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09)
609화. 언약(言約)의 전투 (3)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상대의 호흡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이 적막에 감싸였다.
우우웅!
진혁의 주위로 다수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빙하조형’과 ‘태초의 불꽃’으로 만들어낸 각종 마법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언노운을 노렸다.
콰아아앙!
내부가 불꽃과 얼음 가루들로 가득 찼다.
건물 전체가 박살 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하지만.
“흐음. 초기에 얻은 스킬들을 섞어 쓴다라…. 생각보다 시작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언노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검마천령보가 발동됩니다!]기척을 감추고 불꽃과 얼음 가루 속에 몸을 숨긴다.
진혁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언노운의 뒤를 잡았다.
“……라고 눈속임을 준 다음에 기습을 한다? 이것도 그다지 신선하진 않네요.”
언노운의 오른손에 ‘홍련’이 나타났다.
횡과 종으로 이어진 궤도.
카아앙!
두 개의 단검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검의 무덤’과 ‘추혼검’이 동시에 펼쳐지며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공방전이 이어졌다.
이미 검술의 극의에 이른 상태였기에 두 그림자는 잔상에 잔상만 남긴 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촷!… 콰콰콰쾅!
세 수, 다섯 수. 열 수.
예측의 예측을 거듭하며 예지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몸에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조금 더 날카로운 수는 없는 겁니까? 이래서야 잔뜩 기대했던 내 마음에 상처가 너무 크잖아요.”
언노운이 계속해서 이죽댔다.
가면을 쓴 모습이 이토록 얄미워 보일 수가 없다.
“너… 말이 너무 많아.”
“하하. 왜 그러십니까. 싸우는데 입을 터는 거야 말로 ‘우리’의 전형적인 특징인데 말이죠.”
“가짜 주제에 자연스레 우리라는 말을 집어넣네.”
쿠쿠쿠쿠!
단검의 표면이 완전히 검붉게 뒤덮였다.
위에서….
…아래로.
[고유 성창 ‘다운 폴’이 발동됩니다!]투콰아앙!
유성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콰콰콰콰콰……콰아아앙!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크윽!”
처음으로 언노운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담긴 일격을 정면에서 받아버린 탓이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충격을 최대한 분산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자 약간 체증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이제야 좀 볼만해졌네.
“이런 좁은 곳에서 다운 폴을 쓰다니… 무식하기는.”
“억울하면 너도 쓰든가. 내 모든 것을 복제했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녔어?”
“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전투 센스가 빵점이라는 소리입니다.”
언노운의 주위로 녹색 운무가 응집되었다.
대상을 뼈까지 녹여버리는 능력. ‘멸천만독’이다.
시그니처 능력 중 하나가 발동되자 내부가 강력한 독으로 가득 찼다.
중원에서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학정홍과 신경독을 합성해 만든 새로운 종류의 극독이었다.
치이이익!
대리석이 타들어가고 안에 있던 전자 장비들에 기포가 맺혔다.
숨을 쉬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는 극악의 상황.
“세금으로 산 비싼 장비들을 국물로 만들어버리다니… 너야말로 전투 센스가 영 없는 것 같은데?”
진혁이 손으로 녹색 운무를 가볍게 휘저었다.
이미 독에 관해서는 당문의 전대 가주들마저 뛰어넘는 경지였기에, 새로운 독을 분석하고 해독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촤앙…!
한 개였던 단검이 두 개로 늘어났다.
‘바너드’와 ‘홍련’.
수많은 전투를 함께해온 애병기였다.
촤촹!
“역시, 직접 심장을 꿰뚫는 수밖에 없겠네요.”
마찬가지로 언노운 역시 두 개의 단검을 손에 쥐었다.
파츠츠…!
유형화된 마력과 마력이 공간을 갉아먹었다.
이미 수백 개의 검무로 인해 정상적인 방법으론 서로를 죽일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변초와 기습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렇다면….
각자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할 뿐.
[고유 성창….]새하얀 빛이 일렁이며 심상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서서히 펼쳐졌다.
[‘파이널 제네시스’가 발동됩니다!]우우웅!
시야가 완전히 바뀌었다.
⁕ ⁕ ⁕
새하얀 눈송이가 쏟아지는 설원. 아직 누구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풍경 속에 진혁과 언노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된 이상, 여기서라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상대를 찍어누를 수 있을 것이다.
진혁이 아공간에서 ‘패도의 왕관’과 ‘신속의 왕관’을 동시에 소환했다.
[고유 능력 ‘융합’이 발동됩니다!]두 개의 왕관이 합쳐지며 새로운 형태의 왕관이 나타났다.
“……!?”
언노운의 가면에 순간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그 순간.
탓!
진혁이 눈을 박차고 쇄도했다.
공간이동에 가까운 속도.
단검과 단검이 격돌하자 작은 날붙이에서 날 수 없을 것 같은 굉음이 울려퍼졌다.
콰앙!
쌓인 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소닉붐이 연이어 일어나며 폭풍과 같은 공격이 이어졌다.
두 왕관의 버프를 받고 있던 터라 모든 공격이 필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윽!”
언노운이 ‘빙하조형’을 이용해 수십 겹의 방해물을 만들어냈다.
워낙에 미친 듯이 몰아치는 검격에 대응하다 보니 잠시나마 숨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능력을 무효화시키는 방법 따위야 얼마든지 있다.
[고유 능력 ‘니힐리즘’이 발동됩니다]쩌저적…!
얼음이 그대로 갈라지며 증발해버렸다.
그 사이로 적색 섬광이 번쩍였다.
마탄이 언노운의 심장을 향해 뿜어진 것이다.
언노운이 ‘고대 결계’를 발동해 가까스로 마탄의 궤도를 빗겨냈다.
쳇.
혀를 찬 진혁이 ‘음영극살’을 발동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림자와 그림자를 타고 이동한 진혁이 또 다시 사각에서 언노운을 노렸다.
한 호흡만에 10번이 넘는 페인트를 준 진혁이 언노운의 심장을 꿰뚫었다.
칼이 살을 가르고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푸욱!
뼈가 부러지고 피가 뿜어진다.
그러나 정작 치명상을 성공시킨 진혁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 와중에 급소를 피했나.”
“큭큭! 아, 이거 더럽게 아프긴 아프네요. 아무리 다시 살아나는 게 중요하긴 합니다만, 대체 이걸 몇 번이나 반복해왔던 겁니까?”
즉사하지만 않는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별의 가호’.
부활의 힘은 언노운에게 2번째 기회를 선사했다.
언노운이 피를 울컥 토하면서도 준비했던 함정을 사용했다.
또옥…! 또옥!
핏방울이 매개체가 되어 바닥에 거대한 육망성이 떠올랐다.
‘공간 구속’의 효과가 있는 고대결계.
조금 전, 적색마탄을 방어하기 위해 굳이 여러개의 스킬 중 고대 결계를 사용한 것도 모두 지금을 위한 밑준비였다.
시간으로 치면 10초 남짓.
허나, 결계사로 전직한 진혁을 붙잡아 두는 덴 3초도 힘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죠. 충분하고 말고요.”
[고유 성창 ‘마에스터’ – 헬 버스터가 발동됩니다!]바닥에 붉은 좌표가 찍혔다.
위성을 소환해 약 5제곱미터를 증발시켜버리는 대인 살상용 고유성창이다.
범위가 축소된 만큼 위력과 지속시간이 대폭 상승하는 특성.
“이거라면 1초 무적도 별의 가호도 소용없을 겁니다.”
언노운이 중지와 엄지를 튕겼다.
곧바로.
쿠쿠쿠쿠쿠쿠!
하늘에서 붉은 화염이 쏟아졌다.
새하얀 세계에 붉은 선이 생겨났다.
지옥불과 같은 겁화는 주위에 있는 눈들을 모조리 녹여버렸다.
화르륵… 콰콰콰콰콰!
영원과 같은 3초가 지났다.
자욱한 수증기와 미적지근한 공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이거라면 제아무리 단단한 놈이라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벅.
진혁이 폭염을 뚫고 다가왔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지옥에서 오는 악마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상상 이상이군.’
언노운이 속으로 쓰게 입맛을 다셨다.
……진혁이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준비한 카드가 워낙 많았기 때문.
하지만 천유성을 대신 미끼로 쓰고 본진으로 들이닥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게 너무나 뼈아팠다.
‘최소한 시간이 더 필요해.’
1시간… 아니, 30분만 있으면 완벽하게 진혁의 능력을 흡수하고 동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렇게 본실력이 비등비등해진다면 ‘인류’라는 전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터.
그 다음은 단순히 시간 싸움에 불과하다.
문제는 아직 동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 진혁을 넘어서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언노운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존심이 상하긴 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고유 성창 ‘파이널 제네시스’가 해제됩니다.]심상세계가 풀렸다.
“왜, 더 덤비지 않고? 아니면 계속 까불더니 이제 와서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건가?”
“아직은 완전하게 싸울 상태가 아니다… 정도로 말하고 싶군요.”
“죽어도 자기가 졌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네. 뭐, 변명은 지옥에서 마저 하든가 말든가 하고 이만 끝내줄게.”
1:1을 한 덕에 언약이 발동되기 전까지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다.
밖에 있는 동료들도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으니 꽤나 수월하게 일이 마무리된 셈이다.
진혁이 완벽하게 언노운의 숨통을 끊기 위해 ‘서리혼령의 창’을 꺼냈다.
파칙…!
절대 영도의 냉기가 담긴 기운이 창 끝에 맺혔다.
“흐음. 승기를 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건 이해합니다만…. 아직 전 제대로 된 패를 까지도 않았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인사를 위한 전초전.
본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플레이어 언노운이 특수 아이템 ‘영원한 신념을 잇는 끈’을 사용했습니다.] [운영자의 고유 성창 ‘정신종속’이 발동됩니다!]기존에 제한된 층계에서 동료를 불러올 수 있는 ‘신념을 잇는 끈’의 상위 버전 아이템. 그리고 S급에 해당하는 보스급 몬스터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특수 능력이 발동되었다.
“자, 이제 한 번 판을 키워보죠.”
언노운의 가면이 붉게 물들었다.
⁕ ⁕ ⁕
퍼퍼퍼퍽!
퍼어억!
[개벽의 계시록 ‘선혈의 비’가 발동됩니다!]수천 개의 꼬챙이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끄아아악!”
“아아악!”
아무리 크롤의 칭호를 가진 하이 엘프들이라도 각성한 엘리스의 공격을 버텨낼 순 없었다.
“저 빌어먹을 진조 놈이….”
그나마 대마도사인 아페르망이 있었기에 전멸만은 면할 수 있었다.
커다란 공방이 오고간 뒤 생겨난 짧은 틈.
엘프들을 쓸어버리던 엘리스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아 하아….”
적은 인원으로 압도적인 다수의 적을 상대하려다 보니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제 머지 않았다.
진혁이 언노운을 잡기 위해 아래로 내려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들의 전력이 더욱더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 맡은 역할 이상을 해주는 것도 든든히 한 몫 했다.
‘계약자라면 바보 같은 인간들이 아래로 가기 전에 싸움을 끝내겠지.’
그러면 더 이상 가짜라고 오인받아야 할 이유도. 언약으로 인해 모든 게 위태로워질 위험도 없어질 것이다.
그게 맞을진대….
우우웅!
갑자기 저 아래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나왔다.
몇 년의 세월을 함께하며 익숙해진 진혁의 마력과는 조금 달랐다.
찝찝하면서 끈적끈적한 기운.
“무엇이냐… 저 불길한 빛은.”
엘리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무언가 이변이 발생했다.
그것도 아주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