툴차의 능력을 복사하기 위해선 그녀와의 댄스 배틀에서 상대를 압도하여야 합니다.]호오. 댄스 배틀이라….
그것 참 복사조건을 읽는 것만으로 어깨가 들썩…이긴 개뿔! 목숨 걸고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무슨 놈의 댄스 배틀이란 말인가.
진심으로 욕이 목구멍까지 솟구쳤다.
막말로 지금 잔뜩 열이 받아 있는 툴차 앞에서 둠칫둠칫 춤을 췄다간,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돌돌 말아 한꺼번에 뜯어버리는 셈일 것이다.
‘사멸자 능력 복사하는 것도 골치 아팠는데, 이건 더 심각하네.’
처옴으로 포기하는 게 신상에 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다수의 녹색 회오리를 소환해 적들을 쏠어버리는 광경을 상상하자. 온몸이 참을 수 없이 근질거렸다.
진혁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역소환하고 대신 두 자루의 가벼운 단검을 꺼냈다.
동시에.
감미로운 노래를 틀고.
입에는 장미 한 송이를 물었다.
이제부터 아자토스의 무희와 함께 목숨을 건 댄스배틀을 벌일 시간이다.
* * *
같은 시각.
탑의 어딘가에선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또각. 또각.
어두운 통로를 따라 높은 굽의 구두소리가 울려퍼졌다.
중절모에 은으로 만든 지팡이를 든 노신사. ‘릭 헤네시’였다.
바로 옆에는 염동력으로 띄운 보라색 묘목이 둥실거리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걸은 덕에 저 앞에서 빚나는 빚이 조금씩 밝아졌다.
이제 머지 않았다.
그런데.
“…….”
롱로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 릭의 걸음이 멈췄다.
목적지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앞에서 릭을 가로막는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이지.
“흐음…. 결국 여기까지 왔네. 진짜 어지간해서는 이곳의 존재를 눈치 채는 놈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계산 미스였어.”
역광으로 인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권태로우면서 능글맞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저야말로 놀랐습니다. 이곳에 외부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릭의 눈에서 이채가 스쳤다.
수많은 세월을 탑에서 보내왔건만, 눈앞에 있는 자는 처음 만나보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질적이면서 흉흉한 마력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것과도 궤를 달리했다.
“누구입니까. 당신은?”
“자기소개를 내세울 만큼 대단할 건 없고. 그냥 이 따분한 탑을 부유하는 망령… 이라고 해두지.”
남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검은 결계가 릭과 남자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미안하게 됐어. 이곳의 출입은 조금 곤란해서 말이야.”
거부의 의사를 내비친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콰콰!
푸른 빛이 결계를 일거에 쓸어버렸다.
지팡이를 가볍게 휘저은 릭이 남자를 정면으로 노려봤다.
“제가 가고자 하는 곳에 당신의 허락 따윈 필요 없습니다.”
“하하하. 역시 릭 헤네시 다운 발언이야. 언제나 거침이 없다니까.”
”……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뭐, 대충은 알고 있지. 저울 위에 울려진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커피 중독자에 대해선.”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만…. 우선, 그 얼굴부터 보도록 하죠.”
[상급 관리자의 권한이 발동됩니다!] [‘일식을 끝내는 바람’이 발동됩니다!]부우웅!
거센 돌풍이 휘몰아쳤다.
각종 상태이상과 결계 등을 무효화시키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자를 드러내게 하는 특수 권한이었다.
하지만.
돌풍은 이내 산들바람이 되어 흩어져버렸다.
“무슨…?”
상급 관리자의 고유권한이 너무도 허무하게 가로막혀 버린 것이다.
릭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다양한 스킬과 고유능력을 봐왔지만, 관리자의 능력 자체를 무효화하는 힘은 듣도보도 못했다.
주신… 아니.
심지어 50층에 존재하는 니알라토랩이나 아자토스마저도 이런 식의 권능을 사용할 수는 없단 말이다.
“놈들에게서 묘목을 얻은 것까진 아주 기발했어.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돼.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
릭의 표정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알고 있…군요.”
“그래서 살려주는 거야. 너 역시 그놈과 마찬가지로 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난감이니까.”
검은 그림자가 조금이나마 걷히며, 남자의 입가가 보였다.
새하얀 이와 비틀린 입꼬리.
웃음을 정의하는 모양새가 있다면 바로 저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너희가 가진 최선의 역량을 발휘해 탑을 오르고 아등바등 날뛰는 운영자들과 50층의 괴물들을 처리해봐. 그리고 그 다음에….”
모든 게 처리된 마지막에.
“이 대화의 뒤를 이어서 할 수 있을 거야.”
남자는 말했다.
탑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때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