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21)
621화. 고인물이 거대 세력을 무너뜨리는 법 (1)
변장 혹은 코스프레.
적을 속이는 데 있어서 이쪽의 모습을 바꾸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거다.
기존의 정보가 완전히 바뀌는 셈이었으니까.
‘진짜 기가 막히긴 하네.‘
진혁이 다시 한 번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꼬장꼬장한 수염과 깊이 파인 주름.
붉게 달아오른 양쪽 볼은 여지없이 북유럽 주정뱅이의 모습이었다.
사전에 코인거래소에서 구매한 ‘괴도 루팡의 변장 세트’와 ‘인피면구’ 스킬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 톡톡히 제 역할을 한 셈이다.
거기에 추가로 ‘마력의 잔향’을 가려주는 향수까지 뿌려뒀으니 베리엘이나 아누비스 같이 지긋지긋하게 만나본 신들이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때.
“빨리 빨리 움직여라. 버러지들아. 재빠르게 임시 수용소에 들어가 있으란 말이다.”
“당장 그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기 전에 엉덩이를 들어올리라고!”
아수라를 따르는 요수병들이 포로들에게 호통쳤다.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듯한 기세.
말이 좋아 포로지. 요수병들 입장에선 전쟁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비겁하게 명예를 내다버린 패배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쳇! 다 죽여 버릴 것이지 위에서는 뭐 때문에 이런 놈들을 데리고 있으란 건지.”
“노예병인지 뭔지로 쓴다고 하니 어쩔 수 없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
-잡은 놈들은 죽이지 말고 모아둬라. 정신 마법으로 세뇌한 후에 적과의 전쟁에 투입할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협곡을 파헤치고 거점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력으로라도 쓸 터이니 절대 손을 대선 안 될 것이다.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브라흐마의 완강한 지시.
제아무리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요수병들이라도 그 말에 정면으로 거역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절한 폭력까지 쓰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을 터.
“굼벵이 같은 놈들. 뜨끔한 맛을 보여주도록 하지.”
“살가죽이 벗겨져 나가면 알아서 빠르게 움직일 거다.”
그렇게 불만이 쌓인 요수병들이 채찍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
“뭐야… 이 냄새는?”
갑자기 포로들이 있는 곳에서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왔다.
음식 냄새.
그것도 생전 처음 맡아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꿀꺽….자신도 모르게 목을 따라 군침이 흘러 넘어갔다.
본디 전사들에게 있어 음식이란 그저 영양을 보충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
‘맛있다’라는 미각 따윈 사치였고 또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상식이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요수병들이 자기도 모르게 냄새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단순히 한두 명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이 근처에 있는 모든 이들이 보인 공통적 행동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
거기에 웬 늙수그레한 노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보글보글.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먹음직스러운 고기.
각종 야채와 조미료가 들어간 스튜는 전신의 세포를 모조리 자극하고 있었다.
“어이구!”
진혁이 요수들을 보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자아냈다.
그러더니 굽신거리며 하던 요리를 멈췄다.
“누추한 분… 아니, 귀하신 분들이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에 오셨습니까?”
“어이 늙은이. 네놈이 그걸 만든 것이냐?”
“예? 아… 이것 말씀입니까? 예예. 제가 미천하나마 요리를 하는 재주가 좀 있습니다. 해서 연합에서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습죠.”
“호오.”
“그래도 마냥 머저리들만 모여 있는 건 아닌가 보군.”
“쓸모가 있겠어.”
요수들이 입가에 침을 훔치며 냄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체면 때문에 참고 있는 거지. 만약 보는 눈이 없었다면 서로 달려들어 냄비 안에 대가리를 처박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식욕이 이성의 끈을 건드리고 있었다.
“괜찮으시면 한 번 맛 좀 보시겠습니까? 자비롭게 저희를 살려주셨는데, 소소한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아니, 제발 한 번이라도 제 미천한 요리를 드셔 주시면 평생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크흠! 뭐, 그런 이유에서라면야….”
적절한 명분까지 던져줬으니 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다.
요수 한 마리가 마지못한 듯 다가와 국자를 퍼올렸다.
그리고 음식이 입을 따라 식도로 내려간 순간.
“……!!!!????”
험상궂던 얼굴이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툭.
들고 있던 국자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설마 독인가?”
“이 늙은이가…!”
스릉!
철컹!
여기저기서 각종 병장기들이 뽑히려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공격을 하려던 행동이 우뚝 멈췄다.
요리를 먹은 요수의 볼을 따라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본 것이다.
“크읍….”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
아주 오래전. 이젠 기억조차 까마득한 먼 옛날에 맛봤던 바로 그 맛.
아아, 이건 ‘어머니’가 해주신 맛이다.
“살아 있어서… 이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요수가 누구에게 뺏길세라 양 손으로 커다란 냄비에 담긴 고기를 움켜쥐었다.
“나, 나도 먹겠다.”
“내가 먼저다!”
“비켜라! 중대장인 이 몸이 먹고 남은 걸 먹으란 말이다!”
“이게 양이 얼마나 된다고…!”
요수들이 저마다 요리를 허겁지겁 먹더니 말문이 막힌 듯 굳어버렸다.
동시에.
[노래가 재생됩니다.]협곡을 따라 한 소절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집을 봅니다.’
구슬픈 음색과 아련한 가사.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 노래에….’
요리와 노래의 이중주에 요수병들의 투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금이다.
진혁이 가볍게 발을 두 번 굴렀다.
툭! 툭
!그게 신호였다.
[10성급 결계 ‘감정의 폭류’가 발동됩니다!]은은한 파장이 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이 협곡을 전장으로 선택한 것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워낙에 지형이 험준하고 자연의 기가 풍부해 10성급 이상의 대결계를 발동하기가 극단적으로 쉬웠기 때문이다.
준비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광역 결계의 단점을 가볍게 만회할 수 있는 것이다.
“으으으….”
“으어….”
요수들의 동공이 서서히 풀렸다.
정신이 붕괴되면서 이제는 명령을 잘 듣는 꼭두각시 인형들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굳이 물량이 잔뜩 있는 적들이랑 정정당당하게 싸워줄 필요는 없지.’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적들을 무너뜨린다.
그것이 가장 확실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진혁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복사 조건을 달성하게 된 게 가장 컸다.
‘일단 시작이 좋네.’
아수라를 비롯해 천세의 주신들을 박살 내기 위해선 몇 가지 능력들을 모아야 하는데, 그 첫 번째가 ‘요기’를 익히는 것이다.
[복사에 성공했습니다!] [요수화]입수 난이도: SS
내용: 요수족 특유의 요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며 숙련도에 따라서 요기의 크기를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복사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쿠쿠쿠쿠쿠!
진혁의 몸을 따라 녹색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직은 어설프고 약한, 하지만 분명 요수들 특유의 ‘요기’였다.
* * *
약 3시간 뒤.
전쟁의 승패가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냈다.
“시바 님께서 전쟁에 합류하셨습니다. 오딘과 아테나는 패주했고 에덴과 마계 역시 거점에 틀어박혀 방어하기에만 급급해하고 있습니다.”
“현대에서도 게이트가 계속해서 발생하여 인간 측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합니다!”
“적들 중에서 가장 성가신 토르와 헤라클레스는 아수라와의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당분간 모습을 보이기 힘들 것으로 사료됩니다.”
굵직한 승리를 알리는 소식들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소소하게 안 좋은 소식들이 섞여 들어왔다.
“산트라 동굴 쪽으로 간 아르주나와 1만의 신수병들이 연락 두절됐습니다.”
“능그란문 산으로 간 2만 규모의 병력 역시 방금 전 마력 반응이 사라졌어요.”
“요수들 쪽에서도 정보 공백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리가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이건 상정 범위 이상입니다.”
“뭐, 신화의 영웅 몇이야 잃어도 어쩔 수 없는 거지. 요수들 쪽은 워낙 제멋대로인 놈들이기도 하고.”
가네샤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나머지 주신들의 반응도 가네샤와 비슷했다.
분명… 전쟁의 큰 흐름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소소한 피해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천세 전체에 비하면 1%도 안 되는 작은 규모.
반면 이쪽은 적의 본대라 할 수 있는 올림포스와 북유럽의 대군을 격파하고 20만에 가까운 포로들을 잡아들였다.
하지만 왜일까?
브라흐마는 이 전쟁이 마냥 쉽게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보에 의하면 강진혁이란 인간은 언제나 불리한 상황 속에서 승리를 만들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한 방.
이쪽이 완벽하게 이길 것이라는 오만 속에서 빈틈을 만들어 역공을 가해왔다.
‘절대 당하기만 하다가 끝날 리가 없어.’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도 모두 계산 하에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뭔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다.
브라흐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쪽이 가장 크게 간과하고 있는 점.
그리고 진혁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하나가 걸렸다.
‘포로….’
전쟁에 있어 포로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죽인 적의 수보다 포로로 잡은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호전적으로 덤비던 처음을 떠올린다면 이치에 맞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특히 발할라를 믿는 북유럽 쪽에서 순순히 전투를 포기하고 항복한다는 게 그게 과연 말이 되는 것일까?
“설마….”
일부러 잡혔다는 건가?
이쪽의 내부에 잠입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걸 통해 심장에 비수를 꽂기 위해서.
그렇게 가정한다면 모든 게 앞뒤가 맞았다.
바로 그때였다.
“가네샤 님. 아수라 측에서 요수들이 적의 주요 전력들을 생포해 왔다고 합니다. 직접 만나 뵙고 인수인계를 하고자 해서….”
“귀찮게 하는군. 그냥 적당히 넘기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그게… 공과를 확실하게 하려면 반드시 직접 만나 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천세와 대립하던 요수들로서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기록으로 남기고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서로 간에 신뢰라는 게 없기 때문에 고집을 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빌어먹을. 어디쯤이라고 하더냐?”
“약 30분 거리라고 합니다. 본진으로 들여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래. 알겠다.”
가네샤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였군.’
브라흐마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여기저기서 연락 두절이 되는 요수병들이 사실 진혁에게 세뇌당한 거고. 그걸 통해 자신과 주력 주신들을 포로로 위장해 본진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온 뒤 방심하고 있는 이쪽에게 기습을 가한다면….
‘연속적으로 승리에 취한 우리 입장에선 당할 수밖에 없는 한 수겠지.’
완벽한 작전이다.
단 하나.
그걸 읽을 수 있는 이 몸이 없었더라면.
브라흐마가 가네샤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친위대를 불렀다.
굳이 눈치 없는 코끼리에게 알려 상대에게 힌트를 주고 싶지 않았다.
완벽하게 함정에 걸린 척 연기를 한 다음.
‘이쪽에서 더욱더 거대한 함정을 파고 기다려주마.’
30분이면 포진을 갖추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