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95)
595화. 태고의 존재 ‘툴차’ (3)
세상에는 간혹 상식에서 벗어난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강물이 핏빛으로 변하거나 한겨울에도 꽃이 피어나거나 하는.
하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자신의 앞에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존재는 없었다.
“…….”
툴차가 멍하니 눈앞에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분명… 인간 치고는 꽤나 강한 축에 속한다.
아니, 거주자들과 주신들을 데려다 놓고 보아도 이 정도로 성가시고 얄미운 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전력을 다해 집중해도 모자를 판에 저런 짓을 하다니.
둠칫둠칫! 들썩들썩!
진혁이 음악에 맞춰 열심히 춤을 췄다.
선곡도 개판에 박자는 아예 맞지도 않는다.
이건 모독이다.
춤에 관해서 만큼은 우주의 초월적인 존재에게 인정받는 자신에 대한 지독한 능욕이란 말이다.
뿌드득…!
툴차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온몸을 가늘게 떨었다.
명백한 도발이라는 걸 알면서도 걸려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속 뒤집어 놓는 것엔 일가견이 있는 놈이군. 이 이상 적으로서 대우해줄 필요는 없겠어.”
보여주마.
아자토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춤이 무엇인지를.
[툴차가 고유성창 ‘태고의 무희’를 발동합니다!]에메랄드빛 가루들이 툴차의 몸 주위로 솟구쳤다.
고혹적이면서 퇴폐적인 아름다움.
전신이 한 줄기 불꽃이 되어 추는 춤은 그야말로 춤이라는 영역의 극치에 이르러 있었다.
“와아….”
“저럴 수가….”
치열하게 싸우던 올드 가드와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도 싸움을 잊을 만큼 툴차의 고유성창은 아름다웠다.
넋을 놓고 보는 사이 초점이 흐릿해졌다.
[대상이 자신도 모르게 춤에 매혹됩니다.]태고의 무희가 무서운 이유가 저것이다.
한 번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빠져들게 된다면 그 춤에 현혹되어 영원히 심상세계에 갇히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무방비 상태에서 부패의 소용돌이에 휘감기게 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없었다.
정신계열과 마법계열.
두 가지 모두 치명적인 필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모두가 멍하니 공백기를 갖는 와중에도 단 한 명. 진혁은 툴차의 고유성창에 매혹당하지 않았다.
“어째서…?”
툴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더욱 열심히 부드러운 곡선을 이어나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혹의 춤이란 본디 상대방에게 감흥을 줬을 때에만 매혹의 발동조건이 충족되는 법.
대부분의 경우엔 압도적인 격차 앞에서 수긍하고 인정하는 게 정석이었으나….
인정이라는 걸 하지 못하는 똥고집 앞에서는 그 어떤 예술도 빛이 바래게 되어 있다.
실제로 진혁은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자신의 춤이 툴차의 것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조금 치긴 하는데, 그래도 나한테는 안 되지.’
진혁이 콧방귀를 뀌며 툴차에게서 시선을 뗐다.
둠칫둠칫!
얼굴에 철판을 깐 채 엉덩이를 씰룩이며 여전히 고독한 자신의 길만을 걸었다.
그렇기에 매혹에 걸리지 않은 채 본연의 춤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열등한 종족답게 주제 파악을 못하는구나. 좋다. 그럼 그 더러운 춤과 함께 전신을 녹여주마.”
툴차의 등 뒤로 엄청난 수의 녹색 암기들이 나타났다.
스치기만 해도 전신이 썩어들어가는 ‘태고의 독’이 잔뜩 발라져 있다.
이건 ‘멸천만독’으로도 해독이 불가능한 종류이다.
압도적인 풍경을 목전에 두고. 진혁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킥! 포기한 것이냐? 하긴, 아무리 날다람쥐 같은 놈이라도 이걸 전부 피할 순 없을 테지.”
툴차가 마력을 일제히 해방시켰다.
추진체 없이, 마력의 폭풍을 이어받은 암기들이 앞으로 튕겨나갔다.
콰콰콰콰콰!
녹색 폭풍이 몰아쳤다.
하나하나가 아스트라페의 투창에 비견될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와 위력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그 순간.진혁이 틀어둔 음악의 템포가 완전히 바뀌었다.
두둠칫. 두둠칫칫.
음악에 맞춰 공격을 피하는 몸놀림은 가히 신의 영역에 범접해 있었다.
[현재 플레이어는 ‘자아도취’의 상태입니다.]어느새 입에 물고 있던 장미의 숫자가 추가되어 있었다.
완벽한 복사를 위해서 극한의 컨셉까지 살린 것이다.
퍼퍼퍽!
콰콰콰쾅!
암기들이 진혁을 스치듯 지나가 지면과 벽에 박혔다.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될 정도로 터무니없는 폭격이다.
그럼에도 진혁은 그 사이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춤을 이어나갔다.
목청을 돋구워 웅장한 오페라까지 불러대는 건 덤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있다면 스스로의 고막을 파괴할 정도로 끔찍한 노랫소리였지만, 그딴 건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그 편이 툴차의 멘탈을 갉아먹기에 더욱 적합했으니까.
“크아아아! 당장 그 더러운 노래를 멈추지 못하겠느냐!”
다수의 암기를 날리던 툴차가 일거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툴차가 고유능력 ‘역병창궐’ – ‘집어삼키는 자’를 발동합니다!]우우웅!
원형으로 모이는 녹색의 바람.
선풍이 이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한 허리케인으로 변했다.
십여 초만 더 있으면 마을 자체가 사라져 버릴 만큼의 규모다.
[한정 아포칼립스 ‘붕계’가 성립됩니다!]공격 한 번이 층계를 소멸시켜버릴 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다.
“끝…장이다….”
“하하하. 이런 걸 어떻게 하라는 거야.”
사멸자와 페시스가 실소를 내뱉으며 그 자리에서 굳었다.
아무리 다차원 네비게이션을 발동해 살 길을 찾아보려 해도 빠져나갈 루트는 보이지 않았다.
고작 몇 초 안에 저 범위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상대가 춤의 대결을 포기했습니다!] [능력 복사에 성공했습니다!]바로 이 순간만을 노렸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고동친다.
현실이 된 후 처음으로 복사하게 된 태고의 존재의 능력.
진혁이 지금까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걸 느꼈다.
마력을 집중하자 태산만한 허리케인 아래로 또 다른 허리케인이 만들어졌다.
[고유능력 ‘역병창궐’ – ‘집어삼키는 자’를 발동합니다!]“……설마.”
툴차가 몸을 멈칫했다.
위력은 십분의 일도 되지 않지만, 자신과 똑같은 능력이 틀림없다.
다른 이의 능력을 복사할 수 있는 플레이어에 대한 소문에 대해서 듣긴 했지만, 설마 그 영역이 태고의 존재들에게까지 이를 거라곤 생각치 못했다.
그래서 저토록 강한 거였나.
이제야 상대가 이토록 단기간에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이해됐다.
하지만.
놀라움은 곧 비웃음으로 뒤바뀌었다.
“꽤나 재밌는 재주를 가지긴 했다만, 이제 막 복사한 능력으로 원류에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류는 절대 원류에 범접할 수 없다.
아무리 모방을 한다고 한들….
억겁의 세월에 버금가는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었으니까.
툴차가 능숙하게 허리케인을 조종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꼬아진 바람줄기들이 삽시간에 진혁의 소용돌이를 집어삼켰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어지간한 놈이라면 기교로 원류와 아류의 간극을 좁혔을 수 있었지만, 상대는 태고의 존재.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지간한 신격이나 거주자들하고는 격이 달랐다.
“……크윽!”
진혁의 입술을 따라 얇은 핏줄기가 흘렀다.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힘.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다.
투콰콰쾅!
측면에서 날아온 돌풍에 진혁의 몸이 반대쪽으로 펄펄 날아갔다.
100m가 넘게 구르고 나서야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단순히 스친 것만으로 이 정도 충격이다.
“괴물은… 괴물이네.”
복사한 능력으로 위력을 감소시켜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온몸이 갈가리 찢겨 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만상공유 – ‘개벽의 계시록’을 발동합니다!]진혁의 등 뒤로 한 쌍의 붉은 날개가 펼쳐졌다.
피로 만든 기다란 꼬챙이가 몇십 번의 꼬임을 반복했다.
“근거리에서 안될 것 같으니 이번엔 원거리더냐?”
툴차가 가소롭다는 듯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녹색 마법진이 연이어 펼쳐졌다.
그 순간.
극한까지 꼬아진 꼬챙이가 발사됐다.
콰아앙!
창이 마법진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엘리스의 고유성창답게 첫 번째 마법진이 부서졌다. 창이 두 번째 마법진과 연이어 충돌했다.
흔들리는 지축.
절대자와 절대자의 능력은 오롯이 상대를 박살내기 위한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호오….”
툴차가 미간의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울부짖는 꼬챙이를 바라봤다.
확실히 50층 아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진조의 능력답다.
그렇게 시선이 정면에 향한 사이.
탓!
진혁은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적토승마(赤兎乘馬)’가 발동됩니다!] [‘바람의 영역’이 발동됩니다!]“가자. 구마야.”
“모기이이!”
진혁의 부름에 고구마가 힘차게 포효했다.
고구마에 올라탄 진혁이 엄청난 속도로 툴차의 뒤를 향해 쇄도했다.
지면을 스치듯 최대한 낮게.
그러면서 바람을 타고 속도는 살렸다.
몇 초 뒤에 기습을 눈치 챈 툴차가 수십 개의 소용돌이를 소환했다.
흙과 벽돌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녹색 줄기들이 하늘까지 닿았다.
고구마가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그 사이를 종횡무진 질주했다.
“주인을 닮아 미꾸라지 같은 건 똑같구나.”
소용돌이가 소용없자 툴차가 손수 고구마를 노렸다.
손끝이 고구마의 동선에 맞춰 움직였다.
[툴차가 ‘페스트 플레어’를 발동합니다!]녹색 화염이 번뜩였다.
퍼어엉!
공간 자체가 폭발해버리는 능력.
일반적인 폭발과 다른 점이라면 반경 몇 미터 가량에 치명적인 병원균을 방출한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폭발을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범위 밖으로 벗어나야만 한다는 소리다.
“모, 모기이이이…!”
고구마가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트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퍼퍼퍼펑!
퍼어엉!
공중을 따라 녹색 플레어들이 어지럽게 점멸했다.
한 번이라도 맞추면 되는 쪽과 모든 걸 피해 안쪽으로 파고들어야하는 자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하하하! 그리 피하기만 해서야 이 몸에게 도달하질 못하지 않느냐! 이길 생각이 있다면 멀리 도망치지만 말고 가까이 오란 말이다!”
툴차가 키득거리며 더욱 거세게 포위망을 좁혔다.
점점 더 갈 곳이 없어진다.
툴차가 원하는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른 뒤.
“…….”
결국, 진혁과 고구마는 절벽 아래 쪽에 도달했다.
양쪽으로 높게 솟구친 암벽과 움푹 파여 있는 공동(空洞).
여기가 막다른 무덤이다.
“흐응. 이제 어떡할 생각이지? 더 이상 빠져나갈 곳이 없는데?”
“그래 보이네.”
확실히 외통수에 몰리긴 했다.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지가 아니다.
[‘시스템 조작’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마력 동기화’ 싱크로율이 최대치에 도달합니다!]지금까지 계속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을 연출했던 건….
모두 이 일격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만상공유….]고구마의 입이 길게 벌어졌다.
진혁의 입 역시 쩍하고 벌어졌다.
[‘단죄의 검’이 소환됩니다!] [‘단죄의 검’이 소환됩니다!]두 개의 붉은 검이 형을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