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10)
610화. 언약(言約)의 전투 (4)
약 1시간에 걸쳐 이어진 전투.
그 결과 100명 이상으로 구성된 대형급 공격대 12개가 전멸했고 기계화 보병사단을 비롯해 1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모두가 힘을 합친 덕에 가까스로 S급 보스들의 발을 묶어 두는 데 성공했지만….
가까스로 유지되던 균형은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무너졌다.
“하하….”
“이게 말이 돼?”
“몰아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하잖아.”
플레이어들이 허탈한 표정을 한 채 중얼거렸다.
시련의 탑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거대한 구멍.
거기에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들이 현현하고 있었다.
[탑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차원이 이어집니다.] [아포칼립스 ‘언약(言約)’ – ‘퍼스트 임팩트’가 발동됩니다!]특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만 일어나는 현상.
30층 후반대에 해당하는 보스 몬스터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유적과 미궁 등이 그대로 현실 세계에 접목되고 있었다.
파츠츠…! 파치칙!
검고 붉은 스파크가 일어나며 빌딩들이 이쑤시개처럼 박살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구조물이 서울 한복판에 통째로 나타난 것이다.
[38층 유적 ‘공중요새’가 현현합니다!] [39층 미궁 ‘검은 이리 굴’이 현현합니다!]대형 길드의 정예들을 총동원해도 아직 30층 후반대에 있는 기본적인 던전조차 공략하지 못했다.
워낙에 진혁이 빠른 속도로 등반해서 층계 공략이 빠를 뿐이지. 개개인의 실력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층계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유적과 미궁들이 나타나다니.
이건 죽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39층의 미궁 ‘검은 이리 굴’은 누군가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검은 이리.”
엘리스가 천천히 미궁의 이름을 곱씹었다.
지독하리만치 악연이 깊다.
뱀파이어들과는 오래전부터 영역 다툼을 해왔던 관계였으니까.
특히 한 쌍의 곡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붉은 눈을 가진 순혈종들은 설령 진조라 하더라도 쉽게 생각하기 힘든 강자들이었다.
천유성과 테레사 역시 심상치 않은 마력을 감지했다.
“골치 아프게 됐군. 망할 고인물 녀석은 실패한 건가.”
“진혁 씨가 당했을 리는 없을 것 같지만… 일이 꼬이긴 했나 보네요.”
한 층계를 공략하는 데도 엄청난 인원과 희생이 필요한 걸 생각한다면. 몇 개의 층계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건 단순히 수치로 가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양 손으로 단단히 검을 잡고 있던 천유성이 손에 힘을 뺐다.
그러면서 방금 전까지 싸우고 있던 상대를 바라봤다.
“어떻게… 이래도 우리끼리 치고받고 싸울 때인 것 같나? 너도 뇌라는 게 있다면 어느 쪽이 가짜인지 알 것 같은데?”
“…….”
이창희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확실히….
만약 진혁이 가짜였다면 다른 층계의 아웃브레이크를 일으킬 수 있는 카드를 지금에서야 쓸 이유가 없었다.
굳이 이렇게 질질 끌 게 아니라 처음 의심을 받았을 때 바로 사용했겠지.
충분히 인류 전체를 쓸어버릴 만큼 강력한 능력이었으니까.
그것 외에도 계속해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상진이나 이상하게 언노운에게 협력적인 간다라 길드.
의심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세뇌에 가까운 언론 공작에서 한 발 물러서자 짙게 끼었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 진위를 판별하기엔 무리다. 정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 죽게 생겼는데 증거라니 어이가 없군. 네놈도 플레이어라면 휘둘릴 게 아니라 자신만의 직감을 따라라.”
시간이 없다.
확신할 수 있는 근거 또한 없다.
1분 1초를 다투는 시점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 하나뿐.
바로 그때.
쿠쿠쿠쿵!
미궁의 입구가 개방되었다.
약 10M에 이르는 거대한 굴에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벅. 저벅.
무언가 온다.
“크르르….”
“그르륵….”
검은 갈퀴에 붉은 눈동자.
카카카칵…!
한 쌍의 곡도를 든 검은 이리들이 곡도를 바닥에 끌며 앞으로 다가왔다.
사냥감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검은 이리가 엘리스를 향해 어금니를 드러냈다.
“오랜만이구나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
한 쪽 얼굴을 따라 새겨진 기다란 상처.
붉은 눈은 한 쪽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락타크….”
“네년에게 당한 눈이 쑤셔서 아직까지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듣자 하니 그 가증스러운 송곳니 가주 대부분이 죽었다던데… 얼마 남지 않은 그 비참한 종족의 핏줄을 아예 끊어주지.”
스릉!
각종 저주가 새겨진 곡도가 앞으로 향했다.
과거 30층 후반대에서 두 종족은 수천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왔었다.
죽고 죽이면서 이제는 증오밖에 남지 않은 현실.
가급적이면…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싸우고 싶진 않았으나.
어쩔 수 없다. 계약자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들은 모조리 없애버려야 했으니까.
“그대야말로 그 토굴 속에 박혀 있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미련한 짐승이여.”
엘리스 역시 한 쌍의 날개를 편 채 레이피어를 뽑았다.
*
같은 시각.
하늘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요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탑 38층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공중요새.
유적 그 자체가 보스 몬스터인 부유도시가 기괴한 공명음을 내뱉었다.
철컹! 철컹!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마력 포탑에 마력탄이 장전되었고. 수정구에선 눈부신 빛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이창희가 새롭게 등장한 적들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복잡한 심정에선 수많은 갈등들이 묻어나왔다.
그렇게 몇 초나 흘렀을까?
“지금부터 고인물 코퍼레이션과 협력한다.”
이창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단군 길드의 지침을 정면에서 위배하는 말이었다.
“예?”
“하, 하지만 공대장님?”
“책임은 내가 진다. 유천영 어르신을 비롯해 강진혁 플레이어에게 협력하는 조력자들을 모아 요새를 저지해라.”
대세에 억눌려서 그렇지. 아직까지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지지하는 세력이 남아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감금해 둔 유천영을 비롯해 간다라 길드에 사로잡힌 민정우와 이유리 역시 마찬가지였고.
“젠장. 만에 하나 실업자되면 나중에 가게라도 하나 차려주셔야 합니다? 내 몸값 비싼 거 알죠?”
“저는 카페로요. 청담 아니면 성수에다가.”
이지은과 최규하.
단군 길드의 남매 랭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창희 옆에 섰다.
“간다라 쪽하고도 한 판 붙게 되겠군요.”
단군 길드의 메인 탱커 중 하나인 이기준 역시 거대한 배틀 해머와 방패를 집어들었다.
오래 전부터 공대장을 깊게 신뢰하고 있는 이들의 특성상, 이창희가 내린 결정을 묵묵히 따를 생각이었다.
“시간은 우리가 끌어볼 테니. 당신들은 어떻게든 저 빌어먹을 아포칼립스를 막아주쇼.”
“최선을 다해보지.”
천유성이 다시 한 번 두 손으로 단단히 검을 쥐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생겨난 변수.
지금부터는 누가 더 빠르게 움직이냐의 싸움이다.
⁕ ⁕ ⁕
“아주 재밌는 장난을 쳤네.”
진혁이 현실에 현현한 보스들을 바라봤다.
언노운이 여러 가지 히든 카드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30층 후반대의 보스들을 한꺼번에 볼러 올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신념을 잇는 끈’의 상위 격 아이템은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졌으니까.
실제로 과거 탑의 정상에 근접했을 당시에도 지나치게 많은 재료 아이템이 요구된다는 이유 탓에 진혁 역시 저 아이템을 만드는 걸 포기했었다.
그런데.
저걸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밝은 빛과 함께 언노운의 주위에 여러 명의 인물들이 공간 이동했다.
간다라의 랭커들인 쿠마르와 데쉬무크 카잘과 안티아였다.
“대단하군. 그새 이 안까지 들어왔다니.”
“언노운 님도 많이 몰리셨나 보네요. 저희를 전부 부를 정도면요.”
“그러게 진즉에 우리랑 함께 싸우자니까.”
“아뇨. 차라리 보는 눈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이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인도 주신들의 가호를 받는 네 명의 플레이어들은 지금 이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느긋하게 행동했다.
“처음부터 언노운에게 넘어갔던 거냐? 놈이 현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거라는 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인류가 멸망한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진혁의 질책에 쿠마르가 비릿한 미소로 대신 답했다.
“멍청한 인간들은 우리에게 모든 걸 떠맡긴 채 자신들은 안전한 곳에서 방관만 하고 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탑을 오르는데 놈들은 그 혜택만 쏙 빼먹으면서 일상을 누리고 있지. 그런 머저리들을 위해 우리가 희생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
대가라고 해봤자 노력에 비해 불만족스러운 보상뿐.
인류의 정점으로 칭송받는 이들에게 그런 것 따윈 아무리 받아봐야 소금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탑은 다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수많은 자원이 넘쳐나는 이상향.
만약 제대로 된 위치를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현실과 탑.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소리다.
“……언노운이 감투 하나씩 씌워준다고 했나보네.”
“탑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절대자. 그리고 위대한 인도의 주신들과 그분들로부터 선택받은 인간들. 그림상으로도 아름답지 않나?”
“글쎄. 내 경험상 보통 그런 말하는 놈들은 이용당하다가 버려지기만 하더라고.”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건방진 놈이 감히 뭘 안다고 그딴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콰아앙!
차크람이 진혁의 발 바로 앞에 꽂혔다.
지면에 박힌 원형의 칼날 위로 황금색 마력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다.
그런 쿠마르의 어깨에 언노운의 손이 올라갔다.
“저딴 말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누구와 다르게 함께 하기로 한 이들을 배신하진 않으니까요. 여러분은 신경 쓰지 마시고 저 인간을 박살내는 데에만 온 힘을 쏟아주시면 됩니다.”
한점 흔들림 없는 말투.
그제야 쿠마르가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알겠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느긋하게 힘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십시오.”
애초부터 진혁을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새롭게 얻은 신의 권능을 이용해….
……철저하게 박살내 버릴 생각이다.
[간다라의 랭커들이 특수 스킬 ‘혼신일체(渾身一體)’를 발동합니다!]쿠쿠쿠쿠쿠쿠쿠!
엄청난 마력과 함께 빛으로 이루어진 기둥들이 떨어졌다.
천세의 주요 신격들의 능력을 인간의 몸에 깃들게 하는.
‘사도’의 칭호를 받은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이다.
게다가 언노운이 ‘퍼스트 임팩트’를 통해 불러들인 건 간다라 길드의 랭커들만이 아니었다.
[천세의 신격들이 잠시 뒤 현현합니다.] [남은 시간 0H : 2M : 59S]왜 쿠마르가 저토록 자신만만했는지 알 것 같다.
30층 후반대의 보스들뿐 아니라, 천세라는 거대한 신화 자체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준비해둔 비장의 수단이 남아 있다.
3개의 ‘거래 불가’ 아이템 중 하나.
[‘미완결의 책갈피’가 발동됩니다!]드디어 이걸 사용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