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597)
597화. 태고의 존재 ‘툴차’ (5)
철커덕…. 철컥!
그토록 가볍고 강력했던 툴차의 두 다리가 우뚝 멈췄다.
쇠사슬이 거친 소리를 내며 온몸을 조여왔다.
“빌어먹을…. 이까짓 거…!”
[‘이터널 플레어’가 발동됩니다!] [‘보이드 브레이커’가 발동됩니다!]쿠쿠쿠쿠…콰콰콰쾅!
녹색 소용돌이가 쇠사슬 전체를 집어삼켰다.
천지가 쪼개질 듯한 굉음이다.
실제로 은둔자의 마을을 포함해 층계 전체가 툴차의 분노에 요동쳤다.
하지만.
“쯧쯧. 무식하게 제약을 힘으로 풀려고 하면 쓰나? 하여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니까.”
쇠사슬엔 조금의 흠집도 가지 않았다.
여전한 광택과 무게로 툴차를 계속해서 압박해 들어갈 뿐.
“크아아아아!”
툴차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
‘정말…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사멸자가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떨리는 동공과 굳어버린 손발.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일렁였다.
자신은 결코 도달하지 못했던, 그리고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꿈.
무적이라 칭송받는 태고의 존재를 상대로 당당하게 맞서고 또 압도하는 모습은 감탄과 경외감 외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강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강한 건 아니다.
단순히 강하고 약하고를 넘어 저 인간에겐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만 같았다.
‘저 자라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몰라.’
최강의 층계 부유자인 니알라토텝과 태고의 어머니인 슈브니구라스를 넘어….
……이 모든 층계를 지배하는 아자토스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총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로 그때.
투쾅!
툴차의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진혁이 던진 바너드가 이마 한복판에 적중한 탓이다.
두개골이 박살날 것만 같은 소리다.
그러나.
뿌드득!
툴차는 천천히 머리를 원위치시켰다.
이를 갈며 살기가 가득 담긴 눈을 뜬 건 덤이었다.
‘검의 무덤’을 통해 강기를 잔뜩 실어 투척한 것이었으나 이마에서 피 한 방울 흘리게 한 게 고작이었다.
“이마에 강철로 된 보톡스라도 맞았나? 아니 어지간하면 구멍도 나고 베이기도 하고 좀 그래라. 이러니까 망겜 소리를 듣지.”
진혁이 질렸다는 듯 혀를 찼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 제약을 걸었으면 제법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강력한 태고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손발이 모두 묶인 상황에서는 그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허나, 명불허전은 명불허전.
이 정도로는 죽일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상관없어. 시간은 내 편이니까.’
진혁이 느긋하게 툴차를 바라봤다.
모래시계 속 알갱이들이 빠르게 떨어짐에 따라 이 층계에 머물 수 있는 툴차의 시간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가뜩이나 미친 듯이 마력을 쏟아부으며 폭주하고 있었으니 그 시간은 더더욱 가속될 터.
조금만 더 힘을 뺀다면 얼마든지 저 녀석을 사냥할 수 있으리라.
툴차 역시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껏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유린하고 빼앗으며 군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절대적인 법칙이었으니.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위태로워짐에 따라 여유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다들 뭣들 하는 거냐!”
툴차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여기저기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올드 가드들과 친위대들에게 연신 고함을 질렀다.
“아, 알겠습니다!”
“당장 툴차 님을 도와라!”
“큭!”
엘리스와 천유성 그리고 안드리아를 상대하는데 집중하던 올드 가드들이 즉시 몸을 돌렸다.
당연히 등을 훤히 드러낸 적들을 가만히 두고 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아니었다.
“짐은 허수아비인 줄 아느냐?”
“멍청한 지휘관 덕분에 일이 손쉽게 풀리게 됐군.”
“버프… 걸어드리겠습니다!”
“헤헤. 한 방 먹여줄 시간이에요.”
퍼퍼퍽!
퍼어엉!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각종 버프들이 중첩됨과 동시에 거대한 십자가가 어둠을 거둬냈다.
파앙!
바람을 타고 질주하는 안드리아가 여우 구슬을 집어던졌다.
눈이 시리도록 갈무리된 천유성의 검 역시 허점이 보일 때마다 번뜩였다.
그리고.
그 위로 수많은 꼬챙이들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툴차의 명령 한 번에 의해 무너진 균형.
“크아아악!”
“아아악!”
피투성이가 된 친위대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올드 가드들 역시 몰아치는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대장! 이대로라면….”
“알고 있다! 너흰 신경 쓰지 말고 툴차 님에게 가라!”
크림슨이 묵빛 창을 휘두르며 최후미에 섰다.
저들을 모두 상대하려면 가장 강한 자신이 막아야 한다.
은은한 보라색 기운이 서린 창이 날아오는 꼬챙이들을 모조리 박살냈다.
“……!”
“큭!”
거침없이 질주하던 안드리아와 천유성 또한 크림슨의 간격에서 급히 멈춰섰다.
소름이 돋는 기운이다.
맹수를 연상케 하는 노도와 같은 투기는 이내 유형화된 무언가로 변했다.
[크림슨이 고유성창 – 페이즈2 ‘망국의 용기병’을 발동합니다!]스멀스멀.
묵빛 연기가 모여 용의 형상을 이루었다.
검은 동공 사이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그 위에 타고 있는 크림슨이 10m에 이르는 기다란 창을 움켜쥐었다.
콰콰콰콰콰!
창격이 뿜어지자 엘리스가 반사적으로 공격을 멈추고 몸을 피했다.
실드로는 막아낼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 앞으로는 그 누구도 갈 수 없다.”
절대자를 사냥하는 데 특화된 사냥개.
크림슨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의 심장을 꿰뚫어낸 괴물이다.
***
크림슨이 선전해준 덕에 몇몇 올드 가드들과 그들을 따르는 친위대들이 합류하긴 했지만, 쇠사슬을 끊어내고 진혁을 제압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핫… 하핫!”
마치 한 마리의 너구리처럼.
묘한 춤을 추며 요리조리 도망다니는 진혁은 올드 가드들의 포위망을 너무나 가볍게 벗어났다.
적어도 크림슨이 아니고서는 저 미꾸라지를 잡을 순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툴차의 몸을 구속한 쇠사슬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미 원래 있던 층계로 돌아갔어야 했지만, 때를 놓친 대가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니알라토텝에게 듣지 못했느냐! 놈들을 쓸어버려야만 너희에게 로드 자리가 있는 것이다! 만약 방관한다면 이 모든 걸 놈에게 말하겠다!”
결국 툴차가 설렁설렁 싸우며 간을 보고 있는 알테라와 아덴에게 도움을 구했다.
자존심이 상하긴 했으나,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었다.
“…….”
“……!”
로드.
일족의 비원이 나오자 알테라와 아덴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원래는 툴차가 죽든 말든 니알라토텝과의 의리만 지킬 생각이었다.
드래곤 로드의 고유 임명은 니알라토텝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툴차가 저리 나오게 된 이상 몸을 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두 드래곤에게 압박을 가하는 건 진혁과 나머지 플레이어들만이 아니었다.
“미요오오!”
후라이드가 양 날개를 활짝 폈다.
뜨거운 불꽃이 사방으로 펼쳐지며 거대한 막을 형성했다.
“다른 세계의 용들이로군.”
말랑흑두루미가 기상을 개변시켜 후라이드의 화염을 더욱 넓게 퍼뜨렸다.
바람과 불의 시너지가 일어나자 무시하지 못할 열기가 일어났다.
“도마뱀 따위 아주 통구이로 만들어버리자!”
“물에 불려서 수제비로 만들 거야!”
“그래도 에이션트 급이면 좀 세긴 셀 텐데?”
“주인에 비하면 별 거 아냐. 주인한테 얻어 터지는 것보다 쟤네 브레스 맞는 게 따뜻할걸?”
“그건 그렇지.”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불사조와 동양의 용.
거기에 다섯 정령수들까지.
전혀 어울리진 않지만, 굉장히 까다로워 보이는 것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누님….”
“그래.”
알테라가 텅 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일방적인 사냥이 아니라 목숨은 건 전쟁을 해야 했던 거였구나.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었어.”
“그래도 물러설 순 없습니다.”
“그렇겠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까.”
각자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이상,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쪽을 쓰러뜨려야 한다.
물론, 폴리모프 상태로는 이길 수 없다.
그리 설렁설렁 할 정도로 상대는 약하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압축하고 압축했던 마력을 한꺼번에 해방시켰다.
[알테라와 아덴이 본신으로 현현합니다!]우우웅!
금빛 물결.
“크오오오!”
“그오오!”
거대한 체구의 고룡들이 아가리를 벌렸다.
용언 마법으로 발동된 10서클의 고위 마법들이 허공을 빼곡이 메웠다.
하나하나가 치명적이고 강력한, 오롯이 에이션트 급 이상의 고룡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들이었다.
이어진 건 모든 걸 뒤엎어버리는 전쟁이었다.
오직 상대를 박살내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각자가 가진 모든 것을 내건.
* * *
같은 시각.
탑의 알 수 없는 층계에서는 기나긴 어둠이 이어지고 있었다.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이 층계엔 빛이 들지 않았다.
감히 이곳에서 잠들어 있는 이의 수면을 방해할 만큼 간이 큰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상급 주신들이나 상급 관리자들. 심지어 니알라토텝이나 슈브니구라스조차도 말이다.
그런데.
그 길고 긴 침묵이 마침내 깨졌다.
우두둑.
공간이 부서지며 눈부신 빛이 칠흑을 꿰뚫었다.
“흐음. 겨울 잠자리치곤 나쁘지 않네.”
남자가 천천히 내부를 살폈다.
호랑이 굴에 들어온 사람치곤 지나치게 평온한 말투와 동작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으으오오….”
낯선 이의 침입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났다.
수많은 눈과 그걸 상회하는 촉수들이 꿈틀거렸다.
보랏빛 물결이 파도가 되어 몰아쳤고. 인지를 초월한 마력이 부서진 균열 주위로 피어올랐다.
“워워, 진정하라고. 잠에서 깨서 기분 나쁜 건 알겠는데,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니까?”
남자가 재빨리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런 변명 따위가 아자토스에게 통할 리 없다.
불편하다는 감정. 그것 하나 만으로도 세계가 멸망할 이유로는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번쩍하고.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증발해버렸다.
그저 짜증난다는 감정 하나만으로 층계의 일부가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아자토스가 마음만 먹었다면 층계 일부가 아닌 탑 전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단지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건방진 날파리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기 때문.
그런데.
콜록! 콜록!
연기 속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인영이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하여간 성질 고약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고고. 온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네.”
“…….”
잔뜩 앓는 척은 다 하고 있지만, 상처 하나 없다.
방금 그 공격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여유까지 부릴 줄이야.
아자토스의 눈들이 일제히 남자를 바라봤다.
말을 하진 않지만 저 행동이 의미하는 건 하나다.
‘이곳에 온 용건을 말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