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03)
603화. 플레이어 언노운(Unknown) (4)
‘염혼의 낙인’으로 인한 계약.
한 번 도장을 찍으면 영원히 종신으로 묶이는 노예는 여러 의미에서 쓸모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진혁이 이유리와 민정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대기하라고 해뒀었는데, 확실히 준비시켜둔 보람이 느껴졌다.
반대쪽에선 또 다른 무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카악 퉤! 감히 우리 집 안방에서 그것도 마스터를 공격해? 코리아 김치 맛이 얼마나 매콤한지 맛 좀 보고 싶어?”
검은 까마귀 길드의 총책 김희웅과 그동안 포섭해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었다.
진혁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김희웅은 새로 시작하는 뉴비들을 상대로 철저하게 세뇌 교육을 하며 일종의 군대를 길러냈다.
당근과 채찍은 물론 적절한 가스라이팅까지 펼치며 21세기 현대판 광신도들을 만든 것이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신을 모욕하다니!”
“이건 용서치 못할 범죄다!”
전원이 랭킹에도 들진 못한 어중이떠중이들이었지만, 똘똘 뭉친 협동력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충성심만큼은 랭커에 못지않았다.
거기에 이집트 신격들로부터 ‘사도’ 계약을 맺은 이유리와 민정우가 가세했으니 꽤나 할 만한 상황이 되었다.
적어도 이쪽이 각성자 협회로 가기까지 시간을 버는 용도로는 충분하고도 남으리라.
“이거 참, 나도 놀아주고 싶은데 내 신도들이 워낙에 열성적이어서 말이야. 그럼, 바이바이.”
진혁이 간다라를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베에에.
진혁의 뒷자리에 타고 있는 엘리스도 혀를 살짝 빼며 도발했다.
부우웅!
곧바로 세 대의 바이크가 쏜살같이 움직였다.
따라올 수 있으면 얼마든지 따라오라는 듯이.
“저 새끼들이…!”
“각성자 협회에게 연락해 도로를 통제하라고 하고 우리 쪽 길드원들에게 예상 루트를 선별해 추격하라 전해라. 우리도 곧바로 움직인다.”
쿠마르가 즉시 타고 온 차 쪽으로 향했다.
물론.
퍼어어엉!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이유리와 민정우가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사장 명령이라서. 한동안 우리랑 놀아줘야겠어.”
이유리가 아공간에서 노란색 빛이 맴도는 조각상들을 꺼냈다.
일전에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보여줬던 바로 그 능력의 상위버전이다.
[이유리가 한정 고유 성창 ‘검은 사막의 사냥개들’을 발동합니다!]“크르르.”
“커엉! 컹! 커커컹!”
묵직한 무기를 든 아누비스의 가디언들이 이빨을 드러냈다.
수십 마리가 넘는 소환수들을 다루려니 전신에 핏줄이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몸을 갈아서 펼치는 고유 성창.
“자네들도 무슨 계약할 때 특히나 조심하게나. 주인을 잘못 만나면 말년에도 몸이 고생하는 법일세.”
민정우 역시 양 손에 태양의 빛을 소환했다.
[민정우가 한정 고유 성창 ‘태양신 라의 휘장’을 발동합니다!]화르륵!
사막의 사도로 전직했을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한정 고유 성창.
지옥 같은 회사 생활 끝에 터득한 생존 스킬이 빛을 발휘할 시간이다.
* * *
아스트라페에 직격당한 하늘에선 아직까지 요란한 스파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 방 먹었군.”
노인이 균열이 간 결계를 보며 눈살을 지그시 찌푸렸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인해 포위망은 모두 사라진 상태. 실제로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핵심 멤버들은 모두 시그니엘에서 벗어나 버렸다.
가장 쉽게 이길 수 있는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간다라 쪽에서 추격대를 보내긴 했습니다. 워낙에 숫자가 많은 데다 게릴라 전에 능한 놈들이니 계획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계획은 어디까지나 비장의 수단이다. 게다가 놈이 ‘시스템 조작’까지 할 줄 알게 된 이상 어떠한 변수가 나올지 몰라.”
복사와 융합이 성가신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운영자의 능력까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일 줄이야.
이걸 간파하지 못한 건 뼈아픈 실책이다.
수리부엉이가 정보 단절에 일조한 것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였으리라.
“게다가 이번에도 놈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다음은 40층 대다. 만약 네크로노미콘에 대한 단서까지 모두 모아 책을 찾게 된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할까요?”
“아웃브레이크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언노운을 다시 한 번 사용해라.”
“알겠습니다.”
시간 제한의 이점은 살리면서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최대한 늘린다.
운영자들은 마지노선을 넘기 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끝낼 생각이었다.
같은 시각.
부우웅!
야경을 뚫고 요란한 소리가 대로를 관통했다.
통제로 인해 텅텅 빈 거리.
평소에 붐비던 올림픽대로라곤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어찌어찌 빠져나오긴 했네.”
진혁이 힐끗 뒤를 바라봤다.
이유리 민정우 듀오와 김희웅 덕분에 간다라 길드의 랭커들은 발이 묶였을 터.
이 정도면 충분히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다.
“계약자, 계약자! 더 빨리, 어서 더 빨리 밟아보거라. 오랜만에 심장이 다 두근두근거리는구나.”
철없는 여왕 폐하께서는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스릴감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으셨다.
진혁의 허리를 꼭 감싸 안은 채 선글라스까지 착용했으니까.
대체 지금 이걸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누구는 복잡한 심정 때문에 1분 1초가 짓눌리는 기분인데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
측면에서 낯선 마력들이 감지되었다.
갓길을 따라 서 있던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들이 일제히 점멸하더니 곧바로 뒤를 쫓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오토바이가 장점을 발휘하는 건 혼잡한 도로나 골목길에서지. 텅 빈 직선 도로에서 차를 능가할 순 없다.
“빌어먹을. 여기저기 많이도 몰려왔군. 따라잡힌다.”
스릉!
천유성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류화를 뽑았다.
푸른 강기가 칼날을 완전히 뒤덮었다.
“……싸울 수밖에 없겠네요.”
가능하면 인명 피해는 피하고 싶었던 테레사도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부우우웅!
검은색 승용차들이 오토바이를 들이받으려 했다.
동시에 창문이 내려가며 각종 무기들이 튀어나왔다.
“저놈이다! 맨 앞에 뺀질거리는 놈이 강진혁이야!“
“크하하! 저놈만 잡으면 평생을 놀고먹을 현상금을 탈 수 있어.”
이미 동공이 풀려 있다.
공포를 잊기 위해 강력한 환각제를 맞은 것이리라. 연꽃 문양이 새겨진 마도구. 화염계열 마법과 전격 계열 마법들이 한꺼번에 발사됐다.
퍼퍼펑!
퍼엉!
진혁이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틀었다.
조금 전까지 달리고 있던 도로가 벌집이 되었다.
“벌레보다 못한 하등한 것들이 짐의 고귀한 옥체에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엘리스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떨어졌다.
[엘리스가 ‘블러드 스피어즈’를 개방합니다!]일그러진 아공간 너머에서 붉은 꼬챙이들이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
“으아악!”
“우와아악!”
차들이 통째로 꿰뚫리더니 이내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뒤따르던 차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엉키더니 가드레일을 들이박아버렸다.
한순간에 사라진 마력.
수십 명의 사람이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래서 엘리스가 제대로 화나면 무섭긴 무섭다니까.
하긴, 애초에 진조 입장에서 인간 따위의 목숨이야 깃털보다 가벼울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안심하긴 아직 이르다.
추격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했으니.
저벅저벅.
차들이 전부 박살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번엔 약 3m 크기의 이족 보행 새들이 정면에서 걸어왔다.
등에는 창과 칼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태운 상태로.
[‘환수종’ – 가루다.]정확히는 가루다의 DNA를 이용해 양산한 개체들이다.
본체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환수종이란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숫자는 총 7마리.
아까와는 다르게 가루다에 타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수준 역시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크르르….”
“끼루륵. 끼루룩!”
가루다들의 입에서 굵은 침들이 뚝뚝 떨어졌다.
저 멀리서는 새로운 차량들이 더욱더 많이 몰려오는 중이었다.
“갈수록 가관이군. 차라리 퇴근길 올림픽 대로가 덜 빡빡한 것 같다.”
천유성이 천천히 마력을 끌어모았다.
“쳐라.”
가장 앞에 있던 랭커가 긴 창을 앞으로 뻗었다.
그 말을 기점으로 6마리의 가루다들이 일제히 멤버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몸놀림.
바람을 타고 질주한 가루다가 한 입에 천유성의 몸을 양단하려했다.
허나, 검광이 번뜩이는 게 훨씬 더 빨랐다.
비스듬한 사선으로 그려진 검격이 허공을 갈랐다.
서걱!
“크르… 륵?”
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큭!”
가루다의 등에 타고 있던 랭커가 즉시 높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창을 던졌다.
부우웅!
쏟아지는 피보라 속에서 한 기습이다.
시야가 가려진 데다 방금 전 큰 동작을 한 탓에 피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물론.
천유성 역시 혼자 싸우는 게 아니었다.
카아앙!
든든하게 앞으로 끼어든 테레사가 방패로 투창을 튕겨냈다.
은은하게 빛나는 신성한 기운.
‘별의 가호’를 머금은 갑주가 달빛을 받아 눈부신 광휘를 뿜어냈다.
완벽한 호흡, 그 틈을 이용해 이태민이 가지고 있던 드론들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이태민이 고유 능력 ‘기계군주’를 발동합니다!]수백 기의 드론들이 가지고 있던 포탄을 떨어뜨렸다.
콰콰콰쾅!
콰아앙!
도로가 검붉은 폭염에 휩싸였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타들어갈 것 같은 열기가 솟구쳤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군대를 상대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이딴 공격이….”
“쳇….”
가루다를 탄 랭커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더라도 저 불길 속으로 걸어가긴 쉽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한 번 먹여줄 차례인가? 아주 잔인하게 짓밟아주지.”
연기 속에서 진혁이 이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도망만 치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공세로 전환하려 한 것이다.
오싹하고.
뜨거움 속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뭔가 다르다.
자칫하다간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조심해라!”
리더 격인 랭커가 고함을 질렀다.
[방어 스킬 ‘가루다의 깃털’이 발동됩니다!] [경계 스킬 ‘마력감지’가 발동됩니다!] [방어 스킬 ‘천세의 경전’이 발동됩니다!]모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격에 대비했다.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타닥…. 타닥…!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추가적인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뭐지?”
몇 분이 지나서야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연기가 걷혀갈 무렵에야 모두들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올림픽 대로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