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19)
619화. 전쟁 속에 전쟁 (2)
수많은 연꽃이 개화해 있는 ‘만트라 대사원’.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이곳엔 브라흐마를 비롯해 다수의 신격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꿀꺽….
여기저기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천 만의 대군이 철통같이 사원을 지키고 있었지만, 근처에서 몰려오는 먹구름 앞에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온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동시에.
쿠웅!
사원의 입구에 묵직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쏴아아아….
연꽃들이 검게 물들고 물이 칠흑색으로 변했다.
“만트라 대사원이라니… 더럽게 멀리에도 자리잡았군.”
“누가 아니랍니까.”
“쳇! 무슨 대전쟁을 일으킨다고 우리 전부를 부르다니 천세 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밑도 못 닦는구만.”
신성이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흉흉한 마력은 마족들보다도 오히려 깊고 어두웠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격이 다른 존재가 있었다.
“다들 닥쳐라. 저 머저리 놈도 생각이 있으니까 우리를 부른 것일 테니.”
3주신의 숙적이자 45층에서 가장 무력이 강력한 신격 중 하나인 ‘아수라’였다.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머리와 6개의 팔에는 기묘하게 생긴 무기들이 쥐어져 있었다.
아수라의 짜증 섞인 음성에 나머지 신격들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한 마디 덧붙였다간 사지가 갈가리 찢겨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수 무리들이 연못을 가로질러 계단 꼭대기로 향했다.
브라흐마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먼 길 오느라 정말로 고생이 많았어. 마음 같아서는 외곽까지 마중 나가고 싶었지만, 자네도 알잖아? 내가 급이 낮은 친구들이랑 있으면 온 몸에 경기가 일어나는 거.”
“개소리는 적당히 해둬라 브라흐마. 강진혁이고 나발이고 당장에 네놈의 골통부터 부숴버릴 테니까.”
쿠쿠쿠쿠쿠!
살벌한 투기가 솟구쳤다.
거대한 증오와 분노가 뒤섞인 빛.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졌다.
“하하하. 진정하라고. 언짢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상대가 워낙 성가신 놈이라… 자네의 그 힘이 여전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거든.”
“……그래서?”
“충분한 것 같네.”
브라흐마가 싱긋 웃었다.
아수라를 비롯한 천세에서 가장 지독한 요수들이 모조리 모였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거대 신화 정도는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물며 아수라까지 합류한 지금이라면…!
올림포스나 북유럽 쪽이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시점이더라도 현재의 천세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싸움이 되겠군. 연합이라고 해봤자 다 합쳐도 우리 1개 연대 병력에 불과하니까.’
약 3,000배. 단순히 숫자만 보면 그 정도의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게다가.
[‘차원의 틈’으로 새로운 대마도사 ‘아페르망’과 그 휘하의 엘프들이 합류합니다!] [‘차원의 틈’으로 검은 이리와 순혈종 ‘락타크’가 합류합니다!]뛰어난 지원군이 속속 넘어오고 있는 중이다.
일부러 백도어를 만들어둔 보람이 있었다.
이걸로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온 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콰앙!
“브, 브라흐마 님!”
사원의 북쪽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곳엔 얼굴이 사색으로 일그러진 병사가 서 있었다.
“큰일…났습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쟁의 불씨가 터졌다.
그것도 아주 거세게.
* * *
“에잇취! 에잇취! 뭐지? 날씨도 이렇게 좋은데 봄 감기라도 걸렸나.”
진혁이 연신 재채기를 내뱉었다.
가슴 부근이 간질거리는 데다가 귀까지 간지럽다.
“누군가 자네 욕이라도 잔뜩 하고 있나 보지.”
“하긴, 이런 짓을 하고 있는데 욕을 안 할 리가 있나.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인간이 이런 짓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토르와 헤라클레스가 혀를 찼다.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콰콰쾅!
그들이 하고 있는 건 그야말로 찬란한 문명을 박살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우루루 무너지는 사원과 각종 조각상들.
천세의 위업을 기리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가루가 되는 중이었다.
“아, 안 돼….”
“제발 저것만큼은…!”
“신께서 천벌을 내리실 거다!”
마을 주민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박살 나는 마을을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떠오르는 상태창들에 집중했다.
[‘5,000년 된 조각상’을 파괴한 결과로 천세의 위업이 -150만큼 떨어집니다.] [‘고승의 석탑’을 파괴한 결과로 천세의 위업이 -277만큼 떨어집니다.] [‘루드라의 손바닥이 새겨진 석판’을 파괴한 결과로 천세의 위업이 -3,552만큼 떨어집니다.]위업.
45층을 지배하는 천세는 다른 층계와 달리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그 격을 쌓아올리는데.
그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자신들을 상징하는 수많은 미술품과 건축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크고 웅장할수록.
그리고 오래되거나 의미가 깊을수록 그 가치는 커질 터.
진혁이 이 유적을 찾은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유적 ‘아센스만 마을’]위업: 15,000,000
내용: 위대한 주신 루드라가 아끼던 마을로 약 5,000개의 보물과 조각상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센스만 마을주민들이 만든 ‘루드라의 석탑’은 천세의 신격들에게 있어 많은 추억이 깃든 성유물입니다.
좋아. 기왕 움직이려면 가장 화끈한 걸로 시작해야지.
진혁이 거대한 망치를 꺼냈다.
오룬으로부터 강제로 뜯어낸 ‘대장장이 망치’였다.
“퉤! 퉤!”
이 서늘하고도 익숙한 감촉.
BJ를 하면서 종종 생활비가 부족했을 땐 노가다를 뛰곤 했다.
촉망받는, 아니 에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이 있었지.
용접, 배관, 전기, 토목 등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두루 잘하긴 했었으나.
그중에서 가장 자신 있던 건….
콰직!
퍼퍼퍼퍽!
‘철거’.
특히 건물을 박살 내는 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오죽하면 현장의 팀장님이 고덕의 인간 불도저라며 단가협상을 시도했으니까.
비록 일을 그만둔다는 말에 울먹이던 팀장은 더 이상 없었지만, 그때보다 더욱 거대하고 박살 낼 게 많은 현장은 남아 있었다.
진혁의 입 꼬리가 빙그레 초승달을 그렸다.
‘당황스러울 거다.’
자신들의 격이 유적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아는 건 천세의 주신급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외부에서 온, 웬 연관도 없는 인간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움직이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당연히 미끼를 물고 이쪽의 뒤를 쫓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픈 곳들을 찌르며 적들을 유인할 계획입니다.”
진혁이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조잡하긴 했지만, 이 일대에 관한 지형과 지물에 대한 정보들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흐음. 굳이 복잡하게 작전 같은 걸 짜야 하나? 아까 전처럼 우리가 적의 주신들을 처리하면 그 뒤에는 알아서 무너질 텐데?”
헤라클레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그래. 화끈하게 전면전으로 가자고.”
토르가 동의하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뇌까지 근육으로 된 놈들은 1차원적인 사고밖에 하지 못한다니까.
이 힘캐 바보들을 데리고 싸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아뇨. 처음처럼 탁 트인 곳에서 싸우면 저희에게 승산이 없습니다. 압도적인 병력 차 때문에 말이죠.”
루드라를 기습한 거야 선봉전에 대한 통념에 허를 찔러서 가능한 거였고.
놈들이 같은 수법에 또 당해줄 만큼 멍청하진 않을 거다.
아수라라는 최강캐는 물론….
시바와 비슈누 역시 언제 어느 때에 합류할지 모르기도 했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유리한 장소를 선점하고 그곳에서 싸워야 합니다.”
천세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다.
거기서라면 적은 규모로도 얼마든지 적의 대군에 맞서 버틸 수 있다.
진혁이 자신감 넘치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모두를 구할 것이라는 영웅심이 활활 타올랐다.
“과연….”
“그대만 믿겠네.”
“이곳에 대해 잘 아는 듯 싶으니 전적으로 맡기겠어.”
모든 신격들이 뜨겁게 손뼉을 마주쳤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 속.진혁이 답례하듯 머리를 깊게 숙였다.
그렇기에. 모든 신들은 만면에 비웃음이 가득 실린 진혁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먹혔네.‘
완벽하게 신뢰를 얻었다.
이 고기 방패들이 열심히 버텨주는 동안 연꽃을 슥삭하면 계획에 화룡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리스크는 최소한. 보상은 최대한.
그게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사내 이념이다.
* * *
같은 시각.
진혁이 아센스만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걸 안 브라흐마가 다급히 병력을 소집했다.
‘내 예상이 틀릴 줄이야.’
당연히 강진혁이란 인물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언약이 발동되기 전까지 타임 리미트를 걸고 움직일 거라 확신했다.
올림포스를 무너뜨렸을 때처럼 주력은 이쪽 본대의 시선을 끌고. 고인물 코퍼레이션을 위시한 소수 정예로 자신과 나머지 주신들을 노릴 것이라 가정하고 판을 짰다는 소리다.
그런데.정작 진혁이 하는 행보는 단기전이 아닌 초장기전에 가까웠다.
위업을 깎는다는 행위가 효과적인 건 분명했으나 막대한 시간과 인력이 투자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언약이 발동되든 인류가 멸망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뜻.’
하긴, 자신을 배신한 인류를. 그럼에도 당연히 구할 거라는 대전제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빌어먹을.
서둘러야 한다.
놈이 더 많은 것들을 재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바로 그때였다.
“흐음. 인간들이 사는 세상 속에 45층과 연결점을 만들어 놓다니.”
“흥미롭군요. 이게 거대 신화 중에서도 탑이라 평가받는 세력의 능력인가요?”
“후후. 다 제 뛰어난 마법 탐지 능력 덕분에 찾은 줄 아십쇼.”
천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수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락타크와 아페르망을 비롯해 지능이 있는 다수의 S급 보스들이었다.
“마침 잘 왔군. 지금 당장 강진혁을 잡으러 가야 하니 손을 보태라. 특히 엘프들과 이리들은 추격에 능하니 선두를 맡아주고.”
브라흐마가 보스들을 보자마자 바로 명령을 내렸다.
누가 봐도 하대를 하며 내리깔아보는 모습.
보스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락타크가 송곳니를 드러내려 하자 아페르망이 재빨리 손을 뻗어 만류시켰다.
“참으라는 거냐?”
“굳이 같은 편끼리 싸울 필요는 없다. 뭐, 이런 뜻이다.”
아페르망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건 그렇고. 근사한 선물을 가져왔는데… 우릴 찬밥 취급하면 쓰나?”
[Lv45 ‘인비저블 사이트’가 해제됩니다.]우우웅!
공간이 일렁이며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크윽….”
엘리스.
“여기는…?”
“적의 본거지인 건가.”
그리고 천유성과 테레사를 비롯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줄지어 보였다.
“자, 이런데도 우리가 당신의 명령이나 받아야 할 처지라 생각하나?”
아페르망이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호오….”
브라흐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같이 있던 나머지 신격들의 표정도 180도 달라졌다.
설마, 적의 주력 멤버들을 사로잡았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엘리스라니.
“재밌군.”
언노운을 비롯해 운영자란 족속들이 요구해온 최상위 요구 중 하나.
만약 아타락시아의 가주를 포로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무궁무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