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628)
628화. 웅크란 대사원 (2)
저벅.
걸어오는 다수의 그림자.
“너희가 어째서….”
시바의 목소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은 결코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요계를 지배하는 아수라.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요수들이 주위를 빼곡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왜, 우리가 이곳에 있어서 놀란 건가?”
“당연한 소릴! 너희는 브라흐마와 함께 이슈쿠라 늪지에서 연합을 치기로 하지 않았더냐!”
“원래 그럴 예정이긴 했지.”
아수라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멈춰라!”
간격을 조금씩 좁히자 시바가 으르렁대며 경고를 보냈다.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갑자기 우릴 배신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브라흐마와 비슈누가 네놈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토록 고생했거늘.”
“받아들인다고? 개소리 하지 마라! 우리 뒤통수를 친 건 너희가 먼저다. 감히, 우리 애들을 죽이고서 무사할 줄 알았더냐?”
“뭐? 죽였다고? 우리가?”
“시치미 떼지 마라!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우리를 제끼려고 했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잠깐…!”
시바가 다급히 외쳤다.
단단히 오해를 했다는 게 확실해졌지만, 이미 아수라에게 대화를 할 여유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천유성이 적당히 긁어주는 덕에 도발의 효과는 배가 되었다.
“쯧쯧. 같은 편을 등쳐먹기나 하고 걸리니까 새빨간 거짓말이나 늘어놓으면서 변명하고. 나였으면 쪽팔려서 혀 깨물고 죽었다. 죽었어. 아니, 시바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오히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더 어울리려나?”
이미 진혁에게 다양한 혀놀림을 배운 천유성이다.
도발 레벨이 만렙에 이르다 못해 상대의 멘탈을 파괴시킬 정도.
특히 최고 주신으로서 모욕이라곤 당해본 적 없는 시바에겐 그 충격이 몇 배나 크게 다가왔다.
“저… 찢어 죽일 인간 놈이…!”
“크하하하! 차라리 인간들 쪽이 더 시원시원하군. 뭣들 하느냐? 저 더러운 놈들을 전부 쓸어버려라!”
아수라의 명령이 떨어지자 요수들로부터 섬뜩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다들 자신들의 동료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똑똑히 지켜봤기에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크오오오!”
“오오오오!”
요수들이 일제히 천세의 군대를 향해 돌진했다.
“시바 님!”
“요, 요수들이 몰려옵니다!”
“멍청한 놈들.”
시바가 분을 참지 못하고 기함했다.
적들의 술수에 그대로 넘어가버린 아수라가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동시에 아수라와 요수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이런 상황을 설계한 것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적이지만 대단하다.
하지만, 동시에 다행이다라는 생각 역시 함께 들었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어차피 놈들과는 함께 할 수 없었으니까.”
이참에 아수라와 요수들을 모두 박살 내 미래에 대한 후환을 없애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콰콰콰콰쾅!
투콰아앙!
곧바로 양 군이 숲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 안 대고 코 푸는 전략은 언제나 기가 막히는군.’
느긋하게 전투를 지켜보던 천유성이 혀를 내둘렀다.
한편으로는 그 능구렁이 같은 고인물에게 휘둘리는 적들에게 일말의 동정심과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 * *
미궁에 진입한 진혁과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멤버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이쪽입니다.”
페시스가 선두에 선 덕에 수많은 갈림길 속에서도 정확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방금 전 마정석으로 꼬드긴 해태가 함께 하고 있었기에, 공략 속도는 기존의 몇십 배나 빠를 수밖에 없었다.
“삼지창 끝에 있는 루비를 뽑으면… 오도독! 우둑! 가디언들이 깨어나는 걸 막을 수 있다. 꿀꺽! 맛있긴 한데 양이 조금 부족하군. 하나만 더 다오.”
“계속해서 쓸 만한 정보만 던져 줘. 다음엔 특제 소스를 바른 마정석을 줄 테니까.”
“호오오! 그것참 군침이 도는 말이로군.”
해태의 입에서 굵은 침이 뚝뚝 떨어졌다.
역시, 신수나 환수들을 꼬드기는 최고의 방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을 거다.
‘이세계 식당’을 통해 경지에 오른 요리 실력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툭!
진혁이 해태가 알려준 순서에 따라 낭떠러지에 있는 돌들을 밟았다.
한 번만 발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저승행이었을 테지만, 정답을 알고 있는 이상 두려워 할 이유는 없었다.
[13단계 관문을 돌파했습니다!] [14단계 관문을 돌파했습니다!] [15단계 관문을….] [……돌파했습니다!]천세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미궁이 너무나 손쉽게 돌파되었다.
내부를 지키는 신성한 가디언들도.
침입자들을 교묘하게 죽이기 위해 고안된 각종 주술과 함정들도.
페시스와 해태 앞에서 속수무책 무너졌다.
이대로라면 30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대사원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우뚝하고.
페시스의 발걸음이 처음으로 멈췄다.
“……뭔가 있습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크륵!?”
정신없이 마정석을 흡입하던 해태도 입을 움직이는 걸 멈췄다.
덜덜덜.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45층에 속해 있는 한, 이 층계를 관장하는 최고 주신의 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으니까.
“당신이라면… 이곳을 노릴 거라 예상했는데, 정확히 그 예상이 맞았군요. 어떻습니까? 비슈누여. 제 말이 맞지 않았습니까?”
“흐음. 반신반의했는데 보험을 들어놓길 잘했군.”
3주신 중 하나.
모래 더미 위에 비스듬히 기대있던 비슈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옆에는 기묘한 가면을 쓴 언노운이 서 있었다.
”…….”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언노운이 이 자리에 나타날 줄이야.
‘아직 힘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텐데….’
시련의 탑에 존재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이토록 단기간에 저 정도 마력을 모으기란 불가능한 일일 터.
벌써부터 언노운이 이곳에 온다는 건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그렇다는 건….
‘제대로 힘을 갖추지 못했다는 건가.’
우리가 워낙 빠르게 치고 나가니 위기감을 느껴서 도중에 나왔다.
혹은.
마력 공급을 중단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둘 중 하나겠지.
뭐가 됐든 상황이 골치 아프게 되었다.
척.
진혁이 양 손에 단검을 움켜 쥐었다.
천유성과 아수라가 천세의 본대를 막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1시간 남짓.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고유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칼날을 타고 검붉은 기운이 맺혔다.
진혁이 전투를 준비하자 나머지 멤버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고유능력을 해방시켰다.
“그대가 강진혁이군. 확실히… 수많은 주신들을 넘어온 것에 걸맞은 기세로다. 적으로 만나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비슈누가 그런 진혁의 앞에 섰다.
“유명한 신에게 그런 칭찬도 들으니 영광이네. 저 뒤에 있는 녀석만 넘겨주면 앞으로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관심 있어?”
“후후후. 나에게 가망성이 없는 곳에 판돈을 걸라고 하는구나. 미안한 이야기다만, 나는 승산 없는 쪽에 붙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이미 최초의 연꽃이라는 목적을 간파한 이상.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는 게 탑의 주신들마저 좌지우지하는 존재인 이상.
배신을 할 이유는 없었다.
[비슈누가 고유능력 ‘현상번영’을 발동합니다!]우우웅!
브라흐마가 창조를 관장하고 시바가 파괴를 관장한다면, 비슈누는 만물의 유지를 관장한다.
45층이 지금까지 존속해 왔듯. 앞으로도 영원히 그 영광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꽃들이 피어난 장소에선 천세의 신들이 사용하는 모든 성유물들의 능력치가 100%만큼 상승하게 됩니다!]아름다운 꽃들이 주위를 가득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비슈누의 특성상 45층에 있는 신격들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중에서도 성유물을 강화시키는 능력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종류였다.
동시에.
[성유물 ‘카우모다키’가 소환됩니다!] [성유물 ‘수다르사나’가 소환됩니다!]곤봉을 닮은 무기와. 원형의 챠크람이 나타났다.
파츠츠!
각각의 성유물에 만다라의 황금 빛이 서렸다.
“그럼, 뒤를 부탁하겠습니다.”
언노운이 살짝 불편한 듯 고개를 꾸벅인 뒤 몸을 돌렸다.
진혁보다 먼저 ‘최초의 연꽃’을 확보하려는 생각에서다.
“그래. 맡겨두도록.”
비슈누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언노운의 모습이 멀어지려 했다.
저걸 가만히 내버려둬선 안 된다.
“멈춰!”
콰앙!
진혁이 자리를 박차고 도약했다.
엘리스가 다수의 블러드 스피어즈를 소환했고. 프레이가 진혁이 도약하는 곳과 멀리 떨어진 측면에서 비슈누에게 접근했다.
동시에 이루어지는 합격.
콰아앙!
비슈누의 곤봉과 챠크람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간 챠크람이 측면에서 접근하던 프레이를 날려버렸다.
“……!!”
단창을 교차해 막긴 했지만 2배로 강화된 성유물의 위력을 그대로 버텨내긴 쉽지 않았다.
그래도 프레이가 버텨준 덕에 약간의 틈을 만들 수 있었다.
콰콰콰콰쾅!
비뉴수가 엘리스가 투척한 꼬챙이들을 쳐내는 사이.
툭…!
완벽하게 뒤를 잡은 진혁이 두 개의 단검을 교차했다.
천지를 쪼갤듯한 검격이 비슈누의 등을 강타했다.
하지만.
카아아앙!
검이 살가죽에 닿기 바로 직전, 은은한 꽃잎 한 장이 단검을 막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세 명 중에서 가장 단단한 편이지. 빠르게 이긴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언노운이 연꽃을 영구봉인 하기 전까진 충분히 버틸 순 있을 거야.”
막강한 능력과 수많은 전투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
비슈누가 태산처럼 통로를 가로막았다.
페시스가 연신 눈을 굴렸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빠져나갈 구멍이나 다른 샛길이 없다는 거겠지.
그런데 바로 그때.
진혁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정확히는 조금 전 비슈누가 했던 말 중에 걸리는 부분이 있던 것이다.
“기다려봐.”
“음?”
“언노운이 그런 말을 했어? 최초의 연꽃을 봉인해 영원히 지켜주겠다고?”
“싸우다 말고 쓸데 없는 거에 관심을 가지는구나.”
비슈누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대답해줄 필요는 없는 질문.
그럼에도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진혁에게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언노운이 왜 일찍 모습을 드러낸건지. 그게 의문스럽진 않았어? 아까 비틀대는 걸 보니 아직까지 완벽한 컨디션을 되찾지 못한 것 같던데?”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되도 않는 말로 우리를 흔들 생각이라면….”
“아니, 그냥 주어진 단서를 토대로 가장 그럴 듯한 가설을 세워보자는 것 뿐이야.”
진혁이 비슈누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언노운이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마력이 부족한 상황이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너희의 성유물이 필요한 거지. 그런데 때마침 우리 역시 그걸 노리고 있으니 연꽃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이곳에 오려고 했다면…?”
그렇게 가정한다면 꽤나 앞뒤가 맞지 않나?
진혁이 무시할 수 없는 화두를 던졌다.