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15)
615화. 범천(梵天)의 연꽃 (2)
콰콰콰콰콰콰!
유함 속에 힘이 있다는 말.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게 바로 브라흐마의 고유능력 ‘범천(梵天)의 연꽃’이다.
“큭!”
진혁이 흐드러지는 꽃잎을 사력을 다해 피했다.
‘창조’와 ‘소멸’의 힘을 가지고 있는 연꽃은 닿는 즉시 어떤 파급효과를 일으킬지 몰랐다.
하지만 꽃잎 자체보다 더 위험한 건 꽃잎에서 풍기는 향이다.
한 번이라도 맡으면 정신이 붕괴되는 특성 탓에 절대로 저 냄새를 맡으면 안 된다는 소리다.
[‘천마군림보’가 발동됩니다!] [‘바람의 영역’이 발동됩니다!]콰앙!보법과 신법이 동시에 펼쳐지며 꽃잎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물리적인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향까지 날려버린 셈이다.
“흐음. 이상하군요.”
브라흐마가 어둠 속에서 팔짱을 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건 덤이었다.
“분명, 이 능력을 보는 건 처음일진대… 대응법이 너무나 완벽하군요. 마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화 공부 좀 빡세게 하다보니 잡지식 좀 많이 쌓았다. 꼽냐?”
“하하하. 까칠하시기는. 칭찬으로 한 말입니다. 칭찬으로.”
“두 번 칭찬 했다간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네. 그래서… 굳이 1:1 상황을 만든 건 무슨 의도야?”
“싸우기에 앞서 당신이란 존재가 어떤지 한 번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고작 일개 인간의 몸으로 수많은 신격들을 좌지우지하며 탑의 판도를 바꿔낸 게 너무나 신기했거든요.”
인사는 이걸로 충분히 했다.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다른 신격들과 제자리걸음을 하는 현실에 찌들어 있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의 기대감과 흥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첫날부터 적의 머리를 제거하는 건 재미없는 일이죠. 지금부터 천세라는 신화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드릴 테니. 그 급조된 세력으로 어디 한 번 전력을 다해 막아보십시오.”
“이야. 세게 말하는 놈치고 한 달 뒤에 살아 있는 놈이 없던데. 뭐, 기대하고 있을게.”
진혁과 브라흐마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댔다.
그것으로 탑의 판도를 결정지을 신화 속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서쪽 사원 앞.
천세의 대군이 집결해 있는 장소에 브라흐마가 나타났다.
“산책은 잘 다녀 오셨나요?”
조각 구름 위에서 번개를 가지고 놀던 인드라가 키득였다.
“그래. 첫인사치곤 나쁘지 않았구나. 얻은 것도 좀 있고.”
“후후. 좋은 시간이었다니 다행이네요.”
훈훈한 대화가 오고 가고 있을 때였다.
계속해서 눈치를 보고 있던 쿠마르가 냅다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놈들이 아무리 잡졸들을 긁어모았다고 한들 위대하신 천세의 신격들에겐 어림도 없을 터. 부디 강진혁의 숨통을 끊는 것만은 이 쿠마르에게 맡겨 주십시오!”
전쟁의 규모가 클수록 전후에 보상도 큰 법.
쿠마르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완벽하게 굳힐 생각이었다.
“아…! 당신이 있었죠? 깜빡했었는데… 나서주셔서 기억이 났네요. 이리 오세요. 어서요.”
“예! 감사합….”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치켜들던 쿠마르의 눈앞에 손바닥이 나타났다.
터억!
브라흐마가 쿠마르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채 나오기도 전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전신을 태워버렸다.
화르륵!
“끄아아악! 끄아아아….”
쿠마르의 몸이 산채로 말라 비틀어져갔다.
“히이익?”
“왜, 왜 그러시는 겁니까?”
옆에 있던 데쉬무크와 나머지 간다라 랭커들이 비명을 질렀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신격이 자신들의 리더를 공격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여러분의 심상세계는 너무도 나약하여 이 전쟁을 존속시킬 만한 힘이 없습니다.”
애써 뽑은 장기말인 건 사실이다.
허나, 어차피 장기말이란 대세를 위해 희생하는 소모품일 뿐.
간다라 길드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브라흐마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쿠마르의 몸에 남은 정기를 흡수했다.
우두둑!
파삭.
미라가 되어버린 쿠마르의 몸이 박살났다.
“심상세계를 유지하는 건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그 근간만 넘겨주시죠.”
반항하다가 고통스럽게 가느냐.
얌전히 운명을 받아들이고 비교적 편하게 가느냐.
적어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주겠다.
“으아아악!”
“아아악!”
짧고 굵은 비명과 그걸 지켜보는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그리고 몇 초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게 조용해졌다.
[45층의 권한으로 인해 심상 세계가 대폭 강화됩니다!] [결계 유지 기한 48H : 59M : 59S]우우웅!
황금빛 파장이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이걸로 시간은 충분히 번 셈이다.
바로 그때.
공간에 균열이 일어났다.
[다차원 공간이동이 발생했습니다.]전신이 검게 타들어간 채 의식이 없는 노인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젊은 여성.
2닭과 jj였다.
신들마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련의 탑 최강의 절대자들이 목숨만 간신히 부지한 채 나타난 것이다.
“뭔가… 잘못됐군요.”
언제나 여유로웠던 브라흐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적어도 브라흐마의 입장에서 이 둘이 부상당할 거라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2닭이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예전부터 우리 일을 방해하는 놈이 있었어요. 그 자가 공격했습니다.”
“수리부엉이… 라는 인물 말씀이군요.”
“예. 바로 그놈이에요.”
“언약은 어떻게 됐죠…?”
브라흐마의 질문에, 2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시간 안에는 무리예요. 아마 며칠은 더 있어야 복구가 가능할 것 같아요.”
“그건… 조금 많이 짜증 나는 소식이군요.”
언약의 발동은 모든 계획의 근간이 되는 필수요건.
최악의 아포칼립스가 일어나야지만 방해거리들을 전부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수리부엉이는 봉인하는 데 성공했어요. 허무의 틈으로 날려버렸으니 다시는 우리 일을 방해하진 못할 거예요.”
특정 좌표를 알아야지만 돌아올 수 있는 영원한 미궁. 그 안에 들어간다면 자력으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가장 성가신 운영자를 제거한 셈이었으니….
언약 발동이 늦어진다고 해도 마냥 손해는 아니다.
“강진혁 쪽에서도 다른 세력들을 대거 불러왔다고 들었는데, 그 쪽은 괜찮은 건가요?”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이번 일에 사활을 걸기로 결정했으니까요.”
브라흐마가 옆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사원의 뒤로 끝없이 도열해 있는 병력들이 무기를 치켜들었다.
“우오오오!”
“오오오오!”
온 세상을 뒤흔드는 함성.
감히 수로 헤아리기 힘든 수억에 이르는 대병력이었다.
그 사이사이로 가루다를 비롯해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각종 신격과 신수들이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천세의 모든 신화와 병력이 동원되는 총력전.
“저희 본거지에서 싸움을 거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똑똑히 알려드리죠.”
40층 대 후반에 거주하는 고대룡들마저 전면전은 피한다는 최강 신화의 전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판이 꽤 커졌네.’
진혁이 조금 전 브라흐마와의 전투를 되새김질했다.
평소 만사 귀찮아 하는 걸로는 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성격.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 번 싸워보니 놈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번 싸움에 임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마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다 꺼내 쓰겠지.’
신격들과 신수들을 비롯해 놈들에게 있어서도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는 ‘아수라’까지 꺼내들 확률이 높았다.
반면.
이쪽은 신격들을 대거 불러왔다고 해도 엘리스와 천유성 그리고 테레사를 활용할 수 없는 상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꼼꼼하게 판을 설계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언젠간 넘어야 할 벽. 우리도 싸우는 건 찬성이다. 하지만, 계획은 있는 건가? 적어도 45층에서 천세에게 싸움을 거는 미친 놈은 없다.”
크로노스가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올림포스의 시작을 함께 한 고대신이었으나, 브라흐마를 만난 뒤부터는 살짝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건 나머지 신격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대 주신들도 막강하긴 하지만 문제는 놈들이 보유한 병력이에요.”
“동의한다. 놈들에겐 만, 십만 단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억에 달하는 터무니없는 정예병력이 있어.”
올림포스의 아르테미스와 북유럽의 로키가 각자 알고 있는 걸 늘어놨다.
그나마 단순 머릿수만으로 비벼볼 만한 신화는 마계와 에덴뿐이었으나….
“불행히도 천사들의 지원은 힘들어요.”
“우리 쪽도 마찬가지다. 워낙 각자 노는 친구들이거든.”
가브리엘과 베리엘의 입장에선 두 층계의 전력을 전부 불러 모으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직까지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만약 내전 중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마계와 에덴은 전쟁 중인 상황이었으니까.
한쪽이 대량의 지원을 보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빈집털이를 할 게 틀림없었다.
결국은 지금 이 전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건데….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지휘관을 뽑는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다양한 신화에서 모였기 때문에 그걸 통솔할 수 있는 리더십 있고 카리스마 있는 1인이 필요하거든요.”
순간, 모두의 눈빛에 탐욕이 스쳐지나갔다.
이 많은 신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
어찌 이런 일을 꿈꿔왔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이들이 군말 없이 따르는 그 짜릿한 상상을 말이다.
“그거야 당연히….”
“역사 깊은 우리가…!”
“어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 몸 외에 리더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모든 신화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만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목에 핏대를 꿈틀거리며 투기를 뿜어냈다.
“……당연히 다들 그러실 줄 알고 제가 공평한 제안을 준비했습니다.”
진혁이 헛기침을 하며 품에 간직했던 두루마리를 폈다.
각각의 신화와 그 신화에 소속된 신격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제법 커다란 두루마리였다.
“이게 무엇인가?”
“앞으로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세력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을 겁니다. 이 도장이 가장 많은 세력이 리더가 되는 거죠. 물론, 그 동안 공석이 생기면 안 되니 잠시나마 제가 임시 리더를 맡을 생각이고요.”
참고로 반론은 기각이다.
존재하지 않는 왕관 제조법을 알고 싶으면 개처럼 기어야 할 테니까.
신격들이 똥 씹은 얼굴을 한 채 어차피 독재를 할 거면 리더 이야기는 왜 했냐며 구시렁거렸다.
그러면서도 작은 희망은 놓지 않았다.
저 점수를 차근차근 쌓아가면.
나중에는 ‘제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 ⁕ ⁕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각자가 분주하게 전력을 가다듬고 있을 무렵.
콰아앙!
약 300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강한 마력의 폭발이 일어났다.
“크오오오!”
길고 긴 짐승의 포효.
대기를 따라 파장이 쩌렁쩌렁 퍼져 나갔다.
“온갖 잡종들이 종류별로 몰려왔구나. 어디, 나와 싸울 용기가 있는 자가 있으면 앞으로 나서 보거라!”
환수종 가루다와 그 머리 위에 있는 주신 ‘루드라’였다.
바람과 폭풍을 다루며 동시에 사냥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한 루드라는 시바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막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완벽한 무투파 남신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루드라의 뒤로는 약 오백 여기의 중갑병들이 도열해 있었다.
고작 저 숫자로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소리는 아닐 테고.
“간을 보겠다는 건가.”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선봉전은 보통 전쟁에 있어서 서로의 기세를 가늠하는 중요한 전투다.
적은 수로도 사기를 크게 좌우할 수 있기에, 양 진형에서는 가장 믿음직한 카드를 보내는 게 통상적일 터.
루드라는 그 모든 걸 고려해봤을 때 충분히 쓸 만한 패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힘과 힘의 대결이라면 이쪽도 만만치 않지.’
천세의 신격들의 능력을 잔뜩 복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단물을 쪽쪽 빨아먹어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